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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6/01/07
 

[스크랩] 유비보다는 제갈공명이 되고싶은 욕망!!

2009.11.18 21:24 | 이런 저런 | 유비

http://kr.blog.yahoo.com/yb01112000/12464 주소복사

원본 원본 : Soft Charisma

난 회사의 대표가 되는 것에 별로욕심이없고
최고가 되는 것에는 그다지 욕심이 없는 것같다..

소위 유비보다는 제갈공명이 되고 싶은 것이다.

난 회사에있어
"의사결정 시스템" 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중 하나다.
어짜피 오너가 대단한 능력이있지아니한들
모든 것을 스스로 정확히 판단하여 업무를 원할히
할 수 있다기 보다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사람의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반대로.

이명박서울시장의 경우는 의사결정을 지원받기
보다는 하향식 업무를 주로 전달하는데
생각보다는 그의 카리스마나 업무에대한
능력을 대단하다고 하는 이야기를 "시청"에
다니는 친척으로부터 들은 바있다.

난 오너나 대표가 되기보다는 그 사람이
크게 되도록 도와주는 의사결정지원자인
제갈공명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것이다.

내가 너무 욕심이 없는 것인가??
맘편하게(부담없이) 어떤 조직을 실제운영하는자!!
그가 제갈공명아닐까?

  

유비와 다윗

 


 

유비가 자신의 갓난아기를 조조에게 빼앗겼습니다.


슬픔에 잠긴 유비를 보며 부하인 조자룡은 죽음을 무릅쓰고


조조의 진영으로 달려가 유비의 아기를 구출했습니다.


목숨을 건채 빗발치는 화살을 뚫고 달려온 조자룡은


유비에게 아기를 넘겨주었습니다. 그런데 기뻐해야 할 유비는


아기를 받아든 순간 갑자기 아기를 바닥에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아기를 향해 칼을 높이 뽑아들고 외쳤습니다.


“네 이놈!


네 놈 때문에 천하에 둘도 없는 나의 장수를 잃을 뻔하였다!”


그 광경을 지켜본 조자룡은 고개를 숙이며 감동하였습니다.

 

 

이 이야기와 비슷한 예가 성경에 나옵니다.


다윗 왕이 여부스에 있을 때였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다윗 진영을 포위했을 때 진영에 샘이 없어


모든 병사들과 다윗은 타는 듯한 갈증에 시달렸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한탄하였습니다.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그때 다윗의 용사 중 세 명이 목숨을 걸고 우물물을 길어


다윗에게로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세 용사들이 떠온 물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 하리이다.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를 어찌 마실 수 있습니까?”


하고 여호와께 부어드렸습니다.


다윗은 세 용사들이 가져온 물을 피라고 하였습니다.


물이 아니라 부하들의 생명이 담긴 피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우리들의 충성을 그렇게 보실 것입니다.


유비와 다윗이 충성스러운 부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욱 당신 자녀들을 사랑하시는 주님은


우리들이 주님을 위하여 흘린 눈물과 흘린 땀,


그리고 소중한 희생과 값 지불을 피로 여기실 것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    (마25:23)

[스크랩] 윤관의 아들 윤언이는 왜 김부식 눈 밖에 났나

2009.11.08 13:53 | 이런 저런 | 유비

http://kr.blog.yahoo.com/yb01112000/12426 주소복사

원본 원본 : '성이네'

아버지의 굴욕을 아들이 앙갚음
누명 쓰고 권력에서 밀려나
초막에서 좌선한 채로 쓸쓸한 죽음

고려 때 여진을 정벌한 명장 윤관(尹瓘·?~1111)이 재상으로 있을 때 예종의 명을 받아 1101년
세상을 떠난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의 비문(碑文)을 짓게 됐다. 그러나 문과 출신임에도 불구
하고 문재(文才)가 약했던지 비문 쓰는 일이 여의치 않았다. 이 사실을 윤관의 수하에게 전해들
은 예종은 김부식(金富軾·1075년~1151)에게 비문 짓는 일을 맡겼다.

                             


< '삼국사기' 저자 김부식이 지은 북한 묘향산 보현사비의 최근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과 비문>


문제는 김부식이 예의상 재상이 맡았던 일을 자신은 할 수 없다고 사양하는 시늉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데 있다. 글에 관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던 젊은 김부식
은 한 번도 사양하지 않고 곧바로 비문을 지은 데서 갈등이 시작된다.

윤관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윤언이(?~1149)의 학식이 출중했다. 인종 때 문과에
급제해 탁월한 식견으로 인종의 총애를 받게 되는 윤언이는 자기 아버지에 대한 김부식의 무례
(無禮)를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다.

1133년(인종 11) 어느 날 인종이 국자감(國子監)에 거둥해 김부식에게 '주역(周易)'을 강의토록
하고 윤언이에게는 질문을 맡겼다. 아버지의 굴욕을 잊지 않고 있던 윤언이는 '주역'에 능통한
터였다. '고려사'는 이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윤언이가 이모저모로 따지니 김부식이 대답하기 곤란하여 이마에 진땀을 흘렸다.'


                     <윤관>

윤언이의 이 같은 처사는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격이 됐다.
2년 후인 1135년 묘청의 난이 일어났을 때 윤언이는 토벌 책임을 맡은 김부식의 막료로 참여
해 공을 세웠다. 난이 진압되자 김부식은 묘청의 난 주동자였던 정지상(鄭知常·?~1135)과
윤언이가 깊은 연계를 맺고 있다며 몰아세웠다. 윤언이는 한직으로 밀려나야 했다.

윤언이와 정지상이 신참 관리 시절부터 가까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반란을 함께 할 정도
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런 '혐의'를 받아야 했던 이유는 윤언이나 정지상 모두 칭제건원
(稱帝建元), 즉 고려 국왕을 황제로 격상하고 독자적인 연호를 쓰자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윤언이는 여기까지였고 정지상처럼 서경(西京·평양)을 천자의 땅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김부식은 두 사람 사이의 개인적 친분과 칭제건원을 근거로 삼아 윤언이가 정지상과
연계됐다고 주장해 좌천시켜 버렸던 것이다.
그것은 국자감에서 윤언이에게 수모를 당한 김부식의 앙갚음이었다.


<윤관장군묘... 경기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

양주방어사를 거쳐 광주목사로 좌천되자 윤언이는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관직에서 물러난 지 6년째 되던 해에 인종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자신의 칭제건원론은 묘청이나 정지상의 그것과 달리 국왕을 높이려는 순수한 마음에서
나왔다는 것이었다.

"우리 왕조에서도 태조, 광종 때 그러한 사실이 있었고 과거의 문건을 보면 신라와 발해도
그랬으나 대국이 일찍이 무력을 가하지 않았고 소국들도 감히 비난한 바 없었습니다."
칭제건원을 하다가 금나라 같은 강국으로부터 침공을 당할 빌미를 줄 수 있다는 현실론자들
에 대한 반박이었다.

묘청의 난을 진압한 김부식의 권세는 막강했다. 윤언이는 훗날 정당문학이라는 고위직으로
복직됐지만 김부식에게 밀려날 때부터 벼슬살이의 의욕은 사라졌다.
'주역'에 관해 저서를 남길 만큼 주역에 뛰어났지만 정작 그 책으로 망신을 준 김부식으로
부터 철저한 견제의 대상이 돼야 했다. '주역'으로도 자기 삶을 꿰뚫어 볼 수 없었던 것일까?


▲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 두 문중이 400년간 묘지 다툼을 벌였던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 윤관 장군 묘역(사적 323호) 주변


벼슬을 버린 윤언이는 고향인 파평으로 물러나 호를 금강거사(金剛居士)라고 자칭하였다.
불교의 세계로 숨어버린 것이다. 이때 관승(貫乘)이라는 스님과 어울려 지내며 함께 불교를
공부했다. 두 사람은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초막을 지은 다음 먼저 죽는 사람이 그곳
에서 좌선(坐禪)하여 죽자고 약속하였다.

그후 어느날 윤언이는 소를 타고 관승을 찾아가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초막에 들어가 앉아 좌선에 들어갔다. 그때 관승이 사람을 보냈다.
간접적인 작별 인사였다.

그 사람을 본 윤언이는 크게 웃으며 "스님이 약속을 어기지는 않았구나"라고 말했다.
아마도 윤언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듯하다. 관승이 사람을 보낸 것도 윤언이는 충분히
좌선을 통한 죽음을 실천한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기행 때문인지 유교적 시각의 '고려사'는 윤언이의 죽음에 대해 가혹한 평을 내리고 있다.
"일국의 재상의 몸으로 국가의 교화에는 관심이 없이 허황하고 이상한 행동을 감행함으로써
우매한 속인들을 현혹시켰다."

김부식과의 잘못된 만남이 윤언이의 삶에 초래한 질곡은 그만큼 컸다.

이한우의 역사속의 WHY

馬頭님... 파평윤氏인가 봅니다. ㅎ 한맺히는 일들은 하지 맙시다. ㅎㅎㅎ 火石


"북한의 赤化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한국"




朴勝椿 장군 강연, "韓美연합사 해체는 망국의 길임

을 국민들이 모르는 게 문제"
뉴데일리   
 

기사본문 이미지
박승춘 전국방부정보본부장 ⓒ 뉴데일리

 

 

"한국은 지금 북한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흐름을 국민이 전혀 모르고 있거나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박승춘 전 국방부 정보본부장(예비역 중장)은 못내 안타깝다는 표정이었다. 26일 조갑제의 현대사 강의가 열리는 자리에서였다.

 

 

 

"2012년 한미연합사 해체는 곧바로 북의 연방제 통일 전략과 연계됩니다. 북한은 이미 6.25 직후부터 60년 동안 잘 짜여진 시나리오를 가지고 대남통일전략을 실행에 옮겨왔어요"

 

 

 

박 장군은 “북한 적화통일 시나리오의 결정판이 바로 2012년 4월17일 한미연합사 해체”라고 못박았다. "지난 10월 4일 중국의 원자바오가 방북했을 때 김정일은 이례적으로 환대를 했습니다. 6자회담 참가를 설득하러 온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김정일은 원자바오를 환대해 결국 미북 대화를 먼저 해서 그 결과를 보고 6자회담 참가를 결정하겠다는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 겁니다"

 

 

 

박 장군은 "미북 대화를 통해 북한은 위장 평화공세를 벌이며 한미연합사의 예정대로의 해체를 노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합사 해체 다음 수순은 주한미군 철수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여건을 조성해서 남침 때 6.25처럼 미국이 개입하면 안되므로 핵과 미사일로 미국의 개입을 막고 적화통일 하는 것입니다"

 

 

 

박 장군은 "한미연합사 해체는 곧바로 제2의 한국전쟁 가능성을 크게 열어놓는 일"이라며 “2012년 이후 대한민국이 존재한다는 것을 누구도 담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미 합동 군사훈련 모습 ⓒ연합뉴스

 

 

박 장군은 지난 21,22일 한국을 찾은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이례적으로 한국행 기내에서 회견을 열고 ‘한미연합사의 예정대로 해체’를 언급한 것은 다른 의미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국민에게 예정대로 해체한다는 점을 다시 알리고 아무 준비도 안하고 국민에게 문제점을 얘기하지도 않는 한국 정부에 보낸 ‘경고’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갖는 재산적 가치가 380조원 정도 된답니다. 미국으로선 자신들의 부담이 큰 이 조약을 벗어나고 싶은 판에 노무현 정부가 먼저 전작권 환수 제안을 하니 ‘울고싶은 아이 뺨 때려준 격이 됐습니다"

 

 

 

박 장군은 이 같은 현실적인 위협 속에서 우리 국민의 안보 불감증이 너무 심각하게 무너진 상태라고 말했다. "누구도 북한에 대해 올바르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지난 60년 동안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청와대 기습사건, 아웅산 테러사건, KAL기 폭파 사건, 연평해전 등 많은 도발이 있었어도 제대로 국민을 일깨우지 않았습니다" 박 장군은 "되레 북한의 가난만 강조해 도와야할 동족, 전쟁을 일으킬 힘이 없는 나라로 인식하게 만든 것은 북한의 대남전략에 우리가 넘어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장군은 "1000만명이 작전권 환수 반대 서명을 했는데도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며 "대한민국이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은 착각"이라고 말했다.
 

 

육사 27기인 박 장군은 군 최고 군사정보기관인 국방부 정보본부 북한 정보부에 중령 때 들어가 북한정보부에서만 중장까지 4계급을 진급한 정보통이다. 2004년 7월14일 제2연평해전의 원흉인 북한의 등산곶 684호가 NLL을 침범하자 단호한 대응을 했다. 북한이 이를 문제 삼자 노무현 정권은 그를 처벌하고 북에 사과하려고까지 했다. 박 장군은 이에 대항해 스스로 군복을 벗었다. 좌파 정권 10년동안 당당히 권력에 맞섰던 몇 안되는 장군 중 하나다.


 

 

 

[자유민주·시장경제의 파수꾼 - 뉴데일리/newdaily.co.kr]

[ 2009-10-27, 07:15 ]

[스크랩] 자기가 예약한 협상조차 망각한 노무현의 치매증..

2009.10.31 19:13 | 이런 저런 | 유비

http://kr.blog.yahoo.com/yb01112000/12383 주소복사

자기가 예약한 협상조차 망각한
노무현의 치매증


   친김정일 독재자 노무현이 갑자기 한미FTA 협정을 추진하여 체결하였을 때 그 목적이 국익에 있었는지, 친북에 있었는지는 노무현이 자신의 임기 중에 매듭을 어떻게 지었느냐로 알 수 있다.  만약 국익에 목적이 있었다면 정동영이 패배했다고 해서 망쳐놓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노무현이 한미FTA 비행기 표 혹은 좌석을 예약해 놓은 이상 후임 대통령은 이미 예약된 비행기 혹은 그 좌석을 타고가는 수밖에 없다.  정동영이 당선되었어도 노무현이 이미 미국과 한 약속을 따라 쇠고기 연령 제한을 풀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동영이 당선되었더라도 김대중이 그것을 꼬투리 잡아 광우병 괴담을 퍼뜨리며 반미촛불시위를 선동하였겠는가?

   반미성향의 노무현이 미국과 한미FTA를 체결한 목적도 여전히 친북에 있었다. 이 부분만 타결되면 현재보다 더 많은 국내업체를 개성공단에 입주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가 개성공단 외가공업체의 생산품에 대해서도 국내산 인정을 받도록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던 것도 바로 이 남북경협과 햇볕정책에 있었던 것이다. 한미FTA의 주된 목적은 개성공단을 통한 햇볕정책이다.  따라서, 지금 친김정일 세력의 거두 김대중이 반대하는 것은 한미FTA 그 자체가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이 연방제 적화통일 수순인 6.15공동선언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여하튼, 한미FTA 체결을 추진한 이는 노무현이었지, 이명박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리고, 자기가 해놓은 것 바꾸지 말라고 이명박 당선자 인수위에 협박한 자 역시 노무현이었다.  즉, 노무현의 말뜻은 자기가 예약한 비행기와 그 좌석 그대로 타고 가라는 것이었다.  그 비행기가 어다로 가든, 그 좌석이 일등석이든 이등석이든 그대로 타고 갈 것을 노무현이 강요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원하든 원치 않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진대, 작금 노빠들이 이명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연일연야 불법과격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것은 실로 철면피같은 적반하장이다.

   그러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문제가 꼬인 것일까?  원래는 우리나라가 꼭 쇠고기 시장을 개방하여야 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쇠고기 연령 제한을 풀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 모든 일은 노무현의 고약한 성미로 말미암은 것이었을 뿐이었다.  한미FTA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노무현이 미국 쇠고기를 4번이나 전량 반송시킨 행동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가?  한우에는 때로 뼈조각이 없는가?  병적으로 엄격하게 검역을 하여 아주 작은 뼈조각 하나를 찾아내어 그것을 핑계 삼아 막대한 쇠고기 전량을 반송시키기를 4번이나 했다.  

   우리는 노무현이 무슨 꼼수로 그렇게 하였는지 모른다.  미련한 노무현이 한미FTA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그렇게 심술궂은 행동을 반복하면 우리나라에 유리하게 협상이 체결되리라고 제딴에는 생각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처럼 고유가 시대에 4번 이상 당하지 않겠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었다.  사실, 한미FTA 체결 여부가 경제 발전의 중대 변수인 나라는 우리나라요, 미국 편에서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다.  그리고, 한국이 해 달라는 대로 한국 편에 유리하게 협상을 맺어 주었다.  그러나, 미국 쇠고기를 4먼이너 전량 반송시키는 노무현의 심통 발동이 쇠고기 시장을 열겠다는 뜻인지 아닌지 미국은 알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한미FTA가 미 의회 비준을 받으려면 쇠고기 시장이 개방되어야 하는 단서가 붙었다.  그리고 노무현이 입으로는 몇번이나 미국에 쇠고기 시장을 개방하고, 행동으로는 쇠고기 반송 조치를 취하기를 반복하는 사이 미국이 지난 해 5월 광우병 통제국가 지위를 OIE로부터 획득하였던 것이요, 한국은 OIE(국제수역기구)의 규정에 따라 쇠고기 연령 제한을 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따라서, 만약 누군가를 탓해야 한다면 그런 상황이 오는 것을 예측 못하고 너무 오래 미국을 상대로 말장난치며 수염을 잡아당겼던(생트집잡으며 쇠고기 전량을 4번 반송했던) 노무현을 탓해야 하는 것이다.

   요컨대, 노무현이 부시 대통령한테 한 약속 빨리 지켰더라면 -- 지난해 4월에 지키기만 했어도 --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 안하고도 FTA비준받을 수 있었다. 노무현이 자꾸 말 바꾸는 사이 한국이 OIE 규정을 적용받는 첫번째 국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 의회로부터 한미FTA 비준을 받기도 점점 어렵고 까다로워지기만 하고 있다.

   노무현이 지난 해 4월 "저는 부시 대통령과의 전화를 통해 쇠고기 수입 위생 검역 조건 협상에서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권고를 존중하며 합리적인 수준으로 개방할 의향이 있다는 점, 그리고 합의에 따르는 절차를 합리적인 기간 안에 마무리할 것이라는 점을 약속으로 확인해주었다"고 한 이래 몇번 더 미국에 약속을 주었으며, 미국 정부가 노무현을 사기꾼이 아니라 한국 대통령으로 대하고 실무자들 선에서 한미FTA 체결 마무리 업무가 진행되었던 이상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이 예약해 놓은 비행기를 타며 그 좌석에 앉아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등석이든 이등석이든 노무현이 예약해 놓은 좌석에 꼼짝없이 앉아야 했으며, 다른 선택은 가능하지 않았다.  노무현은 미국과 여러차례 약속만 해놓고 퇴임후 봉하마을에서 치매환자인척 시치미떼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선임 대통령이 미국과 한 약속을 나는 모른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이미 노무현이 너무나 말 바꾸기를 자주 하였기 때문에 만약 한국정부가 한번만 더 말을 바꾸면 한국이라는 국가는 사기꾼 국가로 국제사회에서 인식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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