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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에서 세번째 겨울을 보냈다. 이 곳의 겨울은 길고 묵직하고 혹독하고 지긋지긋하고 인정사정 없다. 한국에서 갓 들어온 사람이, 바람이 불면 얼음이 살에 박히는 것 같아- 라고 한다. 종아리에 타다닥 박히는 얼음 조각들이 그려지고, 웃는다. 내가 생각해낼 수 없는 종류의 표현이다. 퍼스낼리티가 담긴 한글을 구사하는 사람과의 대화를 무척 그리워했던 것 같다. 정직한 문법구조로 트릭하나 없이 말하는 사람들과만 간간이 한국말을 했으니까. 내가 속한 업계 종사자들과 유학생들의 전반적인 특성인가라고도 생각해본다. 본국에서도 드물었는데 여기서야.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거나 반사신경을 자극하지 않는 대화를 지속하려면, 상대방이 상당히 흥미로운 외모를 가졌거나 이유없이 사랑스럽거나 분명한 목적이 있거나 해야하는 거다.
내 삶에도 무용담이 하나 생겼다. 살다보면 몇 개의 비밀과 몇 개의 무용담이 따라붙는 건가. 일년 전 쯤의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리지도 초능력이 생기지도 몸져 눕지도 않았지만, 툭 튕겨져 나간 곳은 영혼의 어두운 밤이었다. 사고나 병이 건강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몰랐다. 육체라는 것을 특별히 의식해서 인생에 대한 고민의 영역에 넣어본 적도 없다. 자연재해처럼 무자비하게 밀고 들어오는, 백만분의 일 초 전에도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세상의 속성에 대한 인간의 무력함을 체험하는 것, 그것을 그런 것이었구나 또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위기의 상황에는 주변 사람들도 한 몫을 한다. 가족과 지인들 중에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부류와 의외로 무심한 부류가 나뉜다. 그들의 새롭게 발견된 모습과 관계의 태생적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약해진 몸과 마음은 쉽게 또 다른 상처를 부른다. 자신의 총체적 미성숙함을 드러내고, 동굴에 들어가 웅크리고 핥고, 그렇게 일 년이 지나갔다.
호수가 보이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창 밖으로 정박해 있는 요트들과 수평선이 펼쳐지고, 매일 아침의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몸이 휘청할만큼 바람이 불 때나 달리고 또 달리는 사람들을 본다. 하늘과 물이 맞닿아 색이 변해가는 걸 본다. 바람이 만들어 내는 구름의 모양을 본다. 관광객도 노부부도 외국인도 별로 없고, 새벽 세 시에 사이렌 소리도 들리지 않고, 홈리스도 거리의 음악가도 없다. 밀도가 낮은 뼈와 최소한의 근육으로, 어깨와 배와 종아리가 탄탄하게 올라 붙은 사람들이 출근 전 퇴근 후에 일정한 보폭으로 쏟아져 나와 달리는 곳에 섞여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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