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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살꺼야 (yunneo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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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3/09/04
 

중국의 해외지사에 지사장으로 나가 있는 남편 덕에 중국에서 생활 하던 여동생이 지난 달에 입국했다. 다름이 아니라 아이들이 방학을 맞아서, 국내 보습학원을 다니게 하기 위해 들어 온 것이다. 형편이 되서 그런지, 우리나라에서 고액과외로 시끌법적한 대치동에 방을 얻고 2달간을 지낼 모양이다.

그래도 동생이라고, 편의를 봐줘야 된다는 마음에, 온 가족이 나서서 대치동에 방을 얻어 주느라고 나름대로 신경을 썼던 6월이다. 마침내 6월말에 입국을 했고, 입국 초기 생활편의를 봐 주기 위해서, 나도 대치동 학원가 언저리를 어슬렁 거리게 되었다.

나 역시 자식을 둘이나 키웠고, 그 중 하나는 아직도 외국어고를 다니는 입시생을 둔 부모이지만, 대치동의 학원가를 둘러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마디로 무심한 가장이고 아빠인 셈이다. 하기야 나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공부는 자기가 스스로 하는 것이고, 자기의 능력에 따라서 좋든 싫든 제대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기 때문에, 대치동 학원이 어떻다고 아무리 떠든들, 나와는 무관한 셈이니 그럴 수 도 있을 것이라고 위안한다.

홀로 외고생 딸과 밤새 고군분투하는 아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그렇다는 것이다.

역시 대치동 학원가는 외국유학생들이 몰려올 대목이라 그런지, 한 집 건너 한 개씩 자기 학원 홍보를 위한 현수막을 걸고 홍보전에 열중하는 분위기였다. 수능실적이 어떻고, 외고, 특목고 입학실적이 어떻고 하는 뻔한 선전문구들이었다.

어차피 나의 일은 아니라고 치부하고, 대충 동생의 입주를 도와 준 후에, 나의 집으로 향했다.

나는 정릉의 어느 아파트에 살고 있다. 물론 유산으로 상속 받은 수유리의 자그마한 빌딩(?)도 하나 갖고 있지만, 어머님이 사스는 곳이기도 하고, 팔 생각도 없으니 재산이라고 할 것도 안되는 건물이다.

소위 남들이 흔히 평가하는 돈되는 동네가 아닌 곳에만 사는 철부지 인생인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아파트 입구에 도착한 나를 반긴 것은 다름아닌, 아파트 입구에 걸린 현수막 하나였다.

"우리동네 주민 신경림시인 호암상 수상 경축"

여러분 서울에서 이런 현수막 걸린 동네 봤나요.

저의 동네 정릉입니다.

저는 학생때, 학생운동을 하면서 신경림의 시를 줄줄 외우고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업하느라 세파에 찌들었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학생 때 마음을 잊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존경하고 흠모했던 신경림이라는 대시인이 우리동네에 사신다는 겁니다. 그것도 우리 아파트에 말입니다.

너무나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도 자랑이라고 생각하고, 현수막을 걸은 우리 아파트 자치회가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집에 들어가서 새삼스럽게 신경림시인의 자료를 웹페이지에서 뒤지면서, 정말로 우리 동네에 사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분과 함께 호흡한다는 것도 감사하지만, 그런 분을 알고 현수막을 걸 줄 아는 이웃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학원 홍보물만 가득하고, 외국에서 막 들어온 어린 학생들이 어수선하게 돌아 다니던 대치동과는 너무나 비교가 되는 광경이었었습니다.

저희 동네 정릉, 참 좋습니다.

꼭 신경림시인 때문이 아니더라도 정말로 좋습니다.

언제나 시원한 산바람이 불어 오고, 걸어서 10분안에 시냇물 소리가 들리는 냇가가 있고, 조금 더 땀을 흘리면 북한산 한번 훌쩍 넘다가 올 수 있습니다. 서울 시내 대부분이 그렇지만, 교통편리하고, 아리랑센타같은 다양한 문화시설도 많습니다. 여유롭지는 않지만, 주민들과 같이 지낼 수 있는 시설 물론 다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여유롭고 포근한 동네 환경입니다.

동네 주민들 악바리처럼 대하지도 않고, 서로 어울리면서 다정다감하게 살 줄 아는 동네입니다.

서울에서 이런동네 흔한가요.

어제 뉴스를 통해서 이외로 서울에 살만한 동네 많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 주위에 정말 살만한 동네는 많습니다. 조금만 기준을 바꾸면, 남이 갖지 않은 것을 많이 가진 좋은 동네 살만한 동네 많습니다.

온통 서울 한복판을 아파트촌으로 개발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부동산 업자들에게는 우스운 이야기 일지 모르지만.

저는 그래서 정릉을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마음을 바꾸면 가능한 일이죠.

스페인에서살꺼야 2009.07.08  09:54

그러고 보니 저는 수유리에 살때도 남다른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 동네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저녁때 퇴근무렵에 집에 들어가기 위해 마을버스를 탈 때입니다. 다름아니고, 드물지 않게 고문익환목사와 함께 타던 기억입니다. 그 분의 평상적인 미소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전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그 분과 같이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그런 동네가 수유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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