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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무술을 원하는가??..제주도 오승도장 http://www.aikid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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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9/30
 


[박성진 기자의 태권도 vs. 타무도] 제3편 일본 검술

▲ 접근전에서 최강의 무기로 평가되는 일본도.


이번에 소개할 무도는 일본의 ‘검술(劍術)’이다. 검도(kendo)가 아니라 검도의 뿌리가 된 고류(古流) 검술을 말한다.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서도 지적된 것처럼 일본은 칼의 나라다. 그 칼은 ‘무사도(武士道)’를 상징한다. 조선이 ‘붓’으로 상징되는 선비(士)의 나라라고 한다면 일본은 ‘칼’로 상징되는 사무라이(侍)의 나라다.

조선의 ‘선비정신’과 일본의 ‘무사도’가 등가로 치환될 수 있는 개념은 아니지만, 사회 지도계급의 도덕과 정신을 나타냈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갓을 쓰지 않고 돌아다니는 선비를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칼을 차지 않고 돌아다니는 사무라이 또한 상상할 수 없다. 조선의 선비들이 중국에 뒤지지 않는 조선유학을 만들어 낸 것처럼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다양하고 깊이 있는 검술을 만들어냈다.

검술이라는 것은 인류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이지만, 일본 검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된 시기로는 전국시대(戰國時代: 15세기 중반~17세기 초반)를 꼽는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로 이어지는 인물들이 활약했던 바로 그 시기다. 말 그대로 전국시대. 전쟁으로 날이 밝고 졌다.

전쟁이 많으니 싸움 기술, 특히 검술이 발전하는 것은 필연적이었을 터. 당시 일본의 검술이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음은 ‘명나라의 이순신’이라고 할 수 있는 척계광(戚繼光)의 <기효신서(紀效新書)>, 조선 정조대에 편찬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등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조선은 물론이고 명나라에까지 왜구(倭寇)가 출몰하여 피해가 컸다. 이 왜구의 실체에 대한 연구는 현재도 진행형이지만, 단순한 해적이 아닌 것만큼은 분명하다.

키가 작은 왜구들은 거의 자신의 키만한 칼(날이 5자, 자루가 1자 5치)을 들고 달려드는데, 한번 맞붙었다하면 명나라 병사건 조선의 병사건 모두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때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는 척계광의 <기효신서>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들은 장도(長刀)를 가지고 섬광처럼 뛰어들므로 우리 병사들은 겁에 질린다. 왜구는 잘 뛰어드는데 한 발에 일장을 뛴다. 칼의 길이가 5자이니 1장(丈) 5척(尺)을 일거에 나아가는 것이 된다. 우리 병사의 단기(短器)로 대적하기가 어려우며, 장기(長器)를 들면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장도에 마주치면 일도양단(一刀兩斷)되어 버린다. 그것은 무기가 예리할 뿐만 아니라 두 손을 써서 무거운 힘이 가해지기 때문이다."(기효신서)

여기에 일본 검술의 핵심이 잘 드러나 있다. 가장 예리한 검을 만들어 가장 단순하고 효과적인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챙, 챙, 챙, 챙’ 하는 칼 부딪치는 소리가 날 틈이 없다. 칼이 한번 엇갈리면 하나는 서 있지만 다른 하나는 쓰러지는 것이다. 이 왜구들의 검술에 명과 조선의 병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결국 명과 조선은 이 발달한 일본의 검술을 배운다. (<기효신서>와 <무예도보통지>에는 일본검술인 ‘쌍수도(雙手刀)’, ‘왜검(倭劒)’ 등이 기록되어 있다.)

당연한 것이다. 월등하게 뛰어난 적의 무기와 기술 앞에서 명백하게 뒤지는 우리의 무기, 우리의 싸움방식을 고수한다면 목숨이 붙어나겠는가? 전쟁터에서는 일단 이기고 볼 일이다. 실제로 임진왜란 때 조선군은 투항한 일본 병사들(降倭)에게 일본의 검술을 배우기도 했다.

앞서 지적했지만, 사무라이들은 무사들인 동시에 선비들이었다. 우리 조선의 선비들에게는 무(武)가 결여되어 있었지만,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무(武)에만 치중한 것이 아니었다. 검술 수련만 하고 공부하는데 등한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19세기 서양의 거대한 흐름이 일본을 압박할 때, 도쿠가와 막부를 지키고자 한 것도 사무라이였고, ‘존왕양이(尊王攘夷)’를 기치로 서구 열강과의 싸움을 주장한 것도 사무라이였으며,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켜 일본이 근대 국가로 발전하는 기틀을 만든 것도 사무라이였다.

일본의 검술은 일본이 메이지 유신 후 근대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폐도령(廢刀令)’ 이 내려지는 등 구시대의 유물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1895년 일본무덕회(日本武德會)의 설립 등으로 검술 유파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일부 유파의 경우 문화재로까지 지정을 받기도 한다.

일본의 검술에는 한때 수백개의 유파가 있었고 또 걸출한 검호(劍豪)들도 많지만 몇 가지 주요 유파를 소개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 텐신쇼덴 가토리신토류(天眞正傳 香取神道流)
6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가장 오래된 유파로 일본 검술의 뿌리와 같은 검술. 일본 정부에 의해 무형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다. 다른 검술뿐만 아니라 유술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 지겐류(示現流)
형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실전을 추구하는 검술. 막부 말기 최강의 검객 집단으로 불리던 신선조(新選組, 신센구미)도 지겐류를 만나면 일단 일격은 피하고 봤다는 무시무시한 유파.

@ 북진일도류(北辰一刀流, 호쿠신잇토오류)
일본 정통검술의 대명사와 같은 유파. 창시자 치바 슈샤쿠(千葉周作)가 당대 최고의 검객으로 이름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일본 근대화의 주역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검술로도 더욱 유명한 유파. 신선조(新選組, 신센구미) 대원들 중 상당수를 배출하기도 했다.

(끝)

[박성진의 무림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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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모노 입을 때는 속옷을 입지 않는다?

2009.05.30 18:13 | 스크랩 | 차니

http://kr.blog.yahoo.com/ychany/955083 주소복사

원본 원본 : FUN FUN FUN



일본에서 1년간 교환 유학생으로 있었던 시절... 나는 요코하마의 카마쿠라 하치만구에서 1월 1일부터 1월 3일까지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일본은 해가 바뀌면 절이나 신사를 찾는 것이 하나의 풍습처럼 되어 있다.
내가 있었던 카마쿠라 하치만구에는 약 3일간 300만명의 방문객이 찾았다.
대부분의 여성은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

내가 한국에 돌아와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했다.
모두가 똑같이 물었다. "기모노입으면 속옷 안입는다는데 진짜야?"

알리가 없다. 벗겨보지 않는 한 그것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각종 포털 사이트에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들이 있다. 그 답들의 공통점은 "과거에는 안 입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속옷 선때문에 지금도 안 입는 사람이 있지만, 사실 과거에는 안입었습니다."  

이 말은 엄밀하게 말하면 틀린 대답이다. 아니 틀릴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다. 

뭔소리냐고 되묻을 수 있겠지만, 이는 속옷에 대한 개념의 문제이다
.






만약 여러분이 지금 속옷을 입은 여성을 상상했을때 밑과 같다면.....




여러분은 지극히 정상이라는 사실과 기모노는 과거에 속옷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다.

하지만 런 속옷이 등장한것은 20세기 중반부터이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저런 속옷은 과거에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즉, 속옷을 저런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어느 나라 어느 전통복에도 속옷은 입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기모노에는 속옷이 존재했다.



나가쥬반-ながじゅばん이라 불리우면 기모노 속에 입는 옷이다. 현재의 개념의 속옷과는 그 격이 다르다. 실제로 속옷이라는 것은 속에 입는 옷이다.
그 부분을 생각한다면 과거에도 기모노에는 속옷이 있었으며, 속옷을 입었다.

기모노는 속옷을 입지 않았다라는 이야기를 일본의 성문화로 연결하여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화를 대하는데 있어서 이러한 생각은 정말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기모노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 하자면, 지금 남아 있는 기모노의 형태는 굉장히 고급형태다. 
실제로 사무라이 급 이상의 귀족이 아닌 사람들의 경우 제대로 갖춰진 기모노를 입지 못했다.
그 모습은 지금처럼 우리가 상상하는 정갈한 모습의 기모노가 아니었다. 



기모노는 활동성에서 굉장히 제약이 많은 옷이다. 일본 사상 최악의 지진으로 불리우는 1923년의 관동대지진 때 사상자가 남성보다 여성어 월등히 많았던 것도 바로 기모노 때문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기모노로만 제약되어 있던 여성들이 서양의 옷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각설하고 현재의 기모노를 입을 때는 우리가 생각하는 현재의 개념의 속옷을 입는다.
때때로 속옷 선으로 인해 벗고 입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속옷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하기 때문에 속옷을 입지 않을 경우 굉장히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속옷을 입으면서도 속옷 선을 감추는 방법은 이미 많이 연구 되었으며, 기모노 전용 속옷도 꽤 많이 나오고 있는 편이다.





나를 이상한 놈으로 몰고 싶겠지만 이 사진들은 실제로 일본 웹사이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기모노용 팬티 사진을 가져온 것이다. 나의 사상에 의문을 갖지 않길 바란다.

최근에는 다양한 기모노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미니 기모노 부터



우리의 개량 한복에 해당하는 기모노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기모노는 일본의 전통 의상이다. 
하나의 문화를 대하는데에는 그 문화와 역사를 인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모노를 이해하는 것에는 바로 이러한 것들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을 쫒는다면, 결국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스크랩] 상상초월 초현실주의 사진작품

2009.03.31 10:31 | 스크랩 | 차니

http://kr.blog.yahoo.com/ychany/955059 주소복사

상상초월 초현실주의 사진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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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괴테보르크 출신 초현실주의 아티스트 Erik Johanssond의 작품

에릭 요한슨은 주로 사진을 이용하여 초현실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는 예술가로,
그의 작품은 때론 동심의 세계를 때론, 섬뜩한 괴력을 느끼게도 한다

우리 눈으로 보이는 그의 작품들이 실제 현실의 세계가 아니므로 <초현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도 그가 표현하려고 하는 예술 세계가 바로 현실이 아닌
초현실세계에 기초하고 있기에 그를 <초현실주의 아티스트>로 불러야 할 것 같다



출처 : 야후 이미지박스

[스크랩] 일본도와 환도: 목정혈 대 유소혈

2009.01.02 10:22 | 스크랩 | 차니

http://kr.blog.yahoo.com/ychany/955043 주소복사

칼을 감상하는 데는 여러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만, 그 중 하나는 칼몸(도신刀身)과 손잡이를 고정하는 방식을 보는 것입니다. 일본의 카타나打刀와 조선의 환도環刀는 기본적으로 칼몸에 뚫린 구멍을 통해 고정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만, 실제로 어떻게 고정하느냐에 대해서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 줍니다.

카타나의 경우, 메쿠기目釘라고 불리는 작은 대나무 정을 꽂아넣어서 고정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로 만든 손잡이에 이를 꽂아넣기 위한 작은 구멍이 하나 있게 되는데, 이를 목정혈目釘穴이라고 하지요. 칼을 잡았을 때 손으로 만져지지는 않습니다. 일본도를 손질하는 도구 중에는 메쿠기를 빼고 박는 데 쓰는 메쿠기누키라고 해서 작은 망치도 하나 있는데, 이걸 쓰면 어렵지 않게 칼을 해체할 수 있기 때문에, 칼의 손잡이 부속품 등을 자기 마음대로 바꿔서 커스터마이징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반면, 조선 환도의 경우 유소혈流蘇穴이라는 작은 금속 원통을 박아넣어서 고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매듭 장식을 끼워넣어서 마무리를 하게 되지요.(유소혈의 유소라는 말 자체가 이러한 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칼 손잡이 위에 살짝 튀어나와 있기 때문에 만져보면 유소혈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해체 따위는 생각하지 않은 구조입니다. 커스터마이징 따위는 물 건너갔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선시대의 별운검 손잡이. 고려대학교 소장.

이러한 차이점이 생기게 된 이유는 이 칼들의 태생에 기인합니다. 일본도의 대표적인 형식인 카타나는 지방 분권적 사회에서 사용하는 양손칼입니다. 내전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사회에서 칼이란 각 지방의 장인이 만들어 판매되는 상품입니다. 무사의 필수품인만큼 사용자의 취향 같은 것을 고려할 필요 또한 있습니다 - 조립만 할 줄 안다면, 마음에 드는 부품들을 사다 온라인 게임 캐릭터 꾸미듯이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양손으로 칼을 쓰는 만큼, 칼날을 고정하는 부품이 손잡이에 튀어나와 있으면 곤란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조선 환도의 경우, 태생 자체가 중앙 집권적 사회에서 탄생한 한손칼이죠. 이런 사회에서는 칼과 같은 병장기란 기본적으로 국가에서 생산해서 보급해주는 군수품입니다. 군수품 주제에 개인의 취향 따위를 고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매뉴얼 대로 만들어서 쓰다가 망가지면 그냥 정비소에 보내는 수 밖에요. 게다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대형화되기 전, 환도는 한 손으로 쓰는 칼이었습니다. 그러니 길이도 좀 짧고, 손잡이 위에 유소혈이 튀어나와 있어도 문제가 안 됩니다.

=====

2008년 11월 5일부터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칼, 실용과 상징" 이라는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과 경인미술관이 수집한 조선 환도를 중심으로 한 전시회인데요, 이만한 수준의 전시는 아마도 몇 년 동안 만날 일이 전혀 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일본의 도검 박물관에 전혀 꿀리지 않는 전시더군요.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였습니다만, 코너마다 컨셉을 줘서 아주 세심하게 배열해 놓은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환도의 변천사에서 빼먹을 수 없는 요소가 바로 일본도의 영향입니다. 이웃 나라에 워낙에 걸출한 도검이 있는 데다가 오랜 전쟁으로 인해 닮아갈 수밖에 없었던 탓이 큰데, 이번 전시에서도 그러한 점을 잘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특히 전시실 한 귀퉁이에 함께 놓은 네 자루의 칼은 일본도의 영향을 완연히 보여 주는 칼들이더군요. 심지어 그 중 한 자루는 옻칠한 칼집 위에 금가루를 뿌려 장식하는 마키에 양식으로 만들어져 있기도 했습니다. 흥미를 가져서 잘 살펴보니, 유소혈과 목정혈이 함께 나타나는 칼이 생각보다 많이 있더군요. 한일 양국의 문화적 교류를 보여 주는 흥미로운 자료들이라 생각합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은 월요일과 국경일은 쉽니다만, 지하철 6호선을 타면 쉽게 갈 수 있으니 칼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꼭 한 번 가서 관람하시기를 권하는 바입니다. 2009년 1월 18일 까지니까 며칠 안남았군요. 운이 좋으면 큐레이터 분의 안내를 받으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회전초밥을 사 주신다면 제가 대신 가서 안내해드릴 용의도 있습니다. :D

* 주의사항: 전시회 도록(\35,000)이 몇 권 안 남았음. 이 역시 육군박물관의 조선 도검 도록 이래 최고의 수준이라 확신함.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