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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경제가 흔들흔들합니다. 세계경제만이 아니고 국내경제도 이리저리 갈팡질팡합니다. 세계 5위권의 달라보유국인 우리나라도 100억불이 없어서 외평채 돈을 풀어서 환율을 진정시킬 정도 입니다. 비록 최근에는 많이 떨어졌지만, 한 때 GDP기준 세계7위까지 갔던 우리나라가 하루아침에 몰락할 지도 모를 정도로 풍랑이 거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각 신문지상이나 방송에 내노라 하는 경제학자들이 나와서 저마다 긴급진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거시적으로나 미시적으로 지금 국내외 경제는 안전하지 못한것 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혹시 지금 우리는 세계 역사상에서 유례가 없는 경제적 대격랑의 물살을 타기 시작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무리 거친 물살도 헤쳐 나가야 사는 만큼, 우리는 물론 인류 모두가 자기만의 살길로 생존방식을 찾아 나갈 것입니다.
과연 누가 살아 남을까요.
자본주의는 탐욕과 두려움의 경제라고 합니다. 가져도 가져도 더 갖고자 하는 끊임없는 탐욕의 힘이 부를 확장시키는 반면에, 사회 구조와 조직은 이율배반적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개인의 자유와 소유는 거침없이 신장되었음에도, 오히려 중세보다 더 심한 빈부격차가 생기는 것이죠.
이와 같은 자유주의에 입각한 자본주의를 지탱해 주는 한가닥 힘은 두려움이라고 합니다. 가진 자는 가진 자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대로 각자의 입장에서 보수적인 경계심으로 확장일로에 있는 사회의 균형을 맙춰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는 보수주의자의 힘이 전혀 나쁜 것은 아닌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은 자본주의라는 체제의 태생적 양태이지 자본주의를 지킬 수 있는 심리적 방패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자본주의를 지킨 심리적인 장치는 청교도주의같은 도덕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막스베버가 주장한 청교도적 자본주의가 새삼 생각나는 이유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여 발전한 자본주의를 지탱하게 해 주는 힘이, 오히려 청빈하고 도덕적인 청교도적인 생활과 자기희생이라고 하는 것은 지독한 아이러니 입니다.
그러나 분명합니다. 분명히 서구자본주의의 역사발전 과정에서 바로 이와 같은 청교도적인 규율과 자기절제가 있었기에 세계주류의 체제로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자본중의 특히 금융시장은 청빈한 청교도적인 사람들은 없습니다. 자기희생과 절제를 지켜가며,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체계내에서 자기 발전을 지향하며 삶을 영위하도록 서로 부추키는 모습은 사라졌다고 봅니다. 바로 지독한 탐욕만이 최고의 미덕으로 치부되어, 오히려 자본주의의 표상으로 숭상되어 온 것입니다.
나는 만약에 지금의 자본주의체계가 무너지지 않고 유지된다는 가정하에서, 지금의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세계경제의 험로를 뚫고 나갈 수 있는 기준은 자본주의의 체계를 수호할 자격이 있는 "청교도적 자본주의"에 충실한 나라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원칙에 충실하고, 그러면서 자유와 자율을 지키고 존중하는 생활 방식을 경제적 삶에도 실천할 수 있는 개인과 국가 만이 현재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살아 남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는 현재 당면한 경제위기를 타파하는 것은 물론 장기적인 원칙을 수립하여 자본주의에 충실한 경제인을 만들어 가는 연습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 같은 시련이 탐욕에 가득찬 우리들의 경제적 습관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갈 길이 먼 것입니다. 100년전 근대화를 통해서 접한 자본주의에 대한 습관부터 바꿔야할 시간이 온 것 입니다.
다시 공부합시다. 어느 것이 우리를 세계속에서 자신있게 세울 수 있는 방법인지.
새삼 대학생 때, 어렵게 영어 원서로 접했던 막스베버의 책들을 꺼내서 읽어 보고 되새겨 보고 싶은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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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살꺼야 2008.09.27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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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탐욕이란 격한 단어를 썼을 뿐이지, 개인 소유의 자유에 대한 근본 정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노블리스 오블리제 같은 도덕적 희생심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테스탄티니즘 같은 청빈한 즐거움을 즐길 줄 아는 도덕심을 강조한 것입니다. 집 한채가 고래등 같은 구궁정원도 아닌 100여평 되는 아파트가 100억원에 가깝고(뉴욕의 경우), 개인의 부가 조그마한 가난한 나라의 부보다 클 만한 실제적인 가치는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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