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따뜻한 품, 첫 사랑, 귀여운 딸, 정치입문 그리고 암살을 기도할 만큼 자신을 미워한 자는 누구일까라는 마지막 의식과 함께 마침내 쉰 여덟의 빛나던 생이 끝나려는 순간이었다. 장 뤼생데르는 자신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 공중으로 올라가고 있음을 느꼈다.
뤼생데르는 공중으로 자꾸 올라가지만 동시에 탯줄처럼 이어진 줄 하나가 그를 아래로 팽팽히 끌어당긴다. 팽팽한 힘에 잠시 주춤거리니, 길게 누운 자신의 시체가 보이고 의사와 간호원은 땀을 뻘뻘 흘리며 그의 심장에 몇 백 볼트의 전기를 흘러보내고 있었다.
그 굉장한 충격의 순간 그는 곤두박질치듯, 자신의 옛 몸뚱이로 쑥 들어가 버렸다.
" 성공했어요. 성공! 각하의 심장이 다시 뛰고 있어요..."
어렴풋이 환호성과 축하의 말이 들리고, 그의 모든 신경은 격렬한 아픔으로 하나하나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는 그 순간 죽음에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공중을 날며 하늘에서 보았던 경이로운 빛의 나라, 그 환희를 다시 체험하고 싶었다.
메르카시에 과학부장관은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게 괴로웠다. 임사체험을 했다는 대통령은 말도 안 되는 ‘천국사업’에 이미 20만 프랑의 예산을 책정해 놓았다.
사후의 세계, 죽음의 문턱에서 육신이 빠져나가는 어떤 경이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판국이었다. 전형적인 현실주의자 뤼생데르가 UFO도 아니고 영계탐사에 대한 그의 관심을 과학정책으로 반영하려 했다.
《타나토노트》는 그리스 어로 타나토스(thanatos 죽음) 와 나우테스(nautes 항행자)를 합친 말. 저승을 항해하는 자, 영계탐사자를 말한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놀라운 상상력을 펼치며, 독자로 하여금 저승과 이승을 함께 항해하게 만든다. 우주에 로켓을 쏘아 화성을 탐사하듯 작가는 영계탐사를 위해 무기수들을 죽음의 세계로 보낸다. 죽음을 체험한 그 코마의 상태에 들어갔다가 살아 돌아오는 강한 삶의 의지를 보여주면 무기수는 자유의 몸이 된다.
작가는 신화나 종교, 죽음의 문헌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 글을 써 내려가지만, 죽음의 세계가 달나라 갔다오듯 관광지가 되고 학습현장이 되는 이 소설을 보면서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미래를 예견하는 예언자라는 생각마저 든다.
현실보다 앞서가는 이런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과학과 문명은 자극을 받을 것이다.
죽음과 삶의 경계가 이렇게 다시 이어진다는 것- 소설이나 신화의 이야기가 아니고, 오늘의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사람들은 전쟁이나 테러 그런 갑작스런 죽음의 공포에서 좀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아니 사후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확실히 아는 정보와 지식만이라도 있다면 인간은 좀 위안을 받지 않을까.
/수필가 박영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