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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6/01/07
 

[스크랩] 과학계, 박 전대통령 기념관사업 본격화

2009.10.23 01:19 | 박 대통령 | 유비

http://kr.blog.yahoo.com/yb01112000/12352 주소복사

원본 원본 : '성이네'

KIST 과학인들 사단법인 설립...100억 모금돌입
서거 30주년..650평에 동상ㆍ기념물 전시

오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년을 앞두고 ’과학대통령 박정희’ 기념관 건립 사업단
이 공식 출범하고, 100억원 모금 운동도 전개되는 등 과학계를 중심으로 기념사업이 본격화
되고 있다. 

                 

21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따르면 KIST 출신 동문은 23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KIST
본원에서 ’KIST 설립자 박정희 대통령 국제기념관’ 건립 사업단을 공식 발족시키기로 했다.

이를 위해 4천여 KIST 동문은 당일 홈커밍데이 행사를 진행하며 사단법인 설립인가를 받은
’KIST 연우회’ 사무실 현판식을 하는 데 이어 동문 총회를 열어 ’박정희 기념관’ 사업단의
활동 내용을 확정 지을 계획이다.

                         

KIST 연우회는 일단 KIST 안에 2천100㎡(650평) 규모의 부지를 마련해 330㎡(100평)에는
단층으로 기념관을 짓고, 나머지 공간에는 KIST를 방문한 국제 석학들이 머물 수 있는 4층
규모의 국제 게스트 하우스를 지을 계획이다.

기념관은 게스트하우스 부속건물의 성격으로 게스트하우스 출입문을 이용하더라도 기념관
내부 출입이 자유롭도록 설계된다. 또 기념관에는 박 전 대통령의 동상, 과학기술 발전과
관련한 박 전 대통령의 사진 등이 전시된다.

                         

KIST 연우회는 게스트하우스를 겸할 기념관 건립 예산을 약 100억원 정도로 예상하고 주요
기업, 독지가들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모금 운동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KIST 원장 출신의 박원훈 연우회장은 “기념관 건립은 단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니다”며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한 국가지도자의 정확한 인식이 얼마나 국가 발전에
기여했는지, 이공계를 기피하는 세태에서 살아 있는 교육 현장으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박 전 대통령의 기념관은 최근 교과부가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세계수준연구소(WCI)
사업과 연계할 것”이라며 “WCI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해외석학들의 연구원 체류가 늘어나
고 국제 게스트 하우스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기념관 건립이 자연스럽게 추진되도록 하겠다”
고 덧붙였다.

                         

한홍택 KIST 한홍택 원장은 “박 전대통령은 KIST 설립자이자 대덕연구단지 조성 등 우리나라
근대과학기술 체계를 훌륭하게 구축한 과학기술 대통령”이라고 전제하고 “(KIST 연우회의)
사업구상이 진전돼 KIST가 해야 할 역할이 구체화하면 적극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초기술연구회 민동필 이사장은 “오늘날 우리의 번영은 물론이고 우리가 갖고 있는 과학기술
분야의 자산과 우수 인력이 박 전대통령 당시에 그린 국가대계의 결과”라며 “우리 모두는 과학
기술이 그로부터 40∼50년이 지난 오늘에도 변함없이 국가발전을 견인하는 원동력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조선

[스크랩] 과학계, 박 전대통령 기념관 열풍

2009.10.23 01:15 | 박 대통령 | 유비

http://kr.blog.yahoo.com/yb01112000/12351 주소복사

원본 원본 : '성이네'

과학계가 중심이 된 과학대통령 박정희 기념관 건립은 경제업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박 전 대통령의 과학기술 업적을 새롭게 부각시킬 것으로 보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과학계에서 ’과학대통령’으로서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은 더이상 논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하나의
명백한 ‘사실’(fact)이자 ’상수’(constant)로 통한다.

                        

2002년 한국대통령 평가위원회가 분야별 역대 대통령 평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발전
분야를 비롯해 교육과학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음은 물론이고, 더욱이 과학 전문가들 사이에
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히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한 예로 1908년 출생으로 과학기술계 대표적 원로였던 김동일 전 서울대 공대 학장은 작고
한달 전인 98년 6월 출판한 회고록 ’나의 걸어온 길, 구순(九旬)을 맞이하여’에서
“박 전 대통령의 신념은 혁명 직후 제정된 제3공화국 헌법에 전례 없이 과학기술 진흥이란
조문이 신설, 삽입되었다는 사실에서 엿볼 수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특히 “과학기술 조항은 기초위원의 초안에는 들어 있지 않았던 것인데 대통령의 특명에
의해 삽입하기로 결정을 보았다”며 과학기술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식견과 포부를 인정했다.

박 전 대통령의 과학입국에 대한 신념은 1962년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같은 축을 이룬 과학기
술개발 5개년계획 수립으로 이어졌다.

박 전 대통령은 ’신념과 결단, 치밀한 과학기술진흥계획’에 입각해 한국 과학기술의 산실인
KIST를 1966년 설립했고, 곧이어 1967년 당시 개도국 최초로 과학기술전담 부서(과학기술처)
를 신설했다.

                  

박 전 대통령은 ’밀가루 한 포대’가 아쉬웠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 과학기술 입국의 기치를
내걸고 미국의 막대한 원조를 KIST 설립으로 돌렸고, 이후 KIST는 낙후된 한국의 과학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70년대에는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을 제창하며 대덕연구단지 건설 등을 주도했다.

                     

이와 관련, 한홍택 KIST원장은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먼 미래를 보고 과학기술에 투자한다는
것은 지도자로서 대단히 어려운 결단이었을 것”이라며 “박 전대통령은 KIST 설립자이자 대덕
연구단지 조성 등 우리나라 근대과학기술 체계를 훌륭하게 구축한 과학기술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기념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박원훈 KIST 연우회장은 “기념관 건립은 단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니다”며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한 국가지도자의 정확한 인식이 얼마나
국가발전에 기여했는지, 이공계를 기피하는 현 세태에서 살아 있는 교육 현장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또 “우리 동문회가 ’KIST 출신의 연구하는 친구들’이란 뜻을 갖는 법인체 ’KIST 연우회’
로 공식 발족한 만큼 전 회원들이 나서 기념관 건립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낸 5년 동안 과학기술 정책과 관련해 한번도 노(No)라고 하지
않더라고요. 정말 위대한 지도자라고 생각했어요”

만 42세이던 1967년 과학기술처 초대장관에 발탁된 김기형(84) 박사는 최근 “60년대 후반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이공계 대학원 우수인력에 대한 병역특례 문제를 건의했는데 ’전체
병력충원에는 문제없다’며 그 자리에서 승인했다”고 회고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개발도상국에서 과학기술개발이 어려운 이유의 하나는 정책 입안자들이 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인데, 박 전 대통령은 과학기술개발이야말로 경제발전의 원동력
이라고 확고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과학대통령’으로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은 과학기술 정책의 체계적인 제도화
로 모아진다고 과학기술 정책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박정희 정부는 공업화 과정에서 과학기술이 차지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저력을
배양하기 위해 1962년 제1차 경제개발계획과 병행해 제1차 과학기술진흥5개년계획을 수립,
과학기술을 우리나라 산업발전에 직접 연관시킨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로써 정부는 과학기술정책이 종래의 교육정책적 차원을 넘어 국가경제발전을 위한 하나의
중요한 추진력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1961년 7월22일 과학기술전담 행정기구로서 경제기획원 내에 기술관리
국을 우선 설치했고 1964년 2월 1일 정책기구로서 경제과학심의회를 뒀으며 다음 단계로
종합공업연구기관의 설립을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과학기술진흥의 장기전망 검토가 시작됐으며 기능인력을 위주로 하는 인력개발계획이
수립됐다.

                 

이는 과학기술처 발족(1967년), 과학기술진흥법 제정(1967년), 한국과학원(현 KAIST) 설립
(1971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설치(1973년), 기술용역제정법 제정(1973년), 대덕연구
단지 개발 착수(1973년), 한국선박해양연구소 발족(1976년), 자원개발연구소 개편(1976년)
등으로 이어졌다.

1966년 산업기술개발의 핵심체로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은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공업기술이 체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인프라가 전무했던 우리나라는 KIST 설립으로 그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고, 이후 KIST는 과학기술 발전의 중심적 역할을 모범적으로 수행했다.

KIST는 1960∼70년대에 국내 산업 활동의 기초조사와 중화학공업의 정책수립에 공헌했고,
1980년대에 산업 발전의 핵심기술을 모방ㆍ개량했으며, 1990년대부터 첨단 원천기술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KIST는 많은 수의 우수한 과학기술자를 배출했고 국내 연구기관의 산파역으로 연구개발
활동의 모범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KIST의 40년 역사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40년 역사와
그 맥을 같이 해왔다.

이 KIST 설립자가 다름 아닌 박 전 대통령이고 이제, 그간 KIST에 몸담았던 4천여 과학자들
이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을 건립하기에 이른 것이다.

                

서울대 박효종(정치학) 교수는 최근 칼럼에서 “근대화의 열매는 따 먹으면서 정작 그 결실을
가능케 한 뿌리를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뿌리가 꺾인 채 화병에 놓인 꽃을 보는 참담함과 무엇
이 다르겠는가”라고 반문하며 박 전 대통령을 기리는 동상은 커녕 기념관조차 없는 데 대해
질타한 바 있다.

                      

이와 관련, 기초기술연구회 민동필 이사장은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박 대통령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 과학기술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국가지도자로서 먼 장래를 내다보는 혜안
으로 과학기술을 육성하고 우수한 인재를 양성했다”고 평가했다.

                          

민 이사장은 “오늘날 우리의 번영은 물론이고 우리가 갖고 있는 과학기술 분야의 자산과
우수 인력이 당시에 그린 국가대계의 결과”라며 “우리 모두는 과학기술이 그로부터 40∼50년
이 지난 오늘에도 변함없이 국가발전을 견인하는 원동력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과학기술계의 움직임이 10년째 표류하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에 추동력으로 작용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조선

박정희 바로 세우기
[세계일보] 2009년 10월 16일(금) 오후 09:27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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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순간들' 파란만장한 삶·비공개 일화 담아
'…한국의 탄생' 외면·찬양 양극단 넘어 화해 시도


박정희의 결정적 순간들/조갑제 지음/기파랑/1만9000원

박정희, 한국의 탄생/조우석 지음/살림/1만6000원

조갑제 지음/기파랑/1만9000원
오는 26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김재규의 총에 스러진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집권을 경험한 대부분의 정치인처럼 박정희에 대한 호불호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 선호도와 공적 평가에 대한 국민 여론 조사를 하면 늘 1위를 하는 인물이 박정희다. 박정희의 경제 개발은 이후 세계 10위권으로 도약한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되었고, 두 차례의 군사정권을 경험한 뒤에 마침내 민주화에도 성공했다. 36년간의 식민지 경험과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나라, 경이로운 경제성장으로 세계가 존경과 경탄의 눈길을 보내는 나라, 당당히 어깨를 펴고 자부심을 가질 만한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대중적인 정서와는 달리 일부 진보계열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부정적 평가 일색이다.

박정희란 쉬쉬해야 하는 이름이고, 그를 언급하는 이는 눈치 없는 보수주의자가 되어버린다. 1960∼70년대 내내 반박정희 정서를 주도했던 지식인들이 지금도 그 틀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박정희를 둘러싼 대중과 지식인들의 이런 인식적 괴리야말로 오늘날 박정희와 그의 시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지 혹은 무관심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조우석 지음/살림/1만6000원
조갑제·조우석 두 언론인이 나란히 듬직한 박정희 연구서를 펴내며 박정희를 둘러싼 논란의 마침표 찍기를 원하고 있다. 62세를 일기로 타계한 박정희의 일생을 62개의 테마로 나눠 편년체로 서술한 ‘박정희의 결정적 순간들’과 외면과 찬양의 양극단을 넘어 박정희 시대와 화해를 시도한 ‘박정희, 한국의 탄생’이 그것이다.

‘박정희의 결정적 순간들’은 독보적인 박정희 연구가인 저자가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800쪽이 넘게 가감 없이 펼쳤다. 희비가 엇갈리는 비공개 에피소드도 다수 삽입해 읽는 재미도 있다. 이를테면 육영수 여사와 대구에서 결혼식을 할 때 신랑신부를 만난 적이 없었던 주례(당시 대구시장)가 착각하여 ‘신랑 육영수 군과 신부 박정희 양의…’라고 하는 바람에 결혼식장은 일거에 웃음바다가 됐다는 내용과 서슬 퍼렇던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 시절 광주에서 열린 혁명지지대회에 참석하러 갔다가 혼자 양말을 빨아 줄에 널던 모습을 부관에 들켜 멋쩍어하는 장면 등이다.

1962년 12월엔 최고회의 의장 신분으로 울릉도를 방문한 박정희가 거친 풍랑으로 두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이래서 국가원수가 한 번도 울릉도를 방문한 적이 없는 모양이야” 하고 농담을 던지며 태연자약했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그의 배포까지 읽힌다.

‘한 송이 흰 목련이 바람에 지듯이/ 상가(喪家)에는 무거운 침묵 속에/ 씨롱 씨롱 씨롱/ 매미 소리만이/ 가신님을 그리워하는 듯/ (중략) / 아내만 혼자 가고 나만 남았으니/ 斷腸(단장)의 이 슬픔을 어디다 호소하리.’ 육영수 여사 국민장 다음날 썼다는 이 시는 혁명가이기 이전에 먼저 보낸 아내를 그리워하는 평범한 한 사내로서의 고독이 뚝뚝 묻어난다.

◇나이를 줄여 입학한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책에는 이 밖에도 64년 경제원조를 요청하기 위해 독일을 방문한 길에 파독 간호사·광부들을 만나 “모국의 가족이나 고향땅 생각에 괴로움이 많을 줄로 생각되지만 개개인이 무엇 때문에 이 먼 이국에 찾아왔던가를 명심하여 조국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일합시다.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읍시다” 하고 말하며 함께 눈물을 흘리던 장면도 소개했다.

저자는 이어 “호, 명예박사, 생일, 직함 등에 신경을 별로 쓰지 않았던 박정희는 항상 청빈한 마음가짐을 죽을 때까지 유지한 분”이라고 평가하면서 특권계층, 파벌적 계보, 군림사회를 증오한 그가 직접 집필한 ‘혁명과 나’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초등학교 교사 시절이던 1938년쯤 학생들과 함께.
“가난은 본인의 스승이자 은인이다. 본인의 24시간은 이 스승, 이 은인과 관련 있는 일에서 떠날 수가 없다. 소박하고, 근면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서민사회가 바탕이 된, 자주독립된 한국의 창건, 그것이 본인의 소망의 전부다.”

‘박정희, 한국의 탄생’은 진정한 대한민국의 탄생은 이승만 정권이 아니라 아예 박정희시대라고 주장한다.

“6070시대는 우리 현대사의 청년기에 해당한다. 대한민국의 뼈대와 얼굴 그리고 체질이 이때 형성됐다. 우리 역사를 통틀어 그때만큼의 에너지와 역동성을 연출했던 시기는 없을 것이다.”

6070시대 18년 동안 대한민국의 사회·경제적 근간이 거의 모두 완성됐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 부문의 진보는 경이로운데, 영국이 131년, 일본이 72년이 걸렸던 경제성장을 불과 20년 만에 이루어냈던 것이다. 특히 70년대 유신 이후 계획된 조선업, 반도체, 원자력 발전과 같은 중화학 공업은, 이후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으로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경제강국으로 이끌고 있다고 평가한다.

◇국장으로 치른 박정희 영결식 장면.
저자는 이어 우리 세대가 자부심을 잃어버린 단초가 박정희를 둘러싼 왜곡된 담론에 있다고 역설한다. 친일파, 독재자, 지역차별의 원조, 공작정치에 능했던 정치꾼, 전 사회의 군사문화화를 통해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억압했다는 비판 등 박정희에 덧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젊은 세대는 넘치도록 들어온 반면, 경제개발을 통해 대한민국을 유사 이래 가장 부유한 국가로 만든 공로에 대해서는 이미 다 짜인 계획을 단순히 실행만 했다는 식으로 깎아내리거나 외면하기 일쑤였다는 것. 즉,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과 피치못했던 곡절은 건너뛰었다는 지적이다.

진보학자들이 박정희시대에 대해 만든 통념에 도전하고 싶어 이 책을 기획했다는 저자는 “박정희에게 흠 없는 성인의 모습을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정말 열린 마음으로 박정희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고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하며 386 출신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6070년대 평가로 마무리를 지었다.

“부자나라, 초일류 기업이 되려면 꼭 한국처럼만 하라! 뒷마당에 심어진 뽕나무나 올리브나무만 기르거나 봉제품을 만지작거리지 말고, 초일류에 도전하는 ‘미친 짓’을 벌여야 하며, 이때 반드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어야 한다.”

박정희를 바로 세워 그의 가치를 되찾아야 비로소 대한민국 기적의 역사 또한 우리의 것이 된다는 저자의 호소가 귓가에 맴돈다.

[스크랩] 박 대통령 비난하는 젊은이들에게

2009.10.22 21:06 | 박 대통령 | 유비

http://kr.blog.yahoo.com/yb01112000/12338 주소복사









 


****
젊은이들아!!
금세기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
세종대왕보다 더 존경받는 사람, 그것도 무려 20%가 넘는
최고의 인물로 존경받는 사람이 누군지 아는가?

국민소득 76불에서 1,500 불, 인류 역사상 그 유래가 없는
단기간에 20배 성장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정치꾼'이 아닌
진정한 지도자이며, 애국자가 과연 누군지 아느냐 말이다.

실의 도탄에 빠져 나태한 국민에게 우리도 하면 된다는
새마을 정신혁명으로 잠재력을 일깨워 자신감을 안겨준 지도자,
그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다.

젊은이들아!!
그런 그가 독재자였음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화를 외치던
그 어느 지도자들보다도 가장 복제하고 싶은 인물,
가장 친근감이 있어 대화하고 싶은 지도자가 박정희라며
그리워하는 이유는 또, 왠지 아는가?

'행복지수'라는 것이 있다.
그때는 지금처럼 배불리 먹지도 못하고 새벽부터
손이 부르트게 일을 하였지만 내일의 희망과 비전이
있었으며 삶의 의욕이 충만해 즐겁고 행복했었다는 것을
젊은이들은 알아야 한다.

독재자 박정희라??
젊은이들아, 당시 독재 시대라 해도 일반 대다수 국민은
생활하고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런 어려움과 불편함이 없었다.

다만, 독재니 자유니 하며 이론적 정의만을 내세우는
소수의 사람들과 정치를 하겠다는 극소수의 '정치꾼'들을
제압하였으나 그 또한 누구를 위한 억압적 제압이었겠느냐?

부정 축재하려고 그랬느냐?
자식들과 친인척을 도와 주려고 그랬느냐?
아니면 출세하여 족보에 남기려고 억압적 제압을 하였느냐?

젊은이들아!!,
1960년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대한민국 그때에서,
자유, 독재, 민주주의를 생각해 보고 박대통령을 생각해 봐라!!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이 식욕, 성욕, 금욕, 지배욕, 이라 했다.
그 첫째 '식욕', 먹는 것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우선 될 수 없다고 본다.

경제력이 뒷밭임 없는 민주주의!,
배고픔이 해결되지 않는 민주주의!,
모래사막 위에 탑을 쌓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당시 우리보다 몇 배를 더 잘 살던 필리핀과 북한을 보고,
타이, 말레이시아를 봐라, 지금 이들 국가들이 어떤가를…….
한 나라의 발전이 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 아니겠나.

그래도 독재자 박정희라 폄하 하며,
그의 업적과 공을 깎아내리려 애쓰는 젊은이들이 많다.

왜, 그럴까?
16,000불에서 살다 보니 76불의 삶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것이다.

보릿고개가 뭔지 모르고 다이어트에 신경 쓰다 보니
과거 60년대가 실제로 어땠는지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자유니 독재니 하며 교과서적 정의만을 내세워 따진다.

젊은이들아!!
우리나라 정부 일 년 예산의 80%를 미국의 지원으로 살았고
춘궁기가 되면 굶어 죽는 사람이 흔하게 발생했지만,
뉴스거리조차 안되던 때가 바로, 60년대였다.

배를 곯아 봐야 인생이 뭔지 삶의 철학도 깨우칠 수 있음에
너무나 잘 먹어 뱃살 빼기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아!!

그때는 여성은 살이 쪄야 맏며느리 감이라 인기가 있었고,
남자는 살이 찌고 배가 나와야 사장이며 인격, 신분 상승으로 여겨
겨울이면 옷을 많이 입고 살쪄 배 나온 시늉을 하던
그때를 아느냐 말이다.

오늘의 시각에서 본다면 웃긴다고 할까?
눈물겨운 일이라고 할까?

젊은이들아!!
과거가 없는 현재가 있을 수 없으며, 과거를 모르면 현재의
풍요로움 또한, 그 가치를 모르는 법!!.

1960년 4월19일 학생 혁명으로 이승만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장면 과도정부가 들어섰을 때, 각종 단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 농민, 상인, 이발사, 식당주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길거리로 몰려나와 데모…….

학생들도 교장 선생님 조회 시간이 너무 길다 데모,
짧은 머리 기르자 데모, 공부시간 단축하자 데모,
하다못해 초등학생, 선생들까지도 데모, 데모,…….

온 나라가 일 년 열두 달 365일 데모로 지새워 오죽하면
데모를 하지 말자고 데모를 하였으니, 나라가 어떻게 되였겠는가?

이를 지켜본 세계에서는 KOREA는 '데모 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최루탄 가스를 소비하는 나라가 되었으며

사회는 극도로 혼란스러워 밤이면 마음 놓고 밖을 나다닐 수가 없을
정도로 치안은 여기서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이 무법이 판을 치던 그때,
하다못해 깡패도 주먹으로 정치를 하던 그때를 아느냐 말이다.

더욱이 기가 막힐 노릇은 이승만 독재로부터 자유를 찾았으니,
모든 것이 자유라며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런 이유 없이 발로 차거나
주먹을 휘둘러대며 '자유'가 뭔지도 모르는 어처구니 없는
무지의 국민들이 많았으며, (당시에는 초등학교 무학자가 대다수였다.)

더더욱 기가 막힐 노릇은 서울 광화문에서 데모하는 모습을 북한에서
라디오로 생중계하여 현장 실황을 남한에서도 들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많은 남파 간첩들이 포진되어 안보가 위태로웠는지,
그때를 아느냐 말이다.

김일성 자서전에 당시 남침하지 못한 것 후회한다 했지 않은가.
그때,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젊은이들아!!

이렇듯, 굶어 죽지 않으면 공산화되기 일촉즉발의 풍전등화였던
나라를 구하고자 구국에 일념으로 박정희가 나타난 것 아닌가.

역사에 만약 이란 없다 하지만 당시에 박정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당리당략과 사리사욕, 출세욕에 혈안이 된
정치인들이고 보면 지금 쭘 이 나라는 어떻게 되였을까?

너희들이 제일 좋아하는 축구가 월드컵 세계 4강에 올라 대한민국,~,
짝, 짝, 짝~, 하며 즐거움을 맞볼 수가 있었을 것이며,
올림픽을 개최하여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알릴 수가 있었을까?
또, OECD 경제 대열에 오르는 오늘의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을까?

젊은이들아,
사업가는 10년, 정치가는 최소한 100년 앞을 내다보는
안목과 지혜가 있어야 하며 냉철한 판단력과 결단력, 추진력이
있어야 된다고 한다.

당시 일본으로부터 대일 청구권으로 받은 돈으로 동남아 국가들은
호텔 짓고, 백화점 짓고, 선박 구입 등, 비생산적인 곳에 썼지만,

박대통령은 100년 앞을 내다보는 안목으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하며
이승만정권 때부터 14년간이나 지지 부진하게 끌어 오던 한일수교를,
결단, 결행, 단행하여

산업의 쌀이라 일컫는 제철공장 짓고, 고속도로 등, 경제 재건을 위한
생산적인 곳에 투자하여 지금은 조선업, 철강업, 기타, 중공업 분야에서
세계 1, 2위로 일본과 경쟁하고 있으며

경부고속도로는 지역간 격차를 줄이고 산업의 동맥으로 토목 건설
기술 축적으로 지구촌 곳곳에 건설수주 외화 획득, 매년 고도성장을
30년 이상 지속, 지금은 세계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박대통령의 업적을 기반으로 가 아닌가.

젊은이들아!!
그런 그를 사후 27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친일파청산이란 명제하에
알 수 없는 정치적 잣대로 재고 재단하여 매도하고자,

공(功)은 빼고 과(過)만 조명하는 '친일파 박정희' 만화책 만들어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 세뇌시키려 하고 살인범 김재규를
민주화인사 운운하며

세계 수십여 개 국가, 수만 명이 하루가 멀다 날아와
가르쳐 달라고 머리를 조아리며 배워간 새마을운동까지도
사실 왜곡되게 가르치고 있다 하니 도대체 이럴 수가 있느냐 말이다.

이웃 나라 중국에서도 박대통령에 탁월한 지도력을 배우고자 연수용
교재로 '박정희 전기'란 책이 중앙 위원회 산하 당정 고위 간부들의
교과서가 되였으며 서점에서는 베스트에 올라 인기리에 팔리고 있어
중국 천하를 통일했던 진시황에 비유하며 높이 평가함인데,

이 나라에서는 수백만 명을 굶겨 죽인 독재자 중에서도
가장 악독한 독재자 김정일에게는 '님'을 꼬박꼬박 붙여가며
존칭을 쓰고 통큰 지도자라며 추켜 세우면서도

박대통령에게는 '님'은 커녕, 그가 쓴 친필이라 해서 광화문,
운현각 현판을 뜯어내 부시고 빠개고, 하다못해 그 시절에
심어 젓 다해서 나무까지 뽑아내 그의 흔적까지 지워버리려 하니
이런 기가 막힐 노릇이 어디 또 있는가 말이다.

또, IMF 때보다도 살기 힘든다고 아우성인 경제는 뒷전이요,
진보라 자칭하며 개혁하겠다고 과거 캐기에 국론 분열을 일삼으며

국민 80%가 반대하는 국보법을 김정일이가 원하는 대로 폐기하겠다고
발버둥치는 그들!! 그래서 국민들을 극도로 불안하게 만드는 그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전직 국무총리, 대법원장, 국회의장 등을 비롯해
대한민국 건국이래 사상 최대 규모의 사회 각계 원로 9,000여 명이
시국선언을 하였으니 도대체 이들이 누구며,
왜 이러는 지 진짜 알 수 없는 노릇 아니냐?.

세대 간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좌파들에 부화뇌동하는 젊은이들아!!,

한 번의 실수는 5년이 아니라 10년이 갈 수도 있으며
한번 잘못 선택한 지도자로 겪어야 할 고통의 대가는
자손 대대로 후회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라!!.

천하에 사기꾼 김대업을 이용하고 젊은이들을 선동하여 정권을
휘어잡고선 탄핵 땐 예수 부활을 비교하면서 다시 태어났다고
자랑하는 좌파정권, 그 배후세력들이 지금까지의 언행을 보면,

아마도 언젠가는 독재자 부인 육영수여사 살해했다고
살인범도 의인으로 추대하여 광화문에 이순신 동상 철거하고
문세광 동상 세우자고 촛불 든 젊은이들 선동할까 정말 걱정된다.

똑바로 알아라!!
비록 한 인간이 죄가 있다고 하여도 그 죄를 불공평하게 들추어내는
행위는 죄악이며 어떤 사회든 부조리가 있고 사회적 병리가 없는
문제없는 사회가 없는데,

역사 바로 세워야겠다며 유독, 하나만 싸잡아 성토하고, 그래서
갈아 치우고자 한다면 이는 인정될 수 없는 반, 민주적 행태가 아닌가.

개혁이란 명제하에 법을 현실보다 고도의 도덕적 가치 기준에
매달아 놓고 그 기준에 걸리면 모조리 갈아 엎어 버린다면,

칼자루를 쥔 쪽에서 의도적으로 휘둘러대는 알 수 없는 심판의 잣대로
매장시키려 한다면 이 어찌 민주를 부르짖던 자들의 행태란 말인가!!

그런 기형적 사고의 두뇌로 개혁이다 역사 바로 세우겠다 한다면
그 누구도 '왕따' 시켜 매장시킬 수 있으며,

세종대왕도 독재자로 몰아세우고 그분의 많은 업적을 모조리 비판하여
쓰레기통으로 집어넣어야 하며 한글도 때려 치워야 되는 것 아닌가.

젊은이들아!!
사람의 가치관은 정권이 바뀌고 물질 사회가 급격하게 변하며
세월이 아무리 흘러간다 할지라도 바뀔 수도 없고 바뀌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라!!.

권좌, 출세를 위한 일이면 그 어떤 가치와 업적도 부정하려 드는
부도덕한 정치인들과 그 배후 세력들, 그리고 이에 부화뇌동하는
일부 젊은이들이 오늘의 잣대로 비판하려 애쓰는 것을 지켜보면서,

두 손을 불끈 쥐고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이 오늘을 살던 우리가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을 때, 우리는 민족중흥의 신앙을 굳게 가지고
일하고 또 일했노라고 떳떳하게 대답하자.'라고 한 민족중흥의 시조,
박정희 대통령, 서거 27주년이 되어 생각해 본다.

젊은이들아!!
박정희 대통령을 제대로 알자!!

-촌장-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회(부추연)

[스크랩] 박정희가 싫어서 떠났던 그녀, 박정희를 뛰어넘다

2009.10.21 20:29 | 박 대통령 | 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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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원본 : '성이네'

朴대통령 30주기 학술회의 참가
김형아 호주국립대 교수
"70년대 새마을운동이 한국인 국민성 바꿔…
경제기적 원동력 돼"

19일 연세대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30주기 국제학술회의에서 가장 논쟁적 발표를 했던 학자
는 김형아(59) 호주국립대 교수다. 김 교수는 이날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새마을운동이 한국
인의 국민성을 바꿨고, 경제기적의 원동력이 됐다"고 발표했다.

일부 진보 학자들에 의해 박정희 정권의 국민통제 수단쯤으로 비판받아온 새마을운동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원천이라는 주장이었다.

                     

김 교수는 2005년에 출간한 《유신과 중화학공업―박정희의 양날의 선택》(일조각)에서도
"박 대통령의 중화학공업 추진과 유신체제는 한쪽 없이는 나머지 한쪽도 존립할 수 없는
'양날의 칼'이었다"면서 "유신이라는 독재체제가 없었으면 경제성장은 이뤄질 수 없었다"는
주장을 폈다.

유신체제를 합리화하는 듯한 그의 주장은 당시에도 논란거리가 됐다.

1974년 유신체제를 견딜 수 없어 혼자
호주로 떠났다는 김 교수가 무엇 때문에 '박정희 시대'
를 변호하고 나섰을까. 학술회의를 마친 20일 오후 김 교수를 만났다.

                     

―박정희 대통령과 유신체제가 싫어서 한국을 떠났던 사람이 유신과 새마을운동을 옹호하다니,
 아이러니다.

"박정희가 싫어서 한국을 떠난 것은 사실이고, 지금도 박정희 개인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를 연구하다 보니, 좋든 싫든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으로 한국인의 국민성을 바꿨다는 주장은 도발적이다.

          

"박정희 시대 이전, 한국인은 게으르고, 의타적이고, 수동적이라는 인식을 스스로 했고 '엽전'
'짚신'이라고 자신을 비하했다. 장준하·함석헌·한태연 같은 지식인들도 국민성을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정희는 국가 건설(Nation Building)을 하려면, 국민성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통해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캠페인을 일으킨 것은 그 때문이다. 박정희는
국민에게 자신감과 불굴의 의지를 불어넣었다. 경제기적은 여기에서 출발했다."

                       

―지금 40~50대에게 새마을운동은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하는 새마을 노래와 억지로 끌려
  나온 조기청소 정도로 기억된다. 위로부터 강제된 운동이라며 염증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

"새마을운동에는 흔히 역사가 그렇듯 양면성이 있다. 일부 지식인은 나쁜 점만 부각시킨다.
 새마을운동은 초기에는 국가가 주도했지만, 대중들이 초가집이 바뀌고 마을길이 뚫리는 것
 을 보면서 신바람이 나서 참여했다.

 박정희는 보다 나은 삶을 꿈꿨던 대중들의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이다."

                  

―박정희 시대 산업화의 공로는 평가받을 만하지만 독재는 잘못된 것 아닌가.

"한국 학자들이 유신과 경제성장을 따로 보는데, 결국 이 둘은 '양날의 칼'이다. 누이가
 공장에 가서 받은 월급으로 대학 공부를 마치고 성공한 뒤, 부모에게 왜 누이를 공장에
 보냈느냐고 대드는 것과 비슷하다. 현실의 이면을 보지 않거나, 무시하면 안 된다."

―민주주의를 하면서도 산업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매우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주장이다. 어느 나라도 희생을 치르지 않고 산업화를 이룬 나라
 는 없었다. 박정희의 리더십은 전체적으로 평가할 때, 과오보다는 성과가 컸다."

―박정희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박정희의 과오를 미화해서는 안 되지만, 그는 국가지도자로서 책임을 다했다. 산업화된 국가
 를 만드는 것이 그의 책임이었다. 일부 지식인들은 경쟁 지상주의, 지나친 개인주의가 박정희
  개발독재의 후유증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30년 전에 죽은 박정희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박정희를 지지
 하든, 반대하든 이젠 그를 놓아주어야 한다."


          ▲ 김형아 호주국립대 교수는“박정희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국민에게
              불어넣은 것은 산업화뿐 아니라 민주화를 이루는 데도 기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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