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생때 우리 나라 근대민주주의의 역사에 대해서 공부한 적이 있었다. 사학과 같은 전공학생은 아니기에 깊이 공부할 방도는 없었으나, 대학 다니던 종일 역사와 관련한 책들은 대부분 섭렵했던터라 그런대로 많이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내가 읽었던 책들 대부분이, 우리나라 근대화의 시초를 대부분 조선말의 실학사상부터 자리매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탈과 패배와 실기의 역사로 점철한 우리나라 근현대사 중에서, 그래도 나름대로 시대의 흐름을 가지고 그나마 젊은 우리에게 자부와 긍지를 주었던 분들이 실학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다른 많은 운동권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실학자들에 대한 역사탐구에 몰입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내용 중에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 민주주의역사중에서 민주적인 사고의 기원조차 실학사상으로 확대해석했던 이론들도 있었다. 맹목적으로 역사서적의 지식을 받아 들였던 당시로서 아무런 비판없이 수용했던 논리 중에 하나이다.
마치 유신시대 고등학교를 다녔던 피해의식으로 민주화운동에 극렬히 참여했고, 모든 우리나라 근현대 역사를 재해석하고자 했던 심리와 다를바가 없었다.
즉, 유신시대 배웠던 역사도 부인했지만, 그렇지 않은 반유신적 역사관은 무조건적으로 흡수했던 시절인 것이다. 또 그러한 전환시대의 논리가 필요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인이 되고 보다 차분히 역사를 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민주화운동이라는 강박관념이 부담스럽지 않게 되어, 다시 학생시절에 읽었던 역사서적들을 재평가 하게 되었다.
당연히 그렇지 않은 많은 서적과 현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우리나라 민주의식의 출발이 실학사상은 아니라는 이론들이었다. 희만사항이고 바람일뿐, 정약용 등을 포함한 대부부의 실학자가 가지고 있던 정치사상은 유교주의에 입각한 실용적 지배이론 중에 민중을 중시하는 논리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실학자들은 민주주의의 민자도 모르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많은 시간을 객관적 인식없이, 이리 저리 쓸려 다니면서 역사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 세대들의 현실에 안타까움이 앞서는 이유이다.
그런데 19세기말에서도 희박했던 민중정치관을, 그 보다 1300년전의 삼국시대였던 선덕여왕이 민중을 위한 선정을 베풀었다고 우기는 드라마를 보면서 새삼 우리의 역사인식에 대한 착각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만하다.
아무리 드라마에 불과하지만, 소위 민주화운동권에 속했거나 동조한 사람들의 역사인식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었는지에 대한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근거는 MBC가 만드는 역사드라마나 기획 프로그램들이 과도하게 자기의 의지를 나타내기 때문에 지적하는 것이다.
우리의 희망사항과 우리 민족의 실재역사는 별개인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 대단하지 못한 우리 역사에 대해서, 지나치게 비하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턱도 없이 미화하는 것 역시 한심한 역사왜곡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역사드라마의 한계이기 때문에 더이상 문제를 확장할 필요는 없지만, 역사를 자기 편의에 맞추어서 과다 해석하는 것은 어느 경우든 왜곡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 삼국통일이 외세에 의한 불완전한 통일이라고 후세에 평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성으로서의 선덕여와에 대한 민중적 정치술을 부각하려는 것은, 아무리 후하게 평하려고 해도 지나친 자기해석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별로 관심없던 삼국시대의 역사에 대해서 재인식을 하게한 점은 이해할 만하지만, 여러모로 편협된 역사의식만 강조한 단순한 제작진들의 문제의식을 지적할 수 밖에 없는 드라마이다.
평생 제대로된 역사책하나 읽지 않는 대중들에게 구체적인 역사인식보다는 무협지 수준의 콘텐츠를 전달하면서도, 무슨 대단한 역사인식이나 갖고 있는 것첨럼 부풀리는 방송사의 제작자들이 한심스럽다.
그젠가 저녁에 우연히 TV를 보다가 이상한 이야기들이 나오길래 채널을 멈추고 보았다. 앞 뒤를 본 프로그램이 아니라 잘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와 외국 여성을 상대로 키작은 남자는 어떤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저 뭐라할까 하는 궁금증에 보고 있던 차에, 우리나라 여자대학생이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옮기고 있었다. 무조건 자기보다 키작은 남자는 싫다는 것이다. 급기야는 루저(loser)라고까지 했다. 젊은 사람들이야 잘 아는 이야기겠지만, 우리나라 시청자들이 이를 얼마나 알고 전달되었는지 궁금했지만, 그저 단순하게 나는 패배자라는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집사람과 TV를 시청하다가 어의가 없어서 한동안 말도 잃고 물끄러미 볼 수 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다음날 이 아가씨는 비호감으로 인터넷을 달구고 있었다. 키 작은 남자는 인생의 낙오자라고 말하는 것이 말이 되냐는 것이다. 거의 제2의 된장녀가 된 분위기다. 이미 이 여학생이 각본대로 주어진 표현을 했다고 항변해도 소용이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아마도 다행히 이 여학생이 유명인이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유명인이었다면 더 큰 충격의 나락에 빠졌을 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연예프로그램에서 아무 비중도 없이 단순하게 웃자고 한 말이사회적으로 일파만파가 되고 엄청나게 비난의 회오리에 빠지는 일은 너무 흔하다.
가까운 예로는 2pm의 재범이라는 젊은이가 한국이 싫다고 표현한 것이 문제가 되어, 급기야는 활동을 중단하고 자기가 살던 미국으로 쫒겨 나간 일도 있다.
그런데 그런 여론의 십자포, 특히 인터넷 안에서 무차별하게 가해지는 비난의 화살이 너무 무의식적으로 확산되고 이뤄진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살다가 한국이 싫어졌다고 마음이 들 때가 아주 없을까? 지금 한창 꽃다운 나이에 여학생이 자기 보다 키 작은 남자를 좋다고 해야할 이유가 있는가?
이 일과 말의 잘잘못은 자기가 책임지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늘상 변하는 것이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여러 마음중에 굉장히 작은 단편을 표현했을 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과민반응을 하고 있다.
마치 이러한 생각이 일반화되면 곧장 사회가 무너질 지도 모른다는 과잉반응으로 과대해석하여 일단 당사자를 까뭉게고 본다. 그 다음 문제는 그 다음에 해결하면 된다는 식이다.
그래서 소위 공공에 노출된 사람들은 너무나 이미지 관리에만 집중하게 되는 이유가 이런데에 있나 본다.
그러나 우리가 살다 보면 흉허물이 없을 수 없고, 그럼에도 살아 나가면서 수정하고, 한편으로는 고집을 피우면서도 더불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터드해 나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이런 일읃에 대한 포용의 그릇과 이해의 공간도 한편으로는 준비해 둔 채, 자기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제 그 여학생의 말을 듣고 화나는 감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물론 나는 키가 178cm이다. 요즘 기준으로 해서 큰 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작은 편도 아니다. 더더군다나 우리 나이뻘이 40후반이나 50초반치고는 크다고 할 수 있는 키이다. 그리고 그와 같이 어린 여학생에게 프로포즈할 나이도 아니니 한참 안심지역에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한 남자를 키로만 재단하는 새태가 한심스럽기는 매 한가지다. 아마 그도 우리 나이가 되보면 한 인간을 평가하는 것이 키로서만으로는 말도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 역시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인 내 여자아이가 작은 키의 남자아이를 사귄다는 것에 그리 쉽게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도 부인하기 힘들다. 내 스스로 키 큰 사람치고 싱겁지 않은 사람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으면서도, 그렇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작은 아이의 키를 키우겠다고 억지로 운동시키고 병원까지 가서 약을 사서 먹이는 부모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회적 기준과 개인적 욕심사이에 작은 일 하나 가지고도 여러 갈등을 겪는 내가, 자기 마음을 가감없이 솔직하다 싶을 정도로 표현한 그 여대생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 까 반문해 본다.
아마도 그녀를 탓하기 보다는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것이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녀에게 모진 비난의 화살을 던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 대신에 그와 같은 솔직한 감정을 소유한 그녀에게 인간가치의 다양성과 삶의 다양한 가치에 대해서 알려 주면 되는 것이다.
은근히 슬쩍 2PM의 재범이가 다시 등장할 것이라고 운을 떼는 박진영사장의 말에 주목한다. 이제 우리도 그런 정도의 여유와 눈가림에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
너무 디테일하게 살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남에게 쉽게 욕을 던질 만큼 우리 삶 역시 녹녹하지 않음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법원에서 동방신기와 관련한 자율권을 부여했는데도 연예인들에 대한 고용계약이 시끄럽다. 다름 아니라 고용계약이 아니라 노예계약이라는 것이다.
법원에서 당연히 잘 살폈겠지만, 고용계약서를 뜯어 보면 볼 수록 말도 안되는 계약서임을 알 수가 있다. 우선 계약기간 자체가 말이 안된다. 무려 10 몇년씩 계약을 해서 붙들어 맨다는 것이 상식이하이다. 개별적인 수익분배나 억압적 조건들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 고용계약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런 불합리하고 일방적인 계약서가 아직도 난무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동방신기같이 소위 바람을 탄 연예인들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아직도 저 밑바닥에서 언제 기회가 올지도 모르면서 차가운 라면을 먹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연습생들은 여전히 그와 같은 일방적인 계약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말도 안되는 관행이 고쳐지지 않는 것은 연예계의 고질적인 생태구조, 즉 먹이사슬이라고 보는 측면이 강하다.
물론 다른 한편의 강력한 반발도 잇다. 너무나 연예계의 흥행세계를 모르고 하는 무지한 주장이라는 것이다.
당장에 동방신기만 해도 그렇다.
한참 동방신기가 일본에서 엄청난 바람이 불 때,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잇다. 그당시 직간접적으로 한류문화콘텐츠를 업으로 살고 있는 많은 기획자와 프러듀서, 에이전시들을 만난 때도 그 때이다.
이 사람들의 한결같은 평은 다음과 같았다.
동방신기가 지금같이 일본에서 인기있게 하기 위해서 무려 3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사실인 것 같다. 그렇게도 동방신기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으나 미풍도 없었던 것이, 지금은 동방신기가 뜨니까 동방신기의 데뷰곡조차 새로이 유행이 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일본 문화콘텐츠시장에 조그마나마 수출하는 사람에 입장에서, 일본에 아무리 한류라고 하여도 바람을 일으키고 시장에 제대로 진입시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익히 알고 있던 터이라 고개가 절로 끄덕였던 것이다.
아마도 동방신기 당사자들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시기에 한류의 중심으로 자리잡게된 것이 신기할 정도 였을 것이다. 물론 그들도 그동안 말없이 수많은 노력들을 하면서 힘들었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 동방신기라는 상품을 3-4년동안 끊임없이 투자하고 밀었던 관련 회사는 어떠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그러한 현장리포팅을 하고 돌아오자 얼마되지 않아서 국내에서 동방신기의 취업에 대한 자유권과 관련한 문제가 터졌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인 것은 그 일 자체의 문제만큼, 그동안 그렇게 많은 공을 들인 여러 주변 사람들의 마음이 읽혔기 때문임을 부인하기 힘들었다.
무엇이 먼저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 연예계는 관습과 타성에 젖어서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물론 과거에 비해서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불합리한 구석이 너무나 많다. 그저 한건 잘 터져서 대박만 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그저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고, 무한히 몸으로 때우는 방법뿐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연예계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흥행의 세계는 이를 좌지우지하는 PD가 전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의 시발점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페해는 비단 우리나라에서 연예계에만 적용되지 않는 이유이다.
방송, 공연, 문화예술산업 전반, 출판, 스포츠, 심지어 산업이나 정치권까지 먹이사슬이 존재하는 분야는 모두 이런 일방적인 계약관계가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와 같은 중심에 잇을 수 잇는 문화예술기관에 근무하면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경험했다. 비록 지금은 부정과 비리의 의심을 받고 있는 예술으전당이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그러한 먹이사슬을 나름대로 잘 끊었다는 자부가 그들을 국내 최고의 문화예술기관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먹이사슬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게이트 키퍼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나 기관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이왕 터진 문제이고 매년 지속적으로 터지는 이와 같은 연예계의 일방적인 계약관행을 하나하나 고쳐가면서 개선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나라 김연아선수의 아름다운 연기와 탁월한 성적에 기인한 것이긴 해도 많은 사람들이 피겨스케이팅에 대해서 좋아하고 열광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나 역시 스포츠 경기를 즐겨 보고 좋아하지만, 그런 나 조차도 아직까지 피겨는 생소한 경기인 것이다.
그런 피겨 경기를 관심을 갖다 보니 알게 된 것들이 많다.
우선 가을이 시작될 무렵부터 겨울이 끝날 때까지, 마치 프로야구 시즌 처럼 피겨경기도 시리즈 경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름대로 경기의 원칙이 있어서 참가하는 선수들의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것도 모르고 우리나라 김연아 선수가 몇년전에 시니어경기에 참가하면서 일희일비했던 것을 생각하니 새삼 우습다. 마치 한 시즌을 길게 보고 전략과 체력을 안배하면서 경기를 관리하는 프로야구나 축구같은 경기종목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그냥 얼음판위에서 공주처럼 미끄러지듯 스케이팅을 하면서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피겨라고 생각했던 것은 말도 안되는 초보적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굉장한 기술구성과 표현양식이 복잡하게 엉켜 있어서, 연기하는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덜하거나 더할 경우 냉정한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직도 생소하기는 하지만, 점프조차 인이나 아웃이니 하면서 인간의 스포츠 역학을 충분히 배려한 기술력을 평가하는 스포츠라는 것이다.
그저 아무것도 모를 때는 무용이나 피겨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피겨가 새삼 스포츠라는 사실에 본인의 무지를 탓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경기에 재미를 더하고 스포츠와 같이 경쟁심을 갖고 보게 되니까, 일본의 아사다 마오와 우리나라 김연아선수가의 치열한 기술및 표현의 경쟁을 이해할 듯 했다.
그런 와중에 최근에 김연아선수의 경쟁자인 아사다 마오의 부진에 대해서 많은 논란들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미천한 피겨지식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논란에서 새삼 기본기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피겨란 것이 표현력과 기술력이 종합평가되는 종목인데, 이 경우 어느 한 쪽에 치우칠 경우 반드시 회복하기 힘든 경기력 침체에 빠질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아직 종결된 경쟁은 아니지만, 김연아와 아사다마오의 가장 큰 차이는 기본기에서 비롯된 다고 단언하고 싶다.
흔히 김연아의 높은 점수가 경직된 아사다에 비해 상당히 자유분방한 김연아의 예술적 표현력에 기인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것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김연아의 기본기에 충실한 경기력에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기본기에 투자하는 일은 보통 지루하고 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해도 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이 지루하고 엄청난 시간을 투여해야 겨우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 기본기 연마이다. 그리고 남들은 각종 예술적 표현과 특화된 기술로 치달을 때, 본인은 아직도 기본기연마에 매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기본기 연마에 힘들게 하는 요소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본기에 충실히 했을 경우, 그 다음 부터는 탄탄대로이다. 표현이나 세기연마는 너무나 쉽게 따라오기 때문이다.
아사다라고 해서 기본기 공부를 게을리했을리 없겠으나, 너무 일찍 시선이 집중되는 바람에 점프의 기본기 보다는 점프의 난이도에 집중한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에 비하면 김연아가 기본기에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대해서 바른 선택을 했다는 생각을 한다.
이와 같이 기본기가 소중한 분야는 참으로 많다.
특히 종합예술이나 다양한 분야가 혼합된 일들일수록 특히 기본기가 충실해야 하는 것들이다.
한 두번 의외의 상황으로 대박을 맞을 수는 있지만, 영원히 대박이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기본기와 관련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대박은 끊임없는 기본기 연마를 통해서야만 온다라는 너무나 단순한 진리를 알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문제는 경기력과 경기외적인 수없이 많은 요소가 작용한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경기의 승패만 집착할 경우, 기본기와 무관하게 경기외적인 요소에 집착할 경우가 있다. 그러나 가장 완벽한 승리는 경기력에 충실한 기본기가 탄탄할 경우 확률이 높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기본기에 충실하게 준비한 후, 경기외적인 요소는 진인사대천명하는 것이 답인 것이다.
그래서 내년 벤쿠버동계올림픽에서 우리의 김연아 선수가 경기력이나 경기외적인 모든 요소에서 완벽히 승리하는 선수가 되길 바라는 이유이다. 그저 그 경기만 잘 해서 우승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 선수라고 믿기 때문에 자랑스럽게 기대해 본다.
예술의전당에 대한 검찰수사와 국정감사 등이 끝났는데도 갖은 송사 등 시련이 그치질 않고 잇다. 비록 몸은 예술의전당을 떠나 있지만,예술의전당에 근무했던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특별히 도울 일이 없어서 미안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서, 현정권의 실정을 부각시켜 보려는 국회의원들의 오버와 유인촌장관의 개인적인 비호감을 국정에 악의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호도로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내부 직원들의 온갖 구설수와 어설픈 조직간의 힘겨루기까지 뒤엉켜 제대로 해결을 위한 가닥 조차 잡지 못하는 것같인다.
우선 이번 문제의 핵심은 예술의전당 자체 조직의 부실한 운영에 대한 헛점을 기회로 조직전체를 흔들어 보고자 하는 의도된 외부의 힘에 있다고 본다.
그 외부 힘의 소재가 정권에 가까운 사람이나, 아니면 정권을 반대하는 사람이거나, 혹은 예술의전당 출신 외부인사들이거나, 그러한 빌미를 제공한 자체 조직원들의 세밀하지 못한 행정력에 아쉬움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예술의전당은 그동안 내부인력의 성장 경로만으로도 충분히 예술의전당 대내외에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많은 문화예술행정인의 노른자위로 자리잡은 현실에서, 섣부르게 내부인력이 자리다툼을 하였던 것이 이와 같은 크나큰 시련의 작은 단초를 제공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 와중에 타성에 젖은 내부인력의 개혁 없이 중앙부처 또는 외부영입사장과의 타협에 의해서 조직을 유지하기만 하면 된다는 안이한 생존방식이 결국은 이와 같은 화를 불러 온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동안 예술의전당은 다양한 기획과 공간운영의 실험을 통해서 국내에 많은 문화예술 행정인을 배출해왔다. 그럼에도 오히려 자체적으로는 끊임없는 개혁과 실험정신을 뒤로하고 오페라극장의 화재 등 물리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조직원들간에 해결방안을 두고 이견을 노출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동안 그토록 자랑스럽게 유지해왔던 자립운영능력을 깨면서까지 국고를 수혈하는 어려운 결정을 하였던 것이다. 불가피한 조치였으나, 이를 빌미로 중앙부처의 지나친 개입이 있었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간섭을 적절히 견재할 수 잇는 능력있는 행정인을 양성하기 보다는, 오히려 중앙부처와 타협과 조정능력만이 강조된 인력이 내부조직의 주도권을 잡은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이는 그동안 예술의전당 내부조직을 탄탄하게 유지해 왔던 견재와 균형의 틀을 흐트리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에는 조직원들간의 심한 반목과 마찰이 상존해 왔던 것으로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결국 그동안 예술의전당이 해왔던 균형잡힌 대내외 행정력이 깨지면서, 균열이 생겼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문화예술 공간의 하나인 예술의전당으로서 해결방안은 너무나 자명하다.
국내외적으로 최고의 문화예술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각종 문화예술단체와 긴밀한 프로그램 교류를 통한 문화예술생태계의 중심이 되도록 하며, 최고의 공간으로 유지운영이 되도록 운영혁신과 함께 서비스를 개선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내부 행정인력의 교육과 창조적인 인력양성과 조직화에 최선을 다하며, 국내외 문화예술 향수층과의 다양한 소통을 강화하여 우리나라 문화예술 발전의 본산이 되도록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 예술의전당은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고 잇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많은 직원들은 예술의전당 개관초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시간들을 다양한 시행착오를 통해서 잘 이겨냈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라도, 다시 조직원간의 공감대 형성을 통해 초심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차분히 실마리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또한 밖에 있는 사람들도 섣부른 추측과 이해에 엇갈린 시비로 예술의전당을 혼란에 빠트리려 하기 보다는, 예술의전당 직원들 스스로 길을 찾도록 시간을 주어야 할 것이다.
사실 예술으전당은 지금껏 약 20여년 넘게 어떠한 장애도 없이 손쉽게 국내 최고 문화예술기관으로 자리잡은 측면도 있다. 오히려 이번 어려움을 바탕으로 보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대응하여, 행후에도 국내 최고의 문화예술기관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기회로 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