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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 들어가기 전에 - 이 글은 20004년 신년를 맞이 하면서 몬트리올 교민 신문인, '코리안 뉴스 위크지' 에서 <일본 기억 16편>에 올린 글으로써, 당시 KBS 에서 이순신 장군 드라마 제작에 들어간다는 소식과 드라마에서 이순신을 나약하게 묘사한다는 루머와 일본에 패하여 죽은 원균 장군을 새롭게 영웅으로 조명한다는 등의 말도 않되는 유언비어(??)를 듣고, 필자는 이순신 장군은 '불멸의 우리의 영웅' 이라는 것과 우리 영웅은 우리가 지켜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쓴 것입니다. 일본 기억.16
충무공(忠武公)과 군신(軍神) 일요일이 되면 외로운 유학생활에 활력을 넣기 위하여 가끔 하카다역 앞의 일본기원(日本棋院) 큐슈지부(九州支部)에서 바둑을 두었다. 하루는 막강한 고수가 등장 하여, 모두들 고수 바둑에 구경한다고 몰려 있었다. 이 막강한 고수와 대국 기회가 있어 바둑을 두면서 여담의 시간을 가졌는데, 전직이 일본대학(日本大學) 교수라고 자신을 소개 한 그는 수준 있는 한국어를 구사하였으며, 필자에게는‘신(新)’이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명암을 보니 한일간의 통역 및 번역의 일을 하고 있었고, 한일 관계사 등에 박식하였다. 대화 중 그는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장군에 대해 언급 하였다. 바둑 고수 신(新)교수가 언급한 이순신 장군, 일본에서 군신(軍神)이라 불리는 도고 헤이하치로(東鄕 平八郞)제독(提督)이 보는 이순신 장군, 필자가 중학교 세계사 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먼저 중학 시절, 세계사 선생님께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얼마나 재미있게 하셨던지 필자는 물론 까까머리 동창생들의 입을 고요함 그 차체로 만들어 버렸다. 선생님께서는, -민족의 영웅 이순신장군은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는 인류 최고의 명장이다. 왜냐하면, 근세기의 세계 3대 해전으로 불리는 1805년도 영국의 넬슨(Nelson)제독의 <트라팔가(Trapalgar)해전>, 러일전쟁 때의 <쓰시마(對馬島)해전>,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명랑해전>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넬슨의 영국 함대는 프랑스와 연합한 스페인 함대가 쳐들어오는 것을 이미 알고, 영국의 국가적인 지원과 국민적 지지로 대비하여 승리한 해전이었다. 이에 반해 이순신 장군은 급작스럽게 일어난 전쟁의 어려운 상황에 17전 17승의 완벽한 승리를 이끌어 내었으니, 이에 비하면 넬슨은 아무것도 아니다. - 또한, -이순신 장군과 넬슨제독의 어록에서도 보면 장군으로써 품위가 다름을 알 수 있다. 넬슨은 Trafalgar 해전에서 승리하고 적의 보병이 쏜 총에 맞아 죽으면서, 나의 임무를 완수 하게 해주신 신께 감사 한다고 했다. 이 말로 맺었으면 그만인데, 넬슨은 덧붙여 국가는 내 마누라와 딸을 잘 보살펴 줄 것으로 믿는다(모두 깔깔 웃었다)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이순신 장군께서는 해전 중에 총탄을 맞고서 유언의 말씀이‘싸움이 급하다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하시어, 죽어서도 승전으로 이끌어 냈다는 점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러일 전쟁 당시, 쓰시마 해전을 승리로 이끈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제독과 이순신 장군에 대해 보자.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해군장군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전쟁을 추진하여 쓰시마 해전에서 러시아 함대가 패전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당시, 러시아는 극동 함대가 없었던 탓에 일본과 전쟁하기 위해 발트 해협에서 대서양을 거쳐 대한 해협까지 장장 9개월에 걸쳐 1만8천 마일이라는 장거리 항해로 지쳐 있었다. 이에 반해 일본의 도고제독이 이끄는 함대는 외국으로부터 도입한 최신형이었고, 러시아 함대가 온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 만반의 준비를 다하여 대한해협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싸워 승리한 해전이라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 해전에서 38척의 함선 가운데 19척이 격침 되었고, 5천명 이상의 전사자와 6천여 명의 포로를 남겨 수치스러운 패전으로 기록 되고 있다. 이 쓰시마 해전의 승전으로 인해 도고 헤이하치로(東鄕 平八郞)제독은 일본에서‘군신(軍神)’으로 추앙 받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승전 축하연에서 일본기자들이 도고 제독을 영국의 넬슨제독에 버금가는 명장이라고 칭찬을 하자, 도고(東鄕)는“넬슨제독과 나는 비교가 된다. 그러나 조선의 명장 이순신 장군과는 비교 할 수 없다. 이순신 장군에 비하면 나는 하사관 정도에 불과 하다”라고 했다고 한다. 일본의 역사 소설가 시바 료타로(司馬 遼太郞)가 일본군인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쓴 <언덕위의 구름>이라는 책에도 도고 제독은, 러일 전쟁이 있기 전에 이순신 장군이 활약한 남해로 지나가다가 장군을 존경하여, 이순신 장군에게 승전을 기원하는 제(祭)까지 올렸다고 했다. 일본인들이 군신(軍神)으로 높이는 도고제독, 그가 존경하는 우리의 영웅 이순신 장군을 우리는 어느 위치에 올려놓아야 하는가? 신(新)교수의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세계 해군학회에서 일본의 해군장교가 이순신 장군의 해전에 대해 발표하였는데, 이에 학회에 참가했던 한국의 해군 장교가 듣고 와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하여, 현충사 및 장군의 사적지를 조성 및 재건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박정희 대통령 집권 이전까지의 한국인들은 이순신 장군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았는가? 라는 의문을 제시하여 한국의 역사 인물 연구부족을 비꼬면서 너희 민족의 영웅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과 연구는 일본인이 했다고 하는 것이었다. 조선시대의 이순신 장군에 대한 연구로는 정조(19년)때‘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가 간행 되었고, 1918년에는 최남선이 이충무공전서를 구두(句讀)로 찍어 책으로 간행 하였다. 이에 조선시대나 일제시대의 우리민족이 이순신 장군을 기억 못할 이유가 없었고, 일본인 장교도 ‘이충무공전서’를 기초로 하여 논문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만 도고(東鄕)의 쓰시마 해전의 승전 인터뷰(당시 외국기자도 있었다고 함)도 그렇고, 일본 해군 장교가 세계 해군 학회에서‘이순신 소고(小考, 단편 논문)’라는 논문을 발표 하였다고 하니 이순신 장군을 처음 세계에 알리는 역할은 일본이 했다는 말에는 어느 정도는 수긍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신(新)교수와의 만남이후, 정확한 확인을 위해‘이순신 소고’의 논문을 찾으려고 큐슈대학(九州大學)의 중앙 지하 도서관까지 찾아 해매이었건만 찾지 못했다. 그 논문이 존재 한다면, 아마도 일본 국회 도서관에는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한국에서 이순신 장군을 깎아내리려는 논문도 나온다고 들었다. 논문의 홍수 시대이니, 이순신 장군 정도 걸고 넘어져야 유명해진다고 보는 얕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아닐까? 우리는 우리시대에 우리의 영웅을 만들지 못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리의 영웅도 우리 손으로 훼손시키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본다. 신년을 맞이하면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긍정적으로 대처해 가신 장군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이야기를 맺고자 한다. 장군께서는 간신(姦臣)들의 시기와 모함에도 오직 국가 안위만 생각하여, 권율 장군 휘하에 백의종군 하였고, 이어 정유재란으로 재차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로 명을 받아 전선에 나아갈 때 선조임금과 신하들이 군선이 없음을 걱정하여 육지에서 싸울 것을 권고함에,“신(臣)에게는 아직도 12척의 군선(軍船)이 있사옵나이다(今臣戰船 尙有十二).”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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