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의 미국쇠고기수입 때문에 발생한 촛불시위 때부터 이런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한다고 해서, 심지어 대통령에게 "쥐새끼"라는 막말도 서슴치 않고 있다. 따지고 보면 아마도 취임초기의 인사부터 이런 문제가 제기된 듯하다.
어제는 진중권이라는 386세대의 대표논객이라는 사람이 이명박과 노무현은 근본적으로 소통구조에 차이가 있었다고 하면서 거들고 나섰다. 그러면서 그는 "노무현 대통령은 인터넷 소통구조에 대한 마인드가 있었다. 자신이 인터넷 덕분에 대통령이 됐지 않나"라며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정보사회 모델이 아니라 70-80년대 산업사회 모델이기 때문에 소통구조 자체가 안 돼 있다. 홍보하는 게 소통이라고 생각해서 국민들이 자신들의 얘기를 몰라서 반대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런데 소통이라는 것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지금은 야권이 되버린 옛날 열린우리당 집권세력과 소위 진보민주세력, 그리고 포괄적으로 386이라고 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사실 이들의 소통구조라는 것이 인터넷말고는 딱히 없음을 이들의 말속에서도 토로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이들은 모든 문제를 소통이라고 단정지어 말한다.
누구보다도 미디어의 효과를 많이 받은 세력임에도, 유독히 TV나 라디오에서 전하는 방식보다는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것만을 소통구조로 규정하고 있다.
말인즉, TV나 라디오, 신문등은 일방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은 양방향성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의사전달구조가 완전한 소통구조인지에 대해서는 너무 복잡하여, 여기에서 거론하지는 않겠다. 분명한 것은 어느 매체이든 양방향성을 갖췄다고 해서, 완벽한 소통이 이뤄진다고 규정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 과연 그렇게도 중요한 가치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민주사회에서 의사결정에 필요한 요소라고 한다면, 과연 어느 정도의 소통이 이뤄져야 만족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해야할 것이다.
이는 정책의 결정이라는 과정과 절차가 법적이기 때문이다.
개인간의 소통과 국가 정책결정에 필요한 의사수렴과정을 혼동하는 것은 지극히 낭만적이고 위험한 퍼퓰리즘에 빠질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소통에 집착하여 의사결정을 할 경우, 의사결정의 효율성과 합리성은 물론 진실성을 왜곡하는 비과학적 결정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지난해 미국쇠고기수입 같은 문제이다. 만약에 인터넷에서 소통된 의사결정에 의해서 정부정책을 정했을 경우, 비과학적이고 불합리하며 감정적인 결론에 노출될 것이 뻔 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진중권같은 미학자가, 생물학과 축산학, 보건위생학, 의학, 무역학 등의 문제를 결정하려고 달려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진중권같은 류의 사람은 얌전한 편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중고생까지 개떼처럼 덤벼들어 우겨댈 경우, 이를 합리적으로 제어할 방법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안 중에, 남북간의 긴장과 관련한 문제이다.
지금도 이념적으로 극명하게 대립되어 있는 문제를 소통의 문제로 해결하려 들 경우, 소통의 구조를 장악하고 있는 부류의 의지에 지배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생존과 국가안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구성원의 생명을 걸고도, 마치 밥상머리에서 지나가는 한마디 같은 가벼운 논쟁거리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물론 보다 명확하고 분명하며,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와 지식, 그리고 경험을 모아서 결정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한 소통구조가 인터넷에서 쓰레기같이 떠도니 쓸데없는 리플하나로 구성된다고 하는 것은 억지나 다름 없다.
왜냐하면 진중권이가 인터넷에서 내밷는 말들의 잔치만 봐도 알 수 있다.
우익보수단체나 현정권에게 퍼붓는 독설은 넘치지만, 진보진영과 민주당 등 현재의 야권에 던지는 화두는 전혀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북한에 벌이고 있는 비이성적이고 반민족적인 언동에도 침묵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균형을 중시하는 미학자라면 과연 그럴 수 있는 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소통은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소통으로 해결되지는 않는 다는 것이 문제이다.
본인도 어렵게 서울대 철학과에서 공부해 봐서 알 일들이지만, 철학의 문제가 소통으로 해결되지 않고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위 진보민주세력들은 괜시리 자기도 잘 모르는 것을 가지고, 자기에게 박절하게 한다는 이유로 남을 몰아 부치는 어린아이같은 사고방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할 것이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은 진보민주세력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말들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기는 하다.
용산에서 재개발 철거를 반대하다가 철거민과 그에 동조하는 일부 사람, 그리고 경찰까지 포함하여 6명이나 죽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뉴스매체는 이를 참사라고 하면서 보도들을 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폭력에 대한 마땅한 대응이라고 하고, 민주당은 공안정치가 어쩌니 하면서 기름을 붓고 있습니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불쌍해서 어떻게 하야고 눈물까지 보였습니다. 진압의 당사자인 경찰의 수장은 교체하라고 합니다. 시민단체들은 반정부시위로 확산하기위해서 안간힘을 쏟고 있습니다.
당연히 안타깝게 죽은 사람들에 대한 책임규명은 있어야 겠죠.
그까짓 돈이 중요하다고 해도, 사람 목숨보다야 소중하겠습니까. 얼마 안되는 보상금을 받아 낼라고 시위하다가 목숨까지 잃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의 심정과 처지를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을 있는 그대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덤비려는 사람들로, 이 사건은 제대로 마무리 되지 않을 것이 뻔합니다.
왜냐하면 정치적으로 달겨드는 사람들의 욕심이야 뻔하기 때문입니다.
시위를 진압한 사람이나, 시위를 거들은 조합이란 사람들이나, 애도한다고 난리를 치는 시민단체나 야당, 모두가 자기의 정치적 또는 다른 이해에 의해서 관성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사람 죽은 자의 입장을 이해하려 드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눈물을 흘렸다고요? 그 분은 그럼 서해 연평도 해전에서 우리 해군이 죽었을 때 울었나요. 결과적으로 상당히 의도된 정치적인 눈물이라고 할 수 밖에 없죠.
민주당이나 은근히 이 사태를 즐기는 여당의 소위 박근혜계의 사람들은 이명박정권의 목까지 자르길 바라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 역시 앞으로 집권을 노리는 마음에서, 현 정권을 흔드는 전략이라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거죠.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사회의 갈등을 풀어 가는데 있어서 이성적 방법을 찾지 않는 다면, 설령 그들이 집권한다고 해도 그들 역시 이와 같은 수렁에 빠징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집권자들도 이런 면에서는 그리 자유스럽지 않을 겁니다. 어찌 보면 바로 전 노무현정권의 무능에 힘을 얻어 집권한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그 무능을 계속적으로 이용한 측면도 있죠. 그런 면에서는 지금의 정권이 이렇게 난타당하는 것은 자업자득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해답은 법치주의에 근거한 원칙이 지켜지는 토대위에서, 개별적 사안들을 대화와 합리적 장치에 의해서 풀어 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이번 일을 당한 당사자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우리 사회가 한번쯤은 눈 질끔감고 단호하게 선을 긋고 가야할 시점이 된 것이라고 보입니다.
언제까지 자기가 싫으면 떼쓰고, 두들겨 부수고, 불질러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무슨 잘못을 했어도 먹고 살기 위해서 할 수 없이 그랬다고 하면,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어제는 회현동의 지하상가의 사람들이 서울시청앞에서 임대보장을 위한 시위현장을 우연히 지나쳤습니다. 전부다 재벌을 보호하는 정부를 규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론은 자기네들은 먹고 살기 힘드니까, 임대권을 보호해 달라고 합니다.
저는 그들이 입주해 있는 지하매장의 임대가 얼마나 힘들고 빘며, 그 상권이 얼마나 노른자위인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안된 말이지만, 한마디로 배부른 사람들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많은 돈을 들여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연 이런 사람들의 이익까지 보호해 줘야 하나요.
시위를 안전상 문제로 강경하게 진압한 경찰도 문제지만, 무조건 극렬하게 자기 주장만을 앞세요 시위에 나서는 사람들도 문제입니다.
이런 양자간의 견제와 균형을 위한 합리적 체계를 구축하는데 힘을 써야 하는데도, 정치권은 눈앞의 이해때문에 어수선합니다.
우리 역시, 누구 편을 들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감정적 상태 때문에, 멍청하게 쳐다만 보고 있습니다.
그냥 빨리 잊혀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수차례 경험한 나라입니다. 지금 상대방을 욕하고 탓하지만, 언젠가는 자기도 그런 자리에 있을 겁니다. 이미 몇차레 경험했기에, 남 탓만 해서 선거를 이겨 봤자 별득이 없음을 알만도 합니다.
결국은 우리 모두 책임있는 정치의식이 중요함을 알게 됩니다.
누가 정권을 잡든 우리사회의 평균적인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정당들만이 살아 남을 겁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나 아니면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남을 욕하고 탓합니다. 언젠가 자기도 그 자리에 가기 위해서 노력하면서도 말입니다.
집권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더욱더 냉정히 사회를 관찰하고 책임있는 행동을 해야 할 겁니다.
이번에 이명박정부가 내각을 인선했다. 이를 빗대어 민주당의 대변인이라는 사람이 "KKK내각"이라고 부르며 비아냥 댔다.
작년 첫번째 내각인선을 고소영 정부, 강부자 정부라고 하면서 히트를 친 기억을 이어 가고 싶은 심정이었나 보다.
KKK가 무슨 뜻인가 궁금하여 살펴 봤다. 다름아닌 고려대, 경북출신, 공안정치 라는 뜻이란다.
내원참 조어 수준도 이러니, 한심할 뿐이다. 한번 재미본 맛을 잊지 못해서 짜깁기의 짜깁기를 하다 보니 별 말을 다 만든다는 느낌이다.
표준어 표기법에 의할 경우 경북이 K를 쓰는지 G를 쓰는지를 알아봐야 겠다. 그리고 공안이 어떻게 K자로 대변되는 것인지 코미디같다. 경북의 표준어 표기는 다름아닌, Gyeongbuk이다. 공안의 표준어 영자표기가 어떤지는 모르지만, 굳이 영역을 한다면 public peace이다. 물론 공안을 굳이 표준어 영자표기할 이유는 없는 일일 것이다.
이러니 KKK가 과연 민주당 대변인이 의도하는 대로의 조어인지 궁금한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렇게 말을 만든 배경을 미국에서 최초로 탄생한 오바마정권에 대한 의도롤 파악된다면, 그 위험성과 저열함은 사람을 화나게 만든다.
잘 알다시피 미국에서 KKK라는 말은 KKK단체를 의미한다. 즉, 백인 우원주의자들이 유색인종 특히 흑인들을 배척하기 위해 만든 단체이다. 그 잔혹도와 폭력성이 극에 달해서 흑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와 같이 입에 떠 올리기도 쉽지 않은 이런 용어를, 미국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기 며칠을 앞두고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부각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대통령에게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의 야만성(?)을 떠올리고 싶어서 인가.
아무리 막말을 한다고 해도, 이 정도의 말이라면 자폭 수준이다.
그런 속내는 오바마는 우리나라에서 민주당(열린우리당의 후신)편이고 한나라당은 다른편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뉘앙스다.
이 또한 또 다른 사대주의의 전형이다.
내 형님이 대통령되었으니, 우리 동네 주먹을 부랑아쯤으로 일러 바치고, 칭찬 한번 듣고 싶었나 보다.
물론 그 대변인이 이럴 정도로 영악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러니 말만들기 장남으로 정치를 회화화 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한 번쯤은 재미로 넘어 갈 수도 있고, 또 경우에 따라서 시의적걸한 표현으로 대히트를 칠 수도 있다.
그러나 조어를 위한 조어를 할 경우, 상대방이 듣기에 도에 지나치고, 표현의 당초의미를 퇴색시키는 경우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2mb니 고소영이니, 강부자니, 유난히 조어가 많은 야당이다. 아마도 그런 정도의 사람들의 의식수준을 대변하는 것 같다. 마치 우리가 30년전에 운동권에서 민주화운동을 할 때, 모든 사회현상과 활동을 약식조어로 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가투, 민민투, 자민투, 농활,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던 시절이다. 그 때는 우리만이 아는 단어들을 만들어 써가면서, 나름대로 차별화도 되고, 스스로의 기지에 놀란 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