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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드라마 '이산'(출처 : http://www.imbc.com/broad/tv/drama/isan/wallpaper/)
사도세자의 아들 이산, 훗날 정조대왕이 되는 그는 어린 시절부터 위협을 받으며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에 왕이 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말만하면 신하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와 다르다. 특히 경종 이후부터 당파는 왕의 권위를 넘어섰다고 보아도 될 듯 하다.
기존의 당쟁은 서로의 의견을 놓고 대립하면서도 결국 왕의 중재로 어느 하나가 결정이 났다면 조선 중후기, 경종 시대로부터 당쟁은 임금에게도 당적을 붙이고 자신의 당파가 아니면 임금 역시 '적'이 되는 것이였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오늘날 여당과 야당의 대립과 같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당시 조선의 정치상황을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경종은 소론, 영조는 노론 군주였다. 여기에 사도세자는 소론파였으니 영조의 노론판 신하들은 상소에 상소를 거듭하여 결국 뒤주에 가두어 죽게 된다. 더욱이 그를 죽이는 것에 가장 큰 손을 거든 것이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 즉 사도세자의 장인 홍봉한이었다.
여기에 이산(정조)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뒤주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며, 할아버지 영조에게 제발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빌고 빌었었으니, 노론파의 입장에서 보면 이산은 절대 다음 대의 왕이 되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영조에게 아들이라고는 사도세자 밖에 없었고(맏아들 효장세자는 일찍 죽음) 더욱이 사도세자의 빈, 혜경궁 홍씨에게서 난 세손은 이산 밖에 없었다. 그 외에는 후궁 양제가 낳은 아들이었다.
이에 영조는 이산을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시켜 사도세자의 아들이 아닌 효장세자의 아들로 다음대 임금으로 만들려고 한다. 물론 노론파의 강경 세력들은 이를 반대하고 저지하려 하였으니 어린 시절부터 이산(정조)은 암울한 정치 상황의 틈바구니에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산은 어렸지만 매우 총명했다. 그가 만약 아버지를 죽게 만든 영조를 미워하고 칼을 갈고 있었다면 영조의 생각이 노론 강경파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산은 영조에게 진심으로 효도하였으며, 영조 역시 당쟁에 의해 희생된 아들 사도세자에게 미안한 마음과 후회의 심정을 지니고 있었기에 이산에게 더더욱 잘해주려고 노력하였다.
당시 당론이 얼마나 강하였는지는 꽤 강력한 왕권을 지니고 있었다는 영조마저도 마음대로 정사를 꾸려나갈 수 없었다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조선왕조의 긴 역사 속에서 가장 장수 했다는 영조 대왕의 나이가 80세가 넘었을 무렵 세손인 이산을 대리청정을 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이는 노론파의 입장에서 보면 기겁할 일. 비록 세손이라는?이름으로 다음대 임금이 될 자격을 얻었지만 만약 영조가 급서하게 되면 왕실의 가장 큰 어린이 되는 정순왕후 김씨를 앞세워 세손의 자격을 박탈하고 은전군(사도세자 후궁 양제의 아들)을 다음대 임금으로 추대할 수가 있다. 하지만 대리청정을 하던 중 급서하게 되면 꼼짝없이 세손 이산이 왕이 되어야 하는 것이 당시 조선의 국법이었던 것이다. 노론파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대리청정을 막으려 하였으나 영조는 세손에게 왕위를 넘길 의지를 꺾지 않았고 결국 전교(임금이 내리는 명령)를 내리는 행위마저 방해하는, 한마디로 왕의 권위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무시하는 행동까지 할 정도였다. 결국 분노한 영조는 이산에게 순감군을 맡겨 스스로를 보호하게 하고, 자신의 호위군을 불러 여차하면 신하들의 목을 내리칠 기세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킨다.
대리청정 이후에도 홍인한을 주축으로 한 노론파에서는 사도세자와 동궁 이산에 대해 악의적 소문을 퍼뜨렸으니 정도대왕이 즉위하기까지 정말 많은 위협과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겠다.
이것은 그가 왕권을 얻기 전까지의 사소한 일일뿐이다. 정말 놀라운 일은 그가 즉위한 후에 나타난다.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몬 주모자 중 한명인 홍계희, 그는 비록 정조 즉위 전에 죽었으나 그의 아들 홍지해는 사람을 동원해서라도 정조를 암살하려 하였다. 그 결과 조선 왕조를 통틀어 가장 어이없는 궁궐 난입사건이 발생한다. 홍지해의 아들 홍상범이 천민 출신의 전흥문을 비롯한 여러 패거리를 데리고 궁성 호위 군관을 포섭, 정조가 머무르는 경희궁 지붕까지 올라가 정조의 목숨을 노렸다. 하지만 한 호위 무사에게 발각되어 궁궐 밖으로 도주, 다음 달 다시 궁궐에 침입했다 또다시 들켜 체포된다.
이 사건은 당시 조선의 왕권이 얼마나 바닥으로 추락했는지, 국가 체제가 얼마나 갈데까지 갔는지는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이다.
당쟁을 없애려 했던 정조의 개혁정치는 그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데 그 죽음 역시 독살에 의한 것으로 의심되고 있으니, 화려해 보이는 왕, 그 이면에는 검고 어두운 정치의 뒷면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정조 이산의 주요 숙적들
홍인한 - 이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숙부. 이산의 대리청정을 비롯해 그가 왕이 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으려 했던 인물. 심지어 '세손은 세 가지를 알 필요 없다'는 말에서 그가 얼마나 세손을 제거하려 하였는지가 드러난다.
정순왕후 김씨 - 영조의 계비로 노론의 거두 김한구의 딸이다. 사도세자의 죽음에 크게 관여한 인물로 관계상으로는 이산과 할머니-손자 관계이나 혈연적으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정조가 죽을 당시 그의 곁은 지켰던 유일한 사람으로 정조의 죽음에 무언가 손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인물. 정조 사후 정순왕후의 세상이 된다.
화완옹주 - 홍인한과 결탁, 정조를 내쫓으려 한 인물. 정조의 고모.
홍계희 - 사도세자를 죽게한 주범 중 한명.
홍상범 - 홍계희의 손자, 정조 즉위 이후 궁궐에 난입, 정조를 암살하려 했음
김상복, 김양택, 김상철 등 - 당시 노론파 대신들
reference 조선왕 독살사건 - 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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