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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munmu (yunmun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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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6/05/29
 

원효비결을 복원하고 문무대왕릉을 돌아보자!

2007.04.12 16:18 | 통일예언 예언 | yunmunmu

http://kr.blog.yahoo.com/yunmunmu/3100 주소복사

2007/01/14 오전 8:11 | 기본폴더

문무왕릉을 그렇게 정보부장을 넘어 직접 명령해 야밤에 도굴시킨 그 행위도 잘못된 것으로 김유신을 피해 그렇게 수장을 스스로 했다는 설도 있지만 영원한 국방을 위하여 그렇게 했다는것인데 그 묘에 손을 댄것은 도굴에 해당되는 것이 그 내용까지 겁먹어 지웠어야함에서도 나타나는것으로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아직도 복원하지 못한 것도 원효에 대한 예가 아닐뿐더러 후세인 우리들한테 피해가 온것으로 문무왕과 원효대사의 높은 뜻이 우리에게 전달되지못하게 차단시킨 그 박정희는 분명 역적행위를 여기 저기서 일관성있게 한것으로 현재의 해방 60년이 넘은 현재도 돈벌어서 모두 일본 갖다주는 식의 경제구조가 그대로 진행되고 있는 현재에 비춰볼때 그런데 그 문무왕릉에 손을 댔었으니 사죄의 의미로 제를 올리고 어떤 보강의 공사를 정성들여 할 필요도 있겠다. 일본을 능가하는 만회가 이다지도 더디다보면 처음부터 그런 줄 알 일본일들일 수 있고 한국인까지도 될 수도 있는것은 더 큰 문제로 그래야 독도문제도 시비가 걸리지않고 순조롭게 대마도까지 찾는 역정이 성취될 수 있을성싶다.

박정희에 불리한 내용을 지운 한달조와 그렇게 지운다음에 왜 윤태첨에 해석을 부탁한것인지 거기서도 책임을 나눠지고싶어한듯한 한달조의 공포감이 드러나는것으로 그 내용이 더욱 궁금해지고 박정희가 얼마나 한국에 해로운 인간인지 그 내용에 나타나있는것이니, 한달조가 사망한 상태라면 그 주변을 수소문해서도 누군가에는 발설을 하였을것으로 늦기전에 채록을 해야할것이다.                                                                                                                     누가 그렇게까지 하여 관광개발하여 돈벌라고 경제일으키라고 아무도 원하지않았던것이기도 하였지만, 어찌 경주김씨만의 문제인지 그 판단도 어리석었었고, 그렇게 내밀한 중요한? 일은 정보부장 안기부장도 허수아비로 짐작한대로 여기서도 드러나고있는것이다. 김형욱도 놀랄만한 많은 일을 직접 그런식으로 하였기때문에 폭로하려하였을것으로 아무렴 자기가 한 일만을 그리 대단한 일인양 책으로 썼고 쓰려하였을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정보부장을 했다는것도 말이 안된다.                <<추가할 수 있는 내용>>
[원효결서] [원효결서(해도금묘장)]이 세상에 나오게 된 과정   2005/03/04 19:49추천 0    스크랩 0
[원효결서] [원효결서(해도금묘장)]이 세상에 나오게 된 과정
 
**"원효결서(해도금묘장)"이 세상에 나오게 된 과정**

 
이 비결서는 서기 827년 정미년에 문무대왕의 해중릉으로 알려진 대왕암에 봉안되었다가 1967년 정미년에 다음과 같은 사연으로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박정희가 경주를 세계적인 관광 도시로 조성하는 문제를 놓고 여러 관료들과 술자리를 같이하였다. 술이 몇 순배를 돌자, 화제는 물 흐르듯이 이상하게도 문무대왕 수중릉으로 모였다. 문무대왕을 답사 코스로 포함시키려면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문무대왕은 삼국을 통일한 임금이자 경주김씨의 조상이므로 아무도 감히 무덤을 파헤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박정희가 경주시장 박수대에게 중앙정보부에서도 모르게 문무대왕릉의 속을 알아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박수대는 기획실장 한달조에게 일을 떠넘기게 되고, 1967년 7월 초순 어느 깊은 밤, 한달조는 기중기가 설치된 배로 2톤 가량의 무덤을 덮고 있는 돌을 들어올리고, 잠수복을 입고 석관속으로 들어갔다. 그 속에는 아무런 부장품도 없었으나 바위틈에 책상서랍 모양의 손잡이 5개가 있었다.
 
 
그중 1개의 손잡이를 당겨보니 반듯한 흰 돌판 위에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카메라로 이것을 촬영하고, 다음 손잡이를 끌어 당기는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꽝"하고 벼락치는 소리가 나고 주변이 대낮처럼 밝아지며 가슴속이 불에 타는 것 같은 심한 통증을 느껴 정신이 아찔해진 한달조는 엉겁결에 밖으로 튀어나와 배 위로 돌아갔다.
 
 
 
"원효대사 결서- 해도금묘장"은 제목을 합쳐 총 467가운데 16자가 빠진 451자로 되어 있는데 지워진 16자는 한달조가 이대로 대통령에게 보고하면 자기 목이 달아난다며 고의적으로 16자를 지워버렸다. 한달조가 예천군청에 근무할 시절부터 알게 되어 절친한 친구로 지내오던 윤태첨에게 그 문서의 해석을 부탁하였다.
 
 
그리고 윤태첨은 이 사실을 비밀로 하고 있다가 1989년 기사년 여름에 꿈에 나타난 태을신인(太乙神人)이 김중태에게 전해주라고하여 그에게 전해주었고, 김중태는 1997년 정축년에 "원효대사 결서-해도금묘장"의 해설과 사견(私見)을 넣어서 "원효결서"라는 책을 출판하여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해도금묘장을 고대에 잃어버린 다섯장의 금강삼매경론이라는 설도 있다)
 
 

말하지 않으면 위선이 되는 예언속의 <나>-1

2007.01.16 15:48 | 통일예언 예언 | yunmunmu

http://kr.blog.yahoo.com/yunmunmu/369 주소복사

말하지 않으면 위선이 되는 예언속의 <나>-1
2006/11/30 오전 7:00 | 기본폴더

큰오빠를 나중까지 책임진 그도 盧로 결코 이롭지 않았던 아주 나빴을 것을 생각하면 나한테 우편물갖다주지않은 사람도 盧였고 내가 모과열매까지 집어 주었었는데 그랬고 휴가갈 건수라면서 무면허운전이라고 잡은 전경아이도 盧였다면 김영삼이 해양수산부장관까지만 밀어주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일찍이 가슴이 녹아내린다는 청문회에서의 그 발언에 그래도 한때 그곳 부산에서 있었다고 그 말이 귀에 모두 들어왔었는데 내가 다닌 그 야간대학에서 국영기업체인 한전에서였다면 국가에서 전폭적으로 키운 결혼을 처음부터 하지않기로 작정하였다는 그 여자도 盧로 한전여직원에서 대학원과정마치면서 곧 최초로 일약 전임발령받은 그 여자와 6학년때 내앞에 한 살 많은 아이 앉혀놓고 나의 습자성취를 아무리 습자반을 택한 나를 주산만으로 빼다가 밀어넣었다고하지만 그 아이보다 못한듯이 하시면 더구나 아저씨가 그러시면 내가 더 놀라는 것으로 5학년때 미술대회에서 특선을 한 나인데 각각 그 글씨체가 자신의 얼굴모습인듯하게 썼다고 지금도 생각하는데 나중에 신문지에 연습을 하여도 나의 글씨체는 변하지 않는 그대로인데 한 과목씩 그런 식으로 중학교가서도 영어는 바로 뒷자리에 앉혀놓고 하고는 놀라는 나를 보고 웃기는 왜 웃으시는지 내가 손에 복이 들었다는 운세에다가 말 혀가 상징이라하였듯이 발음을 그대로 정확하게 구사하는 면에서도 뒤질 수가 없는 것으로 그런 것인데 파주의 교하 송촌리에는 盧가 몇명있기는 하였지만 중고교에서는 한명도 많나지않은 그렇게 희성인 盧씨가 왜 처음부터 내주변 우리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노태우가 박정희옆에 있으면서부터 무언가 그 그물이 일찍이 형성된듯한 것은 또 희성인 全아무개도 6학년때 어디서 갑자기 전학을 온 아이로 전씨는 그 아이 하나였는데 그런 변화들이 모두 감지되게 변화가 없는 곳이기도 하였기 때문에도 손에 잡은듯 말할 수 있는것인데 거의 정확하다고 보고있다. 노태우에 이어 또 그런 盧라면 바로 재선으로 비칠만큼 느낌이 강하여 5.16당시부터 박정희주변에 함께 있었고 광주사태말고도 92년의 내 조카들의 사고 애완견의 사고로도 살인자로 노태우를 인식하고있는만큼 벌써 3년이상 방해받아 빼았기었지만 특히 초반에 내가 크게 불편할때는 아무리 차별화하여 좋게 생각하려하여도 돈이라도 받아내는 해결을 하지않으니 더욱 전노 후노로 같은 稀姓인 노로 살인과 강도의 차이가 있을뿐이라하였는데 곧 얼굴은 그 두사람보다는 낫게 생긴것으로 신분보충을 대신하는지 盧희성이라는 살인강도수배자가 기차역사벽에 붙은 것을 보게되었고 또 즘 다른 말이지만 한때 나의 낙서제목이 "永遠"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는 영생교주라는 조희성이라는 사람이 병중에 감옥속에 있었다가 사망하였다는 뉴스가 떴었던것을 기억한다. 정감록의 하나로 전하는 '무학비결'의 경우, 다음과 같은 식으로
사건의 시기를 기록하고 있다.
  '기사년에는 쥐처럼 훔치는 도둑을 면하기 어렵고 경오년에는 용이 슬피 우는
것을 보리라.
  신: 유년에는 군사가 사방에서 일어나고
  술: 해년에는 사람이 많이 죽고
  자: 축년에는 오히려 정하지 못하고
  인: 묘년에는 일을 바야흐로 알 수 있다
  진: 사년에 성인이 나오니
  오: 미년에 즐거움이 당당하리 라.

말하지 않아 위선이 되는 예언 속의 <나>

2007.01.16 15:46 | 통일예언 예언 | yunmunmu

http://kr.blog.yahoo.com/yunmunmu/368 주소복사

스크랩] 말하지 않아 위선이 되는 예언 속의 <나>
원본: yunmunmu의 블로그2006/12/10 오전 6:11 | 기본폴더

말하지 않아 위선이 되는 예언 속의 <나>말하지 않아 위선이 되는 예언 속의 <나>

馬頭生角十五眞主 午未樂堂靑龍之后 女上加一地邊去土 狗驚羊喜五十八年

마두생각십오진주 오미낙당청룡지후 여상가일지변거토 구경양희오십팔년   

  말머리에 뿔이면 말이 둘로 兩火가 될 수 있으며 소뿔을 연상하면 천지인이 되면서 15세가 되는 午未년에 청룡의 분위기의 여왕이 나와 동북 간방 한국. 남자는 놀라고 서쪽 서양풍의 막내딸인 입口인 말로대표되는 少女는 기쁜 58년   -- 말달 말날에 태어난 나 本人이 66년에 고종의 계비인 엄비가 세운 진명학교에 입학하여 午未2년동안 같은 성적을 유지한다. 내가 그 학교입학결정된후이며 입학 일개월전인 66년 2월 3일에 마지막 왕비인 순종왕후인 尹비는 돌아간다. 7인의 오빠다음으로 8번째로 태어나 서양인형같다는 말을 들으며 성장하였다. 큰오빠가 붙여준 내 별명이 옐.마로 丙午일은 혀와 입으로 상징된다.  청룡은 甲寅의 상징인데 말불이 丙火가 많으면 갑인과 같거나 능가한다고 하는데 내가 이기고싶지않아 누르고 살던 것이 바로 그런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강요당한것인줄 모르고 속고 산것이기도하다.
飛鳥鳩月五七四年 天受禪堯鷄龍太祖登位飛上 玉燈秋夜戊己之日 海印金尺 天呼萬歲

비조구월오칠사년 천수선요계룡태조등위비상 옥등추야무기지일 해인금척 천호만세

  비둘기 鳩에서 고려보다 文治분위기였던 조선500 600년이 연상되며 비조는 백제문화인 아스카도 되니 전주이씨의 조선건국1392부터 574년은 1966년을 말하며 (가금인 닭의 酉金이 아니고 날으는 새는 원숭이 申金의 7월을 말한다고도 하는) 책력을 만들었다는 우뚝하게 두드러진  堯임금같은 하늘에 닿을만한 禪의 집중력을 갖고 아무도 따를 자없게 높은 차원에서 (오동추야 달이 밝아로 변한)가을밤을 옥같이 맑고 밝게 비추듯 어두운 세상을 비추니(무기之日을 오랜동안으로 기간을, 중앙 土로서 세상이면서 아직 어두운곳을) 바로 우주의 섭리 자연의 이치에 맞아 모두가 좋아하는데---6년반장을 하여 학교에서 늘 살았지만 집안 일은 방하고 마루청소외에는 해본 적이 없는 내가 맨 처음 시험기간때만 큰오빠가 아침밥을 해주었고 다음부터는 3식구밥과 도시락도등등 교복 오빠외출복등 모두 세탁 다림질까지 살림을 다하면서 학교를 아주 멀리 돌아서 통학을 하였고 지각 결석없이 600명중 5 6 5 6등을 하여 그 흐름을 신기해하였는데 물론 모두가 1등이었는데 속은것으로...아주 희한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는데 아마도 "7월"이면 첫학기의 성적표를 받은 그 때가 될 수도 있겠는데 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수학경시대회가 30년만에 90년대부활된것인데 당시 수학경시대회가 1학년 겨울방학끝나고 있다하여도 아무런 다른 설명이 없으니 그냥 배운것에서 하나보다하였고 중1때 처음 맞는 겨울방학인데 놀기바쁜것인데 그냥 중2수학문제집을 하나 사서 집에 갔고 심심하니 그 책을 하루에 몇시간씩 보아 3주정도보니 그대로 한번 다 풀게되었고 개학하고 시험을 보았는데 그 정도문제는 아닌것같았는데 두개가 틀렸는데 공동 2등이라니 이 모두가 사기인것을 당시는 그냥 조금 이상하다하고 말았고 그 다음해에는서울대학에서는 전국단위의 수학경시대회가 그대로 있다면서도 그것도 없어졌으니 그렇게 시대에 역행을 하였기때문에 박정희가 죄인이라는 것으로 무궁무진하다 그런것들이. 공부의 바다 연구의 바다로 보낸것이 아니고 ...  게다가 2학년말에는 통혁당사건으로 누군가가 사형당했다는 말도 들리는데는 지금생각해보니 물론 그 나이에 그아이들 바로 내앞에 앉은 그 아이수준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닌것이었는데  나는오판이 두려워 판사를 하고싶지않다는 결론을 혼자서 스스로 내리게 되고 3학년때는 그래서 나도 공부를 안했기때문에 100등을 떨어뜨려 담임과 선생님오빠를 충실지수시험에 들게한다고 한것이 바로 내가 시험에 든것인줄 어찌 알았겠는가? 그러나 역시 그분들이 시험에 든것이다 나는 청소년이었으니. 살림은학교갔을때 비오면 영락없는것인데 된장에 가시가 나지않으면 100점으로 나 스스로 평가할 수도 있는것이고, 월반하여 중학교를 고등학교 경기여고를 진입을 하지는 않았다하여도 수학 물리 화학등 그런 쪽으로 머리를 썼어야 했다는 것인데 현재의 핵문제에 대한 관념을 중2인 未년인 그 때도 현재와 똑같이 가질 수 있었기때문인데 속도감떨어지는 말투부터의 선생분들이 오셔 흥미를 떨어뜨리고 재봉수예 가사실습도 많이 하더니梨女大편향으로 교육방침이 바뀐 시대역행이 있었으니 무슨 공부를 왜 해야하는지 하나도 모르게 만든 것으로 내 스스로 평가외에 수도물많이 쓰면서 살림깨끗이 하는 세든 전라도 아줌마가 빨래잘한다고 칭찬한 이유는 그것도 내가 먼저 한국에서 시작한 빨래 다라이에 비눗물 버리지않고 담가 모아서 하면 쉽고 절약된다는 것이고 저녘때 미리 국끓여놓는것이나,몇년후에는 이면지 쓰기와 볼펜심만 살 수 있는것들도 아마 내가 그런 분위기를 만든것일텐데 이런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에서 성과를 냈어야한다는 말로 노벨 물리학상이 아직도 안 나온것은 바로 징벌을 받은 것으로밖에 볼 수가 없는 것이고 나는시대적으로 자연발생적인 부동산 투자를 한것인데 요즘의 광풍이라는 말이 돌고있는것 이와같은 내가 믿었던것과는 한것과는 다른 것과 모든 병폐가 

人王四維 千人得生 分國爭雄 三傑之人 南步老將 白首君王 七李相爭 勝利一人

인왕사유 천인득생 분국쟁웅 삼걸지인 남보노장 백수군왕 칠이상쟁 승리일인

  人은 仁으로 어진 4王으로 많은 사람이 생긴 것은 필요이상의 분국상태를 말하고 3金이 연상되는 3傑이고 북쪽이 아닌 남쪽에서 온 남쪽의 노장이며 백수는 흰머리가 아닌 酉金의 白의 머리라면 뱀의 군왕으로 우아한 여왕에서 성정이 변하는 것은 만들어진 어진 4왕때문으로 7人의 다스림들과 상쟁하여 一人의 승리를 하여----우리 아버지도 나때문에 할아버지는 아버지때문이었고,결혼을 안한 나때문에 회갑잔치도 나중으로 미루셨기때문에 9旬잔치를 그곳에서 해드리라 기대하였던 어머니도 큰오빠부자도 모두 없어지고 99년에는 영국여왕이 다녀갔을뿐으로 우리 집의 어진 4대왕을 만들어놓은것으로 나의 8자요소중 어쩌면 申金하나만 남겨두고5火와 무계合화 2火가 더해져 7火가 되는 시기가 바로 지금 이 때인듯싶은데 이승만 윤보선대통령을 달리 평가하면서 3김도 각각일 수 있지만 남어지7인의 다스림도 차이가 있으면서 같은 속에 있다고 본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인것이다.

三分天下 假鄭三年 道下止人 天破修身 口出刃劍 奮打滅摩 ?坐誦眞

삼분천하 가정삼년 도하지인 천파수신 구출인검 분타멸마 궤좌송진 분열된 세상에 엉터리 정치의 3년에 道를 갖고 내려가거나, 더이상 道가 내려가지않게 하는 사람이 하늘이 두쪽이 난다하여도 무너진다하여도 자신이 할 바를 하기를 칼보다 더 정확한 말로서 불의를 타파하여 진실을 노래하고

萬無一傷 鬼不矢口 六千歲龍 權炳之世 坐居龍床 妖鬼猖獗 火滅其中

만무일상 귀불시구 육천세용 권병지세 좌거용상 요귀창궐 화멸기중  아무도 죄없는 사람은 다치지않게, 시끄러운 곳을 귀신이 좋아한다니 귀신도 모르게라면 깔끔하게 일처리를 하여 6000년동안의 태양의 온도가 6000도라면 태양과 같은 존재로서 용상에 앉아 요귀가 창궐하는 것을 불로서 멸한다.                                       19. 弓乙論(궁을론)에서

  엉뚱한 해석들이 고의건 아니건 있기때문에도 힘써 쓰는 것이다.

진사년에 성인이 나와서는 3변을 한다고 하는 내용을 여러군데서 접하였는데 정감록에 나와있는 경오년에는 용이 슬피우는 것을 보리라.라는 내용이 있는데 경오년인 38세때 큰오빠가  12월19일엔가 전화를 한것이 영계에서 한것을 몰랐으니 살렸다고 믿었고 살아있는 전제로 웃었으니 웃은 것이 아니었던것이었지만  내가 그 동안의 피로를 그러니까 14 5살때부터 큰오빠의 보호도 받았지만 그 이상으로 나도 고된 생활로 1학기를 마칠 즈음에는 오른쪽 귀의 귀지가 단단하게 뭉쳐서 병원에 가서 귀지만 불려 파낸것이 아니었고  종로 5가의 서이비인후과 서울대 의대출신은 내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귀를 생살을 뜯긴 것을 시작으로 그렇게 계속된 생활이었던것으로 57년인가 육사입학좌절과 함께 온 오빠의 생활도 나만큼이나 방해받은 인생으로 소시민을 자처하면서 희망을 억지로 키워야했던 우리 식구들이기때문에 그렇게 영계와 전화까지 하는 상황이 왔을것인데 그런중에도 살리고난뒤의 午未낙당인줄알고 조선 한국의 과거와 미래를 걱정하여 홍제천의 연유와 정신대의 치욕을 설욕하기 위하여 큰 그림을 그린다면서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을 말하였었는데 그런 등등의 것이 용의 슬픈 울음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2월 16일 양력생일로 4세 아래인 김정일이 같은 생일이면서 5세아래인 42년생으로 조작되어있다니 문제이지만, 윤동주가 사망한 날이면서 12월 19일은 윤봉길이 처형당한 날이기도 하였으니 그 때 울지못했기때문에 더 수습이 잘 안되는 감정인데 얼마전에는 윤보선대통령이 별세한 줄 도 몰랐는데 그런 등등이 모두 마음에 걸리는 경오년이 된것인데 그 한 싸이클 전의 오미년은 일본에서 있었는데 그래도 공부하고싶어하였는데 나갈 수 있었으니 그 쪽이건 이쪽이건 문교부와 비슷한 문부성장학생으로  충분한 돈을 받고 갔으니 그 점에서는 화려?했다고 볼 수 있는 만족하지 못한 생활이었지만 그래도 많은 것을 접하고 50여개국이상의 학생들하고 함께 있는 기숙사생활이었기때문에 더욱 그 동안 받은 교육과 그중에서도 반공 반일교육의 전체와 밖에서 객관적으로 보이는 한국의 총체적인 모습과 문제도 볼 수 있었고 전쟁난다고 미국으로 망명한다는 사람들도 있다는 때에 한국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 일축하지못하고 만에 하나 가족이 없이 나만 혼자 살아남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해보니 공부를 제대로 못마쳤으니 귀국날짜가 뒤로 자꾸 밀리다가 결정하는 계기가 되어 들어온 날이 5월 11일이었는데 7일후에 광주사태가 났지만 그 날이 신채호선생이 출간하라고 비결을 준 환단고기가 발간된 날이든가하여 의미를 두게 되었고 그후 일본에서 얻은 감기로 12년간 결핵약을 아닌데하면서도 먹은 것으로 경력이 하나 더 늘은 셈이고 2002년 장감차사건에서 아예 내 이름이 나오면서 2003년에는 완전히 나와 세상의 관계를 알게된 해가 되는것인데 38세 39세때 그렇게 웃으면서 울고나서 15년 15진주가 지났다고 봐도 되는데 58년이면 73세가 되는데 화성의 지구와의 **주기가 7만 3천년이란다.

 

馬頭生角十五眞主 午未樂堂靑龍之后 女上加一地邊去土 狗驚羊喜五十八年

마두생각십오진주 오미낙당청룡지후 여상가일지변거토 구경양희오십팔년   

  말머리에 뿔이면 말이 둘로 兩火가 될 수 있으며 소뿔을 연상하면 천지인이 되면서 15세가 되는 午未년에 청룡의 분위기의 여왕이 나와 동북 간방 한국. 남자는 놀라고 서쪽 서양풍의 막내딸인 입口인 말로대표되는 少女는 기쁜 58년   -- 말달 말날에 태어난 나 本人이 66년에 고종의 계비인 엄비가 세운 진명학교에 입학하여 午未2년동안 같은 성적을 유지한다. 내가 그 학교입학결정된후이며 입학 일개월전인 66년 2월 3일에 마지막 왕비인 순종왕후인 尹비는 돌아간다. 7인의 오빠다음으로 8번째로 태어나 서양인형같다는 말을 들으며 성장하였다. 말달은 가족 민족주의이니 서양풍으로 생긴 여자라도 걱정끝일것이다. 수련장도 없이 그야말로 교과서만으로 차점자들과 모의고사 평균 10-20점차이의 성적으로 경기가도 말리지않겠다는 친적아저씨담임의 말씀도 이제 생각하니 깍아 말한것인줄알겠는데 마루바닥이 윤기가 나더라면서 그 학교 원서를 산다는 큰오빠가 붙여준 내 별명이 옐.마로 丙午일은 혀와 입으로 상징된다.  청룡은 甲寅의 상징인데 말불이 丙火가 많으면 갑인과 같거나 능가한다고 하는데 되도록 상대를 내가 이기고싶지않아 누르고 살던 것이 바로 그런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강요당한것인줄 모르고 속고 산것이기도하다.

飛鳥鳩月五七四年 天受禪堯鷄龍太祖登位飛上 玉燈秋夜戊己之日 海印金尺 天呼萬歲

비조구월오칠사년 천수선요계룡태조등위비상 옥등추야무기지일 해인금척 천호만세

  비둘기 鳩에서 고려보다 文治분위기였던 조선500 600년이 연상되며 비조는 백제문화인 아스카도 되니 전주이씨의 조선건국1392부터 574년은 1966년을 말하며 (가금인 닭의 酉金이 아니고 날으는 새는 원숭이 申金의 7월을 말한다고도 하는) 책력을 만들었다는 우뚝하게 두드러진  堯임금같은 하늘에 닿을만한 禪의 집중력을 갖고 아무도 따를 자없게 높은 차원에서 (오동추야 달이 밝아로 변한)가을밤을 옥같이 맑고 밝게 비추듯 어두운 세상을 비추니(무기之日을 오랜동안으로 기간을, 중앙 土로서 세상이면서 아직 어두운곳을) 바로 우주의 섭리 자연의 이치에 맞아 모두가 좋아하는데---6년반장을 하여 학교에서 늘 살았지만 집안 일은 방하고 마루청소외에는 해본 적이 없는 내가 맨 처음 시험기간때만 큰오빠가 아침밥을 해주었고 다음부터는 3식구밥과 도시락도등등 교복 오빠외출복등 모두 세탁 다림질까지 살림을 다하면서 학교를 공덕동에서 광화문지나가기를 한강인 원효로와 삼각지까지아주 멀리 돌아서 통학을 하였는데 2년간은 지각 결석없이 600명중 5 6 5 6등을 하여 그 흐름을 신기해하였는데 물론 모두가 1등이었는데 속은것으로...아주 희한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는데 아마도 "7월"이면 첫학기의 성적표를 받은 그 때가 될 수도 있겠는데 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수학경시대회가 30년만에 90년대부활된것인데 당시 수학경시대회가 1학년 겨울방학끝나고 있다하여도 아무런 다른 설명이 없으니 그냥 배운것에서 하나보다하였고 중1때 처음 맞는 겨울방학인데 놀기바쁜것인데 그냥 중2수학문제집을 하나 사서 집에 갔고 심심하니 그 책을 하루에 몇시간씩 보아 3주정도보니 그대로 한번 다 풀게되었고 개학하고 시험을 보았는데 그 정도문제는 아닌것같았는데도 두개가 틀렸지만 공동 2등이라니 이 모두가 사기인것을 당시는 그냥 이상하다하고 말았고 그 다음해에는서울대학에서는 전국단위의 수학경시대회가 그대로 있다면서도 그것도 없어졌으니 그렇게 시대에 역행을 하였기때문에 박정희가 죄인이라는 것으로 무궁무진하다 그런것들이. 공부의 바다 연구의 바다로 보낸것이 아니고 ...  게다가 2학년말에는 통혁당사건으로 누군가가 사형당했다는 말도 들리는데는 지금생각해보니 물론 그 나이에 그아이들 바로 내앞에 앉은 그 아이수준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닌것이었는데  나는 사형같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오판이 두려워 판사를 하고싶지않다는 결론을 혼자서 스스로 내리게 되고 3학년때는 그래서 나도 공부를 안했기때문에 100등을 떨어뜨려 담임과 (선생님오빠)를 충실지수시험에 들게한다고 한것이 바로 내가 시험에 든것인줄 어찌 알았겠는가? 그러나 역시 그분들이 시험에 든것이다 나는 청소년이었으니. 살림은학교갔을때 비오면 영락없는것인데 된장에 가시가 나지않으면 100점으로 나 스스로 평가할 수도 있는것이고, 집에서 큰오빠가 권한대로 월반하여 중학교를 또 월반하여 고등학교 경기여고를 진입을 하지는 않았다하여도 수학 물리 화학등 그런 쪽으로 머리를 썼어야 했다는 것인데 현재의 핵문제에 대한 관념을 중2인 未년인 그 때도 현재와 똑같이 가질 수 있었기때문인데 속도감떨어지는 말투부터의 선생분들이 오셔 흥미를 떨어뜨리고 재봉수예 가사실습도 많이 하더니 梨女大편향으로 교육방침이 바뀐 시대역행이 있었으니 무슨 공부를 왜 해야하는지 하나도 모르게 적극적으로 방해하여 만든 것으로 내 스스로 평가외에 수도물많이 쓰면서 살림깨끗이 하는 세든 전라도 아줌마가 빨래잘한다고 칭찬한 이유는 그것도 내가 먼저 한국에서 시작한 빨래 다라이에 비눗물 버리지않고 담가 모아서 하면 쉽고 절약된다는 것이고 저녘때 미리 국끓여놓는것이나,몇년후에는 이면지 쓰기와 볼펜재활용으로 볼펜심만 살 수 있는것들도 아마 내가 그런 분위기를 만든것일텐데 이런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에서 성과를 냈어야한다는 말로 노벨 물리학상이 아직도 안 나온것은 바로 징벌을 받은 것으로밖에 볼 수가 없는 것이고 나는시대적으로 자연발생적인 부동산 투자를 한것인데 요즘의 광풍이라는 말이 돌고있는것 이와같은 내가 믿었던것과는 한것과는 다른 것과 모든 병폐가 

人王四維 千人得生 分國爭雄 三傑之人 南步老將 白首君王 七李相爭 勝利一人

인왕사유 천인득생 분국쟁웅 삼걸지인 남보노장 백수군왕 칠이상쟁 승리일인

  人은 仁으로 어진 4王으로 많은 사람이 생긴 것은 필요이상의 분국상태를 말하고 3金이 연상되는 3傑이고 북쪽이 아닌 남쪽에서 온 남쪽의 노장이며 백수는 흰머리가 아닌 酉金의 白의 머리라면 뱀의 군왕으로 우아한 여왕에서 성정이 변하는 것은 만들어진 어진 4왕때문으로 7人의 다스림들과 상쟁하여 一人의 승리를 하여----우리 아버지도 나때문에 할아버지는 아버지때문이었고,결혼을 안한 나때문에 회갑잔치도 나중으로 미루셨기때문에 9旬잔치를 그곳에서 해드리라 기대하였던 어머니도 큰오빠부자도 모두 없어지고 99년에는 영국여왕이 다녀갔을뿐으로 우리 집의 어진 4대왕을 만들어놓은것으로 나의 8자요소중 어쩌면 申金하나만 남겨두고5火와 무계合화 2火가 더해져 7火가 되는 시기가 바로 지금 이 때인듯싶은데 이승만 윤보선대통령을 달리 평가하면서 3김도 각각일 수 있지만 남어지7인의 다스림도 차이가 있으면서 같은 속에 있다고 본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인것이다.

三分天下 假鄭三年 道下止人 天破修身 口出刃劍 奮打滅摩 ?坐誦眞

삼분천하 가정삼년 도하지인 천파수신 구출인검 분타멸마 궤좌송진 분열된 세상에 엉터리 정치의 3년에 道를 갖고 내려가거나, 더이상 道가 내려가지않게 하는 사람이 하늘이 두쪽이 난다하여도 무너진다하여도 자신이 할 바를 道理를 칼보다 더 정확한 말로서 불의를 타파하여 진실을 노래하고

萬無一傷 鬼不矢口 六千歲龍 權炳之世 坐居龍床 妖鬼猖獗 火滅其中

만무일상 귀불시구 육천세용 권병지세 좌거용상 요귀창궐 화멸기중  아무도 죄없는 사람은 다치지않게, 시끄러운 곳을 귀신이 좋아한다니 귀신도 모르게라면 깔끔하게 일처리를 하여 6000년동안의 태양의 온도가 6000도라면 태양과 같은 존재로서 용상에 앉아 요귀가 창궐하는 것을 불로서 멸한다.                                       19. 弓乙論(궁을론)에서

  엉뚱한 해석들이 고의건 아니건 있기때문에도 힘써 쓰는 것이다.

진사년에 성인이 나와서는 3변을 한다고 하는 내용을 여러군데서 접하였는데 아래의 정감록에서 취하였다는 무학비결에 나와있는 경오년에는 용이 슬피우는 것을 보리라.라는 내용이 있는데 경오년인 38세때 큰오빠가  12월19일엔가 전화를 한것이 영계에서 한것을 몰랐으니 살렸다고 믿었고 살아있는 전제로 웃었으니 웃은 것이 아니었던것이었지만  내가 그 동안의 피로를 그러니까 14 5살때부터 큰오빠의 보호도 받았지만 그 이상으로 나도 고된 생활로 1학기를 마칠 즈음에는 오른쪽 귀의 귀지가 단단하게 뭉쳐서 병원에 가서 귀지만 불려 파낸것이 아니었고  종로 5가의 서이비인후과 서울대 의대출신은 내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귀를 생살을 뜯긴 것을 시작으로 그렇게 계속된 생활이었던것으로 56년인가 육사 그것도 전액국비의 학교의 입학좌절부터 시작되어 함께 온 오빠의 생활도 나만큼이나 방해받은 인생으로 소시민을 자처하면서 희망을 억지로 키워야했으면서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을 암으로 간 우리 식구들이기때문에 그렇게 영계와 전화까지 하는 상황이 왔을것인데  전화는 화가나서 확 끊었지만 그런중에도 살리고난뒤의 午未낙당인줄알고 그쪽 학교에 와서는 처음부터 경복궁의 뒤쪽 동네가 왠지 꼭 우리집 우리동네인것처럼 느껴졌다고 하였는데 외사촌과 큰오빠도 경복을 다녔다지만 딱 6년전인 8세때 같은 전주이씨인 엄마가 이승만대통령 연설을 들어보라셨고 “나 이승만은...”하고 시작되는데 스피커도 나빴지만 늙어서 무슨 말인줄 잘 모르겠다고 답하였고 그 얼마후 아현동의 고등학생이던 셋째오빠가 다녀갔는데 자신도 돌을 던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작용을 하였는지 그랬고 찾아줘서 고맙다면서 구름한점없이 너무 깨끗해서 볼 내용이 없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나의 운대로 나라의 운이 돌아간다는 말은 80년대중반인 그 몇 년전에 들었지만 그 보다는 어렸을때의 그 학교다닐때의 기분이 그랬었는데 그러면서, 2,3년만에 다시 사실을 의심하게되지만 아버지는 병원에 모시고 가는 시간을 놓쳐서 여읜것이었다하였고, 그 외의 모든 힘들었던 나와 우리의 일들은 다 잘못된것이라고 하였는데 사람들의 분위기뿐만아니라 우리 집에서도 부정하지않았던 느낌으로서의 나의 자각이요 토로였는데 그런 것들이 바로 龍의 눈물이었고 또한 같은 차원에서 뭔가 찾아야할것이 많은 조선 한국의 과거와 미래를 걱정하여 홍제천의 연유와 정신대의 치욕을 설욕하기 위하여 큰 그림을 그린다면서 거의가 어머니가 보시고 겪으신 기막히게 힘들었던 6.25의 전말을 들은 것을 전제로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을 말하였었는데 그런 등등의 것이 용의 슬픈 울음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알고보니 2월 16일 양력생일로 4세 아래인 김정일이 같은 생일이면서 41년생이 42년생으로 조작되었다니 문제이지만, 윤동주가 사망한 날이면서 12월 19일은 윤봉길이 결국은 처형당한 날이기도 하였으니 그 때 울지못했기때문에 더 수습이 잘 안되는 감정인데 또 얼마전인 2,3개월전에는 윤보선대통령이 돌아간 사실도 몰랐는데 그런 등등이 모두 마음에 걸리는 경오년이 된것인데 그 한 싸이클 전의 오미년은 일본에서 있었는데 그래도 공부하고싶어하였는데 나갈 수 있었으니 그 쪽이건 이쪽이건 받고싶어하는 문교부와 비슷한 문부성장학생으로  충분한 돈을 받고 갔으니 그 점에서는 화려?했다고 볼 수 있는 강요받는 전공선택등으로 만족하지는 못한 학교생활이었지만 그래도 많은 것을 접하고 50여개국이상의 학생들하고 함께 있는 기숙사생활이었기때문에 더욱 그 동안 받은 교육과 그중에서도 (반공) 반일교육의 전체와 밖에서 객관적으로 보이는 한국의 총체적인 모습과 문제도 볼 수 있었고 전쟁난다고 미국으로 망명한다는 사람들도 있다는 여러모로 상식적인 한국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 전쟁언급을 듣고도 전과는 달리 일축하지않고 만에 하나 가족이 없이 나만 혼자 살아남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해보니 공부를 제대로 못마쳤으니 그곳에 있기는 싫어도 귀국날짜가 뒤로 자꾸 밀리다가 결정하는 계기가 되어 들어온 날이 5월 11일이었는데 7일후에 광주사태는 났지만 그 날이 신채호선생이 80년 출간하라고 비결을 준 환단고기가 발간된 날이든가하여 의미를 두고 있는데 그때 일본에서 얻은 감기로 병원약을 먹을 수록 기침이 너무 나오면서 나빠져서 귀국하였는데 마치 내 목가래가 걸거덩거리듯이 들어와서 바로 병원입원하기전에 12.12가 들들 덜거덩거리면 한밤에 수색동네를 지나갔고 딱 12년간 결핵약을 아닌데하면서도 먹은 것으로 경력이 하나 더 늘은 셈이고 2002년 장감차사건에서 아예 내 이름이 (여자)조카아이이름과 함께 나오면서 2003년에는 완전히 나와 세상의 관계를 알게된 해가 되는것인데 38세 39세때 그렇게 웃었다기보다는 울고나서 15년이니 15진주가 지났다고 봐도 되지만 맨처음부터 58년이면 73세가 되는데 화성의 지구와의 **주기가 7만 3천년이란다. 지난 세월이 억울하여 38세부터 계산하고싶었는데 73세가 지난 74세가 되는 2026년에는 동양에서 서양을 구하러 사람들이 간다고 하니 그런가보다하지만, 60년이나 70년간이 아니고 58년이라하여 눈에 익는데, 집짓기 포기한후 한동안 없는 중에도 현금 58만원을 부적처럼 더 많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지니다가 나도 모른다 그만하면 되었다싶고 잘못된 주민등록번호로 끝자리 58번을 몇십년이나 가졌었으니 그것으로 돌리면서도 쓰기 시작하였는데 宋나라 성리학의 기초가 됬다는 주염계의 태극도설의 123字중 전반부의 58자는 우주생성을 從的으로 설명한 내용이 되어 그것으로 해석을 하였었는데 그것도 어쩌면 그대로 상관이 있을것같기도 하면서 순순히 15세부터 계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본다.                                                                           위에서 경오년만을 언급하였는데 그 한해전인 기사년부터 시작하여 오미년이면 89년부터 2003년이면 15년편에 해당되는데 그 동안은 더욱 내가 한순간도 긴장을 풀지못하였던 시간이 되어 오히려 기록을 빠뜨릴 수도 있겠는데 대충이라도 짚어본다면,                                                                                             기사년이면 89년으로 쥐처럼 훔치는 도둑을 면하기 어렵다인데, 민자당의 3당합당이 이 때 이루어지지않았나싶고, 김일성이 김정일에 세습형태로 정권이양을 하면서 여러사람들이 상하였다하고, 큰오빠대신에 작은오빠를 내가 88년에 찾은 적이 있기는 하였지만 별 성과가 없어 그뿐이었는데도 언론에서건 아무런 연락을 대학에서도 복직관련으로 받지를 못하였는데 87년인가 바뀐 총장한테 언질비슷하게  받은 것이 있어 조교수발령받고싶으니 암이라고 수술받은 큰오빠걱정을 해가면서 하니 늦어지는 것이었지만 그것을 준비하는데 와서는 작업을 들여다보면서“가기만 하면 된다”면서 밑도 끝도없이 말을 하였는데 나는 귀담아 듣지않고 있다가 부산의 단골호텔?이 된 해운대근처의 그곳으로 가서 작업을 한다고 갔다가 잡념으로 잘안되고 비용이 부담되니 그대로 돌아왔는데 집에 오니 다가구주택으로 살고 있는데 전기세가 나의 부담으로 10배는 더나와서 누전검사비만 웃짐지고 꼼짝없이 낸 사실이 기억되고 그 오빠한테 내가 권하여 3분의 1지분을 산값에 주었는데 3년뒤에 그곳에 집지으려하였는데 자기 맘대로 그 땅을 매각한다고 복덕방에 내놓았다는 말을 간접적으로 듣게 되어 속이 많이 상하였고 내가 직접 집지으려 하였던 내 지분만 남은 그 땅도 그 오빠가 특별조치법을 이용하기도 하고 무단으로 이것 저것을 무리를 하여 남은 문제가 수두룩하지만 그 때 또 환자로 누워있는 형과 어머니한테 협박하듯 무리를 하여 나만 고집을 피운 결과로 남은 것이 그것이었으니 그대로 계속되었다고 봐야하는데, 앞의 관련자들이 모두 쥐달생일이거나 쥐관련 흐름의 사주인것을 기억하게 되고, 우리 집의 아이들이나 들어온 사람중에 쥐달 날의 사람들이 2인이 있는데 말하기 거북한 일들이 있었고, 충남 대전의 어느 동사무소의 공문서 위조를 접하여 놀랐는데 거짓인줄 알았기때문에 우리 집의 나의 그후의 호적이나 동사문소 문서나 등기문서등을 하나도 믿지못하게 된 것으로 그래서 더욱 나쁜 상황이 된 것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로 엄중하게 처벌할 일로 친구?관계는 큰오빠가 살아있다고 믿는 상황에서도 5년여간 결국은 망신과 모욕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게 당하면서도 참고 있었지만 더 이상은 더 잘못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의 실수를 인정하고 선언을 하였는데도 보이지않는 스토킹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한데 수원근처의 화성연쇄살인사건부터 시작하여 현재의 그와 비슷한 사건과 가족관계인양 옷갈아입는 상황까지 아는체하는것등을 증오 저주할 때 일어나는 사건으로 정육점여주인의 남편살해사건같은 것이 그렇고 우리 가족들 안부와 관련하여 아는체하였던것같은 것이나  바로 앞에서 말한 공문서위조같은 것과 관련하여 벌어진 일들과 연관하면서 더욱 그런데 그러면 그 가족까지 해를 입은 사건들이 있었던것으로 불쾌하여서도 말하고싶지않은 것이고 현재의 반백으로 변한 나의 머리는 반이상은 한시도 틈이 없이 방해를 하여도 누구한테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 그렇고 , 88년에 발견된 소나무 재선충도 이때부터 번지기 시작하였다.                                                                     신유년이면 92 93년인데 군사가 사방에서 일어나고라면 -- 학생들의 데모가 극심하였는데 분신자살의 서강대학생이 있었는데 데모를 막기위하여 많은 군인전경이 동원되었고 경찰들이 희생된 동의대사건이 이때였겠고,그 뿐아니게 군에서도 아직도 의문사가 속출되었고 양심고백한 군인은 더 나중이 되던가하게 일반인들에 알려지지않은 것들이 많을 것같고, 개구리소년들의 실종으로 군인들이 연인원 몇십만명이 뒤졌다면 아마도 그런 것들도 정상적이 아닌 일로 아직도 미궁인채로 있는데 해당이 될것같은데, 이북에서는 어떠했는지 유엔동시가입후이니 권력이양이 쉽지않았겠으니 한창중이었다고 볼 수 있는지, 이쪽에서도 아직도 군인들이 잡고있었으면서 끌어들인 김영삼을 세우기위하여 암투가 있으면 군인이 설쳐대는 것이고, 나는 큰오빠를 살린? 경험을 그리고 예방과 치료와 회복유지의 심리치료를 곁들인 카본광선치료를 한방병원형태로 개업한다고 바쁘게 돌아다녔고 자전거타기운동을 하였고 내조카가 그 때 사고를 당하였으니 군인정권놈들의 짓거리였으니 바로 가장 큰 문제인것이다.  내 애완견도 이 때 S자로 와서 죽였는데 살풍경으로 군인 아닌 군인놈들이 원망스러운 일이었다. 얼핏보아 30대중반인 일반인이었는데도 그렇다.

  아버지의 사고사를 냉해가 있었던 93년에 키우던 닭이 감기걸렸었고 병원에 갔었고 약기운이 부족하면서였던것같은데 그 모습에서 어떤 경험을 하였기 때문에 의심을 하면서 몇년전부터 현재 바로 오늘날의 AI 독감 H5-1은 꼭 아버지가 안계셔서 힘들게 살았던 5남 1녀 우리를 말하는 것같으면서 94년 겨울에 대검에 수사요청을 하였는데 그뿐으로인데 아버지사고에 대하여 내 심정상태에 따라 발생하고 정도를 달리하는 병원체인데 확실한 해결이 있기전에는 백신발명도 어려울테고 계속되는 양계피해뿐만이 아니고 사람한테도 피해가 생길 수 있는 것으로 잠재 잠복하고 있는 병변현상인데, 또 다른 조카아이도 기차에서 떠밀려 죽을 뻔하였으니 그런 분위기에서 감이 잡힌 의문속에 있는 아버지의 사고인것이다.

 

그래서 나한테는 93년 여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는데 너무 힘든 93년전후가 되는데 좋은 뜻으로 병원한다고 농협과 신탁은행까지 갔었는데도 불가로 사채를 빌렸는데 선이자떼면서 또 다른 무엇은 만약에 이자를 날짜를 어기게 되거나 했을 경우에 대납을 한다면서 이유를 말하였기 때문에 애완견잃고 두분불출하는데 약속과 달리 1월 1일 아침에 전화를 한 錢主의 등살에 다른 곳은 전세가 귀하다면서도 전세가 나가지않은 그 집인 또 다른 담보물건인 그 집이 팔리지않을것은 뻔한 일이니 몇일을 굶고서 작자가 나왔지만 계획에 없었던 매매를 하였는데 굶는 방법?을 택한것은 조카아이들 사고와 애완견사고가 있었는데 애완견사고는 내가 당한 사고였는데 꼭 장난쳤는데 잘못된것처럼 된 상황이었는데 얼마전에 택시밑으로 나오고 차는 지나올라간 적이 있었는데 그 놈은 지가 차밑에 있었던줄도 모르게 나만 놀라고 무사하였기 때문에 그런 장난인줄 알았던것이었게 그랬고,강남으로 돈 빌리러 가다 S자로 와서 그랬던것은 당시는 몰랐지만 그랬으니 병원개업을 포기하고 티코차는 무면허운전이라고 연습규정대로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랬고 강아지를 죽게 한 차가 싫어 티코차도 포기하고 자전거도 내다버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조그만 차에 다시 마음이 가면서 이전서류를 모두 다 넘겨주었으니 그냥 돌려달라고하기에는 미안한것같고 혼잣말로 조그만 접촉사고라도 나서 흉이 지면 그래도 나는 괜찮으니까 그렇게해서라도 돌려받았으면하고 말하였는데 다음 날도 아니고 아마도 점심때인가 그랬는데 오후 5시쯤인가 일산 식사리에서 조그만 접촉사고가 났다고 상대차여자손님이 찰과상을 입었다고 그 사채금융회사의 직원인 군제대후 별로 경과하지않아서 사회냄새가 그다지 나지않는듯하게 조금은 내조카를 닮은듯한 인상인 보성출신의 청년이 전화를 해왔는데 아직 마음뿐으로 그대로 침체되어 식사도 제대로 하지않았으니 외출이 싫어서 거의 본능적?으로 싫다고 내가 왜 나가느냐고까지 하면서 조금 회복되어 나왔던 마음이 쑥 들어가 버렸는데 그것이 큰 문제로 진행이 된것이었지만, 그 때 바로 그렇게 혼잣말로 말하자마자 사고가 났다고하였으니 모두가 연극으로 믿지않았던것이었는데, 1월 1일의 그 사람은 사채사무실로 연락하라하여도 경매를 진행시키겠다고 하고 기차에서 떠밀려난 사고는 내가 애완견사고를 당해서 그랬는지 그런듯하여 전두환 노태우의 살벌함이 느껴지면서 대통령을 하겠다고 그러는 것이 나를 우리를 지키는 길이라고 일어난것이었는데 살고있는 집까지 두군데 담보를 모두였는지 경매를 진행시키는데 경매로 진행하고 있는 것도 부당한데 그 부동산이 쉽게 팔리지 않을테니 평소 오랫동안 구독하던 동아일보꿈나무재단에 남는 것은 기증한다는 각오까지해가면서 단식을 하였는데 매매문제만이 아닌 이유였기 때문에 당선무효소송을 제기하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렇게는 싫다고 하였고 내가 강아지한테 하는 의식을 알았나본데 증산교관련으로 데모현장에서인가 대학생아들을  잃어 원한을 가지게 되었다는 초로의 남자가 사겠다고 나온 사람이 있었고 매매는 그 다음의 다른 사람과 이루어졌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강아지를 장난치다 그러허게 된 것으로 알고 경상도 사람들 모두 싸잡아서 욕을 하였는데 그 얼마후 내조카아이가 기차에서 내리기바로 전에 떠밀려 떨어진 사건이 있었던것이었고 애완견은 장난이 아니었으니 100% 맞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 때 어떤 형태로든지 나서지않은 것이 후회가 되게                                                                 94년 95년은술해년에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는 --- 94 95년에는 지존파니 하여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은 아니지만 쇼킹한 일이 있었고,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하였고 이북에서는 김일성이 또 작은 오빠가 그랬다는것인데 인문계고등학교도 못가게 입학시험도 없애고 추가모집형태로 경기여고를 내세워 떨어뜨린것을 눈치채면서 정보부 안기부의 공작을 눈치채가면서 일본에 갈 때 “말하고라면 이북을 갔다와도 좋다”는 말을 들은 것이 모두가 아니었고 선택적으로 들었던 나였다는 것을 확인하면서는그렇게 나를 찾아가는 과정과 바로 비례하듯이 단 몇십일만에 치매 완전치매 뇌졸중진행으로 94년엔 엄마도 돌아가신것이었는데 비로서 나를 제대로 찾아가고 있었는데 즉, 최소한 문리대 궁극으로는 법대를 못가게 한것을 알게 되었는데 인정하지않는 자동차 무면허운전벌금을 물려서 도망가게 하는듯하였지만 그렇게는 싫었고 돈도 없었지만 못낸다하였고 그렇다면 구치소에 가야한다고 해서 경찰서에서 자해를 하였는데 그 경찰서가 아마도 내조카 사건도 처리를 한 본부였는지 그랬는데 앞에서 싸잡아서 욕을 한것이나 자해행위를 그곳에서 한것이나 마찬가지로 그럴만한 대상이요 장소였던것인데 그리고 나서 중간에 나온날 바로 다음날 경찰의 날에 성수대교가 무너졌고 95년에는삼풍상가가 날라갔고 상인동에서 대구지하철이 폭발하였고 김일성이 죽고나서 시작된 홍수가뭄으로 여력이 없는 이북에서는 바로 사람들이 그때부터 상하기 시작한것이었는데 김영삼의 업적으로 그것도 내가 집을 팔고 사면서 느낀 것이었고 제기한것이지만 부동산 실거래가신고제가 시행된것이었고 쿠데타는 처벌되야한다고 내조카가 다친것이나 내가 학교에서 쫓겨난 이유나 과정도 알게되었기 때문에 강하게 주장한 것이었는데 내 나이대로 주역괘도 흘러가는 것을 확인해도될것같은데 순진하게도 다시 법공부를 4년간하겠다고 애쓰다 집에서 7월달에 쫓겨나온것이었는데 그래도 그해95년말까지 6개월간은 그런대로 나라도 제대로 굴러갔나본데 나는 도저히 그대로는 일본풍이어서도 붕어빵장사는 못하겠고 때이르게 젊은 나이에 얻어 걸렸을 네째오빠의 당뇨병에도 좋을 비무장지대의 청정지역에 농사짓는다고 일찍 들어간 친척도 있으니 직접재배까지를 계획하면서 5곡통단팥떡 즉석떡기계를 개발한다고 매달린 동안이 되고 돌아가신 어머니하고 통화도 하였고,                                                                                                                           96년 97년인 자축년에는 오히려 정하지못하고---그런데 뭐든지 한번 잡으면 끝을 보는 나인데 그것도 순조롭지못하였고 나를 끔찍한 곳으로 어쩌면 벌써 예비하여 둔것인듯한데,  신원리집 건너 동네인 원흥리땅에 어머니가 농사를 지으셨는데 어머니는 내가 믿지않으면서 안오시는데 그 땅에 나중에 사기경매한 그 사람이 벌써94년에 작물을 심어 고발을 하였는데 돈을 사람을 놀리듯이 입금시켜 계좌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불법행위이니 은행측이 되돌려줄것을 요구하였는데 오히려 신고를 당했는데 파출소장이라는 작자가 그 때 지갑을 잃었다고 한것이 이유가 되었는지 무슨 보호소인가를 가라고하던가하여 너무 엉뚱하여 왜 그런 말을 하느냐하였더니 그곳이 어떤 곳인지 구경을 하라던가하면서 말을 얼버무렸으니   이미 그 땅도 사기경매할 준비가 되었고 나몰래 진행이 되고있던 시점에 그 국민은행 시청지점에 간것이었고 집에서 쫓겨나기는 아주 훨씬전에 그런 소리를 들었던것이었다. 모든 것을 믿지못할 상황이었지만 고등법원에 제날자에 재판신청하여도 작성중에 시간이 넘어 당직실에 접수시켰는데 날짜가 지났다고 기각을 당하는등 법원 공무원이 왜 왔는지 와서는 웃으면서 이번에는 낙찰된다하니 더욱 믿지않으면서도 제기한 이의신청도 안통하였으니 총체적으로 사기경매낙찰자의 자동차유리를 깨면 명도절차도 없었던것을 주거칩입죄로 고소한 낙찰자가 점거하고 있는 내집에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결정을 형사한테 바로 받을 수 있다하여 마당에서 묻어준 애완견도 어디에 치웠느지 마당에는 불을 지펴서 마치 그 속에 강아지가 있게 보이면서 히죽거려 사람들이 내가 가진 쇠스랑으로 머리를 찍으라고 하지만 어디에다 옮긴것같으니 그렇게는 못하고 안하였고 나중에 10만원이상이면 해당된다하여 한번 한 파괴행위였는데 고소인 피고소인 함께 가야할 사람이 싹 또 빠져버리니 내가 또 불리해지나싶은데 경찰서가는중에 정신병원을 들러서는 허진이라는 새파란 경찰이 제가 대신 들어가야보다라면서 종이한장 갖고 나오더니 구청에 들렀고 자금지원요청을 하였었고 과장인가가 여자인데 동사무소하고 같은 소리였고 그곳 수용소를 또 들렀던 것이었고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서 안된다한 원장이었고 내가 또 경찰에서 불리하게 되는것이 아닌가하고 미적거렸는데 경찰은 그곳에 있으라하고 가버리고 나는 거기서 그대로 경찰하고 갈라지는 것으로 보는데 마치 우리에 갇힌 강아지들이 환호하듯이 손을 흔들어대니 대통령하겠다고 일어섰던 사람인데 먼저 들어본대로 한번 어떤곳인가 구경을 하라고 말하면서 놓아주지를 않은 셈인데 들어가서 한번 돌아보았는데 혼자만 나간채로 돌아서 마주하고는 집에 연락하면 누가 오느냐고 묻는데는 이미 만나기가 쉽지않아진 셋째오빠였지만 그렇다하니 그러면 여기 있으라하면서 감금을 당한것이고 여러번 여러형태로 그곳을 빠져나가는 형식으로 뭔가를 만드는데 체질이 아니어서 못하고 단지 단식을 해야하는데 그 때만 해도 병원에서 너무 당한 기억으로 병균으로 오염된 주사바늘이 무서워서 기피하면서 식구들을 기다리렸는데 주사바늘도 그랬지만 처음부터 아주 말도 안되는 곳으로 여자들 목욕하러 들어가 벗은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에 분개하여 나가달라고 하였다가 난생처음으로 폭행을 당하였고 모든 설명을 다하여도 안통하고 한트럭분의 짐이 거의 그대로 비를 맞으니 그것을 처리하고 오겠다고하여도 안통하니 초조하여도 워낙 잠은 잘자는 사람인데 순회하는 정신과의사라는 작자가 초조하니 혀가 하얗게 된것인데 내보내주는 대신에 수면제를 강제로 먹게하니 생생하고 펄펄하던 활동력이 그대로 죽어가면서 감옥보다도 더 나쁜곳인 것이 잠자는 시간외에는 누워있으면 안되고 우선 한번 먹고 자면 꿈도 한번도 못꾸게 완전히 죽었다 살아나는 약을 매일 아침 저녘으로 두 번 먹이고 아침일찍 모두를 한사람도 남으면 큰일이게 모두 교회로 몰아대고 먹는 것도 더 형편없고 비위생적이고 집에서도 5일인가하였지만 한마디로 말도 안되게 들어가진 구치소에서는 몇 번이나 했고 완전단식으로 1주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도 단 이 삼일이라도 아니 하루라도 단식을 해볼 수 있는 여유나 여건이 안되는 곳이 그 곳으로 나중에는 일어설 수가 없게 다리의 신경이 마비가 온것도 해독제인가를 넣지않아서라는데 그것도 또 잘못한것이었게지만 그것도 잠깐이었고 나만의 증상인것은 오장 육부의 장기만을 제외하고는 팔다리 온몸의 신경이 흥분되어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막 왔다 갔다하고 계단을 오르내리던가 무언가를 손동작으로 하는 작업인가를 하여도 누르기 어렵게 팔다리가 쥐가나는듯하여 견딜 수 없게 되면서는 큰오빠를  다음에는 어머니가 오시기를 기다렸는데 작은 집에 가지는 않아도 전화를 하면 친형제는 만날 수가 없는데 돌아가셨다고만 말하는데 난 분명히 통화를 하였는데 너무 괴로운데도 안오신것인데 단식을 못하는 이유가 주사바늘때문이었던때인데 그 때 제일 고참여자간호사의 큰오빠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여 크게 상심을 하는데 바로 고려병원의 이상종과 이름이 끝에만 다르게 같은 사람이었고 나중에는 엄마를 기다리면서는 막내딸이라는 나이가 제일 아래인 아주 씩씩한 여자간호사가 아직 70세에 불과한 엄마가 돌아갔다고 하는데 울듯하면서도 바로 가지않고 일을 마치고 간것도 조금은 돌아가셨다고 했을때 황당해하면서도 결국은 내가 믿지않고 있었던것처럼 이상하였고  대선이 가까와진 97년 추석에 오빠들이 오는 것같은 분위기를 주더니 소지품갖고 가려 챙겨서 또 펑크가 났고 그 다음은 그대로 아니 그 이전에 포기한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선거즈음엔가부터 오빠는처음에 한번 통화를 하였나한것이 전부였고 집에서 엉뚱한 사람이 왔는데 내치지않은 것이 화근이 됬는지 12월초인가였는데 그렇게도 어렵게 버티었다가  희한한 모습으로 망신주러 온것처럼 한것을 외면못한채 대면을 한것이 바로 거지가 된것인지 나는 거지팔자는 아니라던데 그 때부터 외환위기가 온것이었는데 그러고도 8개월이나 끈것은 확실한 정권출범을 의식한것인지 엄마는 안오시고 그 싫은 사람만 정기적으로 오듯하는데 바로 옆방에서는 성악을 전공하였다는 간호사 엄마처럼 70세정도로 아직 고상한 분위기가 남아있는 이화여대와는 다른 오래전의 그 명문여대출신인 그 사람이 설사를 하는데 찬물로 처리하고 링겔을 맞추고하는데 망신스런 모습에 동정하였고 아마도 우리 어머니가 설사병으로 돌아가실뻔한 사실과 아직도 요조숙녀이시다고 癸未월생이시라서였는지 좋지못한 집안분위기에서도 깔끔한 당신관리로 곱게 늙으셔서 다행스럽고 자랑스럽게 생각한 어머니의분위기가 어우러졌는지 이상하다 왜 안오시지하면서 어떻게 정말로 되셨나하고 요즘에 우담바라가 엉뚱한 곳에서 엉뚱하게 피듯이 상상을 해보았는지 그대로 그 설사병은 꽤 오래전의 일이었던것같았는데 그후 아이들이 함부로 대하는것을 나도 지쳤으니 보는대로 지켜주지 못하면서 그랬는지 바로 옆방인데 돌아갔다고 하는데 여자들이 노소를 합하여 150명정도 되던가였는데 모두 웅성대고 쇼크를 받는데 불안하고 무서워졌고 그런 말을 하여도 무덤덤한 그 여자였지만 내가 무조건 그곳을 나가게만 해달라고 매달린? 결과였는지 96년 5월 2일에서 98년 8월 11일까지 2년 3개월간 멀쩡한 사람들 완전히 망치는 곳으로 단 5%만큼의 인원도 그곳에 있을 이유가 없는 사람들로 그곳도 일터라고 하기에는 너무 정상적으로 가장 착한 건강한 남자사람이 또 아주 착한 여자아이가 갑자기 간질을 하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하였는데 그런 곳으로 남긴 반찬 다 모았다가 다시 또주고 노동착취가 탄광 막장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게 있는데 남녀모두가 그런 곳으로 인권이라는 말은 사치로 감옥보다도 훨씬 못한 곳이니 여자들에 대하여는 나쁜 일도 있었다하는데 한번 성질이 살아있는 나보다 몇살아래의 이대출신을 주동으로 하여 "다 나가라!...."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을 한번쯤 시도해보려하여도 맨처음에 내가 폭행당할때 아무런 도움이 안되던 그 여자들이 떠올라 그만 확대를 시키지못하였는데, 사회복지어쩌구하는 것을 도대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가족주의라서가 아니게 못된 곳이고 어디나 비슷할것으로 노인요양시설소리를 들으면 그냥 슬퍼질뿐으로 다른 것은 몰라도 사회와는 별도로 최소한 가정은 한국의 전통적 가정은 세계적 名品으로 꼭 복원되고 지켜져야한다고 맹세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사회분위기도 제대로 좋아질것으로 보는데, 일단 작은 집으로 와진것인데 이제는 힘이 다 빠져서 아마도 모두가 살아있었다하여도 그 시점에서는 떡기계소리만 들어도 도망을 갔을것같게 지쳐있었는데 대문을 닫아버리던데 그렇게 되면 그 집은 내집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으로 아무리 새집으로 고쳐지었다하여도 그렇다. 바로 그 기간이 44卦 45卦에 해당되는 96년과 97년이 되는데 들어간 해인 44세때에 "遠民"이 보이고 선거가 있던 45세에 "王假 除器"가 보여 그럴듯한데 너무 지독한 휴가를 주면서 국민들과 사람들과 멀어지게 하면서 기량을 빼앗은것인데 밖에서 버틸때 전두환과 노태우를 바로 사형을 시키는것이 좋으냐 어떻냐고 물은 말에 그렇게 급할 필요는 없다고 하였고 나중에 그 도깨비집으로 자신도 초대해달라고 하였던 사람도 있었는데 法에 대하여 제대로 눈이 트이는 94년바로 그때에 不法을 나한테 恣行한것인데 누가 그 피해를 받은 것인지 나만 받지않은 것으로 바로 97년에 일어난것같겠지만 아마도 그 이전94년도에부터 그런 조짐이 있었을것인데 94년의 그것으로 경제는 구체적으로 확인못하였지만, 보름이나 한달을 불명예로 빼앗기기 싫어 1주일씩이나 단식을 하였던 내가 애초는 주사바늘이 무서워서 단식을 못하였으니 삼성자동차인가가 문제가 되어서 외환위기가 왔다는 사실과 그 시점이 7월이었다면 그렇게 아주 포기할 즈음이었겠는데 쾀도의 비행기는 8월 6일에(누구의 음력생일이요 지하철사고에서 가장 많이 엉켜서 발견된 8호중의 6호) 떨어졌다는데 신기하의원부부가 거기서 희생이 된것도 왠지 나하고 관련이 있는듯한데 아마도 그때도 辛 申씨 성은 내가 챙겼는지도 모르겠다. 또 한사람인 9번째인가에 되었다는 (경기)대앞에서인가 라면분식집까지 하였다는 그 신씨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복지부에서도 한번 왔었고 명도절차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서류상으로 아는 졸업한지 얼마안되는듯한 나한테 왜 기숙사가 있는 공장에는 못가냐고 한 그 경찰관도 왔었어도 더 이상 실망하는것이 차라리 모욕스러워 그냥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분개도 사정도 하지않았었는데 그 즈음도 어떤 사건이 일이 벌어졌을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96년 97년은 오히려 정하지 못하고라는 내용중 결국은 간염이 왔다갔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버틴 것이 헛수고였는데, 당시 그 폭행한 사람이 3일간만 굶으면 내보내주지하고 밖에서 언뜻 멀리 들린 것은 나한테 한 것같으면서도 그냥 기다리면서 지치고 포기하면서 내가 한번 단식을 결정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정하지못하고-라는 그 한 구절에 너무 잘 맞는데, 97년의 김영삼은 나도 아니었고 오랜 투쟁동지였던 김대중을 밀었던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후원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이지못한데 그렇게 나의 운이자 국운으로 오히려 정하지 못한 결과가 그런 것이었을 같다고 생각될만큼 너무 이상한데 치적이라고 하는 것들이 주로 전반에 이루어졌고 후반에 해당되는 나는 그곳에서는TV도 못보고 단절된채로 있었던셈인 그 기간에는 시쳇말로 죽?을 썼는지 특기사항이 없는데 대검에 제출한 문제를 그대로 놔둔 그 사람의 직업운은 나와 같으면서 12간지로 해당되는 관궁이라는 것이 나는 乙卯생이신 우리 부모님의 그 乙木이 관궁에 해당되어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일찌기 (우리) 부모님이라 쓴 최초의 중학생일것같은데 그 사람은 자신한테는 비치지도 않은 (자신의 부모는 어쩐지는 모르지만) 丙화는 내가 듬뿍 가져서 특징인 나의 그것이었으니 혹시 그렇게 봐주다가 -관심을 갖는 것이 봐준것으로-감옥에서도 구경하던 신문한장 볼 수 없이 완전히 단절된채 있었던 그 동안에는 아무런 일의 진척도 없이 힘들게 들인 쿠주역들을 풀어주는 盲事라고밖에 볼 수 없는 일을 하여 또 다른 문제를 남게하였으니 환란이 온것인데 자신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마음은 그렇지않아서였는지 잘 모르고 있는것같은데 순진하게 법학공부하겠다는 나를 집에 그대로 있게 하였다면 한단계 올라가는 국운으로 치적도 필적만하였겠는데 최소한 떡기계를 만들겠다는 나를 그대로 할 수 있게만 하였어도 자신의 가족이나 국민들이나 모두 안전하였을텐데 그런 중에도 그래도 김대중후보가 당선된것은 정말로 다행이었다고 생각되는것은 "중이 제머리를 제대로 깎을 수 있는 것인지는" 별개로하고 것은 그 쪽 사람들때문에도 그랬고 그렇게 되는 것이 오랜 숙원이었고 희생이 있었던 곳으로 제때에 풀어야 좋은것으로당연하다고 생각됬기때문이었다. 국민이 일시에 게을러진것도 아닌데 일시에 국가가 거지가 되는 것자체는 구조적 문제였겠지만 그렇게 정하지못하고 있다가 그래도 어딘가가 삐끗하여 외환위기가 온것이 바로 삼성에 자동차까지 실어주려한것에서 기인했다는 것이면 올것이 온것같기도 한데 국민들은 너무 억울한 것이었으니 책임은 삼성쪽과 함께 져야할 것이다. 한때 노이로제처럼 되어서 정독도서관을 다니면서 안국역의 출구가 외환은행쪽이라서 "안국을 외국으로 바꾼다?"하면서 왠지 나쁜의도를 인정하는듯이 기분이 나빠서 돌아다니고 하였었는데 , 731이라는 숫자를 나한테 매겼다가 지운것을 보았고 33-18번지의 그 신원리집은 앞에서 살던 사람들도 별로 기분이 좋지않은 가족?관계의 사

앞으로 무엇을 할것인가?
2006/11/22 오후 3:56 | 기본폴더

【2】;격암유록 갑을가(甲乙가) ?. 기죽이고 살아라!

▲;其竹其竹 去其竹 前路前路 松松開 名振四海 六十一.
;기죽기죽 거기죽 전로전로 송송개 명진사해 육십일 큰오빠를 기사회생시켰다고 믿고 이제야 안심할 수 있었고 또한 그 성취감에 1991년初 虛空?에 대고 나와 우리 한국 그리고 이웃나라와 세계에 대하여 여러가지를 말하였는데, 한일관계는 중요한 문제였고 한국을 소나무 일본을 대나무같다고 한 이유는 일본의 문화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 무사들733이었기때문이었고 아무리 임진왜란에서 왜군을 물리쳤다하여도 다시 35년간의 강점기가 있었고 그 뒷그림자가 아직도 있었기때문이었는데, 누군가가 당시 대나무칼이 소나무를 찌르면 송진이 묻어 칼을 못쓰게 된다는 말을 하였던것같은데 일리가 있다고도 생각되었지만 소나무의 향기와 그외의 역할에 가까운 효용성은 대나무와 비유가 되지않을 것으로 대나무의 단순성인데 4계절 그 자리에 있는 굳은 절개가 소나무라면 대쪽같은 선비라는 표현에서는 가장 송죽이 이웃하였다고 볼 수 있겠는데 택견 태권과 가라테 유도, 씨름과 스모에서도 외국인들이 보면 비슷하겠지만 남성과 여성으로 비유될만큼 차이가 분명한데 운동에 있어서는 남성적인 것이 더 운동적일것같은데 씨름이 비인기를 지나 아예 존폐위기에 놓인듯한것은 크게 잘못된것으로 그것이 모두 돈때문인것같으니 돈하고 씨름을 해서 이겨야만 살아날 모양이다. 스모보다야 훨씬 분위기가 있는데 작전이 필요한듯한데 이제는 아무것도 가르쳐주고싶지않다. 모두가 일본인이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한국적이고 히데요시는 일본인같다고 하니 크게 웃은 어른도 있었지만 노부나가라고 보다 살벌한듯한 그들말로 短氣라고 표현할 수 있는 청년도 등장하여 어색하고 불쾌하였던 적이 있었지만 이모두도 소나무와 대나무의 분위기로 표현해볼 수 있겠는데 이런 예언을 소나무재선충만 극성이고 대나무가 죽기전인 작년에 접했다면 현실감이 별로 느껴지지않았을터인데 작년에 재선충백신을 발견하였다하였고 지난 겨울추위때문에 대나무가 뿌리만 남고 모두 누렇게 변하여 죽는데 원인이 파악이 안된다고 하였는데 아마도 소나무도 그런 기상이변이 있었기때문에 더욱 많은 피해로 번졌을것같아 두려울 지경이었는데 그래도 백신을 발견하였다니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데 어떤 尹씨인데 대구지하철사고현장의 구석에서 차마 말못할 무언가를 목격하고 불교의 사리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뒤집을 수 있을만큼 과학적인 이유를 제시한 사람이었으면서 그 백신을 발견한 사람으로 지난해 늦게인가 올초에 소개된 어느 대형병원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사람이었는데 성실히 산 사람으로서의 성과인데 나의 피해의식이 절대로 아니게 그런 능력자라면 그런 일자리만을 그렇게 오랫동안 지켰다는 사실이 잘못된것으로 그게 수십년 동안의 한국의 실정이었다는 주장을 하고싶으면서도 크게 위로가 되었고 아주 크게 한 짐 던듯하였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재선충이 더 이상 진행이 되지않도록 환경을 잘 지켜야함은 더 말할 나위없는 것으로 예방의 과제는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고 대나무 이야기인데 대나무는 모두 키가 같게 만들어놓았다고해야 할 것으로 대나무는 올해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결과가 된것인데 그것도 뿌리가 말대로 모두 건강할 경우이며 그 병의 원인도 밝혀져야 하는 조건이 남는 것인데 일본은 과거청산을 하겠다는 의지는 그다지 별로 보이지않으면서도 안보리진출에만 혈안이 되어있는듯하여 위태롭게 보이는데 한국에서의 이런 나무들의 생태에서 보이는 현상을 참고로 하였으면 하는데 일본어의 短氣는 성질이 급하다는 의미로 일본인 사이에서 생긴 말이지만 한국사람과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표현이 될만큼 특징이 되는데 그렇다고 한국인이 기가 그렇게 누지냐하면 그것보다는 표현방식이 좀 더 완곡하였을지이겠는데 이 예언을 앞으로 한국사람들은 "기죽이고 살라고"로 해석한 사람도 있는데 좀 더 넓은 땅에서 살게된다면 자연 기처리가 되어 좋을듯싶은데 그런 결과가 올 때까지는 보다 이성적일 필요가 있겠는데 과제와 의제자체는 여자들이 들어와서 생긴 문제때문이긴 하지만 남자형제 많은 우리 집 가족회의는 형제이기때문에 오히려 분리하기 어려운 감정때문이랄 수 있겠지만 국회의원들이 하고 있는 행태를 보면 그래도 수만명 수십만의 대표자들의 모임이라고 보기 어렵고 보통사람들 민간인들은 자영업자가 너무 많은 것이 바로 그런데서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하게되는데 그래도 희망적으로 보고싶어서 이 글을 쓰는데 비교적 편견없이 해석을 하고자하는 곳에서 이 예언 귀절을 퍼왔는데 희망의 시대 시간을 너무 멀리 잡고 있는 점에서도 다른것같아 말하게 되었는데 육십 일 61이 특히 그런데 回甲를 연상시키는 숫자이면서 관심을 갖는데 나는 아직 그 나이는 아닌데 54세인 올해부터 대운이 甲子대운이라하기때문에 나의 해석으로는 올해내지는 올해부터 시작된 운세로 보고싶은것이고 그렇게 늦게까지는 너무 사람들의 북한 사람들의 숨이 막히는 것같아서도 그렇다. 그래서 남북한국사람들이 사해에 이름을 떨치면서 살 수 있는 원년이 올해가 되는 것이지만 10년대운이 어느 해 어느 날부터 바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고 이미 그런 기운은 2,3년전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면 2004년 후천이 시작된다는 그 해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용천사건도 그 때 터진것이었고 올해는 또 다른 사건이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을 잘 수습을 해가야하는데 그럴려면 보다 이성적일 필요가 있기는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기죽이고 살라라는 표현으로 보아도 틀리지는 않겠다.

대나무 . 소나무 . 일본인 . 한국인 .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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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담화의 진실
2006/11/16 오전 4:17 | 기본폴더

曺는 성씨라기보다는 十田 왈로 밭 10군데에 말하다라는 의미는 모든 누구에게나 고르게 말하고 대한다는 의미로 밭이라면 丑과 未土가 전원토라면 그 글자가 들어있는 성씨에서 넓게 찾을 수 있겠지만 丑+寅인 尹이 열十이 된다는 것을 안이상 윤이라 말하고싶고 4월 8일은 너무 일찍 우리들 옆을 떠나셔서 슬퍼지는 우리 아버님생신이신데 부처와는 원래 상관이 없고 마지막 단군나라인 헤모루부여국의 개국일이라들었기때문에 우리아버님의 딸로서 明天씨라는 애명을 가지졌다는 사실로 다른 해석을 누르고싶다. 계두라면 당연히 뱀이 되는것은 아닌지 묻고싶다. 3000년만에 핀다는 우담바라가 한국에서 이곳 저곳에서 피고있어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3천년만인 점에 있어서는 일단 동이족왕국으로 가장 늦게까지 존재하였던 은나라 상나라의 멸망후 현재의 한반도에 갇혀있는듯이 있는 조선 한국인의 희망인 다시 그 영토를 회복하여 숨좀 쉬고 살고자하는 사람들의 강한 염원으로 그 꽃이 피고있는데 그 사람은 한사람일수도 또는 한사람으로 시작하여 여러 사람일수도 있고 온 국민이 될 수도 있는데 아직 제대로 그 의미를 알고있지못하면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셈이다. 2001년에 일산의 어느 절에서 거의 처음으로 피었고, 몇군데 동서남북에서 피듯이 이어서 수도권에서 피었을것이다. 그러다 몇개월전 지난 여름에 강한 야당파인 한 블로커가 야당대표 그러니까 박정희의 옛집에 그 꽃이 피었다고 완전히 경도되어 있어서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2001년의 그것이 피었을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기때문에 무엇을 말하는지도 알 수 있었지만 다시 한번은 다음 번의 풀잠자리알이다 아니다에서 이미 나의 해석이 나온후의 것이기때문에도 금방 알 수 있었는데 초의선사를 떠올리고 신원리집에서 쫓겨나서는 자니 윤의 이제 잠자리에 드실 시간입니다하는 멘트가 떠오르는 잠자리로 제대로 된 거처로서의 잠자리를 갖지못하고 있는 나로서 일부러도 어엿한 이불을 마련하지않고 불편한 생활을 감수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였던 심정때문이기도 한데 집짓기를 포기한후로는 어느곳이나 마찬가지다싶게 뻔뻔해지면서 지난해는 제대로 된 이불솜을 구하려했으나 없다니 싸구려취급을 당한것같은 기분이 들게 한 "나라 이불"집으로 아무래도 경남보다는 경북사람같아보이는 주인집이었고 대충 이불을 꾸렸는데 대구 달서구?의 대표적 시장에서 이불집부터 불이 났다하는 엄청난 화재가 났는데 그 얼마전에는 서울의 창신동에서 신발관련으로 엄청난 화재가 있었다. 장독 항아리를 좋아하면서도 작은 것도 마련하지않는 것과 같은 일인데, 딸이라서 여자라서 차별화하여 보려 한 적이 있었는데 이는 90년대일로 2000년대에 들어서는 자신의 아버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앞장서 반성을 하면 용서를 할 수도 있다라고 한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말한것을 후회하게 만든 것은 그 장본인으로 내가 세상만사가 싫어 절에도 가고싶지않다 한 적도 있었지만 그 즈음에 그 정치권에서 이대표가 절로 가라하였다는 말까지 가쉽에서 읽은 것같았는데 그것보다 조금 늦게 피었을성싶은데 첫번째 처가 그러니까 큰 엄마가 된다는 그 사람이 출가하여 절에서 승녀가 되어있다는 이야기를 70년대인가 들었던 적이 있었기때문에 그렇다면 그 사람도 피해자이니까 그와 같이 절에 가면 되겠다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렇게 하는 것이 아비의 죄를 씻는 길이 되며 자신의 길도 될것같아 말 한 적이 있었는데 그와는 반대로 활동을 한다고 돌아다녀 무척이나 역겨워하는데 그럴 때마다 비브리오패혈증환자가 생기는데는 세상사가 신기하게 느껴졌었는데 많은 여자 국회의원들이 나오면서는 그런 증상은 많이 줄어들었는데 우담바라가 2년전에 핀것이라면서 소개하는데는 단박에 그것은 돌아다니지 말고 아비의 흔적을 모두 그곳으로 유골까지 갖고가서 정리하고 속죄하고 살라는 메세지로 읽어도 많이 봐주는 것인데 엉뚱하게 소개가 된 것을 볼 수 있었고 그 여자는 육영수가 도선사인가에 잘 하는 것도 그 여자때문이라는 말과는 달리 승녀가 된것이 아니었고 박정희가 돌아보지 않으니 가출하여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서 딸을 하나인가 다시 또 낳은후 실패하고 절집에서 밥을 하고 있다던가로 대통령이 된 사람의 아낙이었다는 것때문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냉방에서 지냈다든가 하는 일화가 다른 싸이트에 나와있었고 또 어린아이가 있었다는 숙군당하는 처지에 있을 때 도망간 두번째 여자와의 관계가 소개되었고 무엇보다도 그 사생활내지는 일화에서 5.16이 사전에 발각이 되어 피해있으면서 술을 몇시간 마시고 있는데 함께 행동한 젊은 군인들이 다시 재촉 독려하여 몇시간 비껴서 술이 취한채로 한강을 건넜기때문에 전혀 담력하고도 무관하였고 어쩌면 운이 한 번 좋았다고 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을 아주 정확하게 한 내용을 읽고 아닌게 아니라 수수께끼가 풀린듯한 감이 들었는데 그 때 잡혔으면 사형은 물론 당할테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또 피해를 줄뻔한 경우로 庚申일생이던데 丙午일인 나이기때문인지 의문을 갖고 캐보면 점점 더 완전히 손에 잡히듯이 속이 읽히는 사람으로 그 그릇의 작음을 야비함을 알 수 있어 더욱 분개하게되는데 사주학책에 보니 술을 먹음으로써 그러니까 불기운을 쏘이듯이 하여 거사?를 할 수 밖에 없는 戊土가 뒤에서 庚금을 약화시킨다는 조합이기때문인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는데 거기서 국운이 꺽이는 순간이기도 한것인데 정말 군인이라면 그렇게 쿠데타를 하지도 않았을것이요 했다하더라도 답답하여 궐기를 하였다면 몇년간 군인기질로 후다닥하고는 깨끗하게 물러났어야하는데 전혀 이것도 저것도 거리가 있어 길게 언급하고싶지 않을뿐으로 우상화는 이북에서만 있었던것이 아닌것을 알 수 있게 아무리 적이라도 너무 시시한 출신과 행적에 차라리 맥이 빠질 정도인데 그렇게 아마도 대서특필하였던것같아 더욱 풀잠자리알보다도 못한 곰팡이로 전락이 된 경우인데 헤라?라는 또 다른 블로커는 이어서 자신의 부엌에 다닥 다닥 핀 것을 소개하면서 좋기는커녕 남편과 맨날 싸움만한다는 식으로 아주 솔직한 소개가 있어서 좋게 해석을 해주었는데 화장실창문에 핀 우담바라가 있다는 또 다른 소개가 이어지면서 다시 한번 수정을 하게 되었는데 건조중인 선박에 핀 우담바라를 읽고나서 할 수 있었던 수정으로 하나의 비유로서 서울역 거지사주와 왕의 같은 사주를 놓고 비교한 글이 있어 꽤나 한심한 나의 처지에서 호기심을 갖고 읽은후에 현대가 건조중인 한진선박의 외부 배허리인 철판에서 우담바라를 발견하였다는 뉴스가 바로 뜨다시피하여 조중훈씨가 박정희한테 위하여 절에 종을 하나 기증하였는데 아무리 바로 달아도 비뚤어져서 그 기증내용등을 지우고나니 제대로 걸렸다는 일화를 읽고 무시못할 종교의 흔적이라고 하였고 아무리 유착관계였다고하여도 너무 다른 입장에 아연하였는데 그래도 그런 과정을 거쳤으니 다행이다싶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강조하고 있는 배에 그런 것이 있어 조씨에 대한 나의 평가인 그 사람들은 누구한테도 말하자면 협조적인 스타일이니 말하자면 언제나 비협조적이거나 뺏기만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니 그렇게 너무 나무라지말라 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나한테 협조적으로 나오는듯하게 느껴진 것으로 해석이 나오면서 그와같이 직접 나와 관련지어 생각해보니 화장실도 부엌도 내가 있는 곳의 그것들로 생각해보니 답이 나오는데 어디에서 대장금을 즐겨본다는 말을 듣고난후로는 뭔가 제대로 된 부엌같지도 않은 곳에서 부탄가스에 이것 저것을 하면서는 마치 그들이 나를 보고있는듯하게 불쾌감을 느끼면서는 대개는 기가 막혀하면서 천정을 올려다 보게 되었는데 그렇게 바로 부엌천정에 다닥 다닥 있었다는 것이었으면서 화장실창문이라 생각해보니 그 생선집 통일로가 만들어지면서 올라와진 경상도로 보일러소리가 점점 더 커져서 밤잠도 설치면서는 증오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바로 그 화장실 창문쪽에 있는 것으로 춥지도 않은 때도 또한 내가 무엇을 하는줄 훤히 아는듯하게 시간맞춰 한번만 돌아가고 꺼지는 경우도 있는것처럼 용변보는 것도 불편하게 만드는 때때로 이상한 작동에 피곤한때면 더욱 신경에 거슬려 죽여버리겠다고 입버릇이 된 그 쪽인데 어느 날 어떤 생각을 아마도 바꿔서 해 본 적이 있었는지 그렇게 용서?비슷하게 그런 꽃이 핀 경우로 어느 것이나 전혀 의미가 없는 것으로 그렇게 많이 괴롭다는 표시일뿐으로 어느 곳은 방방마다 피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방이 꽤 여럿 있는 제대로 된 집이 필요하다는 것으로도 해석을 하지만 지하방이나 옥탑방이 아니고 정상적인 그런 방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으로 옛 선조들은 공방살이 든다고 공방을 두지 말라는 말도 되면서 그렇게 놀리는 방이 있는 사람들은 벌을 받는다는 말도 되는 그런것이니 영문을 몰라하면서 웃음거리처럼 되고 있는 현실이 답답한 것으로 차에 피었다면 차때문에 망한 나의 경우가 되겠는데 풀잠자리가 그곳에 있었고 불교신자가 아님을 밝힌것까지 확실한 비유로 모두가 거의 읽을 수 있는 코드가 있는 것으로 지난 번 비무장지대의 소나무에 핀 것은 그 날짜에 그 갯수만큼 핀것으로 이는 너무 좋아할 일이 아니다를 여러번 강조하면서 그 꽃속에서 유충이라 표현하던데 마치 송충이 벌레같은 것이 나왔던데 그 즈음에 통일관련소식이 희소식이 좀 있었으면 한 그 시점에 9월 22일이면 윤 7월이 끝나는 날이었을터인데 그렇게 4번째 발견한다는 김계성의 나의 계사의 계와 뭐가 맞았는지 그 기자가 왜 자신의 눈에 그렇게 뜨였는지부터 시작하여 처음 보인 유충을 소개하였다. 맨처음의 것인 일산의 어느 절의 것은 비구니들이 산다는 절로 조선시대 어느 출산을 하지못한 왕비가 투기하지않고 왕자를 잘 키웠다나하여 덕이 높은 왕비를 기린 절이라는 곳에 핀 것은 말하자면 보통이 넘는 정도에서는 비슷하면서도 전혀 성격이 틀리기도 하지만 그렇게 맞비교할 수 없는 상하관계인 우리 어머니와 한 사람을 맞비교하는듯하게 선악을 넘어서는 초월을 상상으로나마 해보았을당시에 바로 알 수 있게 아주 초반의 그 우담바라는 생년과 생월이 그 꽃이 핀 날짜가 소개된 내용과 맞출 수 있었기때문에 알 수 있었고 큰 기사거리가 되었고 그 다음해인가 그 사실을 다시 떠올렸는데 8월 6일이 생일이어서 그랬는지 단박에 자신도 전에 절에 다닌 적이 있다면서 교회도 가보았고 현재는 캐톨릭이라면서 가쉽이 나와 웄었는데 또한 노적사라는 절이 경기도의 남부에 있는 천년은 되었다든가 아주 고찰이었는데 그런 발설이 어떻게 잘못되어서인지 있었던 적이 없다는 듯이 노적사가 불타버렸고 아마도 다시 복원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이 시점에는. 절에 다녔다고 말한 그 사실을 떠올리면서 좋게 해석도 해보려 애를 쓴 사실이 나의 어려움이기도 하다. 가장 주목을 끈 것은 양산의 여승의 1 3 5번째 손가락에 핀 우담바라인데 내조카 생일이 양력이 8월 14일인데 음력이 7월 6일인데 그 시간까지 맞춰 정리를 하려 무진 애를 쓰다가 8월 7일 자이를 잃었는데 "참말로"라는 싸이트에서 5일인가에 석가모니의 탄생일이 4월 초파일이 아니라는 말과 그 초파일은 헤모루단군시대의 건국일인데 중국을 통하여 도입이 되면서 2월 초파일인데 4월 초파일로 되었고 일본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전해졌다하여 그때까지는 우리 아버지의 생신이 4월 초파일로 겹쳐서 왠지 의미가 약해지는것같은 느낌속에 있었고 부처의 행적과 아버지와 비교해보면서 전혀 비슷하지않은것같은 느낌을 평소에 갖고 있다가 그런 소개와 동시에 앞으로 여자 단군도 바라볼 수 있다는 문구까지 곁들여서 나왔는데 또한 중국도 결국은 헤모루단군시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그날은 아주 더운날이었는데 그런 사실들과 그런 의견을 가진 사람을 만난 것이 소득이 많은 날같아져서 그날 서울에서 잘 안된 문제도 그것을 접하고 발걸음이 가벼워져서 돌아오는 길에 일간지의 운세란에 보니 행운의 숫자가 1 3 5였는데 그것은 우리 4대와 나까지를 포함한 5대가 되는 것을 의미하면서 내용설명난에도 그것을 뒤받침할만한 것이었고 돌아와서는 다음날에는 쉬면서 여자 단군이..하면서 그 사실을 떠올리니 서울을 연거푸 며칠을 다니면서 자이가 4일인가 3일부터 밥을 잘 안먹다가 그 날은 저도 많이 지쳐있었을터인데 마치 내조카가 뒤돌아보는듯이 돌아보아 나도 그것을 눈치채고 웃었는데 그래서 대화를 시키면서 밥을 먹게끔 하여도 먹지는 않고 겨우 물이나 좀 먹으면서 그래도 조금 나아진셈이었는데 7일에 잃고는 너무 분하고 마음이 아프지만 그렇다고 내 작업의 계획을 또한 멈출 수 없어 어떤 일이 있어도 해야하는 것인데 자이를 위하여 3일동안은 많이 할애를 하면서 내가 강아지일을 보느라 더 중요한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닌가하면서도 많은 위로가 되었던 놈이었으니 생명사랑으로 그런 마음을 갖고 자이를 대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하면서도 어떤 일이 있어도 그 날짜를 지키고싶다고 굳게 다짐하면서 다른 놈들의 밥을 챙겨주었던것같은데 바로 고때 그 양산-자외선을 막아낸다는 의미인지 우리 오빠들 돌림이 滋자이기도 하니 그 외의 것은 배제한다는 의미인지, 그곳에서 전에 어떤 사고가 있었고 그곳을 바탕으로 꿈을 꾼적이 있어서였는지,음양의 양인지 양양의 낙산사도 있었지만-에서 비구니승의 손가락 1 3 5번째에 우담바라가 피었다는 것이었고 그것은 또한 다짐하는 의미로 손가락에 장을 지져도 어떤 일이 있어도 꼭이라는 강한 다짐이 있는 그런 말이 되면서 탁 털어버려야할 달궈진 앞핀을 손등위에 둔채로 고통을 참았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그렇게 의미가 연결이 되는데 어떤 네티즌은 얼마나 손을 씻지않았으면 손에서 곰팡이가 나느냐 더욱 정진하라는 따끔한? 충고가 있었는데 나중에 이즈음에 다시 곱씹어보니 그랬다! 내가 어서 그런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러니까 손을 씻을 수 있도록 너희들이 해야하고 내가 해야하는 것이었는데 바로 요즈음 그 작은 집짓는 이야기이며 앞의 신원리집의 이야기를 쓰면서 풀잠자리가 댕겨간거여하면서 야단법썩인 우담바라에 대한 이야기를 가벼이 일축한 구절이 생각이 나면서 집은 그 쪽이 되는것인데 어느 곳에서 핀 우담바라였는지 혹시 순천이 아닐까하는데 기억할 수 없지만 그런 두 가지의 반응에서 어떤 의미가 되는지 더욱 확실해진 경우가 된 것이었다.

동이족 . 박정희 딸 . 우담바라 . 초의선사 . 풀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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