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새에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이어폰이 사라졌다. 음악 없이 이 일을 하기란 난감하다. 감각을 부분적으로 차단하지 않으면 디테일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화가 나지도 놀랍지도 않지만, 남의 물건을 몰래 집어갈 수 있는 마음가짐의 사람이 근처에 있다는 것이 꺼림칙하게 새삼스럽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책상 위에 이어폰이 널부러져 있는게 보기 좋지는 않았다. 육감이 퇴화되어 갈수록 실수가 많아진다. 감각이 손상된 짐승이 정글에서 겪게 되는 일.
출근 시간, 아침과 점심을 먹는 곳, 커피에 넣는 홀밀크의 양, 늘 집어드는 생수, 퇴근 시간이 점점 규칙적이 되어 간다. 행동반경과 선택의 폭은 넓지 않았으나 만족스러운 패턴을 찾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우리에 갇힌 짐승이 샅샅이 꼼꼼히 정성들여 새로운 서식지를 탐색하고 받아들이는 의식. 가끔 다른 종의 두 동물이 함께 붙어 지낸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동료를 잃은 짐승은 예민해지고 불안정하고 위험하다가 지각을 멈춰버리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는가 보다.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파악하고 정의하는 수순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것을 멈출 수 있다면
자연의 일부분이자 매일의 당연한 구성요소로서의 나를, 의식하는 것 만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 만큼만 의식할 수 있는 건가.
비대해진 정신에 눌려 존재감이 사라진 육체가 제 몫을 찾을 수 있을까.
Lake Shore를 매일 달리는 사람들 속에 물음표 없이 섞여 뛸 수 있는 건가.
자아를 최대한 의식하지 않으려는 것은 성경적인가.
시카고에서 세번째 겨울을 보냈다. 이 곳의 겨울은 길고 묵직하고 혹독하고 지긋지긋하고 인정사정 없다. 한국에서 갓 들어온 사람이, 바람이 불면 얼음이 살에 박히는 것 같아- 라고 한다. 종아리에 타다닥 박히는 얼음 조각들이 그려지고, 웃는다. 내가 생각해낼 수 없는 종류의 표현이다. 퍼스낼리티가 담긴 한글을 구사하는 사람과의 대화를 무척 그리워했던 것 같다. 정직한 문법구조로 트릭하나 없이 말하는 사람들과만 간간이 한국말을 했으니까. 내가 속한 업계 종사자들과 유학생들의 전반적인 특성인가라고도 생각해본다. 본국에서도 드물었는데 여기서야.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거나 반사신경을 자극하지 않는 대화를 지속하려면, 상대방이 상당히 흥미로운 외모를 가졌거나 이유없이 사랑스럽거나 분명한 목적이 있거나 해야하는 거다.
내 삶에도 무용담이 하나 생겼다. 살다보면 몇 개의 비밀과 몇 개의 무용담이 따라붙는 건가. 일년 전 쯤의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리지도 초능력이 생기지도 몸져 눕지도 않았지만, 툭 튕겨져 나간 곳은 영혼의 어두운 밤이었다. 사고나 병이 건강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몰랐다. 육체라는 것을 특별히 의식해서 인생에 대한 고민의 영역에 넣어본 적도 없다. 자연재해처럼 무자비하게 밀고 들어오는, 백만분의 일 초 전에도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세상의 속성에 대한 인간의 무력함을 체험하는 것, 그것을 그런 것이었구나 또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위기의 상황에는 주변 사람들도 한 몫을 한다. 가족과 지인들 중에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부류와 의외로 무심한 부류가 나뉜다. 그들의 새롭게 발견된 모습과 관계의 태생적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약해진 몸과 마음은 쉽게 또 다른 상처를 부른다. 자신의 총체적 미성숙함을 드러내고, 동굴에 들어가 웅크리고 핥고, 그렇게 일 년이 지나갔다.
호수가 보이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창 밖으로 정박해 있는 요트들과 수평선이 펼쳐지고, 매일 아침의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몸이 휘청할만큼 바람이 불 때나 달리고 또 달리는 사람들을 본다. 하늘과 물이 맞닿아 색이 변해가는 걸 본다. 바람이 만들어 내는 구름의 모양을 본다. 관광객도 노부부도 외국인도 별로 없고, 새벽 세 시에 사이렌 소리도 들리지 않고, 홈리스도 거리의 음악가도 없다. 밀도가 낮은 뼈와 최소한의 근육으로, 어깨와 배와 종아리가 탄탄하게 올라 붙은 사람들이 출근 전 퇴근 후에 일정한 보폭으로 쏟아져 나와 달리는 곳에 섞여 지내고 있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완전히 붕괴된 국가에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영적으로 완전히 파멸된 사람들을
'한꺼번에' 구해낼 수는 없다고. 몇 명씩, 또 몇 명씩 구해낼 수 밖에 없다고.
이 곳의 젊은이들이 Facebook에 오늘의 상태를 업데이트하고 Twitter로 시시각각 행동반경을 알리고
Dopplr에 여행계획을 올리고 어젯밤 파티 사진을 Flickr에서 나누는 동안
캄보디아의 소녀 Sung은 뱃속의 아이와 함께 rehab을 이탈해서, 새벽 2시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직장동료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어제 저녁으로 fried artichokes를 먹은 것까지 알고 있는데
음..별 거 아니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애엄마 노릇하기 힘들다는 거.
진짜..한마디로 요약하니까..더더욱 별 거가 아니네.
좀 길게 쓰면, 내 인생과 애 인생의 밸런스..그리고, 어찌보면 애도 남인데 남의 인생을 내가 어디까지 컨트롤하는 게 옳은 것이냐는 갈등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