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를 수정하는데 말들이 많다. 무엇보다 수정하면 안된다는 사람들은 법을 함부로 고치면 안된다는 것이다. 법을 지키는 것이 원칙이고, 그러기에 원안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충청도 사람들은 뭔가 크게 하나 얻은 생각마저 갖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얻은 것인데 줬다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좌불안석이다. 하기야 대통령을 두 번이나 뽑을 때마다 써 먹었으니, 충청도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물불을 가릴 입장이 아닐 듯도 싶다. 충청도 사람들을 가지고 놀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나, 갖고 놀게 내버려 둔 사람들이나 그런 정도의 입장이긴 하겠지만, 안타까움이을 넘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법은 고치면 안되는 것인가.
말도 안되는 말이다. 이왕 만든 법이야 잘 지켜야 옳은 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은 고치면 안된다는 말도 어불성설이다.
더군다나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이전하겠다는 것이 너무나 정치적으로 결정된 것이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힘들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수정하겠다는 사람들이나 고수하겠다는 사람들 모두 정치적인 판단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엊그제 이명박대통령은 본인은 충심이라고 하지만, 수정론 역시 상당히 정치적 결정임에 분명하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은 물론 언제라도 세종시에 대한 행정수도 이전계획에 대해서 다시 한번 검토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령 합의에 의해서 정한 법이라고 하더라도, 세상도 변하고 있고 환경도 변하고 있는데 못 바꿀 것이 있다는 것 자체가 우습다.
세만금인지 뭔지 하는 것도 방조제를 쌓아 간척하고자 했던 당시의 생각과 지금의 모습은 무척 바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새만금의 모습이 원안과 틀리다고 해서 지금 문제가 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로지 유일한 문제는 어떻게 해서라도 새만금을 효율적이고 가치있는 공간으로 활용하여 지역과 나라에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세종시가 일부 행정부문만 옮기는 것이 아니고 전체를 옮기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검토할 것은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공간의 개발과 활용은 한가지 사안으로서만 규정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소한 도시의 기본기능인 자족의 부분이 해결되지 않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중대한 결함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 대한 총체적인 수정이나 보안의 개연성 조차 문을 걸어 잠그고, 그저 원안대로만 해달라는 것 자체가 지역의 제한적 욕심과 그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임을 스스로 노정하는 것일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화합과 소통을 최선의 미덕으로 입버릇처럼 되뇌이는 사람들이 고집불통이다.
대통령에게 사과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본인들도 선거에서 한표 얻어서 집권 한번 해보겠다는 심사로 행정수도 이전을 주장했다고 이실직고하는 것이 옳은 자세라고 생각한다.
이제 와서 지방분권이니 지역발전이니 하는 포장으로 둔갑하여 고집을 피우는 것은 우습다. 지방분권을 하고자 하는 것이 의도라면, 행정수도를 옮기지 않아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 지역발전 역시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고 있다.
서울 및 수도권의 과밀과 집중화로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다. 가까운 일본의 동경과 중국의 베이징, 상해를 가봐라. 하늘에서 한 번 보면 오히려 우리 서울의 규모가 왜소하기 까지 하다는 인상을 져버릴 수 없다. 더군다나 오히려 서울의 인구는 점차로 줄고 있다고 한다. 결코 과밀이니 집중화니 하는 문제는 나중에 논외의 대상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다시 검토하자는 사람들의 정치적 의도 역시, 반대편의 입장에서,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기 드물게 국내 최고 경제학자출신이며 그 지역 출신의 총리가 주재하고 있다면, 이 또한 좋은 수정의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힘들더라도 국내 최고의 전문가와 행정가들의 의견을 모아서, 이왕 논의 된 세종시수정문제를 신중하게 검토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지금은 조금 잠잠해졌는데, 한나라당에서 교육을 책임지고 있다는 의원이라는 사람이 온통 사교육의 주범이 외고라고 해서 외고를 폐지할듯이 난리를 쳤다.
참고로 나는 나의 여식이 외고를 다니고 있고, 그 아이 이후에는 학생이 없기 때문에 사교육이 어떻든 상관은 없는 사람이다. 이미 자식이 외고를 다니고 내년이면 졸업할 입장이니, 외고를 없애든 말든 상관할 것도 없다.
그러나 몇몇가지 어의 없는 말들을 하고 다니는 것을 보고 한심한 생각에 의견을 적어 본다. 우선 가장 우스운 말은 "외고가 사교육의 주범이다."와 "외고는 외국어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외고가 우리나라 사교육의 주범일까.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외고를 들어가기 위해서 이르면 초등학교때부터 소란을 피우는 현실을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니다. 나 역시 집안 모두 어렸을 때부터, 특목고를 가기 위해서 노력을 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고를 그저 대학교를 편히 갈 수 있는 길목정도로 생각하는 한, 외고가 아니라 그 어떤 것을 만들어도 마찬가지라는 것 또한 현실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자식을 외고에 보내니 편한 것도 많다. 우선 아이가 좋은 환경에서 열심히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안심이 된다. 학교도 열심히 하지만, 그 안에서 아이들끼리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집중력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이 학부모의 입장에서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러한 편안한 교육환경을 갖춘 고등학교가 많지 않은 것이 문제다.
큰 아이를 일반고등학교에 보내 본 학부모의 입장에서 현재 일반고교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말이 안될 정도로 무성의 하다. 너무나 무성의하여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과외니 학원이니에 목메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말하니 외고는 입시공부만 하는 기계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오히려 외고안에서는 각종 학예활동이 참으로 많아서, 아이들이 충분히 자기 재능을 확인하면서 즐기는 것 같았다. 내 아이만 하더라도 이미 고1때, 전국 모의재판에 나가서 전국3위에 입상하기도 하였다. 이런 것을 기회로 법학과 사회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된 것 같았다. 물론 일반고에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일들이었다.
한마디로 입시공부는 물론 원어민에게 배우는 외국어 교육, 각종 학예활동 모두 만족도가 높은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학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이와 같은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공유하는 외고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여 외고를 준비할 때는, 대학입시에 수월하기 위해 준비했을 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더 많은 좋은 교육을 받는 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와 같은 좋은 교육프로그램을 가진 학교라면, 많은 부모들의 선망의 대상이 디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좋은 시스템을 사교육을 부추킨다는 이유만으로 없애겠다는 것은,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이런 관점에서만 본다면, 외고와 같은 좋은 교육프로그램을 가진 학교를 많이 만들어서 해결해야지, 없앤다고 해결될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우스운 이야기는 외고는 외국어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그렇게 말하는 본인도 대학에서 정치외교학과를 나와서 국회의원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외국어 자체가 어떤 특별한 학문의 영역도 아니고 삶의 필수 도구가 되어 가는 요즘에 그런 정도의 이야기로 국민을 현혹시키려 하는 것이 우습다. 그야말로 혹세무민이라고 할 것이다.
내 아이는 프랑스어과이다. 그러나 나는 내 아이가 프랑스어를 배워서 좋지만, 죽을 때 까지 프랑스어 번역이나 통역만 하고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프랑스어를 잘해서 프랑스의 발전된 문화행정이나 인문사회학문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 물론 이것 역시 부모의 생각이고, 본인이 살아가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사회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것이 맞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프랑스어가 충분한 도움이 되길 바랄뿐이다.
요즘 학문간에도 학제간 파괴니 통섭이니 하면서 융복합학문화되어 가는 것이 추세이다.
당장 그렇게 말하는 국회의원조차도 교묘한 정치술만 익힐게 아니라, 과학기술도 잘하고 경제도 잘하면서 프랑스어도 잘하는 능력있는 정치인이 되길 원할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다양하게 변하고, 급격하게 변하는 판에 얼마나 융통성 있고 효율적이며 전문적으로 적응해 나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요즘이다. 앞으로는 이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안ㄹ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터무니 없게 외고는 외국어만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 사람은 뭔가 덜떨어져도 한참 떨어진 상태임에 분명하다.
그러면 외국어 대학교는 외국어만 가르쳐야 하나.
제발 이런 단순 논리가지고 세상을 쉽게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사교육 만큼 비효율적이고 비이성적인 부정적 사회현상이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그것을 치유해야 한다는 당위 때문에, 마치 어느 한 집단을 마녀사냥하듯이 몰아세우는 것은 현명한 방법은 아니라고 본다.
외고는 그나마 지금 교육제도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충분히 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좋은 모델을 선순환의 기회로 삼아서 보다 나은 시스템을 만드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안대로 추진해서 우리나라 행전부의 반을 이전하여 지방분권을 실현해야 한다. 그리고 충청도민의 생각대로 하고, 세종시 뿐만 아니라 지방 혁신도시도 원안대로 해야 한다. 가기로 했는데 안 간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약속은 약속이다. 법을 만들었으면 지켜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그것을 어기 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벌을 줘야 한다. 법을 어겼으니까.
그렇게 법과 신의를 주장하는 사람들 말대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대로 옮겨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한 50년간은 이렇게 똑 같이 해야 한다. 프러스 알파라니 말도 안된다. 법을 어기는 것이다. 그냥 그대로 해야 법을 지키는 것이다.
절대로 법을 어기면 안되므로, 그냥 원안대로 해야 한다. 무슨 해 보지도 않고 잘못 될 것이라고 어깃장을 놓는 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법을 고쳐서 다시 살길을 마련해보자는 사람들은, 이것을 안 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역사가 지금까지 이렇게 개판 누더기가 된것은 법을 지키지 않아서이고, 정치권이 자기 마음대로 해서이다.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약속 한번 지키자.
그래서 우리는 원안대로 하였습니다.
20년 뒤에 우리는 그동안 20년동안 수없이 많은 공무원들이 길바닥에서 시간을 낭비해도 괜챦았습니다. 그 정도는 화상회의도 있고, 무엇보다도 지방분권이라는 거룩한 선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20년 뒤에 도시에 병원도 없고 학교도 제대로 된 것이 없어서 대부분의 세종시민들이 일만하고 나가도 상관없었습니다. 다른데에 모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소를 이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공부원들만 기러기 아빠만 되면 되니까요. 그 정도는 약과죠. 그것보다 더한 돈을 들여서 외국에 내보내는 기러기 아빠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행복하니 말입니다.
20년 뒤에 도시는 더이상 개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도 돈 벌 구석이 없으니 새로 지을 필요도 없으니까요. 자족은 무슨 자족, 그냥 우리만 조금 희생하면 되는데 구태여 기업을 끌어 들일 필요가 있나요. 대신 깨끗한 청정지역을 만들고 유지했다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한 가지 희망은 있습니다.
얼마 뒤에 통일이 된다고 합니다.
혹시 통일이 되면 수도는 서울로 될 것 같다고 하여 그 때까지 기다려 보렵니다.
또 누군가를 들썩이면 이제는 합치자고 안할 까요. 그 때 합치면 되죠.
뭐 이렇게 물 흐르듯이 마음을 비우고 살면 되는 문제를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20년 전에 싸웠는지 모릅니다.
나라가 돈도 많은데, 그깟 22조원 조금 썼다고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그 때는 왜 그렇게 싸웠는지 모릅니다.
법을 지키는 것은 좋은 겁니다.
앞으로 우리는 한 번 정한 것은 죽을 때까지 그대로 지키고 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 행복도시 앞으로도 50년동안 아무것도 빼도 넣도 않고 유지 한번 해 볼라고 합니다.
내가 대학생때 우리 나라 근대민주주의의 역사에 대해서 공부한 적이 있었다. 사학과 같은 전공학생은 아니기에 깊이 공부할 방도는 없었으나, 대학 다니던 종일 역사와 관련한 책들은 대부분 섭렵했던터라 그런대로 많이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내가 읽었던 책들 대부분이, 우리나라 근대화의 시초를 대부분 조선말의 실학사상부터 자리매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탈과 패배와 실기의 역사로 점철한 우리나라 근현대사 중에서, 그래도 나름대로 시대의 흐름을 가지고 그나마 젊은 우리에게 자부와 긍지를 주었던 분들이 실학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다른 많은 운동권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실학자들에 대한 역사탐구에 몰입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내용 중에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 민주주의역사중에서 민주적인 사고의 기원조차 실학사상으로 확대해석했던 이론들도 있었다. 맹목적으로 역사서적의 지식을 받아 들였던 당시로서 아무런 비판없이 수용했던 논리 중에 하나이다.
마치 유신시대 고등학교를 다녔던 피해의식으로 민주화운동에 극렬히 참여했고, 모든 우리나라 근현대 역사를 재해석하고자 했던 심리와 다를바가 없었다.
즉, 유신시대 배웠던 역사도 부인했지만, 그렇지 않은 반유신적 역사관은 무조건적으로 흡수했던 시절인 것이다. 또 그러한 전환시대의 논리가 필요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인이 되고 보다 차분히 역사를 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민주화운동이라는 강박관념이 부담스럽지 않게 되어, 다시 학생시절에 읽었던 역사서적들을 재평가 하게 되었다.
당연히 그렇지 않은 많은 서적과 현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우리나라 민주의식의 출발이 실학사상은 아니라는 이론들이었다. 희만사항이고 바람일뿐, 정약용 등을 포함한 대부부의 실학자가 가지고 있던 정치사상은 유교주의에 입각한 실용적 지배이론 중에 민중을 중시하는 논리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실학자들은 민주주의의 민자도 모르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많은 시간을 객관적 인식없이, 이리 저리 쓸려 다니면서 역사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 세대들의 현실에 안타까움이 앞서는 이유이다.
그런데 19세기말에서도 희박했던 민중정치관을, 그 보다 1300년전의 삼국시대였던 선덕여왕이 민중을 위한 선정을 베풀었다고 우기는 드라마를 보면서 새삼 우리의 역사인식에 대한 착각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만하다.
아무리 드라마에 불과하지만, 소위 민주화운동권에 속했거나 동조한 사람들의 역사인식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었는지에 대한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MBC가 만드는 역사드라마나 기획 프로그램들이 과도하게 자기의 의지를 나타내기 때문에 지적하는 것이다.
우리의 희망사항과 우리 민족의 실재역사는 별개인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 대단하지 못한 우리 역사에 대해서, 지나치게 비하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턱도 없이 미화하는 것 역시 한심한 역사왜곡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역사드라마의 한계이기 때문에 더이상 문제를 확장할 필요는 없지만, 역사를 자기 편의에 맞추어서 과다 해석하는 것은 어느 경우든 왜곡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 삼국통일이 외세에 의한 불완전한 통일이라고 후세에 평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성으로서의 선덕여와에 대한 민중적 정치술을 부각하려는 것은, 아무리 후하게 평하려고 해도 지나친 자기해석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별로 관심없던 삼국시대의 역사에 대해서 재인식을 하게한 점은 이해할 만하지만, 여러모로 편협된 역사의식만 강조한 단순한 제작진들의 문제의식을 지적할 수 밖에 없는 드라마이다.
평생 제대로된 역사책하나 읽지 않는 대중들에게 구체적인 역사인식보다는 무협지 수준의 콘텐츠를 전달하면서도, 무슨 대단한 역사인식이나 갖고 있는 것첨럼 부풀리는 방송사의 제작자들이 한심스럽다.
그젠가 저녁에 우연히 TV를 보다가 이상한 이야기들이 나오길래 채널을 멈추고 보았다. 앞 뒤를 본 프로그램이 아니라 잘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와 외국 여성을 상대로 키작은 남자는 어떤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저 뭐라할까 하는 궁금증에 보고 있던 차에, 우리나라 여자대학생이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옮기고 있었다. 무조건 자기보다 키작은 남자는 싫다는 것이다. 급기야는 루저(loser)라고까지 했다. 젊은 사람들이야 잘 아는 이야기겠지만, 우리나라 시청자들이 이를 얼마나 알고 전달되었는지 궁금했지만, 그저 단순하게 나는 패배자라는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집사람과 TV를 시청하다가 어의가 없어서 한동안 말도 잃고 물끄러미 볼 수 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다음날 이 아가씨는 비호감으로 인터넷을 달구고 있었다. 키 작은 남자는 인생의 낙오자라고 말하는 것이 말이 되냐는 것이다. 거의 제2의 된장녀가 된 분위기다. 이미 이 여학생이 각본대로 주어진 표현을 했다고 항변해도 소용이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아마도 다행히 이 여학생이 유명인이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유명인이었다면 더 큰 충격의 나락에 빠졌을 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연예프로그램에서 아무 비중도 없이 단순하게 웃자고 한 말이사회적으로 일파만파가 되고 엄청나게 비난의 회오리에 빠지는 일은 너무 흔하다.
가까운 예로는 2pm의 재범이라는 젊은이가 한국이 싫다고 표현한 것이 문제가 되어, 급기야는 활동을 중단하고 자기가 살던 미국으로 쫒겨 나간 일도 있다.
그런데 그런 여론의 십자포, 특히 인터넷 안에서 무차별하게 가해지는 비난의 화살이 너무 무의식적으로 확산되고 이뤄진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살다가 한국이 싫어졌다고 마음이 들 때가 아주 없을까? 지금 한창 꽃다운 나이에 여학생이 자기 보다 키 작은 남자를 좋다고 해야할 이유가 있는가?
이 일과 말의 잘잘못은 자기가 책임지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늘상 변하는 것이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여러 마음중에 굉장히 작은 단편을 표현했을 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과민반응을 하고 있다.
마치 이러한 생각이 일반화되면 곧장 사회가 무너질 지도 모른다는 과잉반응으로 과대해석하여 일단 당사자를 까뭉게고 본다. 그 다음 문제는 그 다음에 해결하면 된다는 식이다.
그래서 소위 공공에 노출된 사람들은 너무나 이미지 관리에만 집중하게 되는 이유가 이런데에 있나 본다.
그러나 우리가 살다 보면 흉허물이 없을 수 없고, 그럼에도 살아 나가면서 수정하고, 한편으로는 고집을 피우면서도 더불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터드해 나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이런 일읃에 대한 포용의 그릇과 이해의 공간도 한편으로는 준비해 둔 채, 자기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제 그 여학생의 말을 듣고 화나는 감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물론 나는 키가 178cm이다. 요즘 기준으로 해서 큰 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작은 편도 아니다. 더더군다나 우리 나이뻘이 40후반이나 50초반치고는 크다고 할 수 있는 키이다. 그리고 그와 같이 어린 여학생에게 프로포즈할 나이도 아니니 한참 안심지역에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한 남자를 키로만 재단하는 새태가 한심스럽기는 매 한가지다. 아마 그도 우리 나이가 되보면 한 인간을 평가하는 것이 키로서만으로는 말도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 역시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인 내 여자아이가 작은 키의 남자아이를 사귄다는 것에 그리 쉽게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도 부인하기 힘들다. 내 스스로 키 큰 사람치고 싱겁지 않은 사람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으면서도, 그렇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작은 아이의 키를 키우겠다고 억지로 운동시키고 병원까지 가서 약을 사서 먹이는 부모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회적 기준과 개인적 욕심사이에 작은 일 하나 가지고도 여러 갈등을 겪는 내가, 자기 마음을 가감없이 솔직하다 싶을 정도로 표현한 그 여대생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 까 반문해 본다.
아마도 그녀를 탓하기 보다는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것이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녀에게 모진 비난의 화살을 던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 대신에 그와 같은 솔직한 감정을 소유한 그녀에게 인간가치의 다양성과 삶의 다양한 가치에 대해서 알려 주면 되는 것이다.
은근히 슬쩍 2PM의 재범이가 다시 등장할 것이라고 운을 떼는 박진영사장의 말에 주목한다. 이제 우리도 그런 정도의 여유와 눈가림에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
너무 디테일하게 살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남에게 쉽게 욕을 던질 만큼 우리 삶 역시 녹녹하지 않음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