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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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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감사할 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도다!(2008/11/16)

2008.11.17 16:39 | 설교 | yhctblog

http://kr.blog.yahoo.com/yhctblog/2519 주소복사

♣2008년 11월 16일  성령강림 후 스물일곱 번째 주일
     성경 ; 신8:7-18, 눅17:11-19, 고후9:6-15
     제목 ; 감사할 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도다!
     물맷돌 홈페이지 주소 ; www.dor.or.kr
     학운교회(031-988-1232, 011-738-3038)
  
    얼마 전, 모처럼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룹토의 시간이 되어서, 각자가 자신이 받은 복을 세어보고 감
사할 조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평소에
도 생각하고 있던 사실이지만, 감사할 일에 대해서 서로 이야
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가 감사할 일이 참으로 많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오랫동안 변비로 고생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대
변을 시원스럽게 볼 수 있는 것도 큰 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화장실에 갈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연세가
지긋하시고 원래 무슨 말이든지 솔직하게 표현하시는 분입니
다. 그래서 그 일에 대해서도 순 국산말로 말씀하시는 것이었
습니다. 여러분은 그분이 어떻게 말씀하셨을지 다 아시리라
믿고 굳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받은 복을 세어보면 의외로 참 많다고 하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평상시에
감사할 일들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부족하고 어려운 것들만
생각하면서 불만족스러운 인생을 살 때가 많습니다. 이미 우
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더 많이 갖지
못해서 안달하거나 욕심을 부릴 때가 많습니다.
    어떤 분은 잇몸이 튼튼하지 못하기 때문에 임플란트를 하
게 되었다고 합니다. 보통 하나를 하는데 150~180만원이라고
하니, 그분은 위아래 모두 할 경우 4천만 원 가까이 비용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통 사람은 꿈도 꾸지 못할 일입
니다. 더군다나, 치과는 의료보험이 안 되기 때문에 고스란히
본인부담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잇몸이 건강한 사람이
라면 4천만 원을 번 셈 아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신장이 안 좋아서 신장이식을 하는데, 그 비용
이 천만 원 정도 든다고 합니다. 신장이식이 필요 없는 사람
은 천만 원을 번 것입니다. 그뿐이겠습니까? 머리가 없어서
가발을 해야 할 경우, 가발 값도 만만치 않다고 하니, 가발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은 그만큼 돈을 번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따지다 보면, 우리 몸에 지니고 있는 것만 해도 수
억이 넘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우리가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비록 지금의 경제형편이 좀 어렵고, 몸이
건강치 못해서 걱정하고 있는 분들도 적지 않겠지만, 그러나
감사할 일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병환자 열 사
람이 나타나 예수님을 향하여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더니 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시고 그
냥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여주어라”하고 말씀하셨
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사장이 있는 성전을 향하여 발길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성전으로 향하던 도중에 그들의
몸이 깨끗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열 사람 모두가 깨끗하게 되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아홉 사람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말았습니
다. 그리고 그 중에서 한 사람만 자기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감사드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다시 찾아와서 그 발 앞에 엎드려 고마운 마음을 표
시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말하기를 “열 사람이 다 깨끗
하게 되지 않았느냐? 그런데,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신 다음,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시면서 “이 이방 사
람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사람이 없단 말이
냐?”하고 한탄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다시 찾아와 감사의 예(例)를 드린
사람에게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그 사람에게 치유선언을
하신 것은, 그의 몸뿐만 아니라, 그의 영혼까지도 온전하게
되었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머지 아홉 사람
은 몸만 깨끗하게 되었을 뿐, 정말 중요한 영혼의 구원은 받
지 못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들은 최소한의 인간 도
리(道理)조차 행하지 못하는, 참으로 불쌍하고 불완전한 인간
의 모습을 지닌 채 살아가야만 했던 것입니다.
  
    스펄젼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했다고 합니다. ‘촛불을 보
고 감사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달빛을 주실 것이다. 달빛을
보고 감사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햇빛을 주실 것이다. 햇빛을
보고 감사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일곱 날의 빛을 주실 것이
다.”라고.
    감사할 수 있는 마음, 이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축복 중
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생각
해보십시오.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아무리 많아도 감사할 줄
모른다면,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
은 정말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감사할 일이 한두 가지밖
에 안 되는데도 감사하면서 살아간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복을 받은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에 감리교회의 아펜셀러 목사님과 함께 선교사로
들어왔던 장로교회의 언더우드 목사님의 증손자 원한광 교수
가 몇 해 전에 미국으로 귀국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
다. “한국에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경기가 좋아졌다, 살만
하게 되었다.’라는 말을 들어 보지 못했다.”고 말입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200 여개가 넘는 나라들 중에서
종합적인 국력으로 따질 경우, 아홉 번째 국가라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나라가 분명히 잘 사는 나라인 것만은 틀림없습
니다. 이전과 비교하면, 말할 수 없이 풍요로워졌습니다. 그런
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으면, 원한광 교수가 그렇게 말했겠습니까?
  
    1.우리는 어떤 형편에 있던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고 나아가 광야에
서 지내는 동안, 장차 그들이 들어가서 살게 될 가나안 땅에
서 지켜야 할 일들을 그의 백성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제 너희를 아름다운 땅으로 인도하실 것
이다. 그 땅에서는, 들에서나 산에서나 샘물과 시냇물들이 솟
아날 것이다. 그곳은, 밀과 보리가 자라고,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가 열리며, 감람유와 꿀이 나는 땅이다(신8:7-8)’라고 하
면서 ‘그곳에서는 먹는 데도 부족한 것이 없거니와, 아쉬운
것이 거의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처럼 ‘너희가 거기서 풍족하게 먹고 지내면서
행복하게 될 경우,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그
아름다운 땅을 보고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해야 한다.’고, 모
세는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다음, ‘내가 오늘 너희에게
전하는 주님의 명령과 계명을 정확하게 지킴으로써 너희 하나
님을 잠시도 잊지 않도록 하라.’고 명령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다시 모세가 한 말을, 우리는 특별히 유
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는 말하기를 ‘너희가 먹을 것이
풍부하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살며, 너희 재산이 많아졌을
때, 혹시라도 너희가 교만한 마음이 생겨서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너희를 인도해내신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
도록 명심하라(신8:12-14)’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었을 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에 속했습니다. 그런
데, 나라를 세운지 60년 만에, 세계 227개 국가에서 아홉 번
째로 잘 사는 나라가 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세
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에 속하는 우리나라, 자원도 거의 없는
나라, 그나마 반 토막 난 나라가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잘사
는 나라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기적에 속하는 일입니다.
    지난 번, 세계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서, 우리나라의 김연아
선수가 당당히 일등 하는 모습을 보고 감격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2위를 한 일본선수보다 20점 차이로 우
승했으니, 얼마나 멋있는 일입니까? 이처럼, 우리나라는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참으로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우리나라 사
람들이 감사할 줄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세계에서
데모를 제일 많이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말하자면, 우
리나라 사람이 불만이 제일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슨 속
상한 일이 그리 많은지 몰라도, 세계에서 술을 제일 많이 마
시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세계에서 제
일 자살을 많이 하는 나라가 또한 우리나라입니다.
    또 하나가 있습니다. 세계로 여행을 다니면서 돈을 제일 잘
쓰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세
계를 어디를 가든지 제일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이 또한 대
한민국 사람이라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진정 우리 후손들에게 살기
좋고 아름다운 나라를 물려주려면, 지금 우리가 정신을 똑바
로 차려서 올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교만한 마음을 다 버리고
겸손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를 이처럼 잘 살
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외국에 나가서 돈 쓸 생각하지
말고 어려운 이웃을 돕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웃 중에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
까? ‘내가 번 돈 내 맘대로 쓰는데, 무슨 말이 많으냐?’고
하는 것은 아주 교만하고 불손하기 그지없는 태도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간곡하게 부탁하고 있는 것은,
혹시 풍족하게 되더라도 ‘내가 잘나서 부유하게 되었다’고
착각하거나 교만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께서 계속 은혜를 베푸셔서 잘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정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우리의 모든 것들이 한 순간
에 무너지거나, 아니면 그동안 이루어놓은 경제발전이 물거품
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좋은 예(例)가 아이슬란드입니다. 아
이슬란드는 세계 네 번째로 잘사는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지
금 아이슬란드는 나라 전체가 도산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다고 하
는 사실입니다. 현재 우리가 사는 모습 그대로 살다가는, 머
지않아 그렇게 될 위험이 많다고, 우리나라 언론은 물론이요,
세계 언론에서도 열심히 떠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심각
한 것은, 언론에서 열심히 떠들어대도, 일부 국민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우리만이라도 정신을 차려서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면
서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원도 별로 없는 나라,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에 속하는
나라, 중요한 것들은 일본이 다 가져가고 남은 것이 별로 없
던 나라, 이런 나라가 세계 아홉 번째로 잘사는 나라가 된 것
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이 아니었으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달아 그 뜻대로 사는 것
만이, 우리나라가 계속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
각이 들지 않습니까? 목사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
닙니다. 목사가 아니더라도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
니까? 사도 바울 선생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것은 무엇이나 주시고 풍성케 하신다(고후9:8)’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풍성케 하여 더 많은 사
람들과 나누게 하신다(10)’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11절에서 다시금 ‘하나님께서 많이 주신 덕
분에 다른 사람에게 많이 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
씀은,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들을 가지고 이
웃과 열심히 나눌 때에, 하나님은 계속 더 많은 것을 우리에
게 주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보도 새퍼’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감사할 줄 아는 사
람에게는 두 가지 장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두려움을 모른다는 것입니
다. 감사하는 마음은, 빛이 어둠을 뒤덮어 버리듯, 두려움을
뒤덮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감사하는 마음은 거만해지지 않도록 막아준다고 했습
니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조용하고 겸손한 인간을 만든다
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다가 하나를 더 덧붙이고 싶습니다. 그것은, 감
사하는 마음은 나눌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해준다고 하는 것입
니다. 왜냐하면, 감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자신
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아는 사람이
라면, 그것을 소유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주님의 뜻대
로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더 값진 것임을 알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
이라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허락하여 주신
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달란트의 비유가 바로 그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바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
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시겠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 선생이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낸 그 시기에는,
바울에게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빈털
터리 거지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고후
9:15)’고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믿고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영원
한 생명을 주셨으니, 이보다 더 값지고 귀한 것이 어디 있겠
습니까? 하지만, 현실적인 것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바울은 진정 가난뱅이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합니까? 사실 경제적으로 어려
움을 당하고 있는 분들이 있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
만,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더 많다고 하는 사실을,
꼭 깨달을 수 있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
과 나눌 수 있으면 함께 나누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좋으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된 길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지금 조금 가진 것이 있다고 해서 교만한 마음이
들어서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 인
간은 원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게 된 존재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리고 돈도 열심히
벌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대로, 그 모든
것을 이웃과 열심히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번 돈이니
까 내 맘대로 쓰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주 교만
한 태도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우리가 받은 복이 얼마나 되는지 항
상 헤아리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진심으
로 감사하면서 주님의 뜻을 열심히 실천함으로써 하나님께 찬
양과 영광을 돌리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감사의 근거(합3:17-19)

합3:17-19'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
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
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
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 아멘.

감사하는 마음이나 말을 하게 되는 경우는
1)무슨 혜택을 받고 무엇이나 풍요하므로 행복하다고 여겨 감사함과
2)그렇지 않고 하바국 선지자처럼 잘 풀리지 않아도 감사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무슨 혜택을  받을 때는 감사하기 쉽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에 어떻게 감사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우리는 본문을 통해 그 깊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하바국선지자처럼 감사함으로 힘을 낼 수 있는 성
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기독교 성도가 감사하게 되는 이유를 몇 가
지로 생각하고자 합니다.


1. 구원 영생 받은 것이 모든 감사의 근거


그러므로 구원에 대한 확신은 모든 기독교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내용
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에 확신이 없으면  불평 불만이 생길 때 걷잡을 수
없는 시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예수께서 우리 위해 십자가로 돌아가시
므로 우리가 받을 형벌을 다 감수하시게 되어  믿기만 하면 속죄함을 얻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과 그 희생은 세상 일 중에 전무후무한 사건이었습니다.

살후 2:13-14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
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
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14 이를 위하여 우리 복
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
라'
같이 교회를 다니고 예수믿는다 하지만 사람마다 주님을 감사히 여기는 차
이가 있습니다. 눅7:36절 이하에 보면,
예수께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
가 예수께 와서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바리새인 시몬에게 물으셨습니다.빚 주는 사
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
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
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하니, 시몬이 대답하기를,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
함을 받은 자니이다 하니까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돌아보시면서 시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여자를 보느냐 내
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
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
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
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
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7:36-47)고 말씀해주
셨습니다.

같은 성경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십자가로 죽으신 예수님을 닮아 자기 십
자가를 잘 져야 한다는 교훈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고,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졌기 때문에  우리는 질 필요가 없고 혜택만 받고 누려
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도 있습니다.

주님을 얼마나 닮아서 사느냐 하는 것은 역시 얼마나 회개하고 얼마나 겸손
하게 되어 얼마나 감사하며 인생을 사느냐 하는 것과 비례합니다.저와 여러
분 이런 점에서 자신을 솔직하게 감찰하셔야 합니다.내가 얼마나 귀한 것으
로 주님을 위하고 있는가! 이것을 반성하며 사함을 받은 일이 많은 자가 되
어 주님께 감사하고 세상을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2. 고난 중에도 도우실 하나님께 감사


본문은 유대왕국이 죄악으로  물들어서 왕 여호야김은 폭군 정치로 백성들
을 탄압하고 무죄한 사람들을 죽이는 범죄인이었습니다. 나라는 온갖 부정
부패로 얼룩져 있었고 하나님은 이럴 보시고 갈대아 사람들을 이용해 채찍
으로 삼으시고 유대를 치게 하셨습니다.

이 곤란한 상황에서 하바국 선지자는 의구심도 생겨서 하나님께 이 부조리
한 시대적 역사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지만 그의
환경마저 본문에 이른 바대로 살기 어렵게 되어 선한 자가 복을 받고 악한
자가 벌을 받는 권선징악으로 역사가 바르게 돌아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괴로워하는  가운데서도 하바국은 그 유명한 바울이 로마
서에서 사용한 말씀인(롬1:17),
합 2:4'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는 유명한 말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그 정의를 확실하게 가져야 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요즘  시대는 물질에 복을 받고 형통하기만 하는 것
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밖으로 나타나는 형통만이 하나님의 복이
고 환난은 벌이 라고 여긴다면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롬 8: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
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는 스스로의 상태와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제대로 모릅니다.때로는
하나님께 하바국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깊이 기도
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답이 있을 것입니다.
히 12:6,8,10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
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
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
여케 하시느니라'

이러므로 우리는 영생 얻어서 감사하고 좋은 자녀 되도록 환난도 주신다는
사실을 믿을 때 모든 범사에 감사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
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대책도 없고 이유도 없이 무조건 감사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 깊은 뜻이 숨었기에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구약 백성들이 지켜야 될 3대 절기(출 23:14-17;레 23:4-8,15-21,34-43),
유월절(무교절), 칠칠절(오순절, 맥추절),초막절(장막절, 수장절)입니다.
무교절은 출애굽 기념
칠칠절(七七節)은  맥추절로 봄 농사의 보리 수확에 대한 감사
초막절(草幕節)은 가을 농작물과 과일의 수확을 마친 후 드리는 감사

'초막절'이라는 단어는  소출을 위하여 포도밭에 초막을 지은 것에서 유래
되었고, 7일 동안 지킵니다(출23:16; 34:22). 이 때는 히브리력으로 1월인
데, 태양력으로 9,10월경에 해당됩니다. 이 절기의 후속으로 오늘날  추수
감사주일을 지키지만 우리 성도들이 마땅히  감사할 사실은 특별히 구원을
얻었으며 한 해 동안 이런 저런 경우마다 지켜주셨고, 더 잘되게 채찍질도
해주심을 감사하여 영적으로 감사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감사 형식


1)몸으로 감사합니다

롬 12: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
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
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거룩한 성도다운 삶 자체입니다)
물질이 없어도 감사의 반응은 여러 가지로 가능합니다.
입술로 찬송함으로 감사할 수 있고, 시간을 바쳐 교회 중심의 봉사에 임할
수도 있고, 인생 자체를 주의 도구가 되기 위해 아예 전도자, 목사 선교사
교회 지도자와 선교봉사의 일에 전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롬 14:8'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
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2)물질로 감사합니다

출 23:15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의 정
한 때에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
음이라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사람의 마음은 꼭 돈으로 표시하는 것만은  아니지만  마음이 없으면 돈과
물질을 내놓기 어렵습니다.진정한 마음이라면 후회 없이 감사의 표시를 합
니다.
시 116:12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일상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의 얼굴은 평안과 은총으로 가득합니다.
불만으로 일관된 자는 형제에게나 남에게나 항시 불만입니다. 세상은 언제
나 편하기보다 오히려 어렵고 힘든 세상입니다.그럼에도 우리는 영원한 영
생을 얻게 된 자들로 인생의 소망이 있기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또한 신앙생활 잘 하려다가 오히려 힘들 때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을
것을 잘 알고 인내와 소망 가운데서  환난 중에 감사할 수 있는 하바국 선
지자처럼 감사의 정신을 잃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날마다 구원의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자체만으로도 큰 소리로 감사하고 중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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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이버신학교
원문보기 글쓴이 : nulserom  

[주일 낮 예배 설교문]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2008.11.12 09:23 | 설교 | yhct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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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340-901    충남 예산군 삽교읍 창정리 183-1번지
기독교대한감리회 창 정 교 회   담임목사 박 한 응(朴 漢 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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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1.2. 주일 낮 예배 설교문
                  
본  문 : 마가복음 5:21-24, 35-43
제  목 :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찬  송 : 309, (311) 340, 342, 343, 434, 498.
복음송 : 달리다굼(찬미예수2000. No,1054)<27>
         반드시 내가 너를(찬미예수2000. No,1668)<20>

※ 본문 중에 인용된 성구는 개정개역판을 사용하였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은총이 오늘도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어느새 11월이 되었습니다. 한여름 무덥던 여름은 가을바람에 물러가 시원한 바람이 되더니 옷깃을 여미게 하는 삭풍이 불어오는 11월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가을의 문턱을 넘어 겨울로 접어드는 길목에 와 있습니다. 지난 주간 오대산과 향로봉에는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겨울을 나기 위한 월동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계절의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는 하면서도 영적으로 다가오는 겨울에 대한 대비는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영적 겨울이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이 재림하셔서 심판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심판대 앞에 섯을 때에 주님으로부터 잘했다고 칭찬과 상급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이 11월 첫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창정교회 성도들은 영적 겨울을 맞이할 수 있는 대비를 철저히 하는 성도가 되어서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는 성도가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다 같이 한 번 따라하시기 바랍니다.「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오늘의 설교 제목입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다보면 참으로 두려운 일들을 많이 부딪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마10:26-31)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이 말씀은 주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 거라사 지방에 가셔서 군대 마귀 들린 사람을 고치시고 다시 배를 타고 가버나움 지방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자 전과 다름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 중에 군중을 헤치고 예수 앞에 헐레벌떡 달려 나오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회당장 야이로라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을 보자마자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간구 합니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거듭거듭 예수님께 애원을 합니다.
우리들은 병원에서 환자의 가족들이 의사를 붙들고 애원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아마도 백부장의 모습은 누구보다도 절실하였을 것입니다.
(눅8:42)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된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식이 아플 때 부모들도 마음이 아픕니다. 하물며 중병이 들어서 죽어 가는 자식의 모습을 보는 부모의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지난 얼마 전 희귀병에 걸린 딸의 치료비를 감당키 어려워서 산소 호흡기를 떼어내어 딸을 사망케 한 아버지가 살인 혐의로 체포가 되어서 경찰의 조사를 받는 모습이 TV에 방송이 되자 온 나라가 비정의 아버지라고 질타하는 목소리가 빗발쳤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아버지를 비정의 아버지라고 돌을 던지기 전에 그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병원 치료비가 2억이나 밀리고 집도 팔고 모두 다 쏟아 부었지만 빗만 늘어가고 산다는 보장도 없고 고친다는 보장도 없고 앞으로 얼마나 돈이 더 들지도 모르는데 나머지 가족이라도 살리려는 그 아버지의 입장과 그렇게 까지 밖에 할 수 없는 이 사회 구조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창21:16절 말씀에는 하갈이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나서 브엘세바 광야를 헤매다가 먹을 물도 떨어지고 떡도 떨어져서 이제는 죽을 수밖에 없을 때에 그 아이 이스마엘을 위하여 통곡하기를 “자식의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노라” 고 마주 앉아 바라보며 방성대곡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삼하12:16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다윗이 밧세바를 통하여 낳은 아이가 하나님의 진노로 죽게 되었을 때에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그 곁에 서서 다윗을 땅에서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과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고 하였습니다.

야이로는 다급하게 예수님께 간구를 합니다.
“예수님, 예수님, 내 딸이 지금 죽어갑니다. 살려주세요. 주님은 능히 고치실 수 있습니다” 거듭 거듭 부르짖었습니다. 그냥 보통으로 그냥 적당히 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자기의 사랑하는 외동딸이 죽어 가는 판에 보통으로 하였겠습니까? 사력을 다해서 예수님께 눈물로 간구를 하였습니다.
열두 살이나 되도록 키워 논 외동딸이 몹쓸 병에 걸려서 죽어갑니다. 유대인들의 관습에는 12세가 되면 성년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귀여운 딸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회당장 야이로는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했을 것입니다. 무슨 짓인들 안 했겠습니까? 그러나 날이 갈수록 딸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만 갑니다.
이와 같은 때에 그에게 소망이 생겼습니다.
딸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온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오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만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죽음과 어둠의 그림자가 물러갔습니다. 근심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두려움도 사라졌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살아났습니다. 할렐루야!!


1. 어떻게 해서 이와 같은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그것은 야이로의 믿음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 멘!>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지 않습니다. <아 멘!>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실 때 반드시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습니다. 병자 본인의 믿음이든지, 아니면 그의 가족이 믿음이 있든지, 그것도 아니면 함께 동행한 사람이라도 믿음이 있을 때 그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습니다.<아 멘!>
(마9:29) “네 믿음대로 되리라”
(막5:34)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막2: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마9:22)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마15:28)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이 주님의 축복의 말씀이 오늘 예배드리는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그런가 하면 예수님은 믿음 없는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1) 야이로는 그의 선입견을 버렸습니다.

당시 회당장의 직책은 사회에서는 유지이며 많은 장로들 중에서 선택받은 자로서 성전 내의 질서를 감독하고 예배를 주관하며 성전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로부터 이단자로 지목이 되었는데 이 회당장은 평소의 예수님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예수님을 찾아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니까 예수님을 만나고 그 예수님이 사랑하는 자기의 외동딸을 살려주신 것입니다.
선입견을 버렸다는 것은 자신의 고집을 버리고 겸손해 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우리들도 나쁜 선입견을 버려야 합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생각하고 있던 모든 생각들과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앞에 나와서 엎드려 간구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감동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간구를 들어주십니다. 믿으시면 다같이「아멘」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다 같이 찬송을 부르겠습니다.
<498장 2,3,4절>
말씀 위에 서서 내 뜻 버리고 감정을 버리고 말씀에 서니
불완전한 믿음 완전해지고 내가 이제부터 주 만 붙드네
나의 생명 되는 내 주 예수님 영원토록 모셔 내 기쁨 넘치네

내가 염려하며 계획하던 것 믿고 기도하며 주께 맡기고
나의 모든 소원 던져버리고 주의 뜻을 따라 살기 원하네
나의 생명 되는 내 주 예수님 영원토록 모셔 내 기쁨 넘치네

믿음으로 닻을 주께 던지고 끊임없이 주를 찬송하면서
전엔 나를 위해 일해 왔으나 이제 주만 위해 힘써 일하리
나의 생명 되는 내 주 예수님 영원토록 모셔 내 기쁨 넘치네

(2) 야이로는 체면도 버렸습니다.

야이로는 사회적으로도 회당장이라는 상당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고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떠돌아다니는 예수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예수님의 은혜를 구할 때 체면이 큰 장애가 됩니다. 예수 앞에서는 체면이 없습니다.
아람 나라의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을 고치려고 이스라엘 나라의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왔을 때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 하자 처음에는 화를 냈습니다. 그러나 겸손히 자신의 모든 체면을 버리고 순종할 때 그의 문둥병이 깨끗이 난 줄로 믿습니다.<아 멘!>
예수님이 두로 지방에 가셨을 때 가나안 여인 하나가 예수님께 나와 소리 지르며 귀신들린 딸을 고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평소와 달리 그 소리를 무시하고 그냥 가는 길을 갔습니다. 또 이방 여자라고 멸시했습니다. 심지어는 개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체면 불구하고 예수님께 간구하여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15:28)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3) 야이로는 자존심도 버렸습니다.

자존심을 버렸다는 것은 겸손을 나타냅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자존심을 버려야 합니다.
야이로가 이와 같이 예수님께 간구할 때 예수님은 쾌히 승낙하시고 그와 함께 가고 있을 때 예기치 않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앓는 여인이 예수님의 옷을 만지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냥 예수님이 모르는 척 하고 가실 수도 있는데 예수님은 “누가 내 옷을 만졌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지체하는 동안 야이로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하는 말이 딸이 방금 죽었다는 것입니다.
청천 하늘에 날벼락입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소리입니다.
야이로는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간신히 예수님을 만나서 엎드려 빌어 예수님을 모시고 가면서 이제는 내 딸이 살게 되었다고 좋아하는 판에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아마도 야이로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이 야이로에게 하시는 말씀이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네가 병든 네 딸을 내가 고쳐 줄 것을 믿었으면 죽은 딸을 살릴 것도 믿으라” 는 말입니다. 아 멘!.
다 같이 복음성가를 부르겠습니다.

   반드시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20)
1. 반드시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 반드시 내가 너를 들어 쓰리라
   천지는 변해도 나의약속은 영원히 변치 않으리
   두려워말라 강하고 담대하라 낙심하며 실망치 말라
   낙심하며 실망치 말라 실망치 말라
   네소원 이루는 날 속히 오리니 내게 영광 돌리리
   영광의 그날이 속히 오리니 내게 찬양하리라

2.  반드시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 반드시 내가 너를 들어 쓰리라
    세상의 소망이 사라졌어도 온전히 나를 믿으라
    두려워말라 강하고 담대하라 인내하며 부르짖으라
    인내하며 부르짖으라 실망치 말라
    네소원 이루는날 속히오리니 내게 영광돌리리
    영광의 그날이 속히오리니 내게 영광돌리리

두려움이 왜 생깁니까? 믿음이 없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실 때 풍랑이 일어서 제자들이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너희가 어찌 두려워하느냐 어찌 믿음이 없느냐?” 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2.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1) 믿음은 죽음도 이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죽음은 인간의 슬픈 종말입니다. 죽음 앞에서는 부귀나 명예도 학식도 덕망도 다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또 슬퍼합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하기도 하고 가족들의 죽음을 겪기도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죽음 같이 절망적인 현실에 부닥치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야이로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내가 죽음의 사망 권세를 이기고 살려 주리라” 는 소망의 말씀 인줄로 믿습니다.<아 멘!>

(2) 예수님의 이 말씀은 생사를 주관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분이시기 때문에 죽음도 다스리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신30: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삼상2: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축복된 삶을 사느냐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두려움 없이 전폭적으로 의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친히 죽음에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피조물의 생명을 다스리실 수 있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3) 예수 안에서는 죽음이란 없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죽음을 “잔다” 고 하셨습니다.
자는 것은 다시 깨어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녁에 잠자리에 누운 사람은 내일 아침에 다시 일어날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요11:11)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오늘 본문 39절 말씀에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깊은 진리를 모르고 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 줄을 모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 하고 외치셨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가 잠에서 깨어 일어나듯이 살아서 일어났습니다. 할렐루야!!

죽은 딸이 살아났을 때에 그 집의 기쁨이 어떠하였겠습니까? 한 번 상상해 보세요. 예수님의 능력과 그리고 회당장 야이로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은 그 믿음이 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믿으시면 다같이「아 멘」하시기 바랍니다. <아 멘!>
우리 다 같이 복음성가를 한 곡 부르겠습니다.

달리다굼(찬미예수1500 No,891)<27>
캄캄한 인생길 홀로 걸어가다
지치고 곤하여 내영혼 깊은잠이 들었었네
어두운 죄악의 길을 걸어가다
상하고 찢기어 내영혼 깊은잠이 들었었네
내영혼 어둠속에 방황할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주님음성
깨어라 일어나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일어나라 죄악의 잠자던 영혼아
달리다굼 깨어라 일어나 걸어라
어둠은 물러가고 새날이 다가오네
주님 오실날 멀잖았네
어둠속에 잠자던 영혼 일어나라
일어나 걸으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아 멘!

다 같이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주여! 죽은 나의 심령을 살려주옵소서!
주여! 죽은 나의 신앙도 살려주옵소서!
주여! 죽은 나의 믿음도 살려주옵소서!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는 죽음이란 없습니다. 우리의 육체가 죽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의 또 다른 출발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나서 이 세상을 한평생 살아왔듯이, 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영생의 세계 즉 하나님 나라로의 새로운 출발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 멘!>
마치 땅속에서 5년이나 7년 동안 지내던 굼벵이가 매미가 되어 하늘을 날며 한 세상을 사는 것과 갔습니다.
(요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영생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죽음에 이르는 병이 있습니다. 바로 절망감입니다. 낙심입니다. 좌절입니다. 그래서 소망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19세기 덴마크의 실존주의자 키에르케고르(So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는 그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 이라는 책에서 인간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절망감」이라고 하였습니다. 절망감은 자신을 파괴시킵니다. “이제는 어찌 할 수 없다” 는 절망감 때문에 사람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자살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前後左右 사방이 모두 막혀도 위로 하나님을 향해서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렘29:12-13)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 또 있습니다. 바로 불신앙입니다.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믿지 못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불 못에 던져진다고 하였습니다.
(롬14: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근심이나 걱정이 있습니까?
풀리지 않는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까?
사업이 잘 안되십니까?
자신이나, 가족 중에, 질병으로 고생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 시간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세요.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아 멘!>
이 말씀을 믿고 의지하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예배드리는 우리 창정교회 성도들은 이 두려움 없는 믿음을 가지고 이 험한 세상에서 날마다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 멘!>

출처:크로스맵

[주일 밤 예배 설교문]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

2008.11.12 09:22 | 설교 | yhct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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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1.2. 주일 밤 예배 설교문
                  
본  문 : 마태복음 13:3-9, 18-23
제  목 : 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
찬  송 : 260, 308, 310, 311.

※ 본문 중에 인용된 성구는 개정개역판을 사용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한량없이 은혜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앞에 찾아 나오신 성도 여러분에게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풍성한 은혜가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아 멘>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말씀하신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의 말씀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농촌에 사는 우리들은 이해하기 쉽고 또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보면 농부가 씨를 뿌릴 때 씨가 떨어진 곳을 네 가지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① 딱딱한 길바닥에 떨어진 씨는 새들이 먹어버렸고,
② 흙이 얇은 돌 위에 떨어진 씨는 싹이 났으나 금방 말라버렸고,
③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싹은 낫지만 성장이 충실치 못해서 결실 하지 못하였고,
④ 옥토와 같은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100배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실 때에 제자들은 그 말씀의 뜻을 알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다 같이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오늘 본문 말씀에는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잘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말씀 즉 주님의 말씀은 듣고 깨달을 수 있는 심령의 귀가 열려진 사람만 들을 수 있다 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비유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씨 뿌리는 자는 누구인가?

예수님께서는 그 비유의 내용을 묻는 제자들에게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셨는데 씨를 뿌리는 자는 ‘말씀을 전하는 자’ 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뿌리는 자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뜻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은 통하여 말씀을 전하셨고, 그 후 세례요한을 통하여 전해졌고, 그 후 예수님이 직접 천국 복음을 전해 주셨으며, 오늘날에는 주의 종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끊임없이 말씀을 뿌리게 됩니다.
그러나 항상 옥토와 같이 좋은 밭에만 말씀의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길바닥과 같은 완악하고 강팍한 마음들에게도 뿌려야 하고 돌짝밭과도 같은 사막에도 뿌려야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씨 뿌리는 자를 찌르고 상하게 하는 가시덤불과 같은 고난과 형극의 밭에도 뿌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의 씨를 뿌리는 자의 가야할 사명의 길입니다.

2. 말씀이 뿌려지는 밭은 무엇입니까?

네 종류의 밭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리는 사람들의 심성을 네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는 말씀이 됩니다.
15절 이하에 보면
⊙ 길가에 뿌리었다는 것은 사단이 즉시 와서 말씀을 빼앗는 것이고,
⊙ 돌밭에 뿌리었다는 것은 말씀을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서 즉시 말라버리는 것이요,
⊙ 가시덤불에 뿌리었다는 것은 말씀을 듣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결실치 못하게 막았다고 했습니다.
⊙ 좋은 밭에 뿌려진 것은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행하여 30배 60배 혹은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네 종류의 밭 중에서 어떤
종류의 밭에 속하는지 자신이 한 번 진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3. 그러면 지금 내 마음 밭은 어떤 상태인가를 간검(看檢)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출27:21절 말씀에 하나님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명하시기를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 고 명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의 우리들은 항상 내 심령에 믿음의 등불, 성령의 등불, 기도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자신의 믿음을 간검 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설교를 하면 대략 네 종류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주일성수를 잘 하라, 또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라, 저녁예배를 빠지지 마라, 새벽기도를 해라. 고 설교를 하면

(1) 첫째 반응은 전혀 무감각한 반응입니다.

아무리 천사의 말을 하여도 감각이 없습니다. 느낌이나 깨달음이 없습니다. 저 말은 목사가 의례 하는 말이려니 하고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을 하며 그냥 흘려버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마11:16-17)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양심이 화인을 맞은 사람은 무슨 일을 당해도 감정이 없고, 무슨 말씀을 들어도 전혀 깨달음이나 느낌이 없습니다.
(잠27:22)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겨지지 아니하느니라”

(2) 두 번째로 비평적인 반응이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서 헌금에 대하여 설교를 하거나 십일조에 대한 설교를 하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빨리 깨닫고 잘못된 것을 시정을 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또 돈 얘기를 한다” “우리교회의 목사는 돈 얘기를 너무 한다” 는 등의 비판적인 생각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는 사탄이 그의 마음을 강팍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콘크리트 벽이나 철판에다가 바늘을 꼽으려고 하면 도저히 불가능한 것처럼 철판과도 같고 콘크리트 벽과도 같이 그의 심령이 강팍해진 것입니다. 만약에 이 시간 여러분들 중에 그렇게 느껴지는 분이 있다면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빨리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모든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지 못하고 부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그의 성격이 이상성격으로 기형화되고 맙니다.

출5장 이하의 말씀을 보면 모세가 애굽의 바로왕에게 가서 이스라엘 민족을 보낼 것을 요구하였으나 거절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을 보면 한 가지 재앙이 끝날 때마다 바로는 마음이 강팍하여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강팍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리지 못하면 그 결과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가 마지막에 모세에게 항복을 할 때 처음에는 ‘광야로 사흘 길이나 갈 것이 무엇이 있느냐 여기서 예배를 드려라’ 고 하다가 또 그 다음에는 ‘남자들만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더욱 심한 재앙이 쏟아지니까 ‘사람만 가고 우양과 소들은 가져가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하나님께 헌금을 하지 말라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삼일 길을 가서 그곳에서 하나님께 희생의 제사를 드린다고 하였는데 제물이 될 우양이나 짐승을 가져가지 말라는 것은 곧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지 말라는 빈 제단만 쌓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와 같은 사탄의 유혹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몸만 가서 예배를 드리면 되지 헌금이 뭐가 필요 하냐 안 해도 된다” 고 사탄이 속삭입니다. 이 사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안 됩니다. 사탄의 유혹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3) 세 번째의 반응은 미온적인 반응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옳은 말인 줄 알면서도 또 말씀을 깨닫고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결단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사람을 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약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계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말씀을 듣고 깨달았으면 즉시 실천에 옮기는 자라야 합니다. 차일피일 내일 또 내일로 미루면 안 됩니다. 즉시 실천에 옮기는 행함이 없으면 반드시 거기에는 사탄이 개입이 되고 그 열심은 식어 집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서 제물로 드리라고 할 때에 즉시 실천에 옮겼습니다.
(신23:21)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4) 네 번째의 반응은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내며 신앙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아멘으로 받아서 기쁨과 감사로서 행할 때에 그 말씀이 내게 축복으로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고후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이와 같은 믿음은 곧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열매를 원하시지 잎사귀를 원치 않으십니다.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나무가 저주를 받았듯이 말만 풍성하고 실천이 없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게 됩니다. (마25:26-30)
(고전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4. 오늘 이 시간 주님께서 내게(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1) 깨닫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마음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12절 말씀과 같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15:8-10)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호4:14)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가장 시급한 것은 깨닫는 것입니다. 깨닫기만 하면 자신의 부족함이나 잘못된 것을 알고 회개할 수 있습니다. 회개하면 그 다음에는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깨닫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마24장에 말세의 징조를 말씀하시면서 15절에 보면 “이 말씀을 읽는 자는 깨달을 진저…” 라고 말씀하시면서 깨닫기를 촉구하셨습니다.

(2) 결단하는 믿음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무엇을 결단해야 합니까? 지금까지 망설이면서 하지 못하던 것을 결단해야 합니다.
주일성수를 못하던 사람은 주일성수를 할 수 있도록 결단을 하여야 합니다.
감사가 부족한 사람은 감사를 넘치도록 할 수 있도록 결단을 하여야 합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던 사람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수 있도록 결단을 하여야 합니다.
새벽기도를 하지 못하던 사람은 새벽기도를 할 수 있도록 결단을 하여야 합니다.
신앙은 끝없는 도전과 결단의 연속입니다. 이것이 자신을 개혁시키는 것이고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계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오늘도 내일도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은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 밭에 뿌려집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드리느냐가 문제입니다. 옥토와 같은 마음으로 받아드리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분명 네 종류의 밭이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말씀을 받든지 간에 선택권은 각자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각자 자신이 받아야 합니다. 이제는 듣고 깨달을 때입니다.
그리고 길바닥과 같은 마음도, 돌짝밭과 같은 마음도, 가시덤불과 같은 마음도, 성령의 도구로서 갈아엎어서 단단한 땅을 부드럽게 만들고 돌멩이나 풀뿌리 나무뿌리는 제거하여야 합니다. 바로 은혜 받는데 장애가 되는 것을 제거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외치시기를
(호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추수의 계절입니다. 여러분들은 추수를 해서 곡간에 채우면서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추수가 어떻고, 추곡 수매가가 어떻고, 농사를 지어봐야 남는 것이 없고, 또 쌀 직불금을 엉뚱한 사람들이 타갔다고 하는 말은 일단 접어두고 하나님 앞에 진정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보고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우매한 사람이 아니라 보고, 듣고, 깨닫는, 성도가 되어서 이 시대에 이 추수의 계절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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