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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8/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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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공(戴思恭)

대사공(戴思恭)의 자(字)는 원례(原禮)이다.



원(元) 나라 제 10 대왕 태정제(泰定帝) 원년(元年) 서기 1324 년에 포강(浦江)에서 태어나 명나라 영락(永樂) 3 년 서기 1405 년에 향년(享年) 82 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쳤다.



홍무(洪武 : 朱元璋) 년간(年間)의 어의(御醫)였다. 금원(金元) 4 대가 중 한 사람인 주진형(朱震亨)의 문하생이다. 주진형은 대사공(戴思恭) 만이 자기의 의술을 계승할 수 있는 제자라고 인정하여 자신의 의술을 빠짐없이 대사공(戴思恭)에게 전수해 주었다. 사실 대사공(戴思恭)은 주진형의 스승 나지제(羅知悌)로 부터 의학수업을 했다.



진왕(晉王)이 대병에 걸렸다. 대사공(戴思恭)은 진왕의 병을 치유하였다. 그리고 나서 대사공(戴思恭)은 진왕에게 ”저병후이심입고황(這病候已深入膏肓), 현재수연잠시의호료(現在雖然暫時醫好了), 단시불회단근적(但是不會斷根的), 도상당시기취회복발(到相當時期就會復發), 나취흔마번료(拿就很麻煩了).” 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폐하의 병은 이미 고황 까지 깊이 파고 들어 갔습니다. 현재 잠시 동안 병정이 호전되어 치유된 것 같으나 병근이 제거되지 못했음으로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재발할 경우 번거로우실 것입니다.” 는 뜻이다.



후에 과연 진왕의 병이 재발되어 진왕은 죽고 말았다. 명태조 주원장은 궁중에 있는 어의들을 모두 체포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왜냐하면 성심성의껏 진왕을 치료하지 않해 진왕이 죽었기 때문이라고 단정하여 죄를 씌웠다.



대사공(戴思恭)은 명태조 주원장에게 ”진왕상차생병(晉王上次生病), 아증대타설과(我曾對他說過),복발시시몰득의적(復發時是沒得醫的), 중의생문심력이진(衆醫生們心力已盡), 청불요형벌타문(請不要刑罰他們).” 이라고 진언(進言)하였다.



다시 말하면 ”진왕이 먼젓번 병중에 있을 때 소인이 진왕에게 ”병이 재발될 경우 어느 누구도 치료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고 말했습니다. 여러 어의들이 성심성의 껏 진왕을 치료했습니다. 어의들로 부터 죄를 거두시옵소서” 라는 뜻이다

명태조 주원장은 대사공(戴思恭)의 말을 듣고나서 어의들을 모두 면죄하였다.



그 다음 연왕(燕王)이 병들었다. 복중에 딱딱한 경괴(硬塊)가 들어 있었다. 오랫동안 치유되지 않았다. 대사공(戴. 思恭)을 불러 치료했다. 대사공(戴思恭)은 연왕(燕王)을 진맥하고 나서 며칠 전 어의들이 처방하여 올린 처방전이 틀림 없음을 확인하였다. 대사공(戴思恭)은 연왕(燕王)의 기거(起居)와 최근에 섭취한 음식에 대하여 물었다. 그리고 연왕(燕王)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물었다. 연왕(燕王)은 생근(生芹 : 생미나리)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대사공(戴思恭)은 연왕(燕王)의 병인(病因)이 생근에 있다는 것을 알고 약을 한 첩 달여 복용시켰다. 연왕(燕王)은 대사공(戴思恭)이 처방해 준 약을 복용하고 나서 그날 밤 무수히 많은 황충(蝗蟲)이 대변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나서 연왕(燕王)의 병은 치유되었다.



어떤 부인이 서 있으면 심신이 편안하지 못하고 몸이 바람에 흔들거리는 것 같고 뜬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며 방안에 있으면 방안에 있는 물건들이 이리 저리 움직이는 것 같다고 호소했다. 의사들은 보허치경안신약(補虛治驚安神藥)을 복용시켰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대사공(戴思恭)이 이 여인을 진찰한 후 놀램으로 인하여 심포락(心包絡)에 적혈(積血)이 되어 있다고 진단했다. 대사공(戴思恭)은 이 여인에게 사제(瀉劑)를 한 첩 복용시켰다. 여인은 검정 칠흑 같은 대변을 쏟아 낸 후 병은 치유되었다.



대사공(戴思恭)은 각가의 학설을 모두 연구하였다. 그러나 대사공(戴思恭)은 변증시치(辨證施治)와 대증하약(對症下藥)에 있어서 어느 일가(一家)와 일파(一派)의 의학이론 만을 절대로 고집하지 않았다.



주씨(朱氏)라는 환자가 추위를 탐으로 삼복지절에도 옷을 두껍게 껴입고 다닌다. 먹는 음식도 뜨거운 음식 만 먹었으며 미지근한 음식 만 먹어도 삼키자마자 토해 버렸다. 의사들은 주씨가 호초자계(胡椒煮鷄)를 많이 먹은 탓이라고 말했다.



대사공(戴思恭)이 주씨를 진맥하여 보았다. 대사공(戴思恭)은 유수진(劉守眞)의 화극사수지증(火極似水之症)이라고 말했다. 대사공(戴思恭)은 호초의 약성은 음경(陰經)의 화(火)를 조성시키고 계(鷄)는 담(痰)을 조성시켜 준다고 말했다. 서로 상반되는 음식임으로 먹으면 먹을 수록 병정이 엄중해 진다고 말했다. 대사공(戴思恭)은 대승기탕(大承氣湯)을 주씨에게 복용시켰다. 주씨는 하루에 20 번 설사를 했다. 그후 병정이 호전되었으며 또 다시 주씨에게 황련도담탕(黃連導痰湯)을 복용시켰다. 주씨의 병은 완치되었다.



대사공(戴思恭)의 숙부(叔父)는 여름철에 고열이 생기더니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얼굴은 빨갛게 변하고 전신에 홍반(紅斑)이 생겼다. 대사공(戴思恭)이 진찰을 해보니 맥은 부허무력(浮虛無力)이었으며 장자화(張子和)가 말한 ”당해표면물공이지증(當解表面勿攻裏之症)” 이었다.



대사공(戴思恭)은 발한법(發汗法)을 사용하였다. 처방은 부자(附子)와 건강(乾薑)과 인삼과 백출(白朮) 등을 배합하여 사용하였다. 대사공(戴思恭)의 숙부는 대사공(戴思恭)이 처방해 준 약을 복용하고 나서 땀을 많이 흘렸다. 그리고 나서 병은 치유되었다.



또 육여사(陸女士)란 부인은 발열이 심했으며 귀신이 보인다고 말했으며 얼토당토 않는 말을 지껄인다. 이전에 의사들이 황련청심탕(黃連淸心湯)을 복용시켰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대사공(戴思恭)은 이 여인을 진맥한 후 이 여인은 몸이 수척하게 여위고 얼굴에 광택이 없음으로 허열(虛熱) 증상이 있다고 진단한 후 이동원(李東垣)의 감온제대열(甘溫除大熱) 처방으로 시치(施治)했다. 인삼과 황기를 배합한 약을 사용하여 육여사의 병은 치유되었다.



대사공(戴思恭)의 저서는 증치요결(證治要訣)과 증치유방(證治類方)과 유증용약(類症用藥)과 단계금궤구현(丹溪金匱鉤玄) 3 권(卷)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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