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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생때의 일이다. 5.18광주사태가 일어나고 그 다음해인 1981년도로 기억한다. 우리 운동권대학생 모두는 5.18광주사태의 참상을 외신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었던 터이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일부 사람들에게만 알려졌고, 많은 사람들이 무관심하거나 정부의 탄압으로 접근조차 허용되지 않던 시기이다. 참으로 암흑과 같은 시기에 우리들은 어떻하든지 민주화운동의 불씨를 살리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하기 힘든 탄압의 시대에, 광주사태를 언급한 다는 것 자체가 인생을 건 위험한 일인 시대였던 것이다.
그 때도 꽃피고 따스한, 지금과 같은 5월이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일상 생활을 영위하느라 바쁜 평범한 시간이기도 했다.
목숨과 인생을 걸고 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일반인들의 한가로운 생활은 종종 좌절감을 안겨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민주화운동의 희망은 궁극적으로 민중과 대중의 민주화에 있다고 보고, 지치지 않고 이념투쟁을 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긴장되는 5월이 돌아 오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국풍81"이라는 행사를 한다고 한 것이다. 별로 의식없는 대학생들을 부츄켜서 대중음악과 춤으로 흥겹게 하고자 하는 행사가 운동권의 학생들에게 맘에 들리가 없었다.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이용과 같은 가수가 등장하기 시작한 행사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 운동권은 국풍81 행사를 저지하기 위한 반대시위와 함께 방해작업을 준비하게 되었다. 논리는 대중음악에 왜색과 미군과 새마을운동과 같은 순화된 이미지로 둔갑한 국풍21인 우리 모두의 투쟁의지를 흐리게 하는 반민족적 반민중적 행사라는 것이었다. 결국 100만명이 넘는 행사가 치뤄졌고, 이 이후로 군사정권은 국민의 관심을 스크린(Screen), 섹스(Sex), 스포츠(Sports)로 돌린다는 '3S 정책'을 교과서적으로 펼쳤다. 즉 82년에 프로야구를 오픈했고, 80년에는 칼라TV를 방송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와 같은 운동권은 이 모든 것이 불만이었고 저주스럽기 조차까지 했던 것이다.
그리고 27년이 지났는데, 이와 유사한 일이 서울 한복판에서 며칠전에 발생했다.
바로 하이서울페스티발 개막식을 촛불시위대가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문제는 그 난장판을 만들면서 시위대가 행사에 참석한 시위대에게 내밷은 말들이 27년전과 너무나 똑같았던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사람이 불에 타 죽었는데 무슨 놀고 먹는 축제냐"."너희들 정신 나간 놈들 아니냐. " 식이다. 이것보다 더한 말들이 있었겠지만, 안 봐도 뻔한 이야기다.
왜냐하면 내가 27년전에 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광주에서 민주화 투쟁을 하다가 다 주어 나갔는데, 무슨축제냐?", "정신 나간 놈들 때가 어느 땐데, 노래하고 놀고 먹냐?". 이런 식이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사회는 눈부시게 변했는데도, 운동권의 시각은 좀처럼 변하지 않고 정체 되었는지가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통상적으로 “축제를 즐기는 것도 집회하는 것과 똑같은 시민의 권리”라거나, 집회 의도가 순수했다 하더라도 결과가 폭력으로 얼룩지면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통상적인 이야기 가지고 해결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바로 운동권의 사유적 측면의 정체와 미성숙, 발육부진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일종의 씨앗을 뿌렸다고 할 수 있는 당사자로서의 책임과 반성은 물론 대안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왜 이런 일들이 무의미하게 반복되는지 깊이 반성하고 있다.
결국 우리들이 사회운동할 때 부터 소홀히 다룬 인본적 문화적 사색의 부족이, 지금에서야 한계를 드러내는 것 같아서 참회의 심정으로 이번 사건을 대하고 있다.
부끄러운 고백은 계속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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