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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에묻힌 조선족화가 한낙연4 |
[한국미디어] 2005-1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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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도, 실망도 없다
그는 숱한 고민 끝에 외국에서 체계적으로 그림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상부에 밝혔다. 상부에서는 쉽게 한낙연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목숨 걸고 당의 활동비를 되찾아온 그에 대한 상부의 보답이었다.
한낙연이 상하이를 뜰 무렵, 또 한 사람의 화가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싫은지 조용히 상하이 푸둥항을 떠나는 여객선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훗날 중국혁명의 전환기를 이끈 여성 화가로 칭송받은 그녀의 이름은 허샹닝(何香凝). 그녀는 남편과 함께 쑨원이 이끌던 ‘동맹회’의 핵심 인물로 쑨원의 직계 심복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25년 3월 쑨원이 사망하고 반년이 채 되기도 전인 8월에 남편마저 장제스(蔣介石)가 이끌던 국민당 우파에 의해 암살당하자 그녀는 모든 직무에서 손을 떼고 그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비록 상하이를 떠나는 처지는 다르지만 쑨원의 유지를 그대로 받들겠다는 화가인 허샹닝마저 좌절한 채 조국을 떠나게 만드는 것이 당시 중국이 처한 현실이었다.
체계적인 그림 공부를 하겠다는 일념만 가지고 프랑스로 건너가는 한낙연에게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든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당시 중국의 상황을 고려할 때 그림 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갈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상하이를 떠난 여객선은 홍콩과 베트남의 사이공 등 유럽인이 진출해서 건설한 주요 항구를 거치면서 유럽으로 향했다. 하지만 한낙연은 그 시간마저 편하게 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급하게 떠나느라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불어를 익혀야 하는 다급함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길고 긴 항해 끝에 프랑스에 도착했지만, 그는 애초에 생각했던 파리에 머물지 못하고 프랑스 중동부지방의 공업도시 리옹에 정착한다.
부자 나라로 생각했던 프랑스의 현실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 무렵 유럽도 심한 불경기에 시달리고 있어 경제적으로 꽤 어려웠다. 프랑스인들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어려운 판국에 외국에서 건너와 불어조차 제대로 못하는 그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가 주어질 리 만무했다.
그것은 프랑스에 처음 도착한 중국 유학생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일이었다. 훗날 ‘황하대합창’의 작곡가로 중국의 내로라하는 대음악가의 자리에 오른 셴싱하이도 학비를 벌기 위해 밤마다 레스토랑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좀체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그 정도 고생쯤은 각오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자신만의 무기인 붓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좋은 점은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아무것이나 그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 거리의 화가
어느 날 그는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 리옹의 주택가에서 인상적인 집을 찾아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이 완성될 즈음 주변을 산책하던 한 프랑스인이 걸음을 멈추고 그의 그림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동양인을 별로 볼 수 없는 리옹에서 그것도 날랜 솜씨로 그림을 그리는 동양인이 꽤나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그림을 그리느라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그에게 노부부가 다가와 뭐라고 말을 건넸다. 아직 불어가 서툰 한낙연은 처음엔 그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동안 동문서답이 오간 다음에야 한낙연은 노부부가 바로 자신이 그리고 있는 집의 주인이란 사실을 알았다.
“왜, 무슨 이유로 내 집을 그리죠?” “집이 하도 아름다워 저도 모르게 그렸을 뿐입니다. 저는 이곳에 도착한 지 며칠 되지 않는 중국인 화가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림을 그릴 때도 집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까?”
“…그게 아니고, 그림을 잘 모르는 제 눈에도 우리 집을 꽤 인상적으로 그려서 눈여겨봤습니다. 방해가 됐다면 사과드릴 게요.”
예상치 못한 한낙연의 당돌한 대답에 말문이 막힌 남편을 아내가 거들었다. “방해가 된 건 아닙니다. 다음부터는 허락을 받고 그림을 그리겠습니다.” 한낙연이 재치 있게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이왕 그리는 것이니 우리 집을 예쁘게 그려주세요. 그럼….” 인사를 끝내고 돌아가던 노부부가 다시 걸음을 멈추고 다가왔다.
“그림이 거의 다 그려진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할 생각이죠?” “그건 아직….” 할머니의 질문에 이번엔 한낙연의 말문이 막혔다. 무슨 특별한 생각이 있어 그림을 그린 건 아니었다. 다만 화가로서 인상적인 풍광이 있기에 그렸을 따름이었다. 그 뒤처리까지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 그림을 우리한테 팔 생각이 없소? 우리 집이 담긴 그림이라 우리에겐 사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기념이 될 텐데….” “그렇다고 너무 비싸게 부르지는 마시오. 보기와는 달리 우리도 빈털터리라오.” 남편이 아내의 말에 지원사격을 했다.
생각지 않게 그림은 노부부에게 팔렸다. 노부부에게는 푼돈에 불과했지만 그야말로 빈털터리인 한낙연으로서는 며칠을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돈을 받자마자 식당으로 달려간 그는 우선 주린 배부터 채웠다. 사실 주머니에 돈이 좀 남아 있기는 했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아침부터 쫄쫄 굶은 참이었다.
다음날부터 한낙연은 일자리를 찾는 대신 그 주택가 거리로 출근하다시피했다. 이후 그 동네는 한동안 그에게 먹을 것과 잠잘 곳을 만들어주는 화실이나 마찬가지였다. 유럽의 화풍과 다른 그의 그림은 그 동네 사람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간 모양이었다. 덕분에 한동안 그는 생계의 위협에서 벗어나 마음껏 그림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를 채우기 위해 프랑스로 건너온 것은 아니었다. 빨리 학교에 입학해 그림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학교에 등록할 돈이 필요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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