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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6/01/07
 

박정희 바로 세우기
[세계일보] 2009년 10월 16일(금) 오후 09:27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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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순간들' 파란만장한 삶·비공개 일화 담아
'…한국의 탄생' 외면·찬양 양극단 넘어 화해 시도


박정희의 결정적 순간들/조갑제 지음/기파랑/1만9000원

박정희, 한국의 탄생/조우석 지음/살림/1만6000원

조갑제 지음/기파랑/1만9000원
오는 26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김재규의 총에 스러진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집권을 경험한 대부분의 정치인처럼 박정희에 대한 호불호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 선호도와 공적 평가에 대한 국민 여론 조사를 하면 늘 1위를 하는 인물이 박정희다. 박정희의 경제 개발은 이후 세계 10위권으로 도약한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되었고, 두 차례의 군사정권을 경험한 뒤에 마침내 민주화에도 성공했다. 36년간의 식민지 경험과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나라, 경이로운 경제성장으로 세계가 존경과 경탄의 눈길을 보내는 나라, 당당히 어깨를 펴고 자부심을 가질 만한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대중적인 정서와는 달리 일부 진보계열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부정적 평가 일색이다.

박정희란 쉬쉬해야 하는 이름이고, 그를 언급하는 이는 눈치 없는 보수주의자가 되어버린다. 1960∼70년대 내내 반박정희 정서를 주도했던 지식인들이 지금도 그 틀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박정희를 둘러싼 대중과 지식인들의 이런 인식적 괴리야말로 오늘날 박정희와 그의 시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지 혹은 무관심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조우석 지음/살림/1만6000원
조갑제·조우석 두 언론인이 나란히 듬직한 박정희 연구서를 펴내며 박정희를 둘러싼 논란의 마침표 찍기를 원하고 있다. 62세를 일기로 타계한 박정희의 일생을 62개의 테마로 나눠 편년체로 서술한 ‘박정희의 결정적 순간들’과 외면과 찬양의 양극단을 넘어 박정희 시대와 화해를 시도한 ‘박정희, 한국의 탄생’이 그것이다.

‘박정희의 결정적 순간들’은 독보적인 박정희 연구가인 저자가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800쪽이 넘게 가감 없이 펼쳤다. 희비가 엇갈리는 비공개 에피소드도 다수 삽입해 읽는 재미도 있다. 이를테면 육영수 여사와 대구에서 결혼식을 할 때 신랑신부를 만난 적이 없었던 주례(당시 대구시장)가 착각하여 ‘신랑 육영수 군과 신부 박정희 양의…’라고 하는 바람에 결혼식장은 일거에 웃음바다가 됐다는 내용과 서슬 퍼렇던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 시절 광주에서 열린 혁명지지대회에 참석하러 갔다가 혼자 양말을 빨아 줄에 널던 모습을 부관에 들켜 멋쩍어하는 장면 등이다.

1962년 12월엔 최고회의 의장 신분으로 울릉도를 방문한 박정희가 거친 풍랑으로 두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이래서 국가원수가 한 번도 울릉도를 방문한 적이 없는 모양이야” 하고 농담을 던지며 태연자약했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그의 배포까지 읽힌다.

‘한 송이 흰 목련이 바람에 지듯이/ 상가(喪家)에는 무거운 침묵 속에/ 씨롱 씨롱 씨롱/ 매미 소리만이/ 가신님을 그리워하는 듯/ (중략) / 아내만 혼자 가고 나만 남았으니/ 斷腸(단장)의 이 슬픔을 어디다 호소하리.’ 육영수 여사 국민장 다음날 썼다는 이 시는 혁명가이기 이전에 먼저 보낸 아내를 그리워하는 평범한 한 사내로서의 고독이 뚝뚝 묻어난다.

◇나이를 줄여 입학한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책에는 이 밖에도 64년 경제원조를 요청하기 위해 독일을 방문한 길에 파독 간호사·광부들을 만나 “모국의 가족이나 고향땅 생각에 괴로움이 많을 줄로 생각되지만 개개인이 무엇 때문에 이 먼 이국에 찾아왔던가를 명심하여 조국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일합시다.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읍시다” 하고 말하며 함께 눈물을 흘리던 장면도 소개했다.

저자는 이어 “호, 명예박사, 생일, 직함 등에 신경을 별로 쓰지 않았던 박정희는 항상 청빈한 마음가짐을 죽을 때까지 유지한 분”이라고 평가하면서 특권계층, 파벌적 계보, 군림사회를 증오한 그가 직접 집필한 ‘혁명과 나’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초등학교 교사 시절이던 1938년쯤 학생들과 함께.
“가난은 본인의 스승이자 은인이다. 본인의 24시간은 이 스승, 이 은인과 관련 있는 일에서 떠날 수가 없다. 소박하고, 근면하고, 정직하고, 성실한 서민사회가 바탕이 된, 자주독립된 한국의 창건, 그것이 본인의 소망의 전부다.”

‘박정희, 한국의 탄생’은 진정한 대한민국의 탄생은 이승만 정권이 아니라 아예 박정희시대라고 주장한다.

“6070시대는 우리 현대사의 청년기에 해당한다. 대한민국의 뼈대와 얼굴 그리고 체질이 이때 형성됐다. 우리 역사를 통틀어 그때만큼의 에너지와 역동성을 연출했던 시기는 없을 것이다.”

6070시대 18년 동안 대한민국의 사회·경제적 근간이 거의 모두 완성됐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 부문의 진보는 경이로운데, 영국이 131년, 일본이 72년이 걸렸던 경제성장을 불과 20년 만에 이루어냈던 것이다. 특히 70년대 유신 이후 계획된 조선업, 반도체, 원자력 발전과 같은 중화학 공업은, 이후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으로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경제강국으로 이끌고 있다고 평가한다.

◇국장으로 치른 박정희 영결식 장면.
저자는 이어 우리 세대가 자부심을 잃어버린 단초가 박정희를 둘러싼 왜곡된 담론에 있다고 역설한다. 친일파, 독재자, 지역차별의 원조, 공작정치에 능했던 정치꾼, 전 사회의 군사문화화를 통해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억압했다는 비판 등 박정희에 덧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젊은 세대는 넘치도록 들어온 반면, 경제개발을 통해 대한민국을 유사 이래 가장 부유한 국가로 만든 공로에 대해서는 이미 다 짜인 계획을 단순히 실행만 했다는 식으로 깎아내리거나 외면하기 일쑤였다는 것. 즉,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과 피치못했던 곡절은 건너뛰었다는 지적이다.

진보학자들이 박정희시대에 대해 만든 통념에 도전하고 싶어 이 책을 기획했다는 저자는 “박정희에게 흠 없는 성인의 모습을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정말 열린 마음으로 박정희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고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하며 386 출신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6070년대 평가로 마무리를 지었다.

“부자나라, 초일류 기업이 되려면 꼭 한국처럼만 하라! 뒷마당에 심어진 뽕나무나 올리브나무만 기르거나 봉제품을 만지작거리지 말고, 초일류에 도전하는 ‘미친 짓’을 벌여야 하며, 이때 반드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어야 한다.”

박정희를 바로 세워 그의 가치를 되찾아야 비로소 대한민국 기적의 역사 또한 우리의 것이 된다는 저자의 호소가 귓가에 맴돈다.

[스크랩] 왜, 바다로 나가지 않았을까

2009.10.08 13:16 | 책 안 내 | 유비

http://kr.blog.yahoo.com/yb01112000/12261 주소복사

원본 원본 : '성이네'

우리 민족은 왜 바다로 나가지 않았을까? 여름휴가 여행 도중 인천 대부도에서 배를 타고 주위
섬들을 둘러보면서 든 의문이다. ‘동북아의 관문’을 지향하는 인천과 서해안은 그 거창한 목표
에 걸맞지 않게 너무나 낙후된 채 과거와 현재 사이 그 어딘가에 멈춰 있는 것 같았다.

요즘 식자들 사이에선 『대항해 시대』(주경철 지음)같이 우리의 시각으로 근대 문명의 발전
을 재해석한 역사서들이 주목을 끌고 있다. 이런 책들을 읽다 보면 5000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가 왜 적극적으로 바다로 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과 안타까움이 솟아오른다.

      

이순신과 장보고. 우리 역사에서 바다와 결부돼 떠올릴 수 있는 두 명의 위인이다.
그러나 이들이 바다로 나아간 것은 바다를 개척하기 위해서도, 바다 너머의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이순신은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장보고는 노예로 잡혀간 신라인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장보고 이후 우리 역사에서 바다 개척과 관련된 기록을 찾기는 쉽지 않다. 

     

바다는 미지의 세계다. 그리고 위험하다. 그러나 바다는 소통의 통로였다. 부와 성공의 기회
를 찾아 목숨을 걸고 떠난 바닷길에서 서양의 근대가 시작됐다. 자연에 대한 정확한 관측 기
술은 선주와 선원들에겐 죽고 사는 문제였다.

나침반과 화약이 중국에서 발명됐지만 이를 실용화한 것은 서양 해상세력이었다. 무엇이 이
들로 하여금 바다로, 바다로 나가게 하였을까. 같은 시기에 한국과 중국은 해금(海禁)정책을
실시해 바다를 향한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있었다.

    

일부 전문가는 동서양의 의식 구조 차이를 문자 체계의 차이로 설명하는 해석이 있는데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문자로써 우리는 세계를 재현하고 그것이 우리 의식을 형성
하기 때문이다.

문자와 표기 대상 간의 아날로그적 연관성이 없는 알파벳 문명권의 서양적 사고는 나와 세계
를 분리해 객관화하고 추상화하게 만든다. 그래서 항상 정확한 재현을 위해 더 정교한 기술
과 논리를 추구한다. 

    

그 결과 서양은 과학과 탐구, 탐험, 정복의 전통을 갖게 되었다. 부작용도 있다. 인위적인 체계
에다 세상을 맞추다 보니 가학적이며 억압적인 심리기제가 나타난다.

무력을 앞세운 서구식 근대화가 폭력의 세계화란 폐해를 낳은 것도 그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 29일 문여는 완도 장보고기념관 안에 전시된 고대 무역선 모형을 완도군 관계자들이
       둘러보고 있다. 왼쪽에서 3번째가 김종식 군수./완도군 제공


반면 한자 문명권에서는 상형문자가 정신세계의 구심점이다. 그림에서 출발한 상형문자는
표기 대상과의 단절이 없고 이는 나와 세계 간의 연결적인 사고를 형성한다.

동양의 세계는 파악하고 탐구할 대상이 아니라 현실세계와의 조응을 통해 안정적이며 조화
로운 세계관을 드러낸다. ‘왜’라는 질문에 소극적이다 보니 과학의 발전이 유보될 수밖에
없었다.

    



과거는 그렇다 치고 지금 우리는 세계를 향해 얼마나 열려 있는가? 요즘 젊은 세대는 한자를
잘 모르고 한글과 영어로 소통한다. 그들의 정신에 상형문자적 각인이 있을 리 없다. 그럼
에도 한국인의 여전한 내부지향적 성향은 경제발전과 문화적 성숙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수출 의존도 50%, 세계 11위 무역강국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구촌 현안에 등을 돌린 채
국내 문제에만 몰입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치·사회 뉴스의 과잉, 그리고 극히 국내적이고
지엽적인 사안들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파괴적인 연쇄반응은 불가사의할 정도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의 개막식에서 중국은 평화적 소통을 상징하는 ‘정화의 원정’을 극화해
보여줬다. 참 인상적이었다. 중국은 이제 더 이상 아시아 국가가 아님을, 그리고 바다를 통해
세계로 나아가는 국가적 비전을 보여준 것이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그리고 머리 위로 세상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북한이라
는 나라를 이고 있어 사실상 섬이나 다름없는 우리야말로 더 적극적으로 바닷길을 개척하고
세계와 소통해야 하지 않을까.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어거스틴의 참회록
쉽고 아름다운 문체로 출간 [2006-10-17 23:09]
서평
援щℓ?섍린 梨낆컻?섍린
S.T.어거스틴 지음 | 예찬사 출판사 | 1991-11-30 | 8,000 (7,200)
독자서평(1건) | 관련기사(1건)

사백 년 이후 오늘날까지 줄곧 기독교 고전으로서 찬사를 받아왔던 '어거스틴의 참회록'이 쉽고 아름다운 문체로 출간됐다.



아무도 자기를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이상 알지 말기를,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그대로 절대로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쓰게 된 이 참회록은 집필의 동기 자체가 자신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위대한 고백이다.



하나님께 자기를 고백하면서 찬양하고, 찬양하면서 고백한 이 글은 인간은 모태부터 죄인이기에 죄를 범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죄인이기에 어쩔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죄인이기에 더욱 구원이 필요하게 된 존재라는 그리스도교적 인간관이 성립되는 것이다. 어거스틴의 입에서 고백과 찬양이 함께 터져나온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전 13권으로 짜여진 이 참회록은 제1권에서 9권까지는 어거스틴 자신의 행적들을 성경의 정신에 조명시켜 낱낱이 고백한 것들이고 제10권은 주교 시절 자기의 내면 상태를 기술하였으며 나머지 2권은 창세기 1장의 1절과 2절등을 심오하게 풀이한 것이다.



우리 나라에도 이미 번역되어 나온 것이 몇 가지 있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원문에만 치중하고 너무 현학적인 언어 구사에만 치중하여 제대로 뜻이 전달되지 못했거나 뜻이 애매하게 변형된 것들도 있다. 그래서 독자들이 원저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부드럽게 읽어 나갈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다듬어 내놓게 되었다.

작가소개
(354∼430). 어거스틴은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서 354년 어머니 모니카와 아버지 파트리키우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명한 수사학자로서 활동하며, 마니교에 빠졌다가 후에 기독교로 회심하여 히포의 감독이 되었으며,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신학자가 되었다.
 
목차
서론 / 버논 J. 버르크

[제1권]
1. 그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며, 하나님을 간
절히 구하는 그는 마침내 하나님을 발견한다.
2. 우리가 간구하는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는 그 안에 거한다.
3. 하나님은 천지만물에 충만하시다. 그러나 하늘도
땅도 그를 모셔들일 수 없다.
(이하생략)

[제2권]
1. 그는 젊은 시절의 사악성을 뉘우치다.
2. 그는 깊이 통회하는 마음으로 16세 때에 그가 심
취했던 방탕한 시절을 기억하다.
3. 타가스테의 자유인으로 아들의 학문을 돕는 아버
지와 경건한 삶을 살도록 경책하는 어머니
(이하생략)

[제3권]
1. 거짓 사랑에 현혹된 그는 저속하고 명예롭지 못했
으나 고상하고 우아한 사람으로 여겨지기를 원하다.
2. 공허한 정욕에 사로잡혀 대중오락에 심취하다. 그
는 고통스러운 영적 질병에 시달리다.
3. 심지어 교회에서 예배 드릴때에도 그는 정욕을 억
제하지 못하다. 학교에서 수사학을 배울 때 불량
배들의 행동에 혐오를 느끼끼도 하다.
(이하생략)

[제4권]
1. 많은 사람들에게 속고 속였던 가장 불행했던 시
절에 관하여, 그리고 그의 고백을 조롱하는 자들
에게 관하여
2. 그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수사학을 가르치다. 그
리고 그에게 성공을 약속했던 점장이를 비웃다.
3. 그는 점성술에 심취했으므로 아무리 경험이 풍부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점성술의 허구를 그에게 설
득할 수 없었다.
(이하생략)

[제5권]
1.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고백을 드리는 영혼
이 되어가다.
2.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역을 벗어나려는 어리
석은 사람들의 공허한 생각
3. 마니교의 가장 학식있는 감독인 파우스투스의 이
야기를 듣고 난 후 그는 모든 생물과 무생물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주로 겸손한 자를 찾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하생략)

출처:크리스찬투데이



맘착한 유학생 최군이 한달간의 한국 외유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가 내게 넘겼던 책들을 돌려줘야 할 때.

16권의 책들은 저마다 한정식집 반찬처럼 고유의 맛이 있었지만,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특히 맛있었던 반찬 중 하나. 구지 등가물을 찾는다면... 굴비정도라 할까..?

작가가 어렸을때의 경험이 바탕이 된 소설이라는데,
1인칭 서술자 '나'의 말투가 너무나 아이다와서, 도저히 어른이 썼다고 보기 어려운
즐겁고 순진한 작품. 작가인 Carter 가 어렸을때 써놓은 일기중에서 몇몇 구절은 그대로 인용한게 아니었을까 싶다. 





*****************

할머니는 사람들은 누구나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하셨다. 하나의 마음은 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꾸려가는 마음이다. 몸을 위해서 잠자리나 먹을 것 따위를 마련할 때는 이 마음을 써야한다. (...)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런것들과 전혀 관계없는 또 다른 마음이 있다. 할머니는 이 마음을 영혼의 마음이라고 부르셨다. 
만일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을 부리고 교활한 생각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해칠 일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이익 볼 생각만 하고 있으면..... 영혼의 마음은 점점 졸아들어서 밤톨보다 더 작아지게 된다. (...)

사람은 누구나 다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그런 사람이 다시 세상에 태어날 때에는 밤톨만한 영혼만을 갖고 태어나게 되어 세상의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


섬뜩한 말이다.
내 마음의 영혼은 얼마나 작아져있을까..?


PS 
인용한 본문은 짐짓 심각한 부분에 속한다.
대체적으로 깔깔 웃어대며 읽을 수 있는 책!


 
      

[스크랩] 중년의 가장에게 보내는 응원메시지

2009.04.17 05:38 | 책 안 내 | 유비

http://kr.blog.yahoo.com/yb01112000/11360 주소복사

 

중년에 접어든 아버지라는 단어는 대개 축 처진 어깨, 힘없이 터벅터벅 걷는 뒷모습을 연상시킨다.

자녀의 학비를 대느라 바쁘고, 젊은 날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한 탓에 몸은 성한 곳이 없다. 때론 성(性)적 능력도 떨어지고 노후 대책도 변변하지 않다.

그러다 보면 남는 것은 후회뿐이다. 몸도 돌보지 않고 아내와 자식, 직장을 위해 뛰었지만, 중년에 이르러 되돌아보니 남은 것은 고달픔과 후회, 외로움뿐이다.

이런 중년의 가장들에게 언론인 출신 정우택 씨는 '아버지의 날개'(휴먼드림 펴냄)를 통해 "중년은 죽도록 사랑하고 열심히 일하고 마음껏 즐거워할 '인생의 황금기'"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저자는 중년의 삶을 후회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가족을 위한 나의 희생으로 생각하자고 제안한다.

"중년은 지난날을 후회하고 가슴 아파하기보다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중략) 막상 돌아보면 고생했던 기억만이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다(중략) 마음을 바꿔 지난 일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건 어떨까? 아내를 위해 몸도 바치고 마음도, 물질도 다 바쳤는데 아내가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를 '아내를 위한 아름다운 짐'으로 여길 수는 없을까? 나의 희생으로 가정이 꾸려지고 아이들이 학교에 다녔다면 큰 기쁨으로 여길 만하지 않을까?"(17쪽)

저자는 또 '인생 리모델링'을 해보라고 권한다. '나는 중년을 살고 있다'라는 생각을 잊지 말고 나이가 들었다는 것, 경제활동의 영역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 주변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게 점점 소홀해진다는 것을 인정한 뒤 몸과 물질, 부부간 관계, 자녀 문제도 중년에게 맞게 리모델링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반짝이는 별일수록 외롭고, 어두울 때 별은 비로소 빛이 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며 중년에 대해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아름답게 늙어갈 준비도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312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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