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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중에 본질과는 무관한 것들이 많다. 그중에 하나가 문화는 항상 좋은 것이라는 고정관념이다. 그래서 문화적이다는 말은 교양있고 수준 높다는 대리어로 쓰이는 듯하다.
TV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그 TV드라마에 나오는 무슨 고관대작이나 재벌집 마나님들은 항상 문화적이다. 느릿느릿한 말투에 상당히 어려운 용어를 써가며, 상대방은 잘 모르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교양있다고 하고 문화적이라고 해서 거들먹 거린다. 역으로 그런 있는 집안의 사모님들은 모두 문화적이라고 간주한다. 그리고 문화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런 집안의 따님들은 대부분 무슨 피아니스트 아니면 큐레이터이다. 그래서 그들 역시 예술을 이해하고 예술적인 삶을 사는 특별난 사람 정도로 포장한다. 대부분은 깨탈스럽고 날카로우며 인성이 결핍된 사람들로 성격을 규정하면서도 문화적으로 표현한다.
이것은 비록 TV드라마지만 우리들의 일상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생활에 찌들어 클래식 음악은 고사하고 그림을 그릴 줄도 이해할 수도 없는 생활 속에 산다고 간주한다. 그래서 기껏해서 문화라고 경험해 보는 것이 노래방가서 대중가요를 멋들어지게 부르는 정도로 만족해 버린다.
심지어 대통령이나 장관 정도되는 국가 정책을 다루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무슨 예술행사의 개막식에 가서 테이프커팅하는 자리에 가면 하는 말이, 대부분 문화를 사랑하고 존중한다고 한다. 이 역시 물론 남이 써준 말이기는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 역시 문화에 대한 태도는 지극히 천편일률적이다.
그저 문화는 좋은 것이고, 우리 모두는 문화를 숭상한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문화가 그렇게 쉬워 보이는 대상이라고 생각하는지 되물어 본다. 문화는 모두 아름답고 고운 것인가.
답부터 이야기하면 당연히 그렇지 않다. 문화예술이란 하루아침에 뚝딱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닌 각고의 노력과 성찰을 통헤서 추구한 미적 노력의 결과물들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속에는 개별적이든 집단적이든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의 표현이기도 하고, 사랑과 미움이 모두 담긴 깊은 삶의 성찰이 담긴 것이다.
그러기에 이를 이해하려는 과정 역시 결코 순탄치 않은 것이다. 작품속에서 나타난 작가의 지독한 삶에 대한 애착과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읽고 듣는 다는 것이 손쉬울리가 없을 것이다.
이런 인내와 노력의 시간을 겪고서라도 문화예술작품을 향유하려는 것은, 나 아닌 타자로부터 비롯된 다양한 시각 속에서 형성된 아름다움을 통해서 삶의 가치를 되새기고, 내 삶의 등대같은 방향성을 공유하고자 함일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모두는 문화에 대한 성찰이 없이 문화는 단편적이고 천편일률적으로 좋다라는 호감하나로 인식하려 한다.
이러니 개인이나 정부나 문화에 대하여 체계적인 접근방식을 가질리가 없다. 그래서 그저 일반인들은 극장 많이 지어 달라고 하고, 정부는 그저 극장 많이 지으면 문화에 대한 시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한다.
문화행정은 100년 후를 생각하여 설계하여야 한다고 한다. 최근의 급박하고 위험한 세계적 금융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문화는 더욱더 홀대를 받고 있는 것 같은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돈 많은 사람들의 한가로운 소유물이 문화가 아닌 것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어려운 때일수록 문화적으로 관조하고 성찰하면서 깊이있게 세계에 대응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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