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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3/09/04
 

철종이라는 조선후기의 임금이 있었습니다. 그는 흔히 강화도령이라고 했는데, 말 그대로 강화도에서 나뭇꾼으로 있었답니다. 그러다가 조선후기 세도싸움의 와중에 흥선대원군이 자기 아들을 왕으로 올리고자 등극시켜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강화에서 아무 생각없이 편안하게 살던 추억을 잊지 못하고, 궁에 와서도 옛 애인을 잊지 못하고, 씨벌건 총각김치의 맛을 잊지를 못했습니다.

왕으로 재임중에 그리 한 일도 없었다고 합니다. 하기야 서른초반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는데 무슨 일을 했겠습니까. 물론 약간의 평민을 위한 빈민구제정책을 펴고자 했다고는 하지만, 열매를 맺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저 궁의 생활 관습을 조금 평민스럽게 바꾼 것이 업적이라면 업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결국 그는 매일매일을 막걸리로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안타까운 인생이기는 했지만, 우리나라 역사상 보기 드문 격동기를 눈 앞에 둔 중차대한 시기에 일어난 어처구니 없는 시간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후일 강화도령을 둘러싸고 서민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동정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그가 사실 우리나라 이씨 왕조 역사상 유일한 평민출신이기 때문에 생긴 애증이 있을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개인사를 덮어 놓고 본다면, 우리나라는 역사상 가장 부실한 허수아비 정권이 유지된 시절이기도 했을 겁니다.

조금 다른 비유이긴 하지만, 저는 고노무현 전대통령을 생각하면 강화도령 철종이 생각나곤 합니다.

따지고 보면 노 전대통령은 민주화 운동권으로 분류하긴 우스운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운동권과 함께 호흡한 구석도 있었지만, 일신영달을 위해 판사. 변호사의 길로 들었었고, 아파트 재개발 등기대리인으로 돈을 벌던 사람인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본인에게 직접물었다면, 본인 역시 운동권으로 투신되던 동기 역시 별다른 준비없이 뛰어 들었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대원군이 철종을 발탁한 것 같이 운동권이 노무현을 내세운 것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 역시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일들은 이뤄질 수가 없었을 것니다. 왜냐하면, 본인 스스로 뭘 해야 좋을지에 대한 확고한 마일스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자기가 생활했던 대로- 스스로는 옳게 살았다고 생각했을지는 모르지만, 말 그대로 느낌대로 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사실 뭘 하고 싶어도 제대로 할 수 있었던 자기준비가 안되어 있었던 거죠. 본인은 정치와 언론, 보수단체의 탓을 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할 수 있을 만한 구체적 상황은 아니었을 겁니다.

오히려 이런 이유들이 보수와 진보간의 대립으로 포장되어 부각되었을 뿐이고, 어의 없게도 자신을 진보의 표상으로 자리매김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그런데도 정작 본인은 얼마나 아쉬우면, 퇴임해서도 대통령으로서 못한 일을 붙들고 있고 싶어서, 이런 저런 준비를 하고 있었을 까요. 사실 갑자기 대통령을 물러서고 보니, 자기의 부족한 부분이 안 보일 수가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새로이 역사도 공부해야 하고, 정치사상도 공부해야 하고, 경제체제도 공부해야 하고, 사회구조도 알아야 했을 겁니다.

마치 우리가 운동권 초기에 의식화교육을 했던 추억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결국 본인 스스로 허수아비였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허무함은 엄청났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서민과 동일하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퇴임 후에 알았다는 겁니다. 모든 조직의 리더는 권위주의를 숭상하기 때문에 권위적인 것이 아니고, 권위를 가지고 해야 하기 때문에 권위적일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강뭐시기 라고 하는 농민출신의 국회위원이 반드시 농민정책을 세우는데 최선의 해답
이 아닌 것과 동일한 이치입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노무현 전대통령을 궁지에 몬 사람들은 어의 없게도 386운동권의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능력이 안되는 사람을 대리자로 선정하여, 끝임없이 자기의 요구를 강요하던 그 사람들이 바로 원인제공자 였을 겁니다.

그래서 아직도 노무현을 서민적 민주주의의 표상으로 생각하는 한, 우리는 이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 나고 있는 겁니다. 애증어린 드라마 한편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모르겠지만, 국가의 정체를 가지고 하기에는 너무 큰 각본과 각색이었습니다.

힘들지만  그와 같은 낭만적이고 한가로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하기 싫어도 미국과 일본과 국제사회에서 국익을 주고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서민들이 집에서 저녁 밥상머리에서 말하듯이 반미와 반일을 서슴없이 말하는 대통령은 안된다는 겁니다.

싸우기 싫고, 죽기 싫어도 우리의 안전을 위협한다면 막아서기도 해야 하는 겁니다. 때론 폭군처럼 보일 지라도 주먹을 불끈 쥐고 버릇없이 구는 북한에 대해서 준엄하게 꾸짖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말이 좋아 평화를 위한다지만, 평화체제 유지를 위한 구체적 준비 없는 통일정책은 지양해야 됩니다. 평화를 사랑한다는 일반 시민의 아무 생각없고 책임없는 통일과 관련한 이야기를 스스럼 없이 정책에 옮기는 초보 대통령을 사랑하면 안되는 이유입니다.

낭만적으로 우리나라 정치의 가장 큰 폐혜를 지역주의라고 생각하고, 탈 지역주의 한다며, 기업과 도시 전체를 뒤 흔들고, 거침없이 국가의 예산을 이리저리 흩뿌리면 안되는 겁니다.

지역주의라는 것이 우리나라 만의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본인 스스로 상당히 당황했을 겁니다. 역사적이고 정치.경제적이며, 유적학적이며, 사회적인 총체적 고찰을 통해서 큰 모양을 바꿔 나가는 지속적인 노력만이 사회통합을 이뤄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겁니다.

우리가 또 다른 허수아비 철종인 바보 노무현을 보내면서 우리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민주주의를 생각하고 있지나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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