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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3/09/04
 

이번에 정운찬 총리후보에 대한 청문회준비가 한참인가 보다. 하기야 본인들 스스로 짝사랑을 했다고 하던 사람이, 다른 쪽으로 갔으니 불륜이라 하며 이것저것 들추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국무총리나 되는 사람을 제대로 검증하여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확인하는 일을 소홀히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늘상 그렇듯이 학자들이 장관쯤한다고 하면 들추는 일들이 있다. 바로 학술논문과 저서들에 대한 편법과 이중게제 등이다. 하기에 그 어려운 논문같은 전문적인 내용들을 일일이 확인하기에는 역부족일테고, 논문의 이중게재나 중복저자쯤을 확인하는 수준이 지금까지의 일이었다.

사실 학자로써의 양식이란 측면에서 당연한 흠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논문 생산구조의 관행에서 볼 때 당사자로서는 억울한 측면도 많은 측면이 있다. 이것은 한편이라도 학위논문을 써 본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 슬픈 우리나라의 학술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일단은 국민을 상대로 하여 설득력있는 추궁의 방법이, 그런 것 뿐이 없기에 늘 똑같은 방식으로 추궁하곤 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 정운찬총리후보를 겨냥한 잣대는 조금 색달르다. 하나는 지난 20년간 한편의 논문도 쓰지 않았다는 것과, 또 하나는 그 분의 저서가 너무 평이하고 짜깁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앞에 것은 너무나 허무하게도 반나절만에 조사부실에 의한 허위로 밝혀지고 있지만, 뒤에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나 황당한 초등학생같은 비판이 잇다르고 있다.

나는 80년에 대학에 입학하여 81년에 처음으로 경제학원론과 미시경제학, 82년에 거시경제학강의를 들었다. 당시에는 조순교수가 지은 책 등으로 공부하였다. 아마도 정운찬교수가 지은 교재는 그후로 몇년 뒤에 나왔다고 한다.

지금 서점에 가보면 수백종류의 경제학관련 교재들이 있어서 새삼 다양해진 경제학 전공서적을 접할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운찬교수의 책이 나올 당시에는 정말로 관련 교재가 부족했던 것이 현실이다. 그런 현실에서 조순이나 정운찬 교수가 새로이 지은 관련 교재는 학생들에게 참으로 많은 경제학의 지식을 전해주는 표준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의 눈에서 보면, 당시의 교재가 짜깁기에 지루하고 평이한 내용으로 보이지만, 교재란 것이 원래 처음에 만들어서 모양을 갖추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써보거나 직접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일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순이나 정운찬의 경제학 교재는 그야말로 80-90년대 경제학을 공부하던 사람들에게는 교과서이자 표준이었던 것이다. 말로 일일이 표현하기 힘들지만, 그당시 경제학을 공부했던 경제학도, 사회과학 전공학생, 심지어 고시공부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조순과 정운찬의 제자가 되었던 것이라고 봐야할 정도였다.

이런 학문적인 성취와 노력을 단순히 달라진 지금의 시각에서 일방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너무나 유치한 비교인 것이다.

지금 학생들은 우습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그 당시 우리가 그 분들의 교재를 접하고 느낀 점은 한마디로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새로운 경제해석서로 받아 들였다는 것을 이해나 할런지 모르겠다.

이러한 학문적 업적을 치졸하게 지금의 잣대로만 들이대어, 그것도 누추하게 내용이 짜깁기라는 둥, 창조적이지 못하다는 둥, 재미없다는 식의 논리로 비아냥하는 것은 비판하는 사람들의 지적수준을 의심하게 하는 일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 뉴튼이 몇백년전에 썻던 저서의 내용을 가지고 험담을 늘어 놓지는 않는다. 심지어 인류 물리학의 역사를 바꿔 놓은 아인슈타인의 과거저작의 옳고 그름을 가지고 시비를 걸지는 않는다. 그 사람들이 물리학사에서 이루어낸 위대한 성과와 역할이 보다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 분을 학자로서 평가하기 위해서라면, 그 분이 작성한 학문적 성과물에 대한 고찰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학자로서 이 사회에 영향을 미친 종학적인 판단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행여 너무 쉽게 한 개인이 40여년에 가깝게 이룬 학문적성과를 재단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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