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시대까지 존재하였던 곤장제도
조선시대 형벌제도는 크게 태형, 장형, 도형, 유형,사형의 다섯가지로 분류된다. 이것은 중국의 수,당 제도때 만들어진 오형제도를 기본바탕으로 한것으로 태형과 장형집행시 가해지는 형벌기구를 일반적으로 곤장이라 부른다. 그밖에 사형은 목숨을 끊는다는 의미에서는 현재와 같지만, 그 방법은 신체 각 부위를 잘라내거나 찌르는등 현재와는 비교할 수 없이 잔인하였다. 유형은 주로 고급관리들이나 세도가들에게 내려지는 형벌로, 직접적인 고통은 덜하지만 자손에까지 출사길이 극도로 제한되는등 결코 가벼운 형벌이라 할 수 없다. 그 밖에 도형은 현재의 징역형과 비슷한 형벌로, 관아에 예속되어 무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형벌을 말한다.
태형은 기본적으로 장형보다 무거운 형벌이며 연령도 10대부터 50대까지로 제한되었으며, 60대이후 부터 100대까지는 5등급으로 나누어 형벌을 가하였다. 다만 사대부양반의 경우 반역에 연루되거나 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한대당 얼마의 속전을 내면 대부분 형벌이 면제되었디.
|  | 김윤보 (金允輔: 19세기 말-20세기 초반)
태형과 장형태형을 가할때는 길이 1.1m 지름 1mm정도의 회초리가 사용된다. 이 경워 남성의 경우는 아랫도리를 벗기고 볼기를 쳤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홑옷을 입힌채로 볼기를 첬는데, 물을 끼얹고 치는 물볼기도 있었다.
|
이런 태형의 고통은 매우 심각하여, 형집행도중 기절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형집행이 끝난 후에도 후유증에 시달려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곤장형은 장형의 일부라고 할 수 있지만, 장형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치사율이 높은 형벌이다. 곤장은 버드나무로 만들어지며 볼기와 넓적다리에 나누어 치게 되는데, 일반범죄자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군법을 집행하거나 현재로 말하면 특별범죄 가증처벌자등에게 가해지는 형벌이다. 또한 관찰사 이상의 직급을 갖거나, 왕명을 받들어 도적때등을 긴급체포에 나서는 토포사등이 집행할 수 있다. 따라서 일반 고을 수령이 이런 형벌을 가한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직권남용이다. 매수 역시 한 번에 30대 이상 치지 못하도록 제한되어 있다.
목봉(木俸)으로 만들어 죄인의 볼기와 허벅다리를 치는데 사용하며, 곤장은 곤과 장으로 나누어진다. 곤은 범죄의 종류에 따라 치도곤(治盜棍)·중곤(重棍)·대곤(大棍)·중곤(中棍)·소곤(小棍)의 5종류로 가려서 형을 가하며, 치도곤은 특별죄에 해당한다.
 *치도곤->행용소곤->행용중곤->행용대곤->중곤 죄목에 따라 더욱 길고 두꺼운 곤을 쓰게 되는데,그 중에서 치도곤이 가장 치명적이어서 원칙적으로는 중대범죄에게만 쓰도록 제한하고 있다.
*1자: 약 30cm
 1839년 기해박해때 경기도 과천등지에서 천주교 신앙활동을 하던 최경환에게도 다음과 같이 잔혹한 태장형이 적용되었다. 과천 수리산에서 서울의 포청까지 끌려간 최경환은 2개월 동안 하루 걸러 형벌과 고문을 당하여 태장 340대, 곤장 110대를 맞았다. 9월 11일 최후로 곤장 25대를 맞고는 그 이튿날 옥사, 35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물론 당시 조선사회로 볼때 최경환은 매우 특별한 중대범죄자였다.
그러나 이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서라도, 고을 수령들에 의해 태장형이 임의적으로 적용되면서 백성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곤장에 쓰이는 나무도 부드러운 버드나무가 아닌 딱딱한 박달나무를 쓰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10대만 맞어도 살이 터져 나가며, 30대 정도만 맞아도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기절하거나 그 후유증으로 엉치뼈가 주저 앉을 수도 있었다. 이렇게 일반 백성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된 치도곤으로 인해, '치도곤을 안긴다, 치도곤을 쳐야 정신을 차린다'등의 속어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일제시대까지 잔존하였던 곤장제도
조선의 형벌제도는, 같은시대 동서양 형벌제도에 비해 결코 과격하거나 무분별하지는 않았다. 가령 영국의 마녀재판제도의 경우를 보더라도 20세기 들어와서야 없어졌다. 즉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전근대적인 형법이 적용되었는데, 곤장제도역시 1896년 고종 33년 제정된 형률명례(刑律名例)와 1905년 고종 42년 제정된 《형법대전(刑法大全)》에서 장형을 폐지되었다.
이 태형과 장형은 조선시대를 지나 1910년 일제시대까지 존재하였다. 일제는 조선의 옛 관습을 존중한다는 이유를 들어, 경찰서장이나 헌병대장으로 하여금 3개월이하의 징역이나 태형을 즉결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물론 이 잔옥한 형벌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집중적으로 집행되었다. 또 태형에 쓰이는 회초리도 소가죽등에 납덩어리를 넣고 사용하는 등, 각가지 잔혹한 형태의 고문도구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1912년에는 조선태형령을 제정하여, 아예 공식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형법을 적용하도록 공식화 하였다.하지만 1919년 일어난 3.1운동의 결과로 마침내 이 오래된 악법은 철폐되기에 이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