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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한민족의 근거지인 한반도에서 계속 살아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의 단일민족’이라고 배워왔다. 실제 KIST유전공학센터가 한국인 40여명의 인슐린 유전자를 연구 분석한 결과 ‘한국인의 혈통은 유전자적으로 80% 이상이 공통될 정도로 순수하며, 유럽인의 유전자와는 크게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한국인의 유전학적 기원 역시 순수한 의미에서 하나는 아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한국인의 유전학적인 기원이 북방계와 남방계로 구성돼 있다고 보고 있다. 염색체의 유전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전자가 섞여 새로운 형질을 만들어내지만, Y염색체와 미토콘드리아라는 두 염색체는 뒤섞임 없이 한쪽 부모한테서 그대로 유전되는 특성을 지닌다. Y염색체는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만 유전되며, 미토콘드리아는 반대로 모계를 통해서만 유전된다. 이 때문에 미토콘드리아DNA를 ‘이브의 유전자’, Y염색체를 ‘아담의 유전자’라 부른다. 때문에 학자들은 이 두 가지 유전자를 분석해 한민족의 기원을 파악하고 있다. 단국대학교 김욱 교수는 Y염색체를 이용한 연구결과에 근거하여 한민족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누고 70~80%는 북방계, 20~30%는 남방계이며 나머지는 유럽인 등 다른 그룹이 섞여 있다고 발표했다. 다른 연구에서는 북방계가 60~70%, 남방계가 30~40%라는 분석도 있다.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대 경성제국대학의 해부학연구실에서는 한국인 약 2만명을 대상으로 유전적 기원을 조사한 적이 있다. 이 조사기록 역시 ‘한국인은 남쪽으로부터 이주해온 남방계와 북쪽으로부터 이주해온 기마민족인 북방계가 섞이거나 혼혈되었다’고 적고 있다. 이 조사기록은 그 증거로 북쪽지방, 북한 사람들의 체형과 남한 사람들의 체형이 상당히 다른 점을 들었다. 북방계 70~80% + 남방계 20~30% + 유럽인 등 다른 민족 만주족과 가장 유사…중국 남부 묘족·베트남인과도 비슷 여하튼 한국인 집단은 동아시아인 집단 가운데서도 만주족과 가장 가까운 유전적 유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중국의 일부 남부인(묘족 등)과 베트남인 등과도 가까운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추정하면 한국인 집단은 적어도 두 가지 경로 이상의 다양한 민족 집단이 혼합과정을 겪으면서 형성됐으며, 유전적으로 볼 때는 하나의 민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민족은 수적으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북방계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남방계도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 또 북방계라 하더라도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모두 몽골에서 내려온 것도 아니다. 김욱 교수는 “한국인의 Y염색체를 분석한 결과 한국 남자의 유전적 계통이 그룹C, 그룹D, 그룹O의 세 가지 형태를 보이는데 몽골·시베리아인은 그룹C가 40~50%를 차지하는 반면 한민족은 15%에 불과해 한민족이 모두 몽골 쪽에서 내려왔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성 유전자 주류는 중앙아시아·시베리아 계통 북방계 남자가 남방계 남자 몰아내고 후손 불린 듯 근래의 연구 중에서는 북방계와 남방계가 혼합해 한국인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해 매우 흥미 있는 가설을 제시하는 것들도 있다. 이는 동아시아인의 Y염색체 유전형을 보면 북방 루트를 통해 온 사람(특히 남성)이 주체인 반면 미토콘드리아 유전형들은 거의 전부 남방 루트로 이동한 여성들의 것이라는 연구 결과에서 비롯된다. 즉 동아시아 여성들이 가진 미토콘드리아 유전형은 거의 전부 남방 해안 루트를 거쳐 이동해 온 사람들로 보이며 Y염색체는 중앙아시아·시베리아를 거쳐 내려온 남자들의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북방계 남자가 남방계 남자를 몰아내고 남방계 여자들을 취하여 후손을 불려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루어진 동북아시아 사람들은 유전자 구성에서 한국, 중국 북부, 일본인이 모두 같다고 설명된다. 물론 한국인이 북방계와 남방계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지리적 입지 때문에 중국으로부터의 유민과 이민이 계속 한반도로 들어왔다. 특히 신석기를 지나 청동기로 들어서면서 전쟁이 빈번하자 전쟁의 결과 여하에 따라 많은 중국인들이 한반도를 찾았으며 이들이 계속 한반도에 정착하여 한국인이 되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이들을 ‘귀화 한국인’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중국인들이 한국으로 이주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대부분 중국에서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사람과 이들의 시중을 들었던 사람들, 또는 전란으로 피란 온 사람들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전북과 충남의 내륙지방, 황해도 등 한반도의 서반부에 걸쳐 살았다. 그러나 한국인의 형태에서 중국인의 영향이 크지 않다는 것은 이들 ‘귀화 한국인’의 수가 많지 않았고 또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한국인과 피가 섞이며 한국인 주류에 밀렸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두 종류만으로 이뤄진 민족도 세계적으로 드물어 프랑스는 3대가 한 혈통인 경우도 20%밖에 안돼 유전자는 그 집단 구성원이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점점 많아지지만 10% 이하의 유전자는 300년 정도가 지나면 거의 사라진다고 한다. 유전자 결합의 확률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주류를 북방계와 남방계로 분류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한민족이 유전적으로 단일민족은 아니지만 두 종류(북방계와 남방계)만의 민족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도 세계에서 매우 드물다. 1980년대 초에 프랑스에서 ‘누가 진짜 프랑스인인가’를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정통 프랑스인은 부모와 조부모, 즉 3대가 모두 프랑스인인 경우를 의미했다. 그런데 호구 조사는 전 유럽인들을 놀라게 했다. 프랑스 정부가 호구 조사를 통해 프랑스인을 가린 결과 이 기준에 맞는 프랑스인들은 겨우 20%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프랑스의 경우와 비교하면 단 두 갈래의 유전적 흐름만 갖고 있는 한민족은 세계에서도 드문 매우 집약적인 혈통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인류 기원에 대한 학설 | 아프리카 가설 동아프리카 돌연변이 여성이 기원 다지역 기원설 호모에렉투스가 각지로 이주해 진화 현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현 인류는 약 20만년 전 아프리카에 살고 있던 ‘이브’라는 한 여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아프리카 가설’과, 이와는 달리 적어도 100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호모에렉투스가 각 지역에 도착한 후 각 지역의 특성에 따라 진화되었다는 ‘다지역 기원설’이 그것이다. 1987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의 알란 윌슨은 세계 각지 147명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조사하여 계통 수를 그린 결과, 현대 인류의 조상은 단 한 명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두개골 화석 비교와 분자유전학적 방법을 동원해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현대 인류가 14만년에서 29만년 전에 동아프리카의 사바나 지역에서 돌연변이를 일으켜 출현한 후 이 후손들이 세계 각 지역으로 이주하여 모든 인류의 부모가 되었다’는 가설을 발표했다. 이를 ‘이브 가설 또는 아프리카 가설(Out of Africa theory)’이라고 부른다. 반면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커얼리튼 쿤 교수는 1962년 발간한 ‘인종의 기원에서’란 책에서 ‘다지역 기원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전 세계의 인류가 모두 같은 조상으로부터 갈라진 것은 아니다. 세계 인류의 기원으로 분류될 수 있는 첫 번째 집단들은 각기 다른 지역에서 각기 다른 시대에 독자적으로 진화되어 온 영장류, 즉 호모 에렉투스의 여러 종류의 후손들이다. 따라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결코 우리의 공통적인 조상으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가설은 호모 에렉투스인 ‘북경 원인’ 등의 후손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졌다고 주장하는 중국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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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3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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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글 잘 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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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겉으로는 미국화·서구화된 나라이나, 속으로는 전통적 선비문화가 국민 정서의 저변에 깔려 있다." 지난 16~17일 서울대에서 제1회 규장각 한국학 국제심포지엄 '이념과 제도의 교류: 세계 속의 한국, 한국 속의 세계'가 열렸다. 기조강연을 맡은 한영우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가 한국인의 대표적인 정신으로서 든 것은 다름아닌 '선비 정신'이었다.
한 교수는 "우리는 (선비 문화의 속성인) 자주성과 도덕성, 평등주의에 대한 열망, 공동체적 결속력과 신바람의 정서가 강하며, 교육열이 매우 높다. 이것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가져 온 정신적 바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전통적 선비문화를 바탕으로 세계문명을 접합시킨 신문명이 나타나야 하며, 그것이 바로 법고창신(法古創新)과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지혜일 것"이라고 했다.
오랜 세월 동안 '이미 지나가 버린 전통'으로 여겨졌던 선비 정신이 21세기에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24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남명학연구원(원장 이성무) 주최 국제학술회의의 주제 역시 '선비와 선비정신'이다.
한국선비문화연구원 설립 추진위원회(위원장 이현재)와 공동으로 여는 이번 대회에서 이장희 전 성균관대 교수는 기조발표 〈선비의 본의(本義)와 선비정신〉을 통해 "조선조의 선비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선비의 긍정적인 면은 제쳐두고 속된 선비[俗儒], 가짜 선비[假儒], 썩은 선비[腐儒]의 비리만을 들추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 대척점에 있는 '올바른 선비'란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중시하고, 포부가 크고 강인하며, 입지가 확고한 이상 정의를 위해 두려울 것이 없고 공론을 그르칠 염려가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최봉영 항공대 교수는 발표문 〈한국사와 선비의 전통〉에서 '옛날 학식이 있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이라 한 요즘 국어사전의 '선비'에 대한 풀이가 원래의 의미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선비가 학문을 하는 것은 관직에 나아가서 실천하기 위한 것이므로 '선비'와 '벼슬'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었는데, 사전의 풀이는 개항 이후 옛 지식을 전공한 사람들이 관료로 나아가지 못한 것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말이다. 최 교수는 "선비들이란 밖에서 가져온 이론으로 '이곳'의 현실을 풀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씨름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선비에게서 '학문'과 '삶'은 분리되지 않았다. 〈성리학적 사유를 구현한 조선 선비의 집〉을 발표하는 이종묵 서울대 교수는, 조선 선비는 기본 학문인 성리학에서 배운 대로 성정을 바르게 하려 했으며, 성리학이 내재화된 17세기에는 주거 공간 자체에 그 세계관과 삶의 방향을 담아내려 했다고 지적한다. 조영달 서울대 교수는 〈현대사회의 지식인과 선비정신의 사회적 재해석〉에서 "선비와 현대의 지식인에게는 '문명사적 개척자'와 '사회적 균형추'라는 공통된 기능이 있다. 한국사회 내부를 조화롭게 융화시키면서 인류 보편의 역사를 변화시킬 창의적인 세계화에, 선비정신에 대한 재해석의 단초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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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좋은 기사라고 생각합니다. 아래의 관련 참고자료도 같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일본어의 뿌리는 한국어” 학문적 입증

시미즈 기요시 전 교수-박명미 규슈산업대 강사 공동논문
경상도 사투리와 일본어는 발음과 억양이 대단히 비슷하다. 경상도 사투리에는 한국어의 옛 형태가 많이 남아 있다. 옛 한국어와 일본어가 밀접한 ‘관계’를 맺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그리 어렵지 않다.
시미즈 기요시(64) 전 오스트리아 비엔나대 교수와 박명미(44) 일본 규수산업대 강사(사진)는 그 ‘추측’을 ‘학문’의 지평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두 연구자는 오는 15일 춘천교육대에서 열리는 한말연구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한어(韓語)사 상대연대학 서설’이라는 공동논문을 발표한다.
3년간 양국 언어 비교연구 어휘 7천개이상 동일 어근 입증
한국어 [m], [b] 등 입술소리 일본어선 [h] 로 변화 현상 분석 ‘상대연대’ 측정 도구 활용 “언어전달 방향은 대륙→한반도→일본” 주장
이 논문은 주요 어휘의 음운 비교를 통해 한국어와 일본어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 형성돼 다른 쪽에 영향을 줬는지를 밝히는 ‘상대연대학’의 이론틀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어근이 같은 두 나라 어휘를 비교하면서 [m], [b] 등 한국어의 입술소리가 일본어에서 ‘음의 약화현상’에 따라 [h] 소리로 바뀌는 법칙성을 분석하고, 이런 음운 변화가 두 나라 언어의 ‘상대 연대’ 측정의 기본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논증했다.

박 강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번 논문은 “포괄적이기보다는 특정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라서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두 연구자가 난해한 언어학 개념을 빌려 설명하려는 내용은 간단하다. “일본어의 뿌리는 한국어”라는 것이다.
이들은 이미 지난 2003년 가을, 한글학회 주최 학술대회에서 처음으로 이같은 주장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가을에는 <아나타는 한국인>(정신세계사)이란 단행본도 함께 펴냈다. 이번 논문 발표는 그 연장선상이자 연구의 새로운 도약과 진전을 알리는 것이다.
이들이 보기에 “언어의 유전자는 자음에 새겨져 있다.” 그 유전자 분석의 시료는 음운 비교다. 스승과 제자 사이인 두 연구자는 지난 2002년부터 한국어와 일본어의 비교연구에 뛰어들었다. 이후 3년여 동안, 한·일의 고유어 어휘 7천개(파생어 포함) 이상이 같은 어근을 갖고 있음을 입증했다.
예컨대 다발(a bundle)을 뜻하는 일본어는 ‘다바’다. 둘 다 한자어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고유어다. 두 어휘는 공통적으로 [d], [b]의 음운을 갖고 있다. 말의 뿌리가 같은 것이다. 박 강사는 “모음은 같은 나라의 방언에서도 서로 차이가 나지만, 자음은 유전자처럼 보존된다”며 “한국어와 일본어의 자음 비교를 통해 두 언어가 ‘체계적으로’ 닮아 있음이 분명해졌다”고 밝혔다.
문제는 어느 쪽이 먼저 형성돼 다른 쪽에 영향을 줬는가다. 박 강사는 “‘삯월세’가 ‘사글세’로 변하듯, 언어는 복잡한 형태에서 간단한 형태로 변화하는데, 같은 어근을 가진 어휘를 비교해보면, 한국어의 여러 자음이 일본어의 첫 자음에만 남는 현상이 무수히 많다”며 “언어학적 측면에서 일본-한반도-대륙이 아니라, 대륙-한반도-일본의 방향으로 언어가 전달됐음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런 연구결과를 토대로 이들은 일본어를 아예 ‘열도 한어’로 분류하고, 대륙한어-반도한어-열도한어를 아우르는 ‘한어사(韓語史)’ 연구를 주창하고 있다. 두 연구자는 오늘날 쓰이는 일본어의 상당수가 기원전·후부터 7세기 말까지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허재영 서울대 국어교육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일본 학자들은 일본어가 알타이어(및 한국어)와는 독립적으로 형성됐으며, 오히려 일본어가 한국어에 영향을 줬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며 “두 연구자는 이를 반박하는 강력한 논증을 하고 있으며, 이번 논문을 통해 그 분석 시스템을 보다 정교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세계가 인정하면 일본도 받아들이겠죠”
연구성과 일본 학계 반발 우려 9월 세계학회에 먼저 발표하기로
두 연구자가 처음 조우한 것은 1994년이다. 당시 박명미 강사는 일본 구마모토대 언어학과의 대학원생이었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비교 연구에 흥미를 갖고 있었지만, 뚜렷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때마침 시미즈 기요시 전 교수가 이 대학 언어학과에 부임했다. 시미즈 박사는 아프리카어 비교연구로 비엔나대 언어학과에서 18년 동안 재직한, 이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였다.
두 연구자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서로 익히며 두 언어의 비교연구 가능성을 모색했다. 결국 시미즈 전 교수는 지난 2002년 대학을 그만두고 한국어-일본어 비교연구에만 몰입했고, 여기에 박 강사가 힘을 보탰다.
비교언어학에 대한 탄탄한 방법론을 갖춘 두 연구자의 이런 ‘배경’은 그들의 연구가 국수적 민족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방증한다. 박 강사는 “한국어와 일본어의 비교연구는 물론 알타이어 전체에 대한 연구로 관심을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 활발하게 이뤄진 비교언어학의 방법론을 동아시아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적용하려는 ‘학문적 야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한·일간의 미묘한 관계는 이들의 연구가 결국은 맞닥뜨리게 될 장벽이기도 하다. 두 연구자의 논문은 아직 일본 비교언어학회 등에서 정식으로 발표되지 않았다. 일본 학계의 반응이 조심스런 것이다.
박 강사는 <한겨레>와 전자우편 인터뷰를 통해 “일본에서는 비교언어학 자체가 활발하지 않다”며 “이 분야의 전문가들조차 한국어와 일본어가 같은 뿌리라는 학설에 대해 부정적 생각이 강하다”고 전했다. 시미즈 전 교수의 명성과 권위조차 ‘일본어는 알타이어와 별개로 형성된 언어’라는 일본 학자들의 믿음을 쉽게 허물 수 없는 것이다.
두 연구자는 오는 9월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국제학회를 통해 지난 3년여의 연구성과를 처음으로 세계 언어학계에 알린다. 박 강사는 “일본의 ‘신념’과 바로 맞서는 것보다는, 먼저 세계를 설득시키는 것이 지름길”이라며 “우리의 연구를 세계가 인정하면 그제서야 일본도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수찬 기자 |
그래서 일본어가 배우기 쉬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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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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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그런대 자꾸 쨔샤들이 까불어요.ㅎㅎㅎ
편안한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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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리 2008.08.1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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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60주년을 맟아 다시한번 일본쪽바리들의 만행을 새기고 그들의 잘못을 잋지맙시다,우리는 꼭그들에게 이겨야합니다,반드시이겨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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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 2008.08.1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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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을 이길려면,
우선 저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점을 모두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저들보다 더 이상 좋은 점을 우리가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입으로만 농사를 지으면 않 되는 이치와 같죠.추수할 것이 없으니..
손자병법에,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백전백승 할 수 있다.
감정이 앞만 서선 않 되고, 온 국민이 저들을 능가 할 수 있는 실력을
반드시 길러야 합니다. 저들에겐 장점이 많아요. 우리국민들도 자각하여
남의 좋은 점, 장점을 부지런히 배워 실력을 갖추는 일에 힘써야 하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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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 2008.08.1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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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을 이기기 위해
우리국민들은 비생산적 비건설적인 일에 헛되이 정력을 소비해선 않 됩니다.
그리고 뼈아픈 과거역사를 거울 삼아 실력을 키우는 일에 주력해야 합니다.
우물안의 일로 아웅다웅하지 말고, 눈을 크게 떠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실력, 힘은 우릴 위해 남이 절대로 거저 갖다 주질 않습니다..
가시리님, 방문 감사합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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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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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들 이전에 1987년 박병식(현재 재미 언어학자, 그전 건설사 사장)선생의 '일본어의 비극'이란 책에서 이러한 증명을 일본어로 해 가지고 일본에 한때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특히 일본의 임나설까지도 함축시킨 책이라 20년 지난 아직도 제
가슴에 생생히 남아 있는데.... 퍼가서 좀 보겠습니다. 火石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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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C 독일인 '에른스트 폰 헤쎄 - 봐르테크'와 영국인 '존 로스'는 현재 중국영토인 '하북성'이 근대 조선의 강역에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하였다.다. 2. 중국의 '중국 고금 지명 사전' 마저도 '하북성'이 근대 조선의 강역에 속한다고 하고 있다.
3. 몽고가 좋은 말을 얻기위해 제주도까지 와서 말을 사육했다는 것은 다시 되새김질해보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4. 삼국지의 위,촉,오 가 병력을 모두 합해도 실제로는 20만명 안팎이었다. 고구려나 백제의 전성기 병력은 100만명이었다.
5. 같은 해의 같은 달에 백제에선 가뭄이 들고 신라에선 홍수가 난다. 한반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6. 삼국시대를 비롯해 고려, 조선 시대에 이동성 메뚜기떼에 의해 입은 피해기록이 무수히 나온다. 한반도에는 이동성 메뚜기가 존재할 수 없다.
7. 청나라가 건국되고 청 왕의 명령으로 씌여진 '만주원류고' 라는 역사서에는 신라가 만주에 있다고 기록되어있다.
8.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 각종 지리지나 고문헌에 나오는 지명을 종합하여 보면 한반도에서 찾을 수 있는 지명보다 찾을 수 없는 지명이 더 많다. 각종 문헌에서 나오는 모든 지명이 현재 중국에는 있다.
9. 김부식은 살수가 어디인지 모른다고 하였다. 고려시대의 김부식도 모르는 지명이 아무 근거없이 현재 청천강이라고 알려져있다.
10. 현재 내몽골 지역에서 고구려성터가 발굴되었다.
11. 바이칼 호수 주변의 부족들은 생긴것부터 풍속이나 문화까지 한국인과 소름끼치도록 닮아있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고구려칸이라고 불리는 동명성왕을 모시고 있다.
12. 치우천황에 대해 중국에서는 고리국 황제이며 묘족의 선조이고 동이민족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한단고기등의 사서를 보면 치우천황은 분명히 한민족의 선조이다. 묘족도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 바이칼 호수 주변엔 고리족이 지금도 살고 있으며 고구려 고려 등이 모두 고리 족에서 파생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치우를 부정한다.
13. 백제의 유명 8대 성씨는 한반도에는 남아있지 않다. 모두 현 중국대륙에 있다.
14. 박혁거세의 무덤은 중국에서 발굴되었다.
15. 고려, 조선등의 무역 내역을 보면 한반도에서는 생산할 수 없는 것들을 수출하고 있다.
16.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의 연구에 의해 삼국사기의 천체관측기록이 한반도가 아닌 현 중국대륙에서 이루어진 것임이 증명되었다.
17. 한단고기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반만년이 아닌 일만년이라고 주장하는 고문헌이다. 현재 학계에서 무시당하고 있지만, 박창범 교수에 의해 한단고기의 천체관측기록이 정확하다고 밝혀졌다.
18. 백제의 인구가 고려나 조선초의 인구보다 많다.
19. 고구려 수도를 묘사한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의 평양으로는 턱없이 작다. 현 중국대륙의 장안(시안)과 소름끼치도록 일치한다.
20. 당 13만 군에 의해 백제 수도가 함락된 후에도 백제 장군 흑치상지는 200여개의 성을 기반으로 당에게 저항해 당은 40만군을 증원한다. 만약 백제가 한반도에 있었다면 한반도 전체가 성으로 뒤덮여 있어야 한다.
21. 조선 초 인구가 37만명인데, 1000년전의 국가인 백제나 고구려의 군인만 100만이었다.
22. 현재의 요동 요서 개념과 과거의 요동 요서 개념은 완전히 틀린다. 요동이 고구려 영토라 함은 현재의 요동반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 중국 대륙 내륙의 요동을 이야기한다.
23. 18~19c 외국인 선교사 또는 탐험가들이 작성한 지도에는 조선이 만주는 물론 중국대륙의 일부까지 지배하고 있다.
24.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 과 산동성 즉묵시의 향토사학자들이나 향토지에 따르면 연개소문이 이 곳들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25. 현 중국대륙의 강소성 숙천 근처에는 성터가 있는데, 이 곳 주민들은 고려성이라고 부른다.
26. 현 중국 대륙의 베이징 근처에는 고려영진이라는 지명이있다.
27. 고구려 고씨가 아직도 중국 대륙에 살고있다. 특히 장수왕 후손인 사람은 고구려 유리왕의 묘가 베이징 근처에 있다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베이징 근처에 유리왕묘가 있다. 중국에서는 제후국 유리국의 왕의 묘라고 주장하고 있다.
28. 중국대륙에 있는 수많은 성들이 현지인들에게 예로부터 지금까지도 고려성, 또는 고구려성이라고 불리고 있다.
29. 백제의 의자왕, 흑치상지에 관련된 지명들이 중국대륙에만 존재한다.
30. 백제가 패망할 당시 지명이 한반도에는 없다. 그러나 중국대륙에는 모두 있다.
31. 삼국사기에 나오는 지명중 김부식이 모른다고 한 지명이 359개나 된다. 이들 모두가 중국대륙에는 존재한다.
32. 한단고기외에 한민족 일만년 역사를 주장하는 '규원사화'는 위서라고 알려져왔다. 그러나 규원사화 진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있다.
33. 중국의 고문헌에 나와있는 발음법으로 정확하게 한자를 읽는 민족은 우리민족밖에 없다.
34. 신라 수도에 있다는 토함산의 이름은 화산이라는 뜻이다. 또한 삼국유사, 삼국사기등에도 토함산의 화산활동이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현 경주의 토함산은 공교롭게도 화산이 아니다.
35. 한국 국사에서는 고조선이 망한 후 漢나라에서 한사군을 설치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중국의 문헌에서는 한사군을 설치하려다가 고구려 동명왕에게 참패해서 漢군의 수장들이 모두 육시(몸을 6등분하는 참형) 당했다고 기록되어있다.
36. 청나라 황제들의 성씨인 애신각라 는 신라를 잊지않고 사랑하겠다는 뜻이다.
37. 애신각라를 몽골어로 읽으면 아이신 지료 라고 발음된다. 아이신은 금(金)을, 지료는 겨레(族)를 의미한다. 신라의 왕족은 금(金)씨이다. 청나라의 원래 이름은 금(金)나라 이다.
38. 임진왜란 때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가 조선 선조에게 '부모님의 나라를 침략한 쥐 같은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썼다.
39. 금나라 역사서인 금사 를 보면 금 태조는 고려에서 왔다고 기록되어있다.
40. 청나라 황실 역사서인 만주원류고에는 금 태조가 나라 이름을 신라의 왕의 성씨에서 따왔다고 기록되어있다.
41. 송나라때의 역사서 송막기문에는 금나라 건국직전에 여진족이 부족국가 형태일때의 추장이 신라인이라고 기록되어있다.
42. 현재 우리나라 부안 김씨의 족보에 금 태조의 이름이 나와있다.
43. 백제 온조왕 13년 (BC 6), 5월에 왕이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나라의 동편에는 낙랑이 있고, 북에는 말갈이 있어, 영토를 침노하여 오므로 편안한 날이 적다."고 하였다. 지금 국사에서 배우는 상식으로는 백제 북쪽은 고구려로 막혀 있어야한다.
44. 1976년 평남 대안시 덕흥리의 무학산 밑에서 발굴된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유주자사 진에게 보고하는 13명의 태수의 그림이 그려져있는데, 그 뒤에 관명이 새겨져 있다.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연군태수(하북성 보정부 서쪽의 완현부근), 광령태수(하북성 탁현의 군치), 상곡태수(보정부, 하문부 및 순천부 서남경계), 어양태수(하북성 밀운형 동쪽), 범양태수(북경의 서쪽), 대군태수(산서성 대동현 동쪽), 북평태수(북경지방), 낙랑태수(북경 동쪽의 하북성), 창려태수(산해관 남쪽), 요동태수(하북성 영정하 동쪽), 요서태수(하북성 영정하 서쪽), 현도태수(하북성 북경 서남쪽), 대방태수(창려,금주일대)이다. 유주는 북경일대를 말한다.
45. 중국의 역사서인 남제서에는 북위가 백제를 치려고 수십만의 기병을 파견했다가 패배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우리가 국사교과서에서 배운대로라면 북위에서 백제를 치려면 바다를 건너야한다. 기병은 바다를 건널 수 없다.
46.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강역은 동서 너비가 2천여 리, 남북 길이 1천 5백여리, 신라, 백제를 병합하니 고려의 동북(東北)쪽이 넓어졌다' 라고 쓰고 있다. 송사(宋史)
삼국사기 지리지,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들을 보더라도 역사서 원전에 의한 조선의 선조 국가들이 존재했던 곳은 모두 동서(東西)가 넓고 남북이 짧은 지역을 통치 영역으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북송인이자 외국(外國)인 서긍이 직접 고려로 가서 보고 온 고려의 통치 영역의 지형구조가 동서(東西)가 넓은 구조였다고 했다. 현재의 한반도는 동서가 짧고 남북이 긴 지형이다.
47. 몽고에서는 징기츠칸의 어머니와 아내가 모두 고구려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48.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들(명사, 선조실록, 난중일기, 이순신전서, 임진전란사, 은봉야사별록 등) 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명, 상황전개, 위치, 방위, 거리 및 전후사정이 한반도에서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49.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들에 나오는 지명들은 중국에는 모두 존재한다.
50. 난중일기의 원문을 직접 번역한 현역 해군 중령 최두환씨(해군본부 충무공수련원 연구실장)는 난중일기 번역을 하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는 지명을 추적하여 임진왜란의 무대를 중국 본토로 옮겨놓자 쉽게 풀려나갔다고 한다.
51. 임진왜란 당시 기록을 보면 왜가 침입해오자 조선의 왕은 서쪽으로 피신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상식적으로는 북쪽으로 피신해야 옳다.
52. 어제신도비명 에 보면 임진년에 왜적이 침입하여 부산 동래를 함락하고 여러길로 나눠 서쪽으로 진출했다고 기록되어있다. 한반도라면 당연히 북상 하는 것이 옳다.
53. 지도는 측량학, 수학, 천체학, 광학 등을 두루섭렵하고 있어야 제대로 만들 수있다. 한반도 전역을 3차례 둘러보고 정교한 대동여지도를 김정호가 만들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54. 김정호는 일제시대에 일제가 만든 교과서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동여지도가 공개된 것 역시 일제시대이다.
55. 대동여지도에 씌여있는 글에는 분명 조선의 강역이 1만 9백리에 달한다고 씌여있다. 글 옆의 지도, 즉 한반도와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56. 조선의 중심지는 낙양이라고 쓰고 있다. 한반도에는 낙양이라는 지명은 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낙양은 중국의 천년고도의 도시이다.
57. 세스페데스라는 포르투갈 신부가 16c 에 쓴 책에 의하면 꼬라이 또는 꼬리아라는 왕국은 일본에서 10일정도 걸리며 왕국의 끝은 티벳까지 달한다고 씌여있다. 또한 조선의 북쪽에 타타르가 있었는데 그것도 조선땅이다 라고 씌여있다. 타타르는 내몽고에서 활동하는 종족이다. 그리고 조선대륙의 강들은 수량이 풍부한데, 강의 폭이 3레구아에 달한다고 씌여있다.
58. 루이스 프로이스 라는 신부가 쓴 조선의 강역에 대한 글에는 수량이 풍부한 강과 거대한 사막이 존재한다고 씌여있다.
59.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불태운 우리 역사서가 약 20만권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딱 두 권만 남겨두었다.
60. 한국의 국사의 기초와 체계는 모두 일제시대때 일본에 의해 세워졌다. 현재 고등학교의 국사 교과서 역시 일제시대에 일본에 의해 씌어진 '조선사' 라는 책과 내용이 거의 똑같다.
마지막으로 우리 민족의 일만년 역사를 주장하는 '규원사화'라는 고문헌의 한 구절 "슬프다!
후세에 만약 이 책을 붙잡고 우는 사람이 있다면 나 죽어 넋이라도 한없이 기뻐하리라!" -北崖子의 <규원사화> 서문에서
[답변:한국사 미스테리 60가지 .]
와우~ 멋진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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