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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렸을 적에 축구를 좋아했습니다. 사실 저만 그런 것은 아니고, 우리 나이 때 대부분이 축구를 좋아했습니다. 그저 할 수 있었던 것이 축구뿐이 없었던 것도 이유일 겁니다. 재미있어서도 뛰고, 배고파서도 뛰고, 심심해서도 공차고 했던 것이 축구입니다. 몇가지 안되는 즐거움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축구의 황제라고 하는 펠레가 동대문운동장에 와서 축구를 하던 날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흑백TV앞에 모여 보았죠. 비록 전성기가 지난, 펠레였지만,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은 경탄 그 자체였습니다. 비록 페널티골인가로 득점을 했으나, 당시로서 축구의 황제가 우리나라에 와서 경기를 한다고 생각하니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기억으로는 아무튼 세계에서 축구를 제일 잘하는 선수는 펠레였습니다.
그런 펠레에게 월드컵이 있을 때마다, 이번엔 누가 우승할까요라고 묻는 건 당연한 일이었죠. 다른 사람도 아닌 펠레가 예상하는 건데 우리와 같을 리가 없죠. 그래서 매번 펠레는 호언장담하며, 자기가 가진 모든 경험과 정보를 바탕으로 예상국가를 점칩니다.
그런데도 유감스럽게도 어의 없게 빗나가고 맙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으나, 그 이후로도 매번 틀립니다. 그것도 엄청나게 차이가 납니다. 오히려 우승은 커녕 예선탈락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서서히 그의 예측은 신뢰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오히려 그가 예측한 나라의 선수들은 불안하기까지 합니다.
결국 그의 우승예상국 맞추기 예측은 "펠레의 저주"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 펠레가 이번에도 1년 반이나 남은 다음 월드컵예상국을 보기좋게 나열했습니다.
그 나라들은 얼마나 기분이 나쁠까요. 이미 우승은 못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하지만 펠레가 예측한 나라들을 가만히 살펴 보면, 정말로 일리가 있는 팀들입니다. 아니 독일, 브라질, 아르헨티나, 이태리, 스페인 말고 누구를 예측하겠습니까. 오히려 다른 나라를 예측한다는 것이 도박이나 다름없는 것이죠. 펠레도 두려웠는지 무려 5개국을 올려 놓았는데, 모두 기라설같은 팀들이고 나라입니다.
그래서 종전의 예측국가들을 살펴보니, 정말로 당시로서는 일리가 있는 판단이었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펠레가 아니더라도 일반인도 똑같이 말했을 것 같을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우승국은 이상하게도 신기하게 피해만 갔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정성적인 예측은 수치에 의존하는 정량적인 예측과는 달리 전문가적 판단과 경험 등을 기반으로 하며 진행됩니다. 우선 세계축구의 소식에 정통했는지는 모르지만, 세계축구판을 현장에서 가장 많이 접하고 경험했을 펠레에게 우승국을 예측하게 하는 것은 최선의 방법일 겁니다.
그러나 그 역시 전문적인 경험과 판단이란 것이 비록 수치는 아니더라도 현실의 반영이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 입각하여 추론 될 수 밖에 없는 한계에 노출됩니다.
그런데 매번 틀리는 예측을 하면서도, 왜 그는 여전히 똑같은 추론방식을 고집할까요. 아마도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일겁니다. 만약에 그가 내년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우승국이라고 예측한다면, 그는 논란에 휩싸일 겁니다. 아마도 내년도 월드컵이 시작될 깨까지 지독하게 추궁을 대라고 시달릴게 뻔할 겁니다. 음모론이니 뭐니 하면서, 또는 펠레가 나이가 먹었다느니 하면서 그의 예측에 시시비비를 따지려 들겁니다.
그것이 싫어서 펠레가 종전의 방식을 고수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그는 점쟁이가 아니고 축구전문가이기 때문에 그렇게 고집스럽게 예상하는 겁니다. 비록 틀리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것이 정성적 예측의 세계입니다.
점쟁이와 틀린 이유죠.
만약에 설령 내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우승하더라도 펠레는 틀린 것이 아닙니다.
'펠레의 저주"라는 사례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일반적인 사회예측 역시 비슷한 논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유독 우리는 점쟁이와 같은 쪽집게식 처방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니 예측과 현실과의 이격을 그 사람의 수준쯤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펠레의 저주"라고 해도, 계속 펠레에게 질문하고 펠레의 입을 주시하는 것처럼, 사회부문의 예측 역시 같은 논리로 해석해야 할 겁니다.
미네르바를 점쟁이 쯤으로 생각한다면, 차라리 국가 정책을 점쟁이에게 물러 보는 것이 나을 겁니다.
고대 신권정치와 동일한 시대를 갈구하는 것도 아닌진데, 왜 이리 우리 이성의 잣대가 중심을 찾지 못하는지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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