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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호의 지상에서 가장 멋진 은퇴식
기사입력 2009-11-29 20:17 |최종수정 2009-11-29 20:39
은퇴사 도중 벅찬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 말문을 닫는 전준호(사진=사다드) |
“정말 고민 많이 했습니다. 제가 이런 과분한 대우를 받아도 되는지, 정말 이렇게 훌륭한 은퇴식의 주인공이 돼도 문제가 없는지 한참 고민했습니다.” 11월 29일 서울 목동 KT 챔버홀에서 만난 전 히어로즈 외야수 전준호(41)의 첫마디는 그랬다. 그러나 표정은 ‘정말 고민이 많았던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되레 세상의 모든 고민을 덜어낸 것처럼 밝고 들뜬 얼굴이었다. “팬들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화려하거나 튀는 선수생활을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은퇴식까지 챙겨주시니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죄송하고 ‘이 자리에 서도 되나?’ 오래 고민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박 기자 생각은 어떠세요?” 19년간 그라운드를 누볐던 전준호는 지난 10월 16일 히어로즈에서 방출됐다. 현역생활에 미련은 남았지만, 41살의 그를 영입하겠다는 팀은 없었다. 지도자가 되기로 마음을 바꾼 전준호는 미국 코치 연수를 계획했다. 히어로즈도 일부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은퇴식에 앞서 대기실에서 전준호(사진 좌로부터 두번째부터)가 송진우와 권시형 선수협 사무총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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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팬들이 주최한 전준호의 은퇴식 현장. 현장에 있던 어느 야구인은 "히어로즈가 아닌 다른 팀이었다면 성대한 은퇴식으로 대선수의 마지막을 기념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히어로즈가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가난한 팀일지 몰라도 팬들의 정성과 진정성만은 리그 최고라 할 수 있다. 생각해보라. 어느 나라 , 어디에서 팬들 스스로 은퇴식을 주최한단 말인가. 우리가 히어로즈의 미래를 어둡게만 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의 뒤에서는 수천, 수만의 영웅들이 그라운드 밖에 있기 때문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그러나 평소 전준호의 주루를 높이 평가했던 김성근 SK 감독이 그를 1군 주루코치로 영입하며 미국행은 백지화됐다. 11월 10일 전준호는 직접 작성한 은퇴사를 언론에 배포하며 스스로 현역생활의 종지부를 찍었다.“시즌 중 은퇴결심을 했으면 당연히 구단에서 은퇴식을 준비했을 거다. 하지만, 시즌이 모두 끝나고 은퇴가 결정된 데다, 갑작스럽게 다른 팀 코치로 가는 바람에 은퇴식을 준비하지 못했다.” 히어로즈 관계자의 말이다. 1991년 롯데에 입단해 현대, 히어로즈를 거친 19년 동안 통산 2,091경기에 출전, 타율 2할9푼1리, 2,018안타, 550도루 577타점, 1,171득점을 기록한 역대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1번 타자는 그렇듯 조용히 사라지는가 했다. 아니었다. 그의 뒤엔 진정한 히어로(영웅)인 팬들이 있었다. 히어로즈 인터넷 팬카페인 ‘영웅신화’와 ‘히어로즈 사랑 영원히’는 대선수 전준호가 초라하게 사라지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히어로즈의 전신인 현대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4번이나 이끈 레전드와의 이별이 이리 쉽게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들은 구단이 못한 일을 스스로 하기로 한다. 바로 자신들의 손으로 전준호의 은퇴식을 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영웅신화’와 ‘히어로즈 사랑 영원히’ 회원들끼리 십시일반 돈을 모았어요.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우리 손으로 전준호 선수의 은퇴식을 준비하고 싶었습니다.”
‘영웅신화’의 회장 김태환 씨의 말대로 팬들은 어디에도 손을 벌리지 않았다. 자발적인 모금을 통해 160여만 원을 모았다. 그 돈으로 은퇴식 장소를 섭외하고, 기념패와 꽃다발 등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들은 또다시 자신들의 손으로 은퇴 동영상을 준비했고, 모 인터넷방송을 설득해 은퇴식 현장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도록 했다.

팬들이 자체 제작한 전준호 은퇴기념 동영상(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전준호의 은퇴식은 모 인터넷방송에서 현장중계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선수협)의 권시형 사무총장과 ‘2,000안타 또는 200승, 300세이브 이상 올린 선수들의 모임’인 성구회의 송진우, 양준혁(삼성)이 은퇴식에 동참한 것도 팬들의 정성과 진정에 감동한 까닭이었다. 히어로즈 선수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자신들 혹은 구단에서 챙기지 못한 대선참의 은퇴를 팬들이 챙겼다는 미안함 때문인지 그들은 정장을 입고 나타나 시종일관 진지한 자세로 은퇴식장을 지켰다. 2001년부터 전준호와 함께했던 황두성은 “송진우 선배처럼 멋진 은퇴식을 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선수들끼리 ‘바쁜 일이 있어도 오늘만큼은 꼭 전 선배의 은퇴식에 모이자’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대선참의 마지막 길에 함께 선 히어로즈 선수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성구회 회원인 송진우(사진 가운데)와 양준혁(오른쪽)이 전준호(왼쪽)의 은퇴식을 축하하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1시간 가까이 진행된 은퇴식은 전준호의 마지막 인사로 끝을 맺었다. 만감이 교차한 표정으로 어렵게 말문을 연 전준호는 “2,000안타와 500도루를 넘기기까지 숱한 좌절과 고난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20년 가까이 현역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건 순전히 팬들의 사랑 때문이었다”며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팬들의 기립박수와 응원에 다시 마이크를 잡은 전준호는 “은퇴를 야구의 끝이 아닌 새 야구인생의 출발점으로 삼아 현역 때보다 더 훌륭한 지도자가 되겠다”고 약속하며 팬들에게 큰절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은퇴식장 한쪽에 놓여진 전준호의 유니폼. 이제 등번호 1번을 단 전준호의 폭풍같은 도루는 다시 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머지 않아 그의 지도로 탄생한 수많은 '제2의 전준호'를 보게 될 것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한국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팬들이 주최한 은퇴식으로 현역생활을 마감한 '행운아' 전준호는 30일 일본 고지 SK 마무리 캠프로 떠난다. 현역시절 ‘1월 1일 훈련에 착수해 12월 31일에는 더 나은 선수가 되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던 그였기에 지도자로서도 틀림없이 성공하리라 믿는다. 여기서 전준호가 물었던 말을 다시 떠올려보자. “화려한 선수생활을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은퇴식까지 챙겨주니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죄송하고 ‘이 자리에 서도 되나?’ 오래 고민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박 기자 생각은 어떠세요?” 증언대에 섰을 때처럼 간명하게 말하자. “앞으로 수십 년간 당신은 루브르 박물관의 전시실에 걸려 있는 작품처럼 야구계에서 끊임없이 분석되고 추앙받을 것입니다. 왜냐고요? 2,000안타 550도루 이상은 당신이 아니면 기록할 수 없는 대기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서도 되느냐고?’요. 세상에! 당신이 아니면 누가 팬들이 주최하는 은퇴식에 설 수 있단 말입니까. 지금 같은 지상 최고의 은퇴식의 주인공이 당신이 아니라면 누구여야 한단 말입니까. 당신이 누군지 아세요? 레전드입니다. 히어로즈의 레전드, 아니 한국프로야구의 레전드!”

미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도루왕이 리키 핸더슨이라면 일본프로야구는 후쿠모토 유타카다. 그렇다면 한국프로야구는 누구일까. 아마도 우리 후대는 '전준호'란 이름을 그들의 이름 옆에 둘 것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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