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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조선왕조실록에서도 태조의 대표적인 업적이라고 여러 차례 언급되는 나하추와의 싸움이다. 그런데 가만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런 것치고는 좀 싸움이 싱겁다.
二月, 趙小生誘引元瀋陽行省丞相納哈出, 入寇三撒、忽面之地。 都指揮使鄭暉, 累戰敗績, 請遣太祖, 乃以太祖爲東北面兵馬使遣之。 2월, 조소생(趙小生)이 원(元)나라 심양 행성 승상(潘陽行省丞相) 나하추(納哈出)를 유인(誘引)하여, 삼살(三撒)·홀면(忽面)의 땅에 쳐들어오니, 도지휘사(都指揮使) 정휘(鄭暉)가 여러 번 싸웠으나 크게 패전하여 태조를 보내기를 청하므로, 이에 태조로써 동북면 병마사(東北面兵馬使)로 삼아 보냈다.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7장 B면 【영인본】 1책 4면
여기서부터 의도적인 오류가 나타난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나하추를 원나라 심양행성승상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고려사절요를 보면 또 내용이 약간 다르다.
二月,趙小生,誘引納哈出,入寇三撒忽面之地,東北面都指揮使,累戰敗績,遣我 太祖,時,元亂,納哈出,據有瀋陽之地,稱行省丞相。 2월에 조소생(趙小生)이 나하추(納哈出)를 꾀여서 삼살(三撒 함남 북청(北靑))ㆍ홀면(忽面 함남 홍원(洪源)) 지방을 침범하였는데, 동북면 도지휘사가 여러 번 싸웠으나 패하니, 우리 태조(太祖)를 보냈다. 이때 원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나하추가 심양(瀋陽) 땅을 점령하고 행성승상(行省丞相)이라 일컬었다.
한 마디로 말이 원심양행성승상이지 원조정으로부터 직접 제수받은 것이 아니라 원조정의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임의로 심양을 점령하고 행성승상의 관작을 참칭했다는 것이다. 하긴 원래 동아시아적인 질서에서 반란을 일으켜 특정 지역을 점령해 근거로 삼게 되었어도 바로 왕을 칭하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개는 먼저 기존의 관작을 스스로 칭함으로써 기존의 질서 안에서 자신의 권위를 높였다. 그리고 조정에서는 그런 반란세력을 실제 벼슬을 주어 회유하거나, 회유에 응하지 않으면 처벌하는 것으로 대응했었고. 나하추의 경우도 그런 예라 할 수 있겠다.
원래 나하추는 원나라 공신의 자손으로 요동 일대에 대대로 뿌리내리고 살던 토호였다. 이성계와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는데, 결국 이자춘이 그러했듯 그 또한 요동에서의 원나라의 지배력이 약해지자 반란을 일으켜 심양 일대를 지배하게 되었는데, 그때 고려인 조소생의 꾀임에 넘어가 - 이괄의 난이 진입된 뒤 그 잔당들이 청으로 넘어가 조선의 내정을 낱낱이 고해바친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보면 되겠다. 홍건적의 침입으로 피폐해진 고려로서는 사실 나하추의 그러한 공격을 막아낼 여력이 없었고 실제로도 고려군은 그를 막지 못하고 이성계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 고려의 특히 이성계의 근거지랄 수 있는 함경도 일대를 공격해 옴으로써 이성계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七月, 納哈出領兵數萬, 與趙小生、卓都卿等屯于洪原之??洞, 遣哈剌萬戶那延帖木兒, 同僉伯顔甫下指揮, 率一千餘兵爲先鋒。 太祖遇於德山洞院平, 擊走之, 踰咸關、車踰二嶺幾殲, 委棄鎧仗, 不可勝數。 7월, 나하추(納哈出)가 군사 수만 명을 거느리고 조소생(趙小生)·탁도경(卓都卿) 등과 함께 홍원(洪原)의 달단동(??洞)에 둔치고, 합라 만호(哈剌萬戶) 나연첩목아(那延帖木兒)를 보내어 여러 백안보하 지휘(伯顔甫下指揮)와 함께 1천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게 하여 선봉(先鋒)으로 삼았는데, 태조는 덕산동원(德山洞院)##의 들에서 만나 쳐서 이들을 달아나게 하고, 함관령(咸關嶺)·차유령(車踰嶺) 두 재[嶺]를 넘어 거의 다 죽였으나, 군기(軍器)를 버린 것은 이루 다 셀 수 없었다.
초전은 나하추의 선봉을 격파하면서부터였다.
是日, 太祖退屯答相谷, 納哈出怒, 移屯德山洞, 太祖乘夜襲擊敗之。 納哈出還??洞, 太祖屯舍音洞。 太祖遣斥候至車踰嶺, 賊登山樵蘇甚衆。 候卒還白, 太祖曰: “兵法當先攻弱。” 遂令擒斬殆盡, 自以精騎六百繼之, 踰嶺至嶺下, 賊乃覺欲逆戰。 太祖率十餘騎衝賊, 射?其裨將一人。 初太祖至, 問諸將累敗狀, 諸將曰: “每戰?, 賊將一人, 鐵甲飾以朱?尾, 揮?突進, 衆披靡無敢敵者。” 太祖物色其人, 獨當之, 佯北走, 其人果奮前注?甚急。 太祖飜身着馬?, 賊將失中, 隨?而倒。 太祖卽據鞍射, 又?之。 於是賊狼狽奔北, 太祖追擊至賊屯, 日暮乃還。 納哈出之妻謂納哈出曰: “公周行天下久, 復有如此將軍乎? 宜避而速歸。” 納哈出不從。 이 날에 태조는 답상곡(答相谷)에 물러와서 둔치니, 나하추가 노하여 덕산동(德山洞)으로 옮겨서 둔쳤다. 태조는 밤을 이용하여 습격하여 이를 패퇴(敗退)시키니, 나하추가 달단동(??洞)으로 돌아가므로, 태조는 사음동(舍音洞)에 둔쳤다.
태조가 척후(斥候)를 보내어 차유령(車踰嶺)에 이르니, 적이 산에 올라가서 나무하는 사람이 매우 많은지라, 척후병(斥候兵)이 돌아와서 아뢰니, 태조는 말하기를, “병법(兵法)에는 마땅히 먼저 약한 적을 공격해야 된다.” 하면서, 드디어 적을 사로잡고 목 베어 거의 다 없었대. 스스로 날랜 기병(騎兵) 6백명을 거느리고 뒤따라 가서 차유령(車踰嶺)을 넘어 영(嶺) 아래에 이르니, 적이 그제야 깨닫고 맞아 싸우려고 하였다. 태조는 10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적과 맞붙어 그 비장(裨將) 한 사람을 쏘아 죽였다.
처음에 태조가 이곳에 이르러 여러 장수들에게 여러 번 싸워서 패배(敗北)한 형상을 물으니, 여러 장수들은 말하기를, “매양 싸움이 한창일 때에 적의 장수 한 사람이 쇠갑옷[鐵甲]에 붉은 기꼬리[朱?尾]로써 장식하고 창을 휘두르면서 갑자기 뛰어나오니, 여러 사람이 무서워 쓰러져서 감히 당적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였다.
태조는 그 사람을 물색(物色)하여 혼자 이를 당적하기로 하고, 거짓으로 패하여 달아나니, 그 사람이 과연 앞으로 뛰어와서 창을 겨누어 대기를 심히 급하게 하는지라, 태조는 몸을 뒤쳐 말다래에 붙으니, 적의 장수가 헛찌르[失中]고 창을 따라 거꾸러지는지라, 태조는 즉시 안장에 걸터앉아 쏘아서 또 이를 죽이니, 이에 적이 낭패(狼狽)하여 도망하였다.
태조는 이를 추격하여 적의 둔친 곳에 이르렀으나, 해가 저물어서 그만 돌아왔다. 나하추의 아내가 나하추에게 이르기를, “공(公)이 세상에 두루 다닌 지가 오래 되었지만, 다시 이와 같은 장군이 있습디까? 마땅히 피하여 속히 돌아오시오.” 하였으나, 나하추는 따르지 않았다.
그냥 소설 읽듯 읽으면 되겠다. 약간의 과장이 섞였다 하더라도 정말 대단한 활약인데, 사실 싸움 자체는 그리 대단할 것이 없는 작은 싸움에 불과했다. 대충 요약하자면 먼저 덕산동에 진을 친 나하추를 야습하여 달단동으로 쫓아보내고, 달단동에 주둔하면서 차유령에서 나무를 하던 적병을 급습하여 큰 피해를 주었다는 정도다. 그래도 역시 역시 뭇 장수들이 달려들었어도 매번 패해 쫓겨 오던 붉은 깃꼬리를 단 쇠갑옷의 장수를 제압하는 장면은 흥미진진하다. 싸우다 말고 거짓퇴각을 하고, 그 뒤를 적장이 쫓다가 창으로 찌르자 말의 옆구리로 붙어 피하고는 활로 쏘아 죽인다. 삼국지에서도 이런 멋드러진 장면은 거의 없다. 아무튼 대단하다 하겠는데...
後數日, 太祖踰咸關嶺, 直至??洞。 納哈出亦置陣相當, 率十餘騎出陣前, 太祖亦率十餘騎, 出陣前相對。 納哈出?曰: “我之初來, 本追沙劉、關先生、潘誠等來耳, 非爲侵犯貴境也。 今吾累敗, 喪卒萬餘, 亡裨將數人, 勢甚窮蹙。 乞罷戰, 惟命是從。” 時賊兵勢甚盛, 太祖知其詐, 欲令降之。 有一將立納哈出之傍, 太祖射之, 應弦而倒。 又射納哈出之馬而斃, 改乘, 又斃之。 於是大戰良久, 互有勝負。 太祖迫逐納哈出, 納哈出急曰: “李萬戶也, 兩將何必相迫!” 乃回騎, 太祖又射其馬斃之。 有麾下士下馬, 以(授)〔援〕納哈出, 遂得免。 日且暮, 太祖麾軍以退, 自爲殿。 嶺路盤紆數層, 宦者李波羅實在最下層急呼曰: “令公救人! 令公救人!” 太祖在上層視之, 有二銀甲賊將逐波羅實, 注?垂及。 太祖回馬射二將, 皆斃之, 卽連斃二十餘人。 於是更回兵擊走之, 有一賊逐太祖, 擧?欲刺, 太祖忽側身若墜, 仰射其腋, 卽還騎。 又一賊進當太祖而射之, 太祖卽於馬上起立, 矢出?下。 太祖乃躍馬射之, 中其膝。 又於川中, 遇一賊將, 其人甲胄, 護項面甲, 又別作?甲, 以便開口, 周護甚固, 無隙可射。 太祖故射其馬, 馬作氣奮躍, 賊出力引?, 口乃開, 太祖射中其口。 旣斃三人, 於是賊大奔, 太祖以鐵騎蹂之, 賊自相蹈藉, 殺獲甚多。 그 후 며칠 만에 태조가 함관령(咸關嶺)을 넘어서 바로 달단동(??洞)에 이르니, 나하추도 또 진을 치고 서로 대하여 10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진 앞에 나오므로, 태조 또한 10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진 앞에 나가서 서로 대하였다. 나하추가 속여 말하기를, “내가 처음 올 적에는 본디 사유(沙劉)·관선생(關先生)·반성(潘誠) 등을 뒤쫓아 온 것이고, 귀국(貴國)의 경계를 침범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내가 여러 번 패전하여 군사 만여 명을 죽이고 비장(裨將) 몇 사람을 죽였으므로, 형세가 매우 궁지(窮地)에 몰렸으니, 싸움을 그만두기를 원합니다. 다만 명령대로 따르겠습니다.” 하였다. 이때 적의 병세(兵勢)가 매우 강성하므로, 태조는 그 말이 거짓임을 알고 그들로 하여금 항복하도록 하였다. 한 장수가 나하추의 곁에 서 있으므로, 태조가 이를 쏘니, 시위소리가 나자마자 넘어졌다. 또 나하추의 말을 쏘아서 죽이니 바꾸어 타므로, 또 쏘아서 죽였다. 이에 한참 동안 크게 싸우니, 서로 승부(勝負)가 있었다. 태조가 나하추를 몰아 쫓으니, 나하추가 급히 말하기를, “이 만호(李萬戶)여, 두 장수끼리 어찌 서로 핍박할 필요가 있습니까?” 하면서 이에 말을 돌리니, 태조가 또 그 말을 쏘아 죽였다. 나하추의 휘하(麾下) 군사가 말에서 내려, 그 말을 나하추에게 주어 드디어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해가 또한 저물었으므로, 태조는 군사를 지휘하여 물러가는데, 자신이 맨 뒤에 서서 적의 추격을 막았다. 영(嶺)의 길이 몇 층으로 꼬불꼬불한데, 환자(宦者) 이파라실(李波羅實)이 맨 아랫층에 있다가 급히 부르기를, “영공(令公), 사람을 구원해 주시오. 영공, 사람을 구원해 주시오.” 하매, 태조가 윗층에서 이를 보니, 은갑옷[銀甲]을 입은 두 적장(賊將)이 파라실을 쫓아 창을 겨누어 거의 미치게 되었는지라 태조는 말을 돌려 두 장수를 쏘아 모두 죽이고, 즉시 20여 인을 연달아 죽이고는, 이에 다시 군사를 돌려 쳐서 이들을 달아나게 하였다. 한 적병이 태조를 쫓아 창을 들어 찌르려고 하므로, 태조는 갑자기 몸을 한쪽으로 돌려 떨어지는 것처럼 하면서 그 겨드랑을 쳐다보고 쏘고는 즉시 다시 말을 탔다. 또 한 적병이 앞으로 나와서 태조를 보고 쏘므로, 태조는 즉시 말 위에서 일어나 서니, 화살이 사타구니 밑으로 빠져 나가는지라, 태조는 이에 말을 채찍질해 뛰게 하여 적병을 쏘아 그 무릎을 맞혔다.
또 내[川] 가운데서 한 적장(賊將)을 만났는데, 그 사람의 갑옷과 투구는 목과 얼굴을 둘러싼 갑옷이며, 또 별도로 턱의 갑[?甲]을 만들어 입을 열기에 편리하게 하였으므로, 두루 감싼 것이 매우 튼튼하여 쏠 만한 틈이 없었다. 태조는 짐짓 그 말을 쏘니, 말이 기운을 내어 뛰게 되므로, 적장이 힘을 내어 고삐를 당기매, 입이 이에 열리는지라, 태조가 그 입을 쏘아 맞혔다. 이미 세 사람을 죽이니 이에 적이 크게 패하여 달아나므로, 태조는 용감한 기병[鐵騎]으로써 이를 짓밟으니, 적병이 저희들끼리 서로 밟았으며, 죽이고 사로잡은 것이 매우 많았다.
앞서는 활극이라면 이번은 지략의 싸움이다. 지략의 싸움이라기에는 우스운 것이, 나하추가 거짓항복을 하려 하자 이성계가 유인해서는 활로써 그 측근이며 나하추를 쏘아 버린 것이다. 그리고 바로 전투. 이미 이성계의 화살에 몇 번이나 말이 죽어 나자빠진 터라, 기세에서 밀린 나하추는 패배하여 쫓겨가니, 이제는 아주 사정까지 하고 있다. 그래도 대꾸 한 번 않고 말을 쏘아버린다는 게... 하지만 진짜 활약은 그 다음부터다. 거의 삼국지에서의 조자룡급의 활약, 아니 여포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일단 적장 둘을 활로 쏘아 죽이고, 그리고 다시 적병 20여 명을 연달아 죽여 적을 쫓아버리더니, 이번에는 적의 공격을 말위에서 몸을 아래로 젖히며 피하고는 활로 쏘아 사살, 또 다른 적병이 화살을 쏘니까 그건 일어나서 피하고는 화살을 쏘아 무릎을 맞히고, 아예 턱까지 보호하는 갑주를 걸친 적장에 대해서는 말을 쏘아 날뛰게 하고는 입을 쏘아 맞추고 있다. 그야말로 일기당천, 원맨쇼인 셈인데... 믿거나 말거나이므로 역시 그냥 소설 읽듯 읽으면 되겠다. 이성계의 기록은 이래서 재미있다. 정말 흥미진진하거든. 삼국지니 수호전이니 다 저리가라다.
還屯定州, 留數日休士卒。 先設伏要衝, 乃分三軍, 左軍由城串, 右軍由都連浦, 自將中軍, 當松豆等。 與納哈出, 遇於咸興平, 太祖單騎?勇, 突進試賊。 賊驍將三人, 竝馳直前, 太祖佯北走, 引其?策其馬, 爲促馬狀, 三將爭追逼之。 太祖忽又出, 三將馬怒未及控, 直出於前, 太祖從後射之, 皆應弦而倒。 轉戰引至要衝, 左右伏俱發, 合擊大破之。 納哈出知不可敵, 收散卒遁去。 獲銀牌銅印等物以獻, 其餘所獲之物, 不可勝數。 於是東北鄙悉平。 돌아와서 정주(定州)에 둔치고 수일(數日) 동안 머물면서 사졸을 휴식시켰다. 먼저 요충지(要衝地)에 복병(伏兵)을 설치하고서 이에 삼군(三軍)으로 나누어, 좌군(左軍)은 성곶(城串)으로 나아가게 하고, 우군(右軍)은 도련포(都連浦)로 나아가게 하고, 자신은 중군(中軍)을 거느리고 송두(松豆) 등에 나아가서 나하추와 함흥(咸興) 들판에서 만났다.
태조가 단기(單騎)로 용기를 내어 돌진(突進)하면서 적을 시험해 보니, 적의 날랜 장수 세 사람이 한꺼번에 달려 곧바로 전진하는지라, 태조는 거짓으로 패하여 달아나면서 그 고삐를 당겨 그 말을 채찍직하여 말을 재촉하는 형상을 하니, 세 장수가 다투어 뒤쫓아 가까이 왔다. 태조가 갑자기 또 나가니, 세 장수의 말이 노(怒)하여, 미처 고삐를 당기기 전에 바로 앞으로 나오는지라, 태조는 뒤에서 그들을 쏘니, 모두 시위소리가 나자마자 넘어졌다.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며 싸우면서 유인하여 요충지(要衝地)에 이르러, 좌우(左右)의 복병이 함께 일어나서 합력해 쳐서 이를 크게 부수니, 나하추는 당적할 수 없음을 알고 흩어진 군사를 거두어 도망해 갔다. 은패(銀牌)와 동인(銅印) 등의 물건을 얻어서 왕에게 바치고, 그 나머지 얻은 물건들은 이루 다 셀 수도 없었다. 이에 동북 변방이 모두 평정되었다.
드디어 결전이다. 몇 차례의 싸움 끝에 함흥에서 본격적으로 함흥평야에서 나하추의 주력과 이성계가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역시 이 운명을 건 싸움에서도 이성계의 무용을 빛을 발한다. 마치 소설처럼 필마단기로 나하추의 진으로 돌진하더니, 나하추의 장수 셋이 달려나오자 거짓으로 퇴각하는 척 하다가 활로 쏘아 모두 쓰러뜨리고 있다. 그리고는 달려드는 적을 복병이 있는 곳으로 유인해 섬멸하니, 그야말로 지용겸전, 전술에 있어서도 감히 따를 수 없을 정도라 하겠다. 後納哈出遣人通好, 獻馬于王, 且遺??一、良馬一匹于太祖, 以致禮意, 蓋心服之也。 納哈出之妹, 在軍中見太祖神武, 心悅之, 亦曰: “斯人也, 天下無雙。” 桓祖嘗入朝元朝, 道經納哈出, 稱道太祖之才, 至是納哈出敗歸曰: “李【桓祖諱。】嚮日言我有才子, 果不誣矣。” 후에 나하추가 사람을 보내어 화호(和好)를 통하여 왕에게 말[馬]을 바치고, 또 비고(?鼓) 하나와 좋은 말 한 필을 태조에게 주어 예의(禮意)를 차렸으니, 대개 마음속으로 복종[心服]한 때문이었다. 나하추의 누이[妹]가 군중(軍中)에 있다가 태조의 뛰어난 무용[神武]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또한 말하기를, “이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겠다.” 하였다.
환조(桓祖)가 일찍이 원(元)나라 조정에 들어가 조회할 때에 도중에 나하추에게 지나가면서 태조의 재주를 칭찬하여 말하였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나하추가 패전하여 돌아가서 말하기를, “이자춘(李子春)이 지난날에 ‘내가 재주 있는 아들이 있노라.’고 하더니, 과연 거짓말이 아니었다.” 하였다.
결국 이 싸움의 결과로 나하추는 이성계의 실력을 인정하고 고려와 화친하게 된다. 고려를 두려워했다기보다는 이성계의 실력을 인정한 셈인데, 사실 이후로도 기새인첩목아를 공격하던 와중에 한 번 충돌할 기회가 있었었다. 그러나 그때도 이성계는 탁월한 전술적 식견으로 나하추의 공격의도를 무산시키고 있다.
翌日, 師次城西十里。 是夜, 有赤氣射營, 熾如火, 日官曰: “異氣臨營, 移屯大吉。” 遂班師野宿, 令士卒各作??、馬廐。 納哈出?後行二日曰: “作?與廐, 師行整齊, 不可襲也。” 乃還。 이튿날 군대가 성 서쪽 10리(里)에 유숙했는데, 이날 밤에 붉은 기운[赤氣]이 군영(軍營)을 내리쏘는데 성하기가 불길과 같았다. 일관(日官)이 말하기를, “이상한 기운이 군영에 내리쏘니 옮겨서 둔치면 크게 좋을 것입니다.” 하였다. 드디어 군사를 돌려 들에서 유숙하고, 사졸(士卒)들로 하여금 각기 변소(便所)와 마구(馬廐)를 만들도록 하였다. 나하추가 뒤를 쫓아 온 지 2일 만에 말하기를, “변소와 마굿간을 만들었으니 군대의 행진이 정제(整齊)할 것이므로 습격할 수 없다.” 고 하면서 그만 돌아갔다.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1장 A면 【영인본】 1책 6면
당시 기새인첩목아가 머물고 있던 요동성은 나하추의 근거지인 요동에 있었다. 다시 말해 기새인첩목아나 이성계나 나하추 입장에서는 자신의 근거지를 침범한 침입자에 불과했는데, 이성계를 공격할 틈을 노리던 나하추는 행군중에도 엄정한 군기를 보이는 이성계의 군대 앞에 공격할 생각을 포기하고 만다. 말 그대로 싸우지 않고도 나하추를 굴복시킨 것이다. 이후로 나하추는 이성계를 무척 존경하게 되었다는데,
納哈出,遣使來,獻土物,仍求官,且以黃金八兩,求婦人腰帶,授納哈出三重大匡,司徒,賜細布二匹,婦人金帶一腰,還其金。 나하추(納哈出)가 사신을 보내어 토산물을 바치고는 관직을 요구하였으며, 또 황금 8냥으로써 부인의 허리띠를 구하였다. 나하추에게 삼중대광 사도(三重大匡司徒)의 관직을 주고 올이 가는 베 2필과 부인의 금띠 하나를 하사하고, 황금은 돌려보내었다.
【고려사절요 29권】공민왕4 경술 19년
여러차례 고려 조정에 말이며 공물을 보내 호의를 보이다 마침내 고려조정에 벼슬을 청하고 있다. 말하자면 동아시아의 외교질서대로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청하는 것인데, 그리하여 고려조정이 내린 벼슬이 삼중대광사도, 고려조정에서도 정 1품에 달하는 높은 관직이다. 당시 고려 조정이 나하추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이후로도 나하추는 여러 차례 고려 조정에 말을 바쳐 온다.
至大明洪武九年丙辰冬, 辛禑遣開城尹黃淑卿往聘, 納哈出曰: “我本非與高麗戰, 伯顔帖木兒王, 遣年少李將軍擊我, 幾不免。 李將軍無恙乎? 年少而用兵如神, 眞天才也。 將任大事於爾國矣。” 명(明)나라 홍무(洪武) 9년(1376) 병진 겨울에 이르러 신우(辛禑)가 개성 윤(開城尹) 황숙경(黃淑卿)을 보내어 가서 교빙(交聘)하니, 나하추가 말하였다. “내가 본디 고려와 싸우려고 한 것이 아닌데, 백안첩목아왕(伯顔帖木兒王)이 나이 젊은 이 장군(李將軍)을 보내어 나를 쳐서 거의 죽음을 면하지 못할 뻔하였소. 이 장군께서 평안하신가? 나이 젊으면서도 용병(用兵)함이 신(神)과 같으니 참으로 천재(天才)이오! 장차 그대 나라에서 큰일을 맡을 것이오.”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7장 B면 【영인본】 1책 4면
그러나 역시 나하추와 고려 조정의 의리란 딱 그런 정도라, 어차피 나하추가 고려 조정에 충성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왕에 관작을 받고 줄을 서자면 조금이라도 크고 강한 쪽이 좋은 터라 나하추는 새로이 일어나는 강대국 명에 투항하여 해서후의 작위를 받고 있다. 나중에 운남원정에 참가했다가 병사하고 마는데, 위 기사는 나하추가 아직 명 조정에 남아 있던 때의 이야기다. 여기서 백안첨목아는 공민왕의 몽골식 이름으로, 함경도에서 이성계와 맞서 싸우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마 이성계가 끝내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게 될 것을 알았다면 나하추의 입장도 약간은 달라졌을 지도 모르겠는데... 사람 일이라는 게 워낙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법이라.
아무튼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나하추에 대해 무려 23건의 기사가 검색되고 있다. 그 대부분은 이성계의 대표적인 치적으로서 다루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성계로서는 처음으로 직접 군을 이끌고 대규모의 적과 맞선 싸움이라 그 의미가 남다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면 알겠지만 정작 싸움의 의미로 보자면 별 하잘 것 없는 것이다. 조소생의 꾀임에 넘어가 국경을 침범해 온 나하추와 싸워 국경 밖으로 내쫓았다는 정도이니. 그래도 일단 고려의 국경을 지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겠다. 더불어 이성계의 믿기지 않는 무용도. 아마 삼국지의 여포나 조자룡이라 해도, 아니 항우라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으리라.
그러고 보니 문득 누군가 용자가 있어 이것을 드라마로 제대로 만들어 보았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군중을 누비며 절묘한 기마술로 모든 공격을 피해내고 신기에 이른 활솜씨로 적들을 모조리 쓰러뜨리는 그 모습들을 드라마로 재현해 낼 수 있으면 무척 재미있을 텐데... 하긴, 그랬다가는 판타지가 되려나? 하지만 이미 역사드라마의 탈을 쓴 판타지 드라마들은 얼마든지 있잖아? 어차피 내가 돈 내서 만들 것도 아니니 그저 망상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미련은 남는다. 역시 욕심일까?
오늘은 여기까지. 그래도 오늘은 시간을 단축했다. 역시 기사 단 두 개 가지고 늘려쓰느라 그런 것일까? 나하추와의 싸움 자체에 대해서는 고려자설요와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이 거의 같다. 따라서 둘을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어 제끼기로 했다. 요즘은 고려사절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한데... 고려사도 보고는 싶지만 아무래도 회원제이다 보니 조금 그렇다. 참고로 고려사절요는 한국고전번역원(http://www.minchu.or.kr)여기에 있다. 한 번씩들 들어가서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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