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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돈을 뿌린 어느 사장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정치인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누구는 구속도 되고 정치를 그만 둔다고 하고 혹은 마지막까지 부인하며 최후의 변론에 힘쓰기도 한다.
권력의 중심에 있었을 때의 무상함이 새삼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혹자들은 최근의 사태에 대해서 기업인들이 돈을 미끼로 정치인들을 사육하고 있다고 까지 혹평을 하고 있다. 좀 고급스럽게 말하면 금권정치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떤 식이든 간에 그렇게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인간이 보통 가축을 사육할 때를 상상해 보셨나요. 말 그대로 주는대로 받아 먹고, 주인(사육하는 사람)의 의도대로 성장해 주길 바라는 것일 겁니다. 물론 받아 먹는 돼지의 입장에서야 자기 고기를 먹기위해 사료를 준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니 사육당하는 가축은 아예 생각이 없다고 간주하는 거죠.
사실 돼지가 생각이 있다고 한들 문제될 것이 없지만, 생각이 있다고 해도 돼지의 입장에선 어찌할 방법은 없을 겁니다.
그냥 주는대로 무진장 먹은 뒤에, 풍성한 고깃감으로 주인에게 큰 이익을 주는 방법뿐이 없겠죠.
조금 사육하는 사람과 사육당하는 가축의 구조에서 찝찝한 느낌은 있지만, 어쩔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니 그리 문제될 것은 없다고 간주하고 넘어가 버립니다.
그런데 이런 일방적인 사육의 구조가 정치인에게도 있나 봅니다.
요즘 나오는 뉴스는 물론, 그동안 제가 봐 온 우리나라 30년간의 정치사에서 주는 돈을 받아 먹다 감옥소에 간 정치인들은 이루 셀 수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주는대로 받아 먹는 다는 거죠.
그런 면에서 보면 일방적으로 사육당한다고 보는 사람이나, 사육 당하길 원한다고 보는 것이나 정치인과 돈의 관계는 매한가지라고 보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돈 앞에서 정치인들은 사육당하길 원한다고 봐야죠.
사육당했으니 고깃값도 해야되고, 고깃갑을 더 잘하기 위해서는 큰 돈을 스스로 원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 쯤되면, 사육당했다기 보다는 스스로 사육 당하길 원했던 영악한 가축들이라고 봐야 정확할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명예와 도덕심을 중시하는 민의의 상징인 정치인들은, 왜 이렇게 돈에 약할까요. 특히 도덕성을 그렇게도 중시했던 우리 386조차 허무하게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뭘까요.
정치의 현실이라고 항변하실 겁니까.
아닙니다. 애초에 정치에 뛰어든 사람 대부분이 정의와 도덕심, 공명심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정치에 뛰어드는 가장 큰 이유가, 가장 빨리 많이 돈 벌 수 있는 방법을 정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정치에 뛰어들면 서슴치 않고 이권관련한 일들에 똥파리처럼 달겨들기 마련입니다. 주변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이 그저 이권의 언저리에만 매달리며, 되지도 않는 궤변을 일삼기 일쑤입니다.
이러니 정치인이 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가문을 일으키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자기파탄에 가장 빨리 도달하는 일이기도 한거죠.
이러한 사회적 풍토가 바뀌지 않는 저변에는, 아직도 뿌리 깊은 입신양명의 유교적 사고방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의식에서 출발한 정치적 민주주의의 일환으로서의 정치인 양성이 아니고, 권력을 나누기 위한 자리다툼정도로 전락해 버린 정치인들의 심중에는 아직도 후진적인 유교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도 많은 부분 사회민주화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저는 학생때, 일단 정치민주주의가 확보되면, 사회의 각 부분이 민주화될 것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사회의 민주화가 선행되고, 정치부문이 가장 후진적 봉건주의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래서 우리의 사회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발견합니다.
실질적인 시민 중심의 민주주의의 달성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돈에 사육당하지 않는 정치인들, 권력의 유혹에서 자유로운 정치인들을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 스스로의 문제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힘들더라도 과감히 도려내고 새살을 돋아나게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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