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펌>
맬서스와 케인즈 세일러 idca**** 09.07.14 08:36
맬서스는 사회 내에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소비가 부족한 상태에 빠지는 것이 공황을 불러온다고 보았습니다.
맬서스는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정책방안까지 제시했습니다.
아래의 표를 통해서 맬서스의 생각을 살펴보겠습니다.
빈부격차의 심화로 경제 전체에서 소비지출(B)이 차지하는 비중(맨 아래 표시된 소비성향)이 갈수록 작아지게 되면, 저축(D)이 차지하는 비중(저축성향)이 갈수록 증가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선 투자의 수익성이 악화되기 때문에 저축이 투자지출로 원활하게 이어지기가 어렵고, 그 때문에 경제 전체의 총수요(=소비+투자)가 부족해진다.
따라서 정부가 비소비지출(C) 중 정부가 관장하는 부문을 활용하여 사회 내의 부를 재분배하라는 것입니다.
비소비지출은 세금, 건강보험료 등의 사회보장비 지출, 이자비용 지출, 가계 간의 이전지출(예를 들어 가족에게 학자금과 생활비를 보내는 것) 등으로 구성됩니다.
이 중에서 정부가 관장하는 것은 세금과 사회보장부문입니다. 즉 누진적인 조세제도와 사회보장제도를 통해서 사회 내의 부를 재분배하라는 것이 맬서스의 주문입니다.
그리고 맬서스는 경제가 이미 공황에 빠졌을 때를 위한 단기대처법까지 제시했습니다. 그는 정부가 빈민들을 고용하여 도로나 항만과 같은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정부부문이 나서서 부족한 총수요를 보충할 것을 주문한 것입니다.
맬서스의 주장을 종합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조세(누진세제)와 재정지출(사회보장제도, 정부지출)을 활용하여 사회 내 부(富)의 분배가 골고루 이루어지도록 사전에 노력하는 것이 원만한 경제성장의 비결이요, 공황 예방책임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공황이 벌어진 경우에는, 소비와 투자가 둘 다 부족한 상태이니 재정지출을 적극 확대하라고 권한 것입니다.
ㅇ 케인즈, 맬서스를 재발견하다
케인즈는 맬서스의 통찰을 바탕으로 그의 경제이론을 만들어냈습니다.
세이의 법칙으로 돌아가 보면 쟁점은 저축 -> 투자로 매끄럽게 연결되는가,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고전학파 주류 경제학자들이 바라보는 관점은 이렇습니다.
저축량에 비해 투자가 감소하면, 그에 따라 이자율이 하락할 것이므로 저축은 줄어들고 새로운 투자는 늘어난다(이자율 하락으로 투자비용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결국 여기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축과 투자는 매끄럽게 연결된다, 경제는 스스로 균형으로 돌아가게 된다. (자유방임주의 유지 가능)
이에 대해 케인즈는 부분적으로만 긍정합니다.
경제가 약간 침체한 경우에는 고전학파의 설명처럼 그렇게 스스로 균형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대공황과 같은 극심한 침체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고 봤습니다.
소비성향은 단기적으로 일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소비수요는 안정적인 반면 투자수요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것이다.
투자는 기업가들의 미래에 대한 주관적 평가에 따라 좌우되므로 본질적으로 경제의 다른 요소들보다 불안정한 것이다.
극도의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경우 기업가의 이성은 마비되고 ‘동물적 감각(Animal Spirits)에 따르게 된다, 신규사업을 벌이는 대신 극도의 유동성(현금) 선호 현상을 보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자율이 낮아져도 소용이 없다. 투자는 일어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는 경제가 유동성 함정 상태에 빠지게 되면 스스로 균형상태로 돌아가지 못하게 됨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때 정부가 나서주어야 한다. 불확실성이 걷히고 투자가 살아날 때까지 정부지출을 확대하여 부족한 총수요를 보충해줌으로써 경제를 극도의 불황에서 건져낼 수 있다.
케인즈의 총수요 관리정책을 정리해보면,
총수요 = 소비 + 투자 + 정부지출,
이렇게 보면 케인즈의 이론은 맬서스에 비해 세부적인 부분에서 한층 정교해졌다는 (예를 들어 공공지출의 승수효과 같은) 점을 제외하면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케인즈의 경우는 부족한 총수요를 정부지출로 보완한다고 하는 단기처방은 강조했지만,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접근은 소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공황을 초래한 원인은 무엇인가? 왜 총수요가 부족해진 것인가?
맬서스는 부(富)의 불균형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러나 케인즈는 대답하지 않습니다.
소비성향은 단기적으로 일정하다고 가정해놓고 출발함으로써 근본원인을 회피하려 드는 느낌을 줍니다.
맬서스는 문제의 근원을 고치기 위해 소득의 균등한 분배가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했으나 케인즈의 이론에서 이 부분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공황과 같은 극도의 침체가 찾아온 원인을 파고드는 데에는 소홀하고, 극도의 침체가 이미 찾아왔다고 전제하고 나서 그에 대한 단기적인 대처법만 제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맬서스를 그토록 찬양했고 자신의 통찰은 맬서스에게서 왔다고 밝혔던 케인즈가 문제의 근본원인에 대해 모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급을 회피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케인즈는 기업계와 정부의 입맛을 의식했다는 의심을 받습니다.
케인즈의 이론은 정부의 개입에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준 것이므로 정부의 입맛에 잘 맞습니다. 정부지출 확대라는 정책은 (테네시강 유역 개발계획 같은) 기업계의 이해관계와도 일치합니다. 덕택에 케인즈의 이론은 정계, 관계, 재계 모두에서 적극 환영받습니다.
결국 케인즈는 문제의 본질에 대해 애써 눈감으면서, 권력의 입맛에 맞는 부분을 적극 부각시켰다고 볼 수 있고, 그래서 더욱 쉽게 뜰 수 있었습니다.
케인즈의 개인적인 성향도 정치인 등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능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케인즈주의자 = 진보그룹, 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진영이 워낙 깽판(?)을 쳐놓은 덕분이라고나 할까요?
30년대 대공황이 터지기 직전까지도 주류 경제학자들은 세이의 법칙을 신봉했습니다. 맬서스의 주장은 주류의 목소리에 묻혀 잊혀졌습니다.
세이의 법칙에 따르면 공급이 스스로 그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므로 별도로 수요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대공황 직전까지 경제학에는 ‘수요를 관리한다’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케인즈가 제시한 ‘총수요 관리정책’은 당시의 경제학으로서는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었고 ‘케인즈 혁명’이라고까지 불리웠습니다. 케인즈의 이론을 바탕으로 정책당국이 경제에 개입하여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개입주의, 수정자본주의, 혼합경제의 이론적 근거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5,60년대에는 모든 경제학자들이 ‘케인즈주의자’일 정도로 케인즈의 이론이 풍미하였고, 그 이후 밀턴 프리드먼이 이끄는 통화주의학파가 부상하고, 이들이 나중에 신자유주의로 불리우며 득세하는 동안에도 줄곧 케인즈 학파는 이들과 대립하는 양대 산맥을 형성했습니다.
이제 경제위기를 맞아서는 재차 케인즈 학파가 부상하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맬서스의 통찰은 케인즈와 본질적인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케인즈를 통해서 맬서스가 재발견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맬서스의 주장은 대공황이 없었기 때문에 잊혀졌다고 할 수 있고, 반면 케인즈는 대공황 때문에 모두가 새로운 이론을 목말라 찾을 때 나타났습니다.
기존 이론(경제는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스스로 균형점으로 회귀하게 된다는 이론)에 대응하여 경제에 내재적 불안정성이 있음을 누구보다 먼저 분명하게 주장하였고, 체계적으로 입증하였습니다. 승수효과의 제시, 유동성 함정 상태 제시 등 새로운 방법론도 신선하였습니다. 거기에다 기득권층의 입맛에도 잘 맞으니 더욱 쉽게 뜰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케인즈가 제시한 정부지출 확대정책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요?
오늘날 경제학자들은 정부지출을 통해 총수요를 보충하는 정책이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사실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케인즈 학파 내에서도 처음 케인즈가 제시했던 것만큼 효과가 크지는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오늘날 그가 제시했던 정부지출 확대정책이 뉴딜정책과 동의어인 것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뉴딜정책의 핵심이 정부지출을 통해 부족한 수요를 보충하는 것(테네시강 유역 개발계획으로 상징되는)이라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뉴딜정책은 케인즈의 이론과 시기적으로 겹쳐서 시행되었을 뿐입니다.
뉴딜정책의 본질(나중에 따로 종합해서 살펴보려 합니다)은 ‘부(富)의 재분배’로 이는 바로 맬서스가 주장했던 사항입니다. 케인즈는 애써 외면하고 지나갔지요.
뉴딜정책은 케인즈적인 것이 아니라 맬서스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