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탄생의 기원과 창조의 목적
인간 탄생의 기원
인간은 그 존재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스스로 자기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결과의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인간은 자기가 살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니고, 자기가 남자로 태어나고 싶어서 남자로 태어나고,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 여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태어나 보니 남자요, 태어나 보니 여자였다는 것이며, 태어나 보니 여자가 있는 줄 알았고, 태어나 보니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태어난 결과만을 알고 있을 뿐 자신의 성별이나 운명, 지역과 가문을 선택할 의지도, 동기도 없이 누군가에 의해 다 결정되어 태어난 결과적 존재라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결과적 존재라는 사실은 바로 원인적 존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인간은 어디서 왔을까. 어머니에게서 왔다면 어머니가 자녀를 만든 원인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녀출생의 원인자가 될 것인가. 만일 부모가 원인자라면 자녀의 육신이나 마음, 성품을 구상하고 설계하여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정교하게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머리는 누구를 닮고, 머리카락은 몇 개이며, 이목구비는 어떻게 만들 것이며, 사지백체는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구상과 이에 대한 정교한 설계와 공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구상도 없고, 정교한 설계도 없고, 생명체 발생의 공정과정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의 생명의 기원은 어머니의 뱃속이라고만 하기에는 곤란한 점이 있다. 즉, 어머니의 뱃속에서 왔다고 말할 수는 있으나 자신도 자신의 자녀가 어떻게 생길 것인지, 아들인지 딸인지, 그 운명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데 어머니가 인간 생명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머니가 무슨 능력으로 그 복잡한 세포를 만들고, 염색체를 만들고, 피를 만들고, 뼈를 만들어서 조각조각 붙여서 자신을 닮은 아이들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이미 아버지 어머니의 생식기 안에 인간의 생명의 탄생과정에 대한 모든 프로그램을 만들어 입력시켜 놓았기에 자동적으로 인간이 창조되어 출생하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의 생명의 기원, 마음의 기원은 어디인가. 그러한 생명의 창조과정, 창조의 매카니즘을 만든 존재는 누구인가. 하나님인 것이다. 하나님은 왜 인간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인간의 창조목적과 타락
하나님은 기쁘고 행복하게 살고 싶으신 것이다. 혼자 있으면 아무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심심하고 외롭고 쓸쓸해서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매일 우주나 운행하고, 별들이나 보고 있는 것이 재미있겠는가. 힘이 많다고 하여 행복한 것이 아니다. 행복은 우주를 움직이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사랑에서 나오는 것인데, 사랑은 혼자할 수 없으니까 사랑의 파트너가 필요하신 것이다. 하나님과 사랑의 파트너가 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받은 존재라야 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상속시킬 수가 있는가.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돌덩어리나 흙덩어리 속에 사랑을 상속시킬 수 있는가. 아니면 개나 고양이, 돼지, 소 등에 하나님의 사랑을 상속시켜 사랑의 파트너로 삼을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독생자인 예수님을 보내 인간을 구원하려 했던 것도, 또 예수님을 십자가의 수난 길에 희생시키면서 까지 인간을 구원하려 했던 것도 인간이 하나님에게는 너무도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이 소나 돼지, 닭을 구하기 위해 예수님을 희생시키려 했던 것이 아니다.
오로지 말썽 많은 인간을 구원하려고 모든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셨던 것이다. 인간이 무엇이 길래 그런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게 했을 것인가.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가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인 것이다. 하나님에게 있어 하나님의 아들보다 귀한 존재는 없다. 그런데 그 귀한 존재를 희생시키면서 까지 인간을 구원하려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다. 단지 타락병에 걸려 사탄의 혈통으로 뒤틀려 잘못 태어난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이 나온다. 누가복음 3장 38절에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느니라 하는 말씀이 있다. 성경에 따라 아담의 위는 하나님이시니라고 하는 번역도 있으나 이는 잘못 번역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영문성경인 King James Version에도 “the son of Adam, the son of God”로 나온다.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된 위대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한 인간이 사탄에 의해 타락했던 것이다.
인간의 구원 : 축복을 받아야 하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악한 타락병에 걸린 자녀를 못 본체 할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을 희생시키고, 당신의 독생자까지 희생시켜서라도 구원해야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심정인 것이다.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셨을 것인가. 뛸 듯이 좋았다는 것이다. 그런 인간이 타락하였으니 얼마나 그 첫사랑의 정을 잊을 수 있겠는가. 눈만 감아도 새록새록 떠오르는 아담과 해와의 모습을 잊을 래야 잊을 수 없어 하나님의 가슴을 한으로 가득 차게 했던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얼마나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개나 고양이, 코끼리나 사자, 호랑이 같은 동물들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듯이 인간도 전지전능하고, 하나님이 만유의 주인이듯이 인간도 만유의 주이며, 하나님이 영계를 주유하고, 지상계를 주유하듯이 당신의 자녀들도 그렇게 되는 것이 정상이 아니겠는가. 인간이 하나님과 같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되겠는가. 인간은 이 세상에 올 때 어떠한 사랑의 인연으로 오고, 어떠한 생명의 인연으로 왔으며, 어떠한 혈통의 인연과 뿌리를 가지고 왔는지를 알아야 한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 죄악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타고난 성품이 선하지 못하다면 그러한 인간은 선한 하나님의 혈통으로부터 인연된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은 하나님의 혈통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혈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인간이 태어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다는 조건과 입장에 서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인간은 사랑으로 태어났으므로 사랑으로 하나되어 되돌아가야 한다. 두자녀가 태어났다면 두자녀가 하나되고 어머니와 하나되어 어머니의 자궁으로 들어가게 되면 태어나기 이전의 복중의 입장에 서는 것이다.
여기서 아버지와 심정적으로 사랑으로 하나되면 태어나기 이전의 아버지의 몸속의 정자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입장에 서는 것이다. 즉 타락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갖고 있던 사탄의 사랑과 생명과 혈통이 완전히 단절되는 것이다. 혈통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제일 먼저 단절되고, 그 다음에 생명이 단절되고, 아버지의 몸 속으로 들어가 사탄의 사랑도 단절되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하나님의 심정과 일체를 이루어 어머니와 하나되면 남자와 여자가 하나된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과 혈통의 뿌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생명과 혈통의 기원이 만들어져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과 혈통으로 전환된 자녀로 중생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태어나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인연되어 태어났다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로 축복식인 것이다.
이렇게 축복을 받은 남녀가 아기를 가졌을 경우 아기는 태내에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어머니의 배속에서 마라톤을 할 수 있는가. 할 수 없다. 그것은 자궁속의 양수 막은 너무 비좁을 뿐만아니라 탯줄도 있고, 다리도 발달하지 못하여 마라톤을 할 수 없다. 그러나 태어나서 지상생활에 적응하게 되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한다. 심지어 마라톤까지 할 수 있다. 뱃속에 있는 아이는 마라톤을 하려면 태어나서 뱃속이 아닌 세상으로 나와야 된다.
실존하는 영계
인간에게는 몸 위에 마음이 있고 마음 위에는 영인체(靈人體)가 있으며, 그 영인체가 들어가 살게 되는 영계 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인간은 참사랑을 통해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가 될 때 완전한 사람이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완전한 사람이란 비록 작은 개체의 모습일지라도 전체 역사를 대표하는 존재요, 또 미래의 모든 인연을 대신한 존재이기 때문에 천주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이런 천주적인 가치를 안다면 삶을 살아가면서 마음을 앞에 모시고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라는 점이 확실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양심은 여러분의 모든 언행은 물론 생각까지도 기억하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스승보다 먼저 알고 부모보다 먼저 알고 하나님보다도 먼저 아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원한 스승 된 양심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며 살기만 하면 여러분의 영생은 절대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각도에서 인간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하나님은 본래 인간을 2중구조로 창조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형세계(有形世界)인 현상세계의 축소체로서 육신을 창조하시고, 무형세계(無形世界)의 대표요 주인으로 세우기 위해 영인체를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지상계에서 한 백 년쯤 살다가 육신의 기능이 다하면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동적으로 무형세계인 영계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계는 육신을 터로 하여 살고 있는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을 뿐이지, 지상 생활의 자동적이고 필연적인 연장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해주신 인간의 영원한 본향입니다.
영계(靈界)는 이처럼 엄연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망상의 세계도 아니요 상상의 세계도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의 선택권 밖에 있습니다. 좋다고 해서 가고 싫다고 해서 가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영원하고 불변하신 분인 것처럼 당신이 창조하신 영계도 영원하고 불변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상계에서 육신을 쓰고 현상세계와 각종 관계를 맺어가며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계에서도 인간은 영인체를 갖고 영계의 모든 현상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숙명적 노정입니다.
영인체와 육신의 관계 그런데 인간의 영인체와 육신의 관계를 놓고 볼 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육신이 아니라 영인체라는 것입니다. 육신은 한 백 년쯤 버티다가 간다고 하지만 영인체는 시간과 공간권을 초월하여 영생하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지상계에서 호의호식하며 잘사는 사람도 결국 죽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삶은 영적인 기준과 육적인 기준을 잘 조화시켜 영육이 합한 완성실체를 이루어 살다가 가야 합니다. 현상세계요 유한세계인 지상계의 삶에서 육신을 터로 하여 영인체를 완성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인체의 완성이 자동적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참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몸과 마음이 완전 일체가 된 삶의 터 위에서라야 완숙한 영인체가 열매맺어진다는 것입니다.
가을이 되어 창고에 들어가는 잘 익은 과일이 되기 위해서는 봄과 여름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계가 제공해주는 영양소와 주인의 자상한 보살핌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게으르고 무식한 주인을 만난 과수원의 과일은 각종 질병과 악천후에 시달려 익지도 못한 체 낙과하거나 벌레 먹은 과일로 분류되고 말 것입니다. 과일은 과일이지만 다 같은 과일이 아닙니다.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완성품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무 위에서 완숙된 과일은 자동적으로 주인의 창고에 들어갑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인체는 나무와 같은 입장인 지상계의 삶에서 완성을 보아야만이 자동적으로 무형세계인 영계의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육신을 쓰고 사는 지상계의 삶에서 완숙한 삶, 즉 이 땅에서 천국을 이루어 즐기며 살다가 가야 자동적으로 천상천국에 입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상계에 사는 동안 여러분의 일거수일투족은 이와 같은 하늘의 공법(公法)을 기준으로 하여 하나도 빠짐없이 여러분의 영인체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계에 들어가는 여러분은 육계에서의 삶을 백 퍼센트 수록한 영인체의 모습입니다. 잘 익은 선한 삶이었는지 벌레 먹고 썩은 악한 삶이었는지는 여러분의 영인체에 적나라하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심판주가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가 자신의 심판관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엄청나고 무서운 천리를 안다면 어찌 감히 지상계의 삶을 온갖 사탄의 유혹에 빠져 이기적이고 쾌락만을 좇는 패덕의 삶으로 끝낼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영인체에 상처를 입히고 흠집을 내는 일은 목숨을 걸고 삼가야 할 것입니다. 천국행과 지옥행이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생각과 언행에서 결정지어진다는 사실을 확실히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하여 영인체 자체가 참사랑의 삶을 주도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영인체는 반드시 몸과 마음의 원활한 수수작용(授受作用)으로 전개되는 육신의 삶을 터로 한 참사랑의 삶을 통해서라야 성장하고 완숙하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속에서는 겉사람과 속사람이 끊임없이 갈등하며 싸우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더 이 싸움을 계속하시겠습니까. 10년입니까, 100년입니까. 우주의 모든 존재에는 엄연한 질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그렇게 불완전한 상태로 창조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겉사람 된 육신의 유혹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속사람 된 양심의 길을 따라 인생 승리를 달성해야 할 것이 여러분의 인간된 의무요 책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천운(天運)도 함께해주는 것이며 영인체의 완성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 출처] 영계메시지[영계보고서]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