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배를 마시기 전에 위대한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데스가 이렇게 말하고 죽었답니다. 그 날이 2408년전 오늘 4월 27일 이랍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악법도 법이다 라고 말을 하고 죽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1930년대 일본의 법철학자 오다카 도모오(尾高朝雄)가 지어낸 말이 한국과 일본에 퍼져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일본인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도 이 부분이 진실인 양 소개돼 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소크라테스는 대신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라고 말하고 독배를 마셨다고 합니다. 크리톤은 소크라데스의 친구이자 제자이고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의 신입니다. 그저 이런 표현을 극단적으로 해석한 것이 우리가 아는 명언으로 포장되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대철학자다운 따뜻함과 인정이 느껴지는 말입니다.
이 위대한 철학자가 한 말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네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 입니다. 그러면서, 소크라테스는 하나를 알고 열을 말하는 소피스트들에게 이 말을 썼습니다. ‘네 자신을 알라’. 사람이 얼마나 부족한지, 네가 얼마나 무지한지를 알라고.
사실 이 말도 따지고 보면 소크라데스가 처음 쓴 말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델포이의 신전 상인방에 새겨진 글귀라고 합니다.
여기서 새삼 소크라데스말의 어원을 가지고 따지자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 한들 우리가 아는 소크라데스의 위대성에 무슨 흠집이 나는 것도 아니니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네 자신을 알라고 한 말은 사람이 얼마나 무지하고 세치 혀로 부터 시작되는 말의 가벼움을 적절하게 지적한 표현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최근에 자기 자신이 한 행동의 잘잘못과는 상관없이, 자기합리화에 급급하여 말과 글을 남발하는 집단들이 눈에 거슬리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맹랑함과 뻔뻔함은 얼마나 대단한 지, 웬만한 사람들이 다가가서 호통을 쳐도 끄떡하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 법의 이름으로 꾸짖어도, 우습게 보기 일쑤입니다.
아마도 소크라데스같은 위인 정도가 한마디 해야 들을까 말까 일 정도입니다.
오늘 그가 독배를 마시고 죽은 지 2,408년이 지난 날입니다.
멀리 아테네에서 2,400년전에 죽은 소크라데스라도 다시 살아나, 이들을 준엄하게 꾸짖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파쇼가 뭔지도 모르지만, 막연히 독재라는 의미로 알고 옆에 사람들과 같이 외치던 구호이다. 그리고 2학년이 되어서 이념서클에서 후배들과 스터디를 하면서 파쇼에 대한 용어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사전적의미로서는 파시즘이란 이탈리아어인 파쇼(fascio)에서 나온 말이다. 원래 이 말은 묶음[束]이라는 뜻이었으나, 결속 ·단결의 뜻으로 전용(轉用)되었다. 파시즘이 대두하게 되는 일반적이고도 보다 광범위한 배경은 18세기 말부터 누적되어 온 사회적불안과 제1차세계대전후의 만성적 공황 및 전승국 ·패전국을 막론한 정치적 ·사회적 불안에서 초래된 각종의 혁명적 기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근대사회의 위기적 양상은 모두 파시즘의 배경이 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알고 있던 독재란 뜻과 상당한 차이가 있어서 놀라웠다.
그래도 그나마 그당시(80년-83년)에는 그와 같은 어원을 알고 싶어 접했던 책들이 별로 없어서, 구한다고 한 책들이 운동권의 한 사람이 편역한 책을 보았다는 것이 다행일 정도이다. 지금은 서점에서 찾기도 힘든 책이지만, "파시즘 연구"(서동만 편역, 거름출판사, 1983)이 그 책이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몇몇 연구서를 제외하고, 그나마 파시즘(파쇼)에 대해서 나름대로 학문적 정의를 했던 일반서적중에 처음이었더 기억이 난다.
그 책에서는 그러나 사회주의의 입장에서 내용을 엮는 바람에, 파시즘은 막연히 사회주의의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는 점만 부각시켰다. 물론 그 논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많은 역사적 사실을 논거했기 때문에, 미루어 짐작하면서 "파시즘"의 본래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은 큰 도움이 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 당시 운동권들은 "파시즘은 부루지아지에 의해서 중립화되고 위기의 시기에 부루조아지에 의해 그의 정치적 교의로 변형된 대중의 급진적 교의인 반면, 사회주의는 노동계급의 급진적인 반자본주의와의 연대성으로 인해 노동계급의 완전한 혁명적 잠재력을 발현시키게 하는 대중적 교의" 라고 자기합리화를 해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정치체제에 대한 최대의 욕이 되었고, 파쇼체제란 말은 최악의 정치체제를 뜻하게 되었던 것이다. 파쇼(파시즘)은 그만큼 가증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면의 정당성을 가진 "욕"도 무분별하게 사용되면서 그 정당성이 상실하게 된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그래서 그 파쇼란 "욕"에 대한 엄격한 규정이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주안점은 우리가 그토록 저주했던 "파쇼"라는 것이 단순히 독재란 뜻이 아니고,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로서 형성되는 제반 정치.사회.경제적인 양상임에도, 독재란 의미로 단순화함으로써 오해를 하게한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 우리 주변에서는 "군부파쇼"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준할 정도의 몰입을 보이고 잇는 집단성에 대해서 우려할 만한 일들이 벌어 지고 있다. 바로 그토록 독재타도 파쇼타도를 외쳤던 386세ㄷ나 노무현 주변의 집단들이 히스테릭하게 반응을 보이는 현상들이 그렇다. 도무지 전체주의적 입장에 빠져서, 사회의 다른 현상과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잘 못한 일이더라도 거침없이 타당화시키는 그들의 뻔뻔함에 놀라움을 넘어 두려움까지 생길 정도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바로 치밀하지 못한 운동이론과 성찰의 결과로 생기게 되는 것이다.
치열하고 냉정하면서도 깊이 잇는 연구와 성찰을 통하지 않은 가벼운 대중이론으로 선동하는 집단이, 얼마나 사회에 큰 부담을 줄 수 잇는지를 알게 하고 있다.
어차피 노사모와 같은 맹목적집단의 입장에서도 이번 어려운 시간이 지난 다고 해서, 집단은 없어질 수 있을 지언정 사람은 남아 있을 것이다.
결국 개인으로 돌아와서도, 보다 냉정하고 차분하게 사회안에 투영된 나의 모습과 생각할 수 밖에 없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잘 알지도 모르는 용어와 언어들을 남발하면서, 자기합리화에 몰두하는 인생 자체가 덧없음을 알길 바란다.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사람을 잡고는 생떼를 부리고 있다. 더군다나, 자기네 말 들어 주지 않는 다고 핵실험한다고 전세계를 대상으로 징징대고 있다.
한두번도 아니고, 매번 동네 불량배처럼 생떼부리고 협박하는 모습이 같은 동포로서 이만 저만 불쌍한게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중에 일부는 북한의 외교와 전략이 자주적이라고 거들고 있는 사람이 있다. 또 한명의 우리나라 사람이 사실상 인질로 잡혀 있는데도, 생환노력이 부족하다고 정부를 윽박지르고 있다. 잡혀 있는 사람의 가족들의 입장에서 본다면야 안되고 힘든 시간이겠지만, 의연하게 버티고 기다릴 일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아이들의 폭력배같은 짖거리를 언제까지 두고보고 있거나,맞장구쳐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히 반정권의 입장에 있던 사람들은 작년에 미국의 대통령이 오바마로 당선되었을 때, 우리나라 이명박정권의 외교력이 큰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북한과의 문제에서 오바마의 평화주의가 북미간 직접대화로 연결될 것이고, 우리는 관련협상에서 소외 받을 것으로 모두 예측했었다. 그리고는 이명박의 친미정책의 한계가 왔다고 고소해 하기까지 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는 우리만이 아니고 북한까지도 그렇게 해석한 것 같다.
이와 같은 근거로는 과거 미국 민주당의 클린턴 정권때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그 당시에도 미국의 정책기조가 크게 바뀐 것은 아닌데도, 우리가 스스로 짐짓 미리 과대해석하여 햇볕정책이니 하면서 불을 지핀 꼴을 하고서도 자가당착적인 해석에 급급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오히려 실리적입장의 북한으로서는 미국과 남한 모두로 부터 당당히 원조를 받았던 최고의 승자임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는 무슨 대단한 통일정책의 하나가 아니고, 그저 없는 딱한 처지가 되버린 북한으로서 취할 수 밖에 없었던 극단의 조치에 불과 했다는 것이다.물론 이 때도, 미국의 입장과 이익에는 크게 변함이 없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럼에도 오바마 집권후에 일시적으로 반짝했던 남측의 소위 진보세력들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있다. 빗나가고 있다기 보다는 북한은 예상대로 과거의 성공사례를 답습하고자 했던 의지가 분명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세상은 과거 10년전과는 크게 변해 있음을 간과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미국이 한가롭게 북한의 로켓장난과 핵실험에 응대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는 것이다. 경제과 과거와 같지 않고, 국내 사정 역시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그까짓 조그맜고 헐벗은 나라가 핵폭탄 몇개 가지고 있다고 하여, 대세를 변화시킬 수 없음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처럼 미국의 입장에서 악의축과 같은 나라에 핵이 전이되는 것이 문제가 될 때도 있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미국이 외교력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도 또 다른 국면인 것이다.
그리고 6자회담이라는 틀도 있고, 중국이라는 또 다른 거대국가의 배경도 꺼림직한 입장에서 섣부르게 불량배같은 아이들과 어울린다는 것이 촌스럽기까지 한 것도 또다른 이유일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은 아무런 이권이 없는 거추장스런 나라인 것이다. 설령 북한에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과거와는 다르게 남한이 미국의 입장을 충실히 대해줄 수 있기 때문에 어려운 자리에 선뜻 나설 이유가 없을 것이다.
갑자기 북한이 붕괴될 경우 중국이 쓸려 들어올 위험이 있고, 한국 역시 반미적 정권이 들어서 있는 상황에서 북한을 직접 통제하고 싶었던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미간 대화를 직접 열어 직접 콘트롤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상황이 전혀 아닌, 미국의 입장에서는 편안한 입장인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니 북한이 아무리 생쇼를 부리고 깡패짓을 해도 웃어 넘길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 가장 큰 위협은, 자칫 북한이 이런 상황을 잘 못 이해하여 남한과의 국지적이나마 전쟁을 감행하는 경우 일 것이다. 이럴 경우 미국은 잘되었다 싶어서, 맞대응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이미 중동지역의 분쟁은 거의 해결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적인 입장으로 보나, 정치외교적 세력재편을 위해서도 북한이 감행하는 전쟁을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북한은 종전과 같은 불량배같은 짖거리로 북한 내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정확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족의 안위를 위해서도, 남한과의 대화채널을 확보하여 어려운 내부 경제적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심지어 집권체제의 유지를 위해서도 깊은 논의를 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생떼 부린 입장에서, 하루 아침에 화를 푸는 것이 어색하다면, 남한과의 비밀협상을 통해서라도 탈출구를 찾아 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점이 남한이나 북한의 자주적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기회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금품수수인정으로 부터 촉발된 일들이 아직도 끝도 모르고 확산 중이다. 일은 일대로, 놀랍게도 하루가 멀다고 새로운 사실들이 터져 나오고, 그럴 때 마다, 무슨 큰 정치탄압이나 받는 것으로 착각한 듯한 그 주변 사람들의 언동이 눈꼴사납다.
노사모의 회장을 지냈다고 하는 사람, 유 모시기라고 하는 장관까지 했던 사람, 조 모시기라고 하는 청와대 홍보수석들이 하는 공식적인 표현들은 도를 지나치고 있다. 아무리 인지상정이라고 해서, 두둔하거나 위로하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너무하다. 하기야 공식적인 사람들이 이럴진데,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노무현을 두둔하는 네티즌들의 표현은 광적이다 싶은 것은, 오히려 당연할 정도이다.
사실 도덕성하나 가지고 대통령을 뽑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 크다.
얼마나 부정부패한 정권에 치였으면, 깨끗하다는 말 하나만 믿고도 대통령을 뽑아 줄 정도로, 우리나라 정치가 타락되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마치 민주정권은 깨끗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착시현상이, 우리 모두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고 봐야 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 틈새를 교묘하게 활용한 노무현과 그 주변 세력들의 정치적 판단과 현란한 수사에 혀를 내두를 일이다.
하기야 한나라 차떼기의 1/10을 초과하면 물러나겠다고 하는 호기를 부릴 때, 알아 봤어야 했다. 나도 도덕질을 했으나, 큰 도독이 있으니, 나는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은, 이와 같은 우리나라의 정치적 허점을 간파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와 그들 주변은 여전히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고 있다.
몇천억을 해쳐 먹은 대통령도 있는데, 몇 십억쯤이야 생계형 범죄라는 것이다.
몇십억이 생계형범죄인지는 다음으로 하더라도, 이 사람들의 논리대로 하면, 3천쯤 먹어치운 전두환 노태우보다는 훨씬 낮다는 말은, 참으로 천인공노할 표현과 수준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말인 즉, 2,000억원정도 해쳐 먹어도 전두환보다는 낮다는 것이다. 최소한 그보다는 못하니까, 그렇다는 것이다.
또는 그보다는 1/40정도에 불과하므로 전두환보다는 40배정도는 덜 부끄럽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허황된 구차한 자기변론에 동의할 수 없는 국민의 감정을 알고나 하는지 어의가 없다.
도대체 얼마나 뻔뻔해야 이런 말들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사실 노무현이 주장한 깨끗한 정권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깨끗하고 일 잘하는 정권이 들어서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결코 이번 일 때문에, 우리의 도덕불감증이 면죄부를 받고 심정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더욱 더 강한 도덕률을 세우고, 일을 잘하는 정부가 되도록 정책과 법률을 다져야 할 것 이다.
따라서 깨끗한 정권이라는 것은 노무현만의 고유물이 아님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미 무너진 도덕률이라고 해서, 이렇게 막 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정치적 균형감각을 위해서도 삼가해야 할 일이다.
더 이상 정치탄암을 받는 다는, 불쌍하고 동정심을 구해보고자 하는 눈물 전략을 가지고 빠져나가려는 궁색한 소인배 짓거리는 그만 하길 바란다.
오늘은 대통령의 마을 사람들이 노무현을 조사하는 것이 정치탄압이라고 반대시위를 햇다고 한다. 연일 노무현은 스스로 받았다고 하면서도, 방어에 여념이 없다. 무엇을 방어하겠다고 하는 지 모르겟지만, 그 주변 인물들은 노무현이 날린 메세지에 덩달아 거짓말을 날리고 있다. 무슨 수령님의 지시라도 받았는지 온통 노무현 관련기사 밑에는 억울한 노무현이라는 댓글만 무성하다.
본 건과는 별 상관도 없어 보이는 이명박을 조사하라고 하거나 심지어 연예인 자살사건까지 들먹이며 , 물타기에 여념이 없다.
모두다 비이성적이다. 아니 자기 스스로 돈을 받았다고 하는데도, 자기는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억울하다고 난리다. 누가 돈 받으라고 거들어 준 사람 하나 없이 자기 스스로 받아 놓고도 억울하다고 한다. 이 무슨 회괴한 소리인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그러기에 과거에 너무나 감정적이고도 추상적인 민의의 약점을 파고든 노무현식 막장연출의 고약한 댓가라고 생각한다.
오냐 오냐 들어주니, 말도 안되는 소리를 갖고도 큰 소리 치고 행세하고 다니니 말이다.
두둔할 것을 두둔해야지, 아무리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려 해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과거에 노무현이 이런 식의 역설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정치위기를 돌파했었을 때야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그나마 그러한 전술이 다 드러난 마당에도 이와 같은 치졸한 일들을 반복하는 그가 안쓰럽다.
진짜 지금이야말로 감성에 호소하기 보다는, 체계와 근거에 기초한 합법적인 이성에 의지하는 것이 그를 위한 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 그에게서 나온 몇차레의 메세지나 그 주변의 언행들을 보면, 시정잡배들의 몸부림 정도를 벗어 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 흥분의 상태가 가시지 않고, 격정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노무현측근들의 심리상태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역시 많은 시간 변호사생활을 하면서, 법의 논리라는 것이 결국에는 차분하고 냉정히 대처할 수 밖에 없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정치를 다시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문제를 자꾸 정치회화화 하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음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역전의 반전의 기회라는 것이 문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이라도 스스로 이성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 그나 그를 지켜 보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일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대중을 미쳐 춤추게 해 봐야, 미쳐 날 뛰게 해봐야, 대통령을 했던 사람이 할일은 아닌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