'타이트'한 검정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여자 뒤에 서 있다. 여자는 왼팔로 남자의 목을 감고 시선을 맞춘다. 남자의 손가락이 여자의 팔, 안쪽을 쓸어내렸다. 여자는 웃지 않았다. 에밀 아돌리도 감독의 [더티 댄싱]에서 탄탄했던 남자의 근육이 쪼글쪼글한 모습으로 공개된 건 몇 개월 전이었다. 그리고 지난 9월 14일, 패트릭스 웨이지라는 이름으로 57년을 살아온 남자의 부고가 들려왔다. 1987년, [더티 댄싱] 속에 있었던 무대와 '(I've had) The Time of My Life'가, [사랑과 영혼]에 있었던 눈물과 'Unchained Melody'가 누군가의 귓가를 떠나지 않았었다. 영화와, 배우와, 음악은 그런 식으로 대중의 귀를 자극하고 그보다 더 깊은 곳에 머물러 떠나지 않는다. 지금, 옛날 신문에서 몇 편의 영화와, 또 몇 곡의 음악을 찾아보는 건 어떤 의미일까? 아침저녁으로 가을이 짙어지는 계절이니까, 추억과 현실은 시간에 관계없이 섞여든다. 일단의 시작은 1970년대다. 존 트라볼타와 비지스다.
글 / 정우성 ('GQ 코리아' 피처에디터)
[1983년 동아일보] 강세 보이는 영화음악
지난주 '그 시절 그 노래'를 읽은 독자라면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와 비지스의 익숙한 이름 또한 기억할 것이다. 자, 디스코 열풍은 이미 80년대를 휩쓸었다. 1983년 동아일보엔 '영화음악'을 중심에 두고 몇 편의 영화와 음악을 더 소개했다. 영화보다 먼저 알려진 곡들이 있었고, 한국에서도 수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던 음반들이 있었다. 영화 [ET] 주제가는 제 25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경음악작곡상, 최우수 영화앨범, 최우수 경음악편곡상 등을 수상했다. [사관과 신사], [로키3]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 쓴다. '[길]이라든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의 옛 영화음악은 영화의 인상적인 장면에서 음악이 나오지만 요즘은 영화의 장면보다도 주제가 자체가 더욱 깊은 인상을 준다. 예전에는 영화가 히트하면 영화음악도 덩달아 인기를 얻었지만 최근에는 노래가 먼저 알려져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존 트라볼타 주연의 [토요일 밤의 열기]와 비지스를 언급한다. 80년대를 설명할 때나, 영화와 음악을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그들이다.
존 트라볼타의 퇴폐, 방황, 외로움은 댄스 플로어에서 춤이 되었다. 비지스의 노래는 그때 배경이 됐다. 영화는 마냥 흥겹지 않았다. 춤과 노래가 있었지만, 이전에 고단했다. 존 트라볼타는 이방인이었다. 브루클린에 사는 이탈리아계 청년이었다. 마음은 먼지처럼 부유했고 몸은 무대 위에서 가까스로 안착할 수 있었다. 디스코는 그런 식으로 해방구였다. 70년대 말의 미국과, 80년대 한국의 상황은 어떤 점에서 같거나 달랐을까? 억압은 항상 있었고, 돌파구는 노래였다. 하늘을 찌르는 손가락이기도 했다. [토요일 밤의 열기]는 그런 식으로 세계의 젊은 마음들을 '툭' 선선하게 치고 머물렀다. 기사는 이어진다. '[토요일 밤의 열기]는 라이선스 음반으로 3,4만 장이 팔렸다. (중략) 멜로디 위주에서 탈피한 영화음악은 점점 리듬을 중시하고 있다. 또 종전에는 오랜 기간을 두고 꾸준히 팔리는 것이 상례였으나 최근에는 팝송처럼 인기에 따라 빠른 시일 내에 무더기로 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기사 안엔, 라이오넬 리치, 다이애나 로스의 'Endless Love'의 멜로디와 '피비 케이츠'의 목소리도 있다.
[1983년 동아일보] 영화음악, 사랑받는 '고전형 팝'
같은 해 동아일보의 기사다. 70년대부터 이어진 영화음악 열풍을 국내외로 진단했다. 이렇게 쓴다. '영화음악은 대사와 연기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까지 압축해서 표현해준다. 무성영화 시대에 생음악으로 화면의 영상효과를 도왔던 영화음악은 이제 독립된 장르로 확고히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최근에는 영화음악 전문 작곡가뿐 아니라 팝뮤지션들도 대가 참여,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하타리], [샤레이드],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헨리 멘시니를 '정통파 홀리웃' 영화음악가로, [로미오와 줄리엣], [길], [대부]의 니노 로타를 애수 띤 멜로디의 대가로 소개한다. 그리고 다시 [토요일 밤의 열기]. 미국에서만 2천만 장이 팔렸다는 수치. 이렇게 이어 쓴다. '이처럼 영화음악이 호황을 누리는 외국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영화음악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가는 실정. 영화음악 담당자는 감독과 대등한 위치가 아닐 뿐 아니라 2백만~3백만 원의 제막비로 영화음악을 만들어야 하므로 풀 오케스트라 동원은 꿈도 못 꾼다.'
이 와중에, 영화 [별들의 고향]이 1974년에 있었다. 그 안엔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한 잔의 추억'이 또한 있었다. 한국 최초의 OST라고도 할 수 있다. 방황과 좌절, 순수와 갈등은 그 시절의 주인공들을 아우르는 키워드였다. [별들의 고향]의 경아, [겨울여자]의 이화가 그랬다. [고래사냥]도 빠질 순 없다. 송창식의 목소리가 그 시절의 답답함을 상징했던 건 호쾌한 역설이었다. 존 트라볼타의 디스코는, 한국에서 청바지와 통기타였다. 취기는 어쩌면, 그 시절 젊은이들을 위로했던 가장 간편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런 시대였다. '늦은 밤 쓸쓸히 창가에 앉아/꺼져가는 불빛을 바라보면은/어디선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취한 눈 크게 뜨고 바라보면은/반쯤 찬 술잔 위에 어리는 얼굴/마시자 한잔의 추억 마시자 한 잔의 술/ 마시자 마셔버리자' '한잔의 추억'에서, 이장희는 그래서 이렇게 노래했었다. [1984년 경향신문] 빌보드 순위서 3주째 정상, 인기있는 10대 댄스 영화음악
영화음악 붐은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이어졌다. 중심엔 댄스 영화가 있었다. 검은 보타이를 맨 남자가 온몸을 떨고, 드레스를 갖춰 입은 여자들이 박수와 춤으로 즐거워하는 어떤 영화의 앤딩. 그건 10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일종의 제의이기도 했다. 영화 [Footloose]의 한 장면이 그렇고, 같은 제목의 노래를 케니 로긴스가 불렀었다. 빌보드 팝 순위는 3주 연속 1위라는 수치로, 젊은 사람들의 환호를 그대로 반영했다.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 제 멋대로 할 수 있는, 속박 없는.' 'footloose'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이 단어에 가장 적합한 인생의 한 절기는 10대일 것이다. 이십대로 넘어가는 방황일 것이다. 그 시절의 주인공도 10대였다. 혹은 20대였다. 통틀어 ’젊은이'였다. 억압은 그들의 에너지를 응축시켰고, 춤과 음악과 영화는 너무나 명백한 분출구였다. 기사는 이렇게 진단했다. '최근 10대들이 중심이 된 댄스영화 음악들이 인기 팝 음악으로 유행되고 있다. 빌보드 인기 팝 순위에서 무려 3주간이나 정상을 차지한 필 콜린즈의 ’Against All Odds' (중략) 케니 로긴스가 부른 'Footloose' 역시 영화음악으로서 팝 순위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영화 [Footloose]에는 보니 타일러의 ’Holding Out For a Hero', 샬라마의 'Dancing in The Sheets'도 있었다.
시간은 음악에 흐르고, 음악은 남아서 증거한다.
영화와 음악은 대중문화의 두 축으로 여전히 거대하다. 창작자의 반영은 즉각적이었다. 시대를 읽는 촉수는 예민했다. 어떤 의미에선, 그게 시대의 요구이기도 했다. 문화는 젊은 정신의 방어기재이자 공격의 수단이었으니까. 지난여름, 지산 밸리 락 패스티발에서 패티 스미스는 기타를 치켜들고 외쳤다. '이게 우리의 무기입니다! 당신들이 미래입니다!(This is our weapon, You are the Future!)' 말의 의미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 디스코와 댄스 영화로 분출되던 젊음이, 한국에서 청바지와 통기타로 구현된 건 맥락이 같아서 흥미로운 지점이다. 하지만 패트릭 스웨이지의 몸이 만들어낸 솔직한 울림이 2009년에도 채 가시지 않은 것처럼, 존 트라볼타의 퀭한 눈빛이 갖는 의미는 그대로 형형하다. 이장희의 '한 잔의 추억'은 어떤가? '진정한' 것들에 대한 갈증은 어느 시대에나 있다. 그래서, 동시대를 바라보는 마음엔 애정과 증오가 같은 비율로 섞여 있다. 시간은, 어떤 촌스러움도 담보하지 않은 채 음악에 흐른다. 지나간 노래들이, 이렇게 남아서 증거한다.
‘트랜스포머’도 아니면서 ‘변신’으로 유명한 배우가 있습니다. 대중의 눈에 우선 들어오는 부분은 외모입니다. 로버트 데 니로가 <성난 황소>에서 보여준 변신은 고전적 사례입니다. 극중 권투선수로 날씬한 근육질의 몸매를 드러낸 그는 은퇴 후 거구의 코미디언이 됩니다. 같은 사람인지 몰라볼 정도로 살이 뒤룩뒤룩 찐 몸입니다. 한국에선 설경구가 <오아시스>와 <역도산>에서 극과 극의 몸매를 보여줬습니다. 오른쪽에 인터뷰 기사가 실린 <내사랑 내곁에>의 김명민도 체중 감량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 배우들은 외모뿐 아니라 연기에서도 이미지가 완전히 다른 배역을 오갑니다. 데 니로는 건달, 마피아 보스, 악마, 수도사 역을 잇달아 맡았고, 설경구는 잔잔한 멜로드라마, 소규모 예술영화, 1000만 관객의 상업영화에 모두 어울리는 배우입니다.
반면 평생 한 가지의 인상으로 기억되는 배우도 있습니다. 암투병 끝에 이번주 초 세상을 뜬 패트릭 스웨이지도 그런 배우일 겁니다. <더티 댄싱>(1987) 속 스웨이지는 열정적인 춤꾼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안무가였고, 스웨이지 자신 역시 뮤지컬 무대에서 실력을 갈고 닦았기에 춤 영화로 스타덤에 오른 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더티 댄싱>이 스웨이지의 멋진 몸을 보여줬다면, <사랑과 영혼>(1990·사진)은 스웨이지의 순정을 각인시켰습니다. 스웨이지는 이 영화에서 친구의 음모로 살해됐으나, 유령이 된 뒤 생전 사랑했던 여인의 곁을 맴도는 남자 역을 맡았습니다.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Imdb)를 보니 스웨이지의 출연작은 텔레비전 시리즈를 포함해 47편에 이르더군요. 하지만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관객이 기억하는 스웨이지는 이 두 편의 영화에서 본 남성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배우입니다. 대단한 미남은 아니지만 단단하고 보기 좋은 육체를 가졌고, 무뚝뚝한 듯하면서도 속깊게 연인을 사랑하는 남자. <사랑과 영혼>의 스웨이지는 생전 먼저 사랑한다고 말하는 대신, 데미 무어가 사랑한다는 말에 “나도”라고 답하기만 합니다. 못다한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영매의 힘을 빌려 옛 연인의 곁에 머무는 남자, 얼마나 낭만적입니까.
풀만 뜯어먹고 살 것 같다는 ‘초식남’, 김밥 속 우엉처럼 비실거리는 ‘우엉남’의 시대입니다. 1980년대풍 ‘사나이’인 스웨이지가 오늘날의 영화에 등장한다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웨이지가 자신의 이미지에 만족하며 살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 관객이 스웨이지의 변하지 않는 이미지를 여전히 가슴속에 품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실제 스웨이지는 꽤 순정적인 남자이고 일에서는 프로페셔널이었나 봅니다. 결혼과 이혼과 또다른 결혼이 순식간에 이뤄지는 할리우드에서, 스웨이지는 어린 시절의 연인과 23세 때 결혼해 그녀가 보는 앞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었습니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작품활동을 했는데, 연기력이 무뎌질까봐 진통제도 거부했다고 합니다. 스웨이지는 천의 얼굴을 가진 명우는 아니었습니다만, 한 가지 얼굴만으로도 동세대 여성 관객의 연인이 됐습니다. 고인의 영혼이 영원한 평화를 누리길 기원합니다.
배우는 ‘변신’해야 합니까.
라는 글엔 갠적인 생각이지만 배우의 변신 그건 피수 불가 결이 아닐까 생각듭니다.
페트릭 스웨이지 저도 무척 좋아하는 할리우드 배우중 한사람 입니다. 그가 찍은 영화는 꾀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각인시켜준 영화는 2~3편에 불과합니다, 왜 일까요?
사랑과 영혼과 더티댄싱 그외는 그닥 강력한 스트라이크를 던져준 영화는 왜 기억에 안남을까요?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페트릭 스웨이지 하면 그 영화외에는 말이죠... 그것은 그 영화 이후 그런 장르속에서 또는 그 배우가 계속 같은 톤으로 이미지를 담는 작품활동을 했기 때문인것이 아닌지 싶습니다. 배우의 연기력이 부족해서... 배우의 작품 내공이 부족해서... 그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것은 배우의 변신 그것이 부족해서 관객들은 세월이 흘러도 사랑과 영화 더티댄싱 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배우들을 이미지 변신을 수 없이 꾀하는 것이고 또 이미지변심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쓴다고 합니다.
해서.... 배우의 변신은 필수요인이라는 개인적 생각을 가져봅니다.
아마도... 페트릭 스웨이지 지금은 안계시는 배우이지만 이분 역시 영화 작품마다 변심을 꾀하려 수없이 노력했으리라 생각듭니다.... 저의 생각이 올리신 글의 의도와 다른 옆길로 살~ 흐른 점이 있는데... 윗 문장 / 배우는 ‘변신’해야 합니까. / 라는 글에
패트릭 스웨이지 역시나 마지막 작품 활동 할 때까지 변신 그것이 고민꺼리 였을꺼라 생각되기에 이래저래 저의 생각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그분의 작품중 한편인 영화 폭풍 속으로..가 보고싶어 지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카르타고 군과 로마 군은 칸나이에서 만나게 된다. 전투를 앞두고 두 군대는 서로가 보이는 위치에 정렬해 있었다. 카르타고 군사들은 자신들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병사들 사이로 두려움이 번지기 시작했다. 모두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이때 기스고(Gisgo)라는 한 카르타고 장교가 병사들 앞으로 나와 로마 군의 숫자를 가늠해보더니 한니발 장군 앞에 멈춰 서서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기스고, 자네가 알아채지 못한 게 한 가지 있네." 한니발이 말했다. "상대편 병사의 수가 저렇게나 많은데 기스고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거지." (141p)
리더십의 힘은 '자신감'에서 나옵니다. 위기 때는 더욱 그렇지요. 리더 스스로 자신감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팔로워들을 확신시킬 수 있고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그는 칸나이에서 로마 군과 부딪칩니다. 숫적으로 훨씬 우세한 로마 군 앞에서 카르타고의 병사들은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한니발의 눈에도 두 군대의 병력 차이가 분명히 보였습니다.
그 때 기스고라는 장교가 병사들 앞에서 전력의 명백한 열세 사실을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습니다. 한니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스고, 자네가 알아채지 못한 게 한 가지 있네. 로마 군의 병사가 훨씬 많기는 하지만, 기스고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지."
자신감에서 나온 농담이었습니다. 로마 군에는 기스고는 없습니다. 기스고는 카르타고에만 있지요. 한니발도 로마군에는 없었습니다. 카르타고에만 있었습니다. 순간 병사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고, 팽팽했던 두려움과 긴장감은 깨졌습니다. 그리고 비록 숫적으로는 열세이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그 누구도 아닌 기스고와 한니발, 그리고 나 자신이 있다는, 그래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대열 사이로 번져나갔습니다. 물론 이날 전투는 카르타고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지요.
위기의 순간, 조직 전체에 두려움이 퍼져나간 절체절명의 순간. 이런 순간에 짧은 농담 하나로 한니발은 팔로워들의 분위기를 극적으로 바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