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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3/09/04
 

어제도 궁금하여 예술의전당 서예관을 한번 찾아 보았습니다. 우연히 어느 서예전시 개막식이 있었습니다. 맨 위층의 컨퍼런스홀은 행사가 없어서 덩그러니 컴컴히 빈 공간으로 있었습니다.

저희가 약 20년 전에 서예관을 만들었을 때, 가장 우려했던 일입니다. 지금은 다르게 변했지만, 그 당시 우리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광경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광화문의 세종문화회관 지하 전시실이었습니다.

어찌 된 일이었는지, 세종문화회관 지하전시장은 서예전시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전시장인 미술관이 아직 개관되지 않은 우리는 국내외 전시장 및 전시타운을 벤치마킹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인사동과 경북궁주변의 유명화랑가와 새로이 조성되고 있는 청담동 주변의 화랑가가 분석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마음에 걸린 것이 세종문화회관 지하전시장이었습니다. 이 공간은 거의 서예전시장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시라는 것이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에게는 전시만이 아니라 전시를 둘러싼 여러 활동과 분위기도 중요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서예전시에 있어서 일종의 전시문화는 참으로 변화가 없는 모습입니다.

일단 필요한 사람만 온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대부분 사제로 얽힌 관계에 의한 주변 사람들만의 잔치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의 특징중에 하나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과 교류가 상당히 약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최근에는 새로운 방식의 서예를 시도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너무나 전통양식을 고집하기 때문에 금방 한계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예전시가 이루어지는 곳은 마치 조그만 폐쇄된 섬같은 느낌을 주곤 합니다. 더군다나 자기 전시를 알리고자하는 방법에서도 지극히 소극적입니다. 전시내용을 알리기 위한 노력도 없고, 전시를 보러온 사람들에 대한 교육 및 안내에도 소극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럴만도 한 것이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찾기가 힘든 구조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서예전시가 주로 이루어진 당시 세종문화회관 지하전시실은 거의 사공간이 되다 시피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술의전당에 서예관이 들어선다고 하니 걱정이 태산일리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서예계가 전폭적으로 지원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들의 입장일 뿐 결국 운영하는 사람들은 눈 앞에 놓여 있는 현실을 해결하기가 쉬지만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예술의전당으로서는 내부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서예부라는 편재까지 만들어서 운영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왕 하는 것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결국 20년이 지난 지금 예술의전당 서예관은 꼭 20년 전으 세종문화회관의 지하전시실과 똑같은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몇몇 박물관적 모양을 갖추기 위해서 노력은 하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음을 금방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술의전당으로 혹을 뗀 것 같은 세종문화회관의 지하전시실은 본격적으로 전시공간으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즉 20년전의 세종문화회관 지하전시실의 모습을 보고 싶으시면, 지금의 예술의전당 서예관으로 가보시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도 안 변했습니다.

운영이 부실하여 내부적으로는 심각한 상황에 있음에도 서예관의 존재를 냉정히 살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수없이 많은 노력과 내부 검토를 거치고, 예술의전당의 내노라 하는 기획가들이 참여하여 공간활성화를 위해 머리를 짜내도 안되는 공간이 된 것입니다.

바로 서예계의 그늘때문입니다. 서예계만의 전용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과연 서예전용공간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은 해 보았는지 궁금합니다. 단지 서예인들만이 쓸 수 있는 것을 생각했다고 하면, 그것을 왜 예술의전당이 책임지고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한다고 봅니다.

최근에 예술의전당 내부에서도 서예관의 활용에 대해서 많은 검토를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외부적인 힘을 의시하여 공간재구성정도로 귀결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서예관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서 전체공간과 미래운영을 위한 전향적인 검토를 제안합니다. 서예회관은 서예인들이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굳이 필요하다면, 아마도 국립미술관 정도에서 수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미국의 대통령후보로 흑인인 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반대편당에서는 부통령후보를 여성주지사로 하여 대항마를 세웠습니다. 참으로 재밌는 승부가 될 것 같더라고요. 흥행면으로서는 만점일 것 같습니다.

최근 2번의 선거에서 미국 대통령선거는 초 박빙의 선거를 하였습니다. 수억명의 유권자가 투표하는 선거에서 몇 만명으로 승부가 갈리니 그럴만도 하죠. 그러기에 점점더 정치공학적 설계가 중요한 가 봅니다. 그냥 고전적인 인물선정의 선거는 힘들어진 느낌입니다.

미국에서 살아 보지 않은 저는 미국하면 흑인이 굉장히 많은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20%남짓하더군요. 저는 미국민의 반이 흑인인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흑인은 과거에 인종차별의 대상 때문이 아니라, 유권자의 분포면에서도 소수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번 오바마후보의 탄생은 흑인사회나 미국에서 소수민족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기에 충분합니다. 오히려 정치공학적으로는 잘못된 선택이죠.

여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구의 절반이 여성이듯, 분명히 미국의 절반도 여성일 겁니다. 그런데도 지금껏 여성 대통령후보조차 없었고, 이번처럼 부통령 지명자 조차 이번이 미국 역사상 두번째라고 합니다. 지금껏 치룬 선거 모두가 정치공학적 이론을 무시한 셈이죠. 미국같은 나라도 지금껏 여성이 소수 약자 정도로 취급되왔다는 반증인가 봅니다.

물론 그런 약자간의 1차 대결인 민주당 경선에서, 더 약자에 속하는 흑인후보가 경선에서 승리를 하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역시 정치공학적인 측면에서 잘못된 선택이었을 겁니다.

정치공학이란 것이 유권자의 성향분석을 통해서 최적의 조건을 갖춘 설계를 하여 선거에서 승리하겠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1차적인 설계는 당연히 유권자의 분포에 따른 후보자선정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위와 같이 반정치공학적 결과들이 나오게 되는 것은 선거라는 것이 지극히 정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일차적으로 선거를 출발하는 사람들은 그런 상식적 설계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한계일 겁니다.

이와 같이 공학적 설계는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미군의 전투복을 만드는 업체가 가장 효율적으로 군복을 생산하기 위해서 미군의 편균신장과 가슴크기, 키, 손의 길이등 신체부위에 대한 평균을 산출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온 결과에 다라서 가장 많은 평균치를 계산하였습니다. 그리고 평균치에 의한 군복을 만들어서, 그 군복에 맞는 군인을 찾았는데, 이외로 극소수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계산이 그렇다는 것이지 현실은 꼭 일치하지 않는다는 반증입니다.

이번에도 민주당의 흑인이고 젊은 후보는 자신의 약점을 보안하고자 경륜있고 안정감있는 사람을 부통령후보로 내세웠습니다. 물론 공화당의 노련하고 노회하며 보수적인 백인후보는 젊고 참신한 여성후보를 대안으로 하여 결정하였습니다.

과연 누가 이길까요.

참으로 궁금합니다.

그러나 누가 이기든 과거처럼 인물본위 또는 정당위주만의 결정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고 해서 100% 정치공학적 의도대로 선출되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 되든, 언론들은 흑인의 승리라거나 여성의 승리라고 변죽을 올리겠죠. 이런 착시 현상이 세상을 비현실적으로 만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정치공학적 마술에 빠져 드나 봅니다.

우리 역시 최근에는 그런 정치공학적 조합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의 결과는 물론 과정까지 궁금한 이유입니다.

올림픽이 끝나니, 또 다른 흥미로운 볼거리가 생기네요.



요즘 중국 베이징 올림픽을 끝내고, 중국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한 적대심을 보였다고 하여 시끌합니다. 기분 나쁜 일이죠. 남이 나를 싫어한다는 데 좋을리야 없죠. 내가 잘 못 한 것도 없는데도,  이유없이 나를 싫어 한다면 더욱 그럴만 합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동양의 3국 모두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좋은 감정이 없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 모두 서로에게 결코 친밀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굴곡 많은 근현대사를 제켜 두고라도, 이미 한중일 세나라의 사람들에게는 태어 날 때 부터 숙명적으로 서로에게 치열한 경계심과 경쟁심을 가지고 지낸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아무리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일본이 싫더라고요. 중국 역시 그리 좋아하는 민족은 아닙니다. 다만, 먹고 살기 위해서, 비지니스를 하기 위해서 표면적으로 친밀감을 보이긴 하지만, 그렇지 못한 속내는 숨길 수가 없습니다.

서로는 서로에게, 잘하면 잘해서 못하면 못하기 때문에 반감을 드러내 곤 합니다.

이번 올림픽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역시 그들에게 그리 호감을 가지고 대해 준 적은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있다면, 우리의 이익이 있어서 표면적으로 그랬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확할 겁니다. 솔직히 짱개니 쪽바리니 하면서 우리끼리는 많이 비아냥 거리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이러한 태생적인 민족간의 감저의 골에다가, 최근에는 한 가지 더 추가가 된 느낌입니다.

바로 시기와 질투입니다.

일본이 우리보다 잘 살는 것이 얼마나 배가 아픈지 모릅니다. 서로 열심히 살지만, 그들을 꼭 이기고 싶고, 어떤 때는 안되길 바랄 때도 많죠.

그래도 일본은 이미 강대국이 되었나 봅니다. 아직도 좀스럽게 우리의 감정을 긁는 아이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일본아이들은 세계제일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느긋해졌다고 봐야죠.

우리 역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세계적으로, 최소한 경제적으로는 많은 성장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아마도 그런 점들이 중국아이들에게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나라도 적은 것들이 운동도 잘하고 일도 열심히 하니 달가울 리는 없죠.

우리 역시 지금은 미국이나 일본은 경계시해도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같은 나라는 신경도 안쓰쟎아요. 설령 그들이 뭐라고 한들 대꾸도 안하는 편이죠.

아마도 그런 것일 겁니다.

중국에들이 우리에게 적대심을 나타내는 것은, 뿌리깊은 민족간의 감정에다가 시기와 질투 또는 자기자랑 등이 섞인 것이죠.

이런 것은 의연하게 무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 신경이 거슬려도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넘어가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해야할 일도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중국인들도 한 10년이나 15년 정도 지나면, 우리의 심정을 이해할 겁니다.

그 정도가 우리와 그들간의 차이인 거죠.

의연합시다. 그까짓 중국애들이 뭐라 한들 우리는 해야할 일도 많고 앞으로 가야할 것도 많은데 ..

드라마를 썩 좋아 하지는 않지만, 그런 대로 인기드라마는 이런 저런 이유로 보는 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참으로 놀라운 장면들이 종종 나온다. 어떤 출연자가 뭔가를 잘 못 했을 때, 상대방에게 용서를 비는 장면이다. 대부분 무릎을 꿇고 최대한으로 빈다. 조금 전까지 멀쩡하게 있다가도, 뭔가 거짖이 탄로 났다 싶으면 용서를 비는 것이 무릎을 꿇는 것이다.

몇 달 전에 최미수라는 터프가이 배우도 뭔가를 잘 못했다고 공개된 장소에서  턱 하니 무릎을 꿇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의 내면의 진정과는 상관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 호소력이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우리 나라 사회의 표리부동한 이중성을 보는 것 같아서 안 스럽다.

오늘도 정권이 불교에 불편한 정책을 한다고 보는 불교계에 유인촌 문화부장관이 그런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니까 불교계가 오히려 반발한다. 새끼 나오지 말고 위의 어미 나오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릎꿇고 사과 하란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

며칠 전에는 청와대가 KBS관계자들과 사전 협의를 했다고 떠들썩 했다. 그러면서 야당은 관련자의 문책과 사과를 요구했다. 이것도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 같다.

지금 뿐만아니라 전의 대통령들도 이런 일들이 터 질 때면, 종종 사과성명을 발표한다. 지금의 대통령도 벌써 두번씩이나 대국민 사과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정책을 집행하거나 국정을 운영을 하다 보면, 작은 것 부터 중대한 것 까지 실책이 나올 수가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대부분 해결책이 뻔하다. 사과하고 문책하고 사람 바꾸고 등이다. 조금 심하다 싶으면 국정조사나 특검을 요구한다.

그래도 매번 똑 같다.

이는 사고를 친 사람이나 사고를 당한 사람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과 원칙이 초보적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저 하다하다 안되면 무릎만 꿇으면 된다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기분상으로는 내 앞에서 끄덕도 않는 절대권력자가 무릎을 꿇었으니 통쾌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해결의 전부는 아닌 것이 문제이다.

궁극적으로는 그런 일이 재발되지 않게 하는 방법과 원인분석, 이에 따른 절차적 보완이 오히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번에 미국쇠고기수입관련하여, 국민 건강의 안전을 위한 체계적인 절차를 따랐는지와 그에 따른 절차와 방법을 점검했으면 그만인 일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무조건 대통령에게 근본적인 원인을 몰아 세우고는 대통령의 사과와 무릎꿇기를 강요한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감정적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처음부터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문제를 감정적으로 이끌게 된 원인이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무릎꿇는 다고 해결되는 일이라면, 우리 모든 국민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에 세번 무릎꿇기 운동을 하면 될 것이다. 이런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보다 이성적인 다중의 판단이 요구되는 것이다.

세상 일을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화끈한 폭력배들의 화끈한 사과방법을 가지고 해결하겠다는 것 부터가 초보적이다.  

올림픽 폐막식공연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한류가수인 비가 참석하였습니다. 어제 저도 보았습니다. 중국가수들과 함께 당당히 세계인이 보는 무대에서 외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고맙고도 자랑스러웠습니다.

평상시에 가창력과 외국어 구사에 문제가 많아서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으나, 어제 제가 본 가수 비는 명실공히 한류스타로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좋을 듯한 가수였습니다. 같이 무대에 오른 중국가수들보다는 키도 늘씬하고 비쥬얼도 좋고, 표정도 밝으면서 중국인들과 부드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뉴스와 인터넷을 보니, 가수 비가 중국인에게 놀림을 당했다고 폄하하는 기사들이 많아서 놀라웠습니다. 중국가수중에 끼어서 중국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우리를 소수민족으로 간주했다. 중국인과 다를바가 없었고, 별도의 소개도 없었다. 도무지 중국가수와의 차별화가 없었던 무대로서 이용만 당했다. 그래서 중국의 음모에 당했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저는 반대의견입니다.

그럼 비가 전 세계인이 보는 잔치에서 중국인이 주인인 자리인데, 우리에게만 들리라고 우리말로 노래 부르길 바라셨나요. 그래야 우리의 자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베이징을 사랑한다는 노래 말고 비가 불렀던 유행곡을 부르길 원하셨나요. 비의 개인 콘서트라도 열어야 직성이 풀리시나요.

비가 중국사람들과 다른 별도의 백인이나 흑인 취양의 분장이라도 하고 나와서, 중국인과 다른 눈에 확 들어 오는 모양이길 바랬나요.

모두 아닐 겁니다. 그 자리는 중국아이들이 전세계의 사람들에게 폐막의 아쉬움과 그동안의 고마움에 대한 자리를 노래로 표현한 자리였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 비를 안불러도 뭐라 할 수 없는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참석한 대만과 홍콩의 가수를 소개한 것도 없었습니다. 누구 하나를 부각시키기 보다는 유명한 동양권 가수들이 세계인에게 감사의 노래를 부른 자리였던 겁니다.

오히려 이런 자리에 비가 참석한 것도 대단히 감사한 겁니다. 우리가 비가 참석하기 위해서 무슨 도움을 주었나요.

사실 비가 참석한 것은 전적으로 비와 비와 관계된 사람들이 최선을 다한 노력의 결과일 겁니다. 그들이 한국이란 아이콘을 가지고 움직였다면 아마도 지금과 같은 성공은 거두기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외국에 가서 외국사람들과 외국어로 당당히 노래 부르면서 한국인이란 것을 잊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은 참으로 자랑스럽고 대견한 겁니다. 실제로 중국에 가서 중국어로 노래 부르는 장나라나 비를 보면, 얼마나 반가운지 아십니까. 그들은 개인적인 재능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외국에서 자신의 역량을 넓히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한국사람이란 것을 잃지 않고 있죠.

한가롭게 우리나라에 앉아서, 우리나라가 대단하니까 세계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노래를 즐겨 부른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그런 치열한 과정과 노력을 통해서 얻은 그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시합니다.

섣부르게 그들의 노력을 폄하하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 말이 쉽지 그들이 그 자리에 오르는 동안 얼마나 피땀어린 투자와 자기 희생이 있었는지를 상상하시기 바랍니다. 냉소적인 국수주의자들의 험담이 난무하면, 그들의 성장에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신중한 비판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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