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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책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번 잡으면 끝까지 읽는 경향이 있다. 그런 성격 때문에 나름대로 부족한 독서량에도 불구하고 제법 지식자랑을 할 때가 많다. 오만스런 본인의 성격탓도 있지만. 그러나 그나마 괜챃은 경우 보다는 그와 같은 고집때문에 곤혹을 치르는 경우가 더 많다. 예를 들면 재미없는 책을 잡게 되거나 아주 어려운 책을 만났을 경우가 그렇다. 앞의 경우야 빨리 읽어 버리면 그만이지만 뒤의 경우는 여간 힘겨운 게 아니다.
그런 책중에서 약 2년 전에 읽은 장보드리야르가 쓴 '시뮬라시옹..."이라는 책이 있다. 기호와 같은 가상체계가 현실속에서 어떻게 투영되는 지를 쓴 내용으로 기억되는데 어렵기도 했지만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기도 해서 밑줄까지 치면서 읽은 책이다. 심오한 책이긴 했지만 쉬운 내용이 아니라 무척이나 힘겹게 한장한장 넘긴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약 몇 달전에 국내 영화계를 강타했던 '메트릭스2'의 주인공이 그 책을 읽었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고 너무나 놀란 적이 있다. 뭐 그 책이 나만의 것이 아닌 이상 누군들 못 있겠냐마는 영화배우가 굳이 그책을 읽었다는 데에 우선 놀랐다. 물론 그 역시 그 어려운 책의 내용때문에 고생했다는 인터뷰를 보고는 작은 공감대를 나눌 수 있었지만 놀라운 사실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감독이 영화에 출연하는 주인공에게 읽도록 추천하였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일견 오락물에 불과한 SF영화하나 찍으면서 별걸 다한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그래서 더더욱 놀랍다. 주인공이 기계의 노예로 전락한 인간을 구원한다는 메세지를 전하는 역을 하기에 반드시 필요한 심성으로 간주 한 것임에 틀림없다. 흔히 영화의 표현 영역의 범주로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연기자에 국한해서 볼 때는 기껏해야 분장과 의상일 것이다. 그 다음에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내면연기로 발현되는 연기자의 개인기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 부분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감독의 입장에서는 적합한 연기자를 케스팅하는데 의지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기자의 내면연기까지 콘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감독도 놀랍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읽는 배우도 놀랍다. 솔직히 부럽기도 하다.
우리나라라고 지적인 배우나 연기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와 같은 노력을 기울이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일 수밖에 없다. 물론 연기자만 탓할 일을 아닐 수도 있다. 점점 대중의 기호에 맞출 수 밖에 없는 영화계의 현실때문에 코믹화 되어 가고 있는 국내 영화를 바라 볼 때, 이와 같은 제작풍토가 연기자만의 책임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콘텐츠의 생명이 지적인 문화창조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에서 영화라고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는 연극, 음악, 미술, 오페라, 무용 등의 대부분의 여타 문화예술 장르에도 다 적용될 것이다. 시대의 이슈를 지성적으로 다루는 문화예술 상품을 만들 수 있고, 또 그것을 즐길 줄 아는 관객이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일들을 해야 하나.그것이 늘 나에게는 최고의 관심사다.
스피드에서 보여준 키아노 리브스의 액션연기에서 메트릭스2의 모던한 연기로의 변신이 가능한 것은 그만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면의 숙성까지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문화에 새삼 놀라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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