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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6/05/29
 

[스크랩] 《 러시아 기갑부대의 무덤, 그로즈니 시가전 》

2007.09.13 16:04 | 정치 | 윤munmu

http://kr.blog.yahoo.com/yunmunmu/4321 주소복사

그로즈니 시가지
  1999년 12월 16일의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 비록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해 도시가 어느 정도는 파괴되었으나 그래도 기초적인 건물의 형태 등이 또렷하고 한 국가의 수도로서의 위용을 갖추고 있다.
그로즈니
  하지만 2000년 3월 16일의 그로즈니는 그렇지 않다. 러시아군은 1995년 그로즈니에서 자국의 기갑부대가 대량학살 당한 것에 분개, 제2차 체첸 침공에서는 포병화력을 총동원하여 이 도시를 완전히 초토화 시켜버린 것이다. 러시아 기갑부대가 다시 이 도시에 입성했을 때 그들의 눈앞에는 자국 포병들이 완전히 초토화시켜놓은 벽돌과 콘크리트 더미들만이 놓여져 있었다.
  일명 체첸판 스탈린그라드 그로즈니 전투의 결과다.
러시아군
  장갑차 상부를 가득 메운 러시아 기계화보병들. 14.5mm KPV 중기관총이 언제 자신들에게 탄두를 발사할 지 모를 체첸 게릴라들을 경계하고 있다.
  체첸 전투에서 러시아군은 과거 자신들이 스탈린그라드와 포니이리 시가전에서 독일 기갑부대를 상대로 전과를 거두었던 전훈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역으로 독일군이 입었던 피해를 고스란히 자신들이 입게 되었다.
러시아 포병
  제1차 체첸침공에서 러시아 최강의 전차들이 전멸을 당한 그로즈니를 향해 러시아군은 대규모의 포병화력을 동원해 도시 자체를 완전히 폐허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그로즈니
  AK-74 소총으로 무장한 체첸 반군. 당시 그로즈니 시가전의 참상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1999년 제1차 체첸 침공이 종료된 후 체첸 공화국과 러시아는 그런대로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샤밀 바샤예프 등의 강경파가 여전히 대 러시아 투쟁을 지속시켰고, 더욱이 러시아에서의 테러 행위는 결국 푸틴 대통령을 분노시켰다.
  러시아군은 마침내 1999년 9월, 체첸 침공을 단행하니 바로 제2차 체첸침공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태가 예전 같지가 않았다.
  제1차 체첸침공 당시 러시아 기갑부대가 대량학살 당한 기갑부대의 무덤 그로즈니가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군으로서는 4년 전의 악몽을 떠올리기가 거북했을 것이다.
  1995년 제1차 체첸침공 당시 수도 그로즈니를 향해 러시아군은 보병 지원부대가 제대로 도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68대의 전차와 12대의 보병전투차, 장갑차로 이루어진 80여대의 기갑부대를 그로즈니 시가지로 돌입시킨 것이다.
  세계 시가전사에 있어 가장 허망하게, 그것도 어처구니 없이 기갑부대가 학살당한 이른바 기갑부대의 무덤, 그로즈니 시가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기본적으로 전차는 시가전에서 취약한 존재다. 반드시 보병전투차나 혹은 보병들의 엄호가 필요한 것이다.
  보전합동 훈련이란 것을 괜히 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러시아는 스탈린그라드와 포니이리, 그리고 참혹한 베를린 시가전을 경험한 국가다. 스탈린그라드에서는 비록 독일군의 전차 부족으로 인해 시가전에 투입된 독일전차와 돌격포의 비중이 비교적 적었으나 포니이리 시가전에서는 페르디난트 대전차 자주포를 비롯한 역전의 독일전차들이 대거 참여하여 막대한 희생을 치른 끝에 독일 기갑부대의 진격을 저지했던 것이다.
  베를린 시가전에서는 보병들과의 연계작전에도 불구하고 건물 등지에 매복한 보병에 의해 발사된 판저 파우스트에 의해 다수의 T-34 전차가 파괴당했다.
BMP-2
  체첸을 침공한 러시아 기갑부대의 BMP-2 보병전투차. 당시 기관포를 탑재하고 있어 연사력이 뛰어났으나 시가전에서는 사각이 너무 많은데다 보병지원을 받지 못해 전차들과 함께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T-72BV
  체첸 침공 당시 러시아군의 주력 전차 중 하나였던 T-72BV. 러시아군은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으로 반응장갑의 중요성을 깨우쳐 사실상 차체 주요 부위를 반응장갑으로 포장시켰으나 체첸 반군은 소화기탄으로도 파괴가 쉬운 반응장갑의 취약점을 노려 1~2명의 저격수/기관총 사수를 대전차 화기 사수들과 연계시켜 러시아 전차들을 공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체첸반군의 대부분은 러시아에 의해 훈련된 병력들이었다. 덕분에 러시아 장갑차량의 취약성 정도는 쉽사리 알고 있었으니 러시아군으로서는 그야말로 지옥을 맛볼 수 밖에 없었다.
AK-74
  체첸반군은 당시 7.62mm AKM 소총이 주력이었으나 러시아군으로부터 노획한 AK-74 소총 역시 적잖은 양을 사용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무자헤딘이 AK를 사용했으나 그것은 대부분이 중국제 56식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체첸반군은 조금 사정이 나았다고 해야할 것 같다.
RPK
그로즈니
  그로즈니 시가전에서 체첸반군의 일등공신은 단연 대전차 미사일과 RPG-7이었겠지만 가장 중요한 반응장갑을 폭발시킨 주역은 바로 소련의 천재 총기 설계자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의 총기들이다. RPK, RPK-74, PK 기관총은 당시 대량 생산된 덕분에 체첸반군도 대량으로 보유할 수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원산지 군대의 전차를 향해 불을 뿜었던 것이다.
  이들 기관총은 기본적으로 지하 및 건물 2, 3층에 포진한 대전차 사수들이 요긴하게 격파가 가능하도록 전차와 보병전투차의 상면/측면의 반응장갑을 폭발시키는 임무를 띄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차량에서 하차한 지원 보병을 전차와 보병전투차로부터 분리시켜 고착 견제하는 임무도 띄고 있었다.
  당연히 시가전에서 전차와 보병의 합동연계 작전의 교훈과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침공에서 더더욱 이러한 교훈을 얻었다.
  하지만 1995년 그로즈니 시가전에서는 이러한 전훈이 깡그리 무시를 당했다.
  그로즈니의 체첸반군은 비록 전차가 없었지만 소련제 대전차 미사일과 RPG-7 대전차 로켓포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가전이라는 특성상 방어거점이 많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측면도 어느 정도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러시아군에게 훈련을 받은 경험이 있는 반군 지휘관들은 시가전에서 전차를 효과적으로 제압하는 전술을 자신의 대전차조에게 숙지시켰던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15~20명으로 구성되는 체첸의 소대 규모의 병력을 다시 3~4명의 1개조 단위로 분산시킨다. 이들의 구성은 대전차 화기 사수 1명, 기관총 사수 1명, 저격수 1명으로 구성되며 추가되는 인원은 보통 대전차 화기의 탄약을 운반하는 부사수인 경우가 많았다. 대체적으로 지하 및 건물의 2, 3층에 배치되어 적 전차포 사격이나 보병 전투차의 기관포 최저 조준 사격 범위에서 엄폐되는 것이다. 당시 전고가 낮은 러시아 전차의 125mm 활강포로의 낮은 앙각과 부각은 지하와 건물 2, 3층에 배치된 체첸 반군을 공격하기가 어려운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5~6개조가 동시에 적 전차와 장갑차를 1대씩 집중 공격한다. 1개 저격수나 기관총 사수, 소총수들이 건물의 상부에서 전차의 반응장갑을 집중 사격해 파괴시키는 동안 다른 조는 혹시 있을지 모를 지원 보병들을 전차와 분리시킨다.
  그런 다음 반응장갑이 제거된 전차의 포탑 상부나 차체 상부, 엔진실, 차체 측면 및 후면을 향해 건물 상부와 지하에 포진한 대전차 화기 사수들이 사격하거나 화염병을 투척하는 식으로( 디젤엔진을 주로 사용하는 T-72 계열이라면 몰라도 가스터빈 엔진의 T-80에게는 효과가 있었다 ) 전차를 파괴한다는 전술이었다.
  더군다나 체첸 반군은 당시 소련제 총기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고 무게가 9kg에 불과한 PK 기관총이나 8kg의 PKM, 5.6kg의 RPK와 RPK-74 기관총은 유용한 화기였다.
  당시 68대의 전차는 러시아에게 있어 그다지 큰 규모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촬영된 소련의 전쟁영화들에 등장하는 대규모의 소련 전차대를 구경한 이들에게 있어 "어? 겨우 이 정도야?"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전차는 모두 T-90이 등장하기 전까지 최강의 전차였던 T-72BM, BV, 그리고 T-80U 이전의 형식인 T-80BV였다.
  적들은 전차가 없는 보병들이고 러시아 최강의 전차로서 현재도 러시아 기갑부대의 주력인 이들 전차가 68대나 있는데 두려울 것이 무엇이랴? 하는 생각에 러시아군은 그대로 진격을 계속했으나 그것은 실수였다. 체첸반군을 너무 얕잡아 본 것이다.
  게다가 전술도 우스꽝스럽고 가장 어이없는 것이었다. 마치 행군을 하듯 전차가 선두에 서고 보병 전투차와 장갑차가 최후미에서 따라 들어오는 종대 대형을 취한 것이다. 좁은 시가지에 맞춰 취한 것은 좋았으나 문제는 소련 ━ 핀란드 전쟁처럼 최선두와 후미의 차량을 격파해버리면 나머지 차량들이 그대로 두 차량 사이에 갇혀 꼼짝을 못한다는 취약점이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시가지에 기세좋게 진입한 전차들은 건물의 지하와 2, 3층에서 쏟아지는 소화기 사격의 대부분이 차체 상부 혹은 측면 및 후부의 반응장갑에 집중되고 있으며 반응장갑들이 서서히 소총탄에 하나 하나 폭발하고 있고 이 사실을 전차병들이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T-80BV
T-80BV
  그로즈니 시가전 당시 러시아 최강의 전차였던 T-80BV. 하지만 그로즈니 시가전에서 이 전차는 도배수준으로 반응장갑을 두른다 해도 보병 지원이 없으면 그야말로 집단 학살당한다는 중요한 전훈을 가르쳐주는 교보재 신세로 전락했다.
  저격수들의 드라구노프 저격소총 혹은 소총수의 AK 소총, 기관총 사수의 PKM이나 RPK 기관총에 의해 반응장갑이 폭발하여 이제 순수 장갑만이 들어났을 때 지하와 건물 2, 3층에 매복하고 있던 체첸군 대전차 화기 사수들의 대전차 화기가 빛을 발했다.
  선두에 섰던 전차들을 중심으로 포탑 상부 장갑 혹은 차체 후부, 엔진실에 대전차 미사일이나 RPG-7 탄두를 직격당한 전차들이 폭발을 일으키거나 격파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소 전차 한 대당 3~5발씩의 탄두가 명중했고 제 아무리 전면 방어력이 강력한 T-72나 T-80 전차라도 견디지 못한 것이다.
  후미의 전차대가 당황하였고 이들은 주요 건물에 전차포를 사격하며 뒤따르던 보병 전투차의 기계화보병들을 하차시키려 했으나 운좋게 하차한 보병들은 곧바로 다른 조로부터의 기관총 사격을 받고 쓰러졌다. 전차보다 장갑이 약한 보병전투차 역시 측후면 및 상부 장갑으로 가해지는 체첸군의 대전차 화기 사격 하에 하나 둘 파괴당하기 시작했다.
T-80BV
  1995년 그로즈니 시가전에서 격파당하여 녹슬어가고 있는 러시아군의 T-80BV 전차의 잔해. 그로즈니 시가전에서 러시아군의 어처구니 없는 기갑부대 단독 돌입은 이후 각국의 대 시가전 기갑부대 운용 전술 교리에 중요한 전훈의 사례로 자주 언급되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전차대가 시가지 외곽으로 퇴각하려 했지만 이미 시가지 깊숙이 포위망을 형성한 체첸 반군이 그들을 무사히 보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특히 이들은 1939년 소련 ━ 핀란드 전쟁 당시 핀란드군의 모티 전술을 그대로 응용해 최선두와 후미의 차량을 집중 공격해 파괴시켜 사실상 종대 대형으로 들어오고 있던 러시아 기갑부대를 고립시켜 버린 것이다.
  결국 단 한대의 T-80BV 전차가 탈출에 성공하고 나머지 67대가 모조리 파괴당하는 악몽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문자 그대로 대량학살이었던 것이다. 단 한대의 전차도 보유하지 못하고 대전차 화기 사수도 1명인 3~4명의 조 5~6개에게 러시아 최강의 전차만으로 구성된 기갑부대가 녹아버렸으니 그 충격이 실로 컸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최대의 기갑전력을 자랑했던 러시아 기갑부대의 신화가 그로즈니라는 도시에서 종말을 맞았고 그로즈니 시가전은 이후 충분한 준비를 갖추지 않으며 무턱대고 돌입해 보병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전차는 시가전에서 대량 학살을 당할 뿐이라는 중요한 전훈을 남겼다. 
  이후 러시아군은 제2차 체첸침공에서 그로즈니 전투의 전훈을 살려 대규모 방사포와 포병화력, 항공전력을 동원해 그로즈니를 철저하게 초토화시키고 기갑부대를 시가지로 돌입시켰으나 이번에는 보병들을 대량으로 동반했다.
  철저하게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이들은 우선 전차의 엄호 하에 보병을 앞세워 시가지의 각 구획을 철저히 정찰토록 한 후 전차를 이동시켰으며 도저히 매복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구획은 체첸반군의 사격을 유도하기 위해 전차를 돌입시켰다. 물론 돌입하는 전차들에는 성형 작약탄 및 대전차 미사일을 막기 위해 베를린 시가전처럼 철망을 포탑에서 2~30cm 정도 이격시켜 완전히 둘러버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러시아는 소련 ━ 핀란드 전쟁처럼 막대한 희생을 치른 후에야 겨우 정신을 차린 듯 하다. 그 결과 침공 초반 단숨에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당한 기갑차량 200대 이상을 자랑하던 러시아 기갑부대의 차량 손실수가 줄어들었다.
  러시아군의 전술 변경으로 인해 제1차 그로즈니 시가전과 같은 대승을 거두는데 실패한 체첸반군은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 남부의 산악지대로 들어가 게릴라전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군은 지금도 8만에 달하는 주둔군을 배치하고 적지 않은 기갑전력을 체첸에 주둔시키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의 곳곳에는 12년전에 전멸당한 전차들의 잔해가 녹슬어가며 자신의 후임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 주고 있는 것이다.
T-72BV
  이 잔해는 당시 체첸 반군의 작전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포탑 전면의 반응장갑은 그다지 이상이 없지만 상면부의 반응장갑이 대부분 폭발했음을 보여준다.
  체첸 반군은 반응장갑이 폭발한 후에는 바로 포탑 상면 장갑부가 드러남을 잘 알고 있었고 소화기를 이용해 반응장갑을 폭발시킨 후 대전차 화기를 사격해 전차를 효과적으로 파괴한 것이다.
T-72BM
  제2차 체첸 침공으로 그로즈니를 점령한 러시아군이 그로즈니 시가전에서 격파당해 녹슨 T-72BM 전차의 잔해를 회수하고 있다. 러시아군 입장에서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돌입으로 인한 대량 피해에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로즈니
  러시아군의 초토화 작전으로 완전히 파괴되어버린 그로즈니의 폐허를 러시아군의 차량행렬이 지나가고 있다.
그로즈니
  완전히 폐허가 된 그로즈니 시가지를 바라보는 러시아군의 유탄수. GP-25는 반군도 적잖은 수를 노획해 시가전에서 유용하게 써먹었다.
체첸
  체첸에서는 지금도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스꽝스럽게도 대부분이 같은 소련제 총기들끼리 불을 뿜고 있는 것이다. 이 AKS-74와 PKM 기관총으로 사격 중인 러시아군을 향해 날아드는 체첸반군의 총탄은 모두 같은 AK와 PK 기관총에게 발사되고 있는 것들이다.
체첸
  지금도 체첸에 주둔해 있는 러시아군에게는 그야말로 암울하면서도 끝이 없는 교전만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이라크의 미군과도 같은 운명에 처한 것이다.

[스크랩] 엿장수 0씨 "박정희 정권 물러가라"에 징역 2년

2007.09.12 20:05 | 정치 | mun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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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긴급조치 판결들] 노동자·광부·주부·교사, 말 한마디에 징역형 [프레시안 김하영/기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 진실화해위원회)의 '긴급조치 판결분석 보고서'가..

[스크랩] 영국 '실종 소녀'사건,베컴 등 영국 전국민 "제발 돌아와주길"

2007.09.09 21:29 | 정치 | mun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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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리뷰스타 유승근 기자)최근 영국의 4살된 한 소녀가 실종이 되어 부모는 물론이고 영국 출신의 축구 스타 베컴등 영국의 전 국민들이 일제히 실종 소녀를 찾는데 촉각을 세우고 있다.영국 언론들은 매들린 이란 올해 4살 된 소녀가..

[스크랩] [싱가폴유학]싱가포르서도 허위 학력 파문

2007.09.05 15:02 | 정치 | 윤munmu

http://kr.blog.yahoo.com/yunmunmu/4257 주소복사

<싱가포르서도 허위 학력 파문>

농장 직원, 학력위조..농장주, "능력있다" 두둔

(서울=연합뉴스) 싱가포르의 한 농장에서 일하던 인도인 남자가 허위 학력을 내세운 사실이 들통나 2주일간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됐으나 고용주가 '능력이 뛰어난 직원'이라며 적극 두둔해 화제가 되고 있다.

   31일 dpa 통신에 따르면 시바린감 찬드라세카란이란 이름의 인도 남자는 노동 허가증을 갖고 1990년대 싱가포르에서 일한 뒤 1998년 잠깐 고국으로 돌아갔다가 곧 싱가포르에 재입국했다.

   그는 중개인의 권고를 받아들여 돈을 주고 사촌 명의의 허위 인도 여권을 발급받았고, 인도 만두라이 카마라지 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기재된 허위 식물학 학위도 갖춘 것으로 드러났다고 스트레이츠 타임스가 전했다.

   찬드라세카란의 사기 행위는 올해 초 싱가포르 정부 인력부에 의해 발각돼, 2주 수감과 6천 싱가포르 달러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를 농장 감독관으로 고용한 여성 농장주 이비 싱-림은 직원의 속임수에 실망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가 최고의 직원이었다고 두둔하면서 그가 일터로 복귀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싱-림은 찬드라세카란의 업무 수행에 크게 감명받았다며 최고의 변호사들을 고용했고, 벌금도 대납했다.

   찬드라세카란을 양자로 삼겠다는 싱-림은 또 그가 싱가포르에서 계속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당국에 호소하겠다고 말했다.

   변호사들은 찬드라세카란이 병든 아버지에게 송금할 돈이 떨어지고, 첫째 부인이 자살 한 뒤 아이들 양육비가 필요하게 되는 등 형편이 어려워지자 싱가포르 재입국 결정을 내렸다며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


  
leess@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스크랩] [오늘의 책<8월 17일>] 장준하 - 민족주의자의 길

2007.08.24 07:05 | 정치 | mun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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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박경수 / 돌베개'완벽한 두 政敵'은 가고 최초의 장준하 일대기 독립운동가ㆍ재야운동가였던 장준하(張俊河)가 1975년 8월 17일 경기 포천군 이동면 약사봉에서 의문사했다. 57세였다. 그의 죽음을 놓고 당시 정권에 의한 타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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