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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드니 할 일이 없어서 그런지, 원튼 원치 않든 TV드라마를 자주 보는 편입니다. 그중에 최근에 베토벤 바이러스, 식객이나 과거의 허준, 대장금 같은 드라마는 많이 기억이 납니다.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사람의 감수성과 진지함이 연기와 극에 속속들이 배어 있는 것 같아서 함참 지나도 기억이 나는 작품들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최근 우리 드라마의 80%이상은 치졸하기 짝이 없고, 상스러운 저질 드라마라고 해도 부정하기 힘들겁니다.
특히 주부들이 주로 보는 주말극이나 아침드라마의 경우에는 저질의 극에 달하는 느낌입니다. 이제는 단순히 불륜의 정도를 넘어서 이리 저리 엉켜 도저히 벌어지지 않을 비윤리적 경우까지 서슴치 않고 다룹니다. 아직 TV드라마의 경우는, 영화처럼 일상화된 상스러운 표현과 욕설이 난무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참으로 역겨운 표현이 즐비합니다.
그런데도 본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중에도 가장 화가 나는 것은 돈있는 사람들과 돈없는 사람들의 사랑을 일방적이고 극단적으로 터부시하는 것입니다. 늘상 돈있는 집안의 자식이 순수한 사랑임을 가정하여 어느 일반적인 아가씨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재벌집 사모님은 그 남자의 어머니가 극렬히 반대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사랑을 고집합니다. 그와 함께 그 아주머니의 반대도 극에 달합니다. 이 때 나오는 한심한 표현들은 우리 스스로 좌절감을 갖게 할 만큼 단순하고 치졸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 여러분도 대부분 이런 류의 사랑이야기에 익숙하실 겁니다.
마치 우리가 무협지를 읽을 때. 잘 아는 통속적인 스토리임에도 읽는 것과 똑 같습니다.
무협지는 이러하죠.
어느 아이가 행복하게 아버지와 지내고 있던 중, 갑자기 어느 무술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 아이의 아버지를 죽입니다. 고아가 된 아이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어느 무림고수의 밑에 들어가 수련을 합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수련을 마치던중, 괴한(대부분은 아버지의 원수들 임)의 습격을 받아서 스승마저 죽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을 급히 마치고 원수를 갚기 위한 로정에 접어듭니다. 물론 몇차례 위험한 순간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 모두 꺾고 최종적으로 원수의 우두머리와 맞서게 됩니다. 그러나 싸움을 앞두고 그 원수의 딸이, 자기가 위험할 때 구해준 연민의 정을 가진 아가씨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최고의 고수가 된 그는 결국에 원수의 우두머리를 이기게 됩니다.
이런 시간 때우기 드라마 같은 내용이라도, 차라리 무협지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무협지는 최소한 읽으면서 상상력이라도 자극하니 말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식의 드라마가 몇년전부터 한류열풍 타고 있습니다. 가끔 중국이나 홍콩, 일본을 출장갈때면 깜짝깜짝 놀라게 됩니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작년에 중국에 갔을 때, 제가 묵은 호텔방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채널에서 우리나라 드라마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랑스럽나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저같이 드라마에 크게 관심없는 사람들은 놀라운 것을 발견할 겁니다. 내가 한국에 있었을 때도 보지 못했던 드라마까지 버젖이 상영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대단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동남아 시장의 요구에 의해서, 끊임없이 우리나라 TV는 드라마를 생산하고 있나 봅니다.
좋은 일인가요.
그럿치 않을 겁니다. 우리 스스로도 불쾌한 드라마들을 가감없이 동남아 각 지역에서 상영되고 있는데, 시청자의 입장에서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볼수 있었겠지만, 곧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수준이 어느정도 인가를 알게될테니 말입니다.
한때 우리나라도 왜색문화에 시달린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세련되고 새로운 소재를 다룬 일본스타나 이야기에 대해서 열광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중고등학생일때는 홍콩의 영화나 배우들에 열광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어떤가요. 우리나라 드라마가 월등해서라기 보다,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 구태의연해서 잘 안보게 된거죠.
대중문화라는 것이 작극의 에스컬레이션을 탈 수 밖에 없다면, 지금 우리나라 드라마는 그당시 일본이나 홍콩 보다 훨씬 더 자극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인기를 끌고 잇을 가능성이 큽니다.
7-80년대 일본이나 홍콩도 차마 다루기 힘들었던 불륜과 치정관계를 과감히 다루는 우리 드라마의 자극이 더 센것이죠.
이런 점에서 지금 한류열풍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바로 역류를 탈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자극에는 한계효용의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를 알고 잇다면, 더 이상 이런 치정에 얽힌 잡다한 드라마는 만들지 말아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가정해 볼까요.
한국드라마의 부실한 내용과 몇몇 연기력 없는 스타에 의존하는드라마의 인기가 급속히 시들합니다. 결국 수없이 많은 대형드라마 제작사가 문을 닫기 시작합니다.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스스로 목숨을 재촉하는 일입니다. 그동안 그나마 있었던 국내시장의 매체에서 조차 외면을 당하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밀어닥친 한파에, 그동안 부쩍 몸통을 키워 버린 우리나라 연예산업계는 몸살을 앓게 됩니다. 이들은 돌파구를 찾지면, 이미 국내외 시장에서 외면 당한 후입니다. 결국 상당수는 실업자의 나락으로 빠지고 지하유흥가로 흡수가 됩니다. 그중 일부는 음란물 등 최악의 엔터테인먼트물 제작 시장에 빠져 버립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80년대 영화가처럼. 이제 본격적인 빈곤의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자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지 않기 위한 방법이 없을까요.
왜 없겠습니까.
바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시장의 중심에 있는 소비자들의 현명한 선택이 우선되면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일방적으로 제작자가 던져버린 드라마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시청자의 눈과 행동으로 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우리나라 대중문화산업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서라도 대중문화소비자의 운동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오늘도 쓰레기같은 드라마들은 마구 자기들만의 격 낮은 언어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새삼 대중문화의 산업성에 대한 생각 해본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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