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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이렇게 왔다 갔다인지 알 수 없다. 쉬어야 하는데 너무 분주하게 뛰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선택해야 할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에스더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실 분이시다. 에스더는 하나님의 인도로 이대까지 왔고 그 길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이다. 은혜...마음 깊이 적셔오는 감동이 있는 말이다. 나의 일생에 이것이 없이 살 수 있었겠는가? 그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이 없이 어떻게 살았겠는가? 에스더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지금의 상황과 그의 신분은 그녀에게 가장 좋은 은혜의 자리이다.
1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왕좌에 앉았다가 2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진지라 3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하니 4에스더가 이르되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좋게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오소서 하니 5왕이 이르되 에스더가 말한 대로 하도록 하만을 급히 부르라 하고 이에 왕이 하만과 함께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가니라 6잔치의 술을 마실 때에 왕이 에스더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 하니 7에스더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소청, 나의 요구가 이러하니이다 8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고 왕이 내 소청을 허락하시며 내 요구를 시행하시기를 좋게 여기시면 내가 왕과 하만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에 또 오소서 내일은 왕의 말씀대로 하리이다 하니라
에스더는 금식하고 예복을 입는다. 그의 금식과 예복은 하나의 삶이다. 최선을 다한다 정도로 표현될 수 없는 영적인 삶이고 자세이다. 그의 사랑스러움과 그의 자태는 에스더의 내면에서 나오는 단아함과 정갈함 안정감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혹은 더 나아가 그의 '맑은 영혼의 상태' 그대로가 반영된 모습이었을 것이다. 에스더에게 하나님과 사람에서의 사랑스러움은 그의 존재의 상태에 따라 오는 결과물이었을 것 같다. 이제 에스더는 목숨을 건 투쟁중이다. 두려움이 없진 않았겠지만 물러섬도 없었고 잔재주를 통해 상황을 유연하게 하지 않았다. 하만의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말살에 맞서는 왕비의 투쟁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대한 응답이다. 나에게 주어진 생활인으로서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 변혁적 지역 공동체를 꾸려 변혁자로서 대안적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일... 모두가 주의 은혜이자 부르심이다. 이 모두가 복잡하게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내가 감당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무슨이유일까? 에스더처럼 그의 영혼의 투쟁이 한 길에서 명쾌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나에게 금식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나에게 예복을 입고 나아가는 100% 비타협적인 투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나의 영혼의 상태를 맑음이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으심을 분명하게 할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나의 길을 예비하실 것이다. 주님 나의 영혼이 이렇게 어둡습니다. 나의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합니다. 깨달아도 잊어버립니다. 주께 가서 분명한 부르심을 알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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