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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340-901 충남 예산군 삽교읍 창정리 183-1번지 기독교대한감리회 창 정 교 회 담임목사 박 한 응(朴 漢 應) ☎(041)337-4865, Fax(041)338-4865, H.P 011-452-4865 홈페이지 : www.amospark.com & cafe.daum.net/43ch E-Mail : park043@hanmail.net & park043@chol.com ************************************************************************************* 2008.11.2. 주일 낮 예배 설교문 본 문 : 마가복음 5:21-24, 35-43 제 목 :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찬 송 : 309, (311) 340, 342, 343, 434, 498. 복음송 : 달리다굼(찬미예수2000. No,1054)<27> 반드시 내가 너를(찬미예수2000. No,1668)<20>
※ 본문 중에 인용된 성구는 개정개역판을 사용하였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은총이 오늘도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어느새 11월이 되었습니다. 한여름 무덥던 여름은 가을바람에 물러가 시원한 바람이 되더니 옷깃을 여미게 하는 삭풍이 불어오는 11월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가을의 문턱을 넘어 겨울로 접어드는 길목에 와 있습니다. 지난 주간 오대산과 향로봉에는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겨울을 나기 위한 월동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계절의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는 하면서도 영적으로 다가오는 겨울에 대한 대비는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영적 겨울이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이 재림하셔서 심판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심판대 앞에 섯을 때에 주님으로부터 잘했다고 칭찬과 상급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이 11월 첫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창정교회 성도들은 영적 겨울을 맞이할 수 있는 대비를 철저히 하는 성도가 되어서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는 성도가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다 같이 한 번 따라하시기 바랍니다.「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오늘의 설교 제목입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다보면 참으로 두려운 일들을 많이 부딪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마10:26-31)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이 말씀은 주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 거라사 지방에 가셔서 군대 마귀 들린 사람을 고치시고 다시 배를 타고 가버나움 지방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자 전과 다름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 중에 군중을 헤치고 예수 앞에 헐레벌떡 달려 나오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회당장 야이로라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을 보자마자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간구 합니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거듭거듭 예수님께 애원을 합니다. 우리들은 병원에서 환자의 가족들이 의사를 붙들고 애원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아마도 백부장의 모습은 누구보다도 절실하였을 것입니다. (눅8:42)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된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식이 아플 때 부모들도 마음이 아픕니다. 하물며 중병이 들어서 죽어 가는 자식의 모습을 보는 부모의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지난 얼마 전 희귀병에 걸린 딸의 치료비를 감당키 어려워서 산소 호흡기를 떼어내어 딸을 사망케 한 아버지가 살인 혐의로 체포가 되어서 경찰의 조사를 받는 모습이 TV에 방송이 되자 온 나라가 비정의 아버지라고 질타하는 목소리가 빗발쳤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아버지를 비정의 아버지라고 돌을 던지기 전에 그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병원 치료비가 2억이나 밀리고 집도 팔고 모두 다 쏟아 부었지만 빗만 늘어가고 산다는 보장도 없고 고친다는 보장도 없고 앞으로 얼마나 돈이 더 들지도 모르는데 나머지 가족이라도 살리려는 그 아버지의 입장과 그렇게 까지 밖에 할 수 없는 이 사회 구조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창21:16절 말씀에는 하갈이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나서 브엘세바 광야를 헤매다가 먹을 물도 떨어지고 떡도 떨어져서 이제는 죽을 수밖에 없을 때에 그 아이 이스마엘을 위하여 통곡하기를 “자식의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노라” 고 마주 앉아 바라보며 방성대곡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삼하12:16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다윗이 밧세바를 통하여 낳은 아이가 하나님의 진노로 죽게 되었을 때에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그 곁에 서서 다윗을 땅에서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과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고 하였습니다.
야이로는 다급하게 예수님께 간구를 합니다. “예수님, 예수님, 내 딸이 지금 죽어갑니다. 살려주세요. 주님은 능히 고치실 수 있습니다” 거듭 거듭 부르짖었습니다. 그냥 보통으로 그냥 적당히 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자기의 사랑하는 외동딸이 죽어 가는 판에 보통으로 하였겠습니까? 사력을 다해서 예수님께 눈물로 간구를 하였습니다. 열두 살이나 되도록 키워 논 외동딸이 몹쓸 병에 걸려서 죽어갑니다. 유대인들의 관습에는 12세가 되면 성년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귀여운 딸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회당장 야이로는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했을 것입니다. 무슨 짓인들 안 했겠습니까? 그러나 날이 갈수록 딸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만 갑니다. 이와 같은 때에 그에게 소망이 생겼습니다. 딸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온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오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만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죽음과 어둠의 그림자가 물러갔습니다. 근심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두려움도 사라졌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살아났습니다. 할렐루야!!
1. 어떻게 해서 이와 같은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그것은 야이로의 믿음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 멘!>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지 않습니다. <아 멘!>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실 때 반드시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습니다. 병자 본인의 믿음이든지, 아니면 그의 가족이 믿음이 있든지, 그것도 아니면 함께 동행한 사람이라도 믿음이 있을 때 그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습니다.<아 멘!> (마9:29) “네 믿음대로 되리라” (막5:34)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막2: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마9:22)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마15:28)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이 주님의 축복의 말씀이 오늘 예배드리는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그런가 하면 예수님은 믿음 없는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1) 야이로는 그의 선입견을 버렸습니다.
당시 회당장의 직책은 사회에서는 유지이며 많은 장로들 중에서 선택받은 자로서 성전 내의 질서를 감독하고 예배를 주관하며 성전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로부터 이단자로 지목이 되었는데 이 회당장은 평소의 예수님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예수님을 찾아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니까 예수님을 만나고 그 예수님이 사랑하는 자기의 외동딸을 살려주신 것입니다. 선입견을 버렸다는 것은 자신의 고집을 버리고 겸손해 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우리들도 나쁜 선입견을 버려야 합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생각하고 있던 모든 생각들과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앞에 나와서 엎드려 간구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감동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간구를 들어주십니다. 믿으시면 다같이「아멘」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다 같이 찬송을 부르겠습니다. <498장 2,3,4절> 말씀 위에 서서 내 뜻 버리고 감정을 버리고 말씀에 서니 불완전한 믿음 완전해지고 내가 이제부터 주 만 붙드네 나의 생명 되는 내 주 예수님 영원토록 모셔 내 기쁨 넘치네
내가 염려하며 계획하던 것 믿고 기도하며 주께 맡기고 나의 모든 소원 던져버리고 주의 뜻을 따라 살기 원하네 나의 생명 되는 내 주 예수님 영원토록 모셔 내 기쁨 넘치네
믿음으로 닻을 주께 던지고 끊임없이 주를 찬송하면서 전엔 나를 위해 일해 왔으나 이제 주만 위해 힘써 일하리 나의 생명 되는 내 주 예수님 영원토록 모셔 내 기쁨 넘치네
(2) 야이로는 체면도 버렸습니다.
야이로는 사회적으로도 회당장이라는 상당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고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떠돌아다니는 예수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이 예수님의 은혜를 구할 때 체면이 큰 장애가 됩니다. 예수 앞에서는 체면이 없습니다. 아람 나라의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을 고치려고 이스라엘 나라의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왔을 때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 하자 처음에는 화를 냈습니다. 그러나 겸손히 자신의 모든 체면을 버리고 순종할 때 그의 문둥병이 깨끗이 난 줄로 믿습니다.<아 멘!> 예수님이 두로 지방에 가셨을 때 가나안 여인 하나가 예수님께 나와 소리 지르며 귀신들린 딸을 고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평소와 달리 그 소리를 무시하고 그냥 가는 길을 갔습니다. 또 이방 여자라고 멸시했습니다. 심지어는 개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체면 불구하고 예수님께 간구하여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15:28)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3) 야이로는 자존심도 버렸습니다.
자존심을 버렸다는 것은 겸손을 나타냅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자존심을 버려야 합니다. 야이로가 이와 같이 예수님께 간구할 때 예수님은 쾌히 승낙하시고 그와 함께 가고 있을 때 예기치 않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앓는 여인이 예수님의 옷을 만지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냥 예수님이 모르는 척 하고 가실 수도 있는데 예수님은 “누가 내 옷을 만졌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지체하는 동안 야이로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하는 말이 딸이 방금 죽었다는 것입니다. 청천 하늘에 날벼락입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소리입니다. 야이로는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간신히 예수님을 만나서 엎드려 빌어 예수님을 모시고 가면서 이제는 내 딸이 살게 되었다고 좋아하는 판에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아마도 야이로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이 야이로에게 하시는 말씀이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네가 병든 네 딸을 내가 고쳐 줄 것을 믿었으면 죽은 딸을 살릴 것도 믿으라” 는 말입니다. 아 멘!. 다 같이 복음성가를 부르겠습니다.
반드시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20) 1. 반드시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 반드시 내가 너를 들어 쓰리라 천지는 변해도 나의약속은 영원히 변치 않으리 두려워말라 강하고 담대하라 낙심하며 실망치 말라 낙심하며 실망치 말라 실망치 말라 네소원 이루는 날 속히 오리니 내게 영광 돌리리 영광의 그날이 속히 오리니 내게 찬양하리라
2. 반드시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 반드시 내가 너를 들어 쓰리라 세상의 소망이 사라졌어도 온전히 나를 믿으라 두려워말라 강하고 담대하라 인내하며 부르짖으라 인내하며 부르짖으라 실망치 말라 네소원 이루는날 속히오리니 내게 영광돌리리 영광의 그날이 속히오리니 내게 영광돌리리
두려움이 왜 생깁니까? 믿음이 없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실 때 풍랑이 일어서 제자들이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너희가 어찌 두려워하느냐 어찌 믿음이 없느냐?” 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2.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1) 믿음은 죽음도 이길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죽음은 인간의 슬픈 종말입니다. 죽음 앞에서는 부귀나 명예도 학식도 덕망도 다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또 슬퍼합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하기도 하고 가족들의 죽음을 겪기도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죽음 같이 절망적인 현실에 부닥치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야이로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내가 죽음의 사망 권세를 이기고 살려 주리라” 는 소망의 말씀 인줄로 믿습니다.<아 멘!>
(2) 예수님의 이 말씀은 생사를 주관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분이시기 때문에 죽음도 다스리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신30: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삼상2: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축복된 삶을 사느냐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두려움 없이 전폭적으로 의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친히 죽음에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피조물의 생명을 다스리실 수 있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3) 예수 안에서는 죽음이란 없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죽음을 “잔다” 고 하셨습니다. 자는 것은 다시 깨어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녁에 잠자리에 누운 사람은 내일 아침에 다시 일어날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요11:11)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오늘 본문 39절 말씀에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깊은 진리를 모르고 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 줄을 모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 하고 외치셨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가 잠에서 깨어 일어나듯이 살아서 일어났습니다. 할렐루야!!
죽은 딸이 살아났을 때에 그 집의 기쁨이 어떠하였겠습니까? 한 번 상상해 보세요. 예수님의 능력과 그리고 회당장 야이로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은 그 믿음이 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믿으시면 다같이「아 멘」하시기 바랍니다. <아 멘!> 우리 다 같이 복음성가를 한 곡 부르겠습니다.
달리다굼(찬미예수1500 No,891)<27> 캄캄한 인생길 홀로 걸어가다 지치고 곤하여 내영혼 깊은잠이 들었었네 어두운 죄악의 길을 걸어가다 상하고 찢기어 내영혼 깊은잠이 들었었네 내영혼 어둠속에 방황할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주님음성 깨어라 일어나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일어나라 죄악의 잠자던 영혼아 달리다굼 깨어라 일어나 걸어라 어둠은 물러가고 새날이 다가오네 주님 오실날 멀잖았네 어둠속에 잠자던 영혼 일어나라 일어나 걸으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아 멘!
다 같이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주여! 죽은 나의 심령을 살려주옵소서! 주여! 죽은 나의 신앙도 살려주옵소서! 주여! 죽은 나의 믿음도 살려주옵소서!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는 죽음이란 없습니다. 우리의 육체가 죽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의 또 다른 출발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나서 이 세상을 한평생 살아왔듯이, 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영생의 세계 즉 하나님 나라로의 새로운 출발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 멘!> 마치 땅속에서 5년이나 7년 동안 지내던 굼벵이가 매미가 되어 하늘을 날며 한 세상을 사는 것과 갔습니다. (요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영생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죽음에 이르는 병이 있습니다. 바로 절망감입니다. 낙심입니다. 좌절입니다. 그래서 소망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19세기 덴마크의 실존주의자 키에르케고르(So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는 그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 이라는 책에서 인간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절망감」이라고 하였습니다. 절망감은 자신을 파괴시킵니다. “이제는 어찌 할 수 없다” 는 절망감 때문에 사람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자살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前後左右 사방이 모두 막혀도 위로 하나님을 향해서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렘29:12-13)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 또 있습니다. 바로 불신앙입니다.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믿지 못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불 못에 던져진다고 하였습니다. (롬14: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근심이나 걱정이 있습니까? 풀리지 않는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까? 사업이 잘 안되십니까? 자신이나, 가족 중에, 질병으로 고생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 시간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세요.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아 멘!> 이 말씀을 믿고 의지하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예배드리는 우리 창정교회 성도들은 이 두려움 없는 믿음을 가지고 이 험한 세상에서 날마다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 멘!> |
출처:크로스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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