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입주기업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정기섭 에스엔지 대표(위)는 정경분리 원칙을 강조했다. 정 대표는 정경분리 원칙만 지켜진다면 개성공단 시너지 효과는 크다고 주장했다.
6월25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 대회의실. 개성공단입주기업협회 간담회 자리가 성토장으로 변했다. 남북 양쪽 정부에 낀 처지라 입주 기업인들은 그동안 말을 아껴왔다. 간담회나 회의는 비공개이기 일쑤였고 언론 창구도 임원진으로 단일화했다.
하지만 이날 간담회는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되었다. 일부 회원사 사장이 공개를 요구했다. 공개 석상에서 봇물이 터졌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쓴소리도 거침없이 나왔다. "정부의 무관심이 원망스럽다. 남북 양쪽에 인질로 잡힌 거 같다." "교통사고가 나서 응급실에서 죽어가는데, 우리 정부는 사람 살릴 생각은 안 하고 교통사고 원인만 따진다." "처음 들어갈 때는 정부에서 다 해줄 것처럼 하더니 정권이 바뀐 뒤 도와준 게 없다."
입주 기업인들은 7월2일 남북 접촉에서 개성공단 폐쇄와 유지 양단간에 결단을 내달라고 촉구했다. 입주기업협회 부회장을 맡은 정기섭 에스엔지 대표를 만나 속내를 들어봤다.
개성공단에는 언제 입주했나?
부지는 2005년에 분양을 받았다. 건물을 늦게 지어서 지난해 7월 준공했다. 지난해 8월부터 인력을 받아서 가동했다. 주력 생산품은 정장 바지와 숙녀복 등이다. 현재 개성공단 북쪽 근로자는 868명이다. 애초 북쪽 당국에 근로자 2000명을 채용하겠다고 신청했는데, (북한에서) 절반도 못 채워줬다. 게다가 지난해 12월1일 통행제한 조처로 가동한 지 4개월 만에 직격탄을 맞았다.
현재 회사 손실 규모는?
지난 6개월간 5억9000만원 적자가 났다. 지금까지 개성공단에 쏟아 부은 투자액만 90억원에 이른다. 만일 폐쇄되면 경협 보험에 따라 손해 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보장한도가 50억원에서 70억원으로 늘기는 했다. 그러나 폐쇄되어 70억원을 보상받더라도 운영자금 적자를 포함해 30억원가량 손해를 입는다. 입주기업협의회 차원에서 조사를 했는데 89개 기업의 누적 적자가 현재 397억원에 달했다.
가동 중인 개성공단 기업도 휴업한다던데.
일주일 전에 개성 공장을 방문하고 왔다. 우리 공장도 인력 20%가 일감이 없어서 유급 휴직을 보냈다. 우리 공장이 납품하는 제품은 거의 국내 대기업 내수용인데, 개성공단 전망이 불투명하니까 오더를 주지 않았다. 일감이 떨어져 북한 쪽 근로자들이 공장에 나와도 일할 거리가 없다. 휴직 처리를 할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 위기 원인은?
북한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해서 개성공단을 망가뜨렸고, 우리 정부는 했어야 하는 일을 안 해서 개성공단을 망치는 데 일조했다. 상식을 벗어난 북한이 위기를 만들었다. 그런데 북한은 왜 그랬을까. 북한 처지에서 군부대를 이전하면서 개성공단 땅을 내줬다.
지난 6월19일 제2차 개성공단 실무회담에 나선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상근 회담 대표단.
대신 빵이 들어올 줄 알았다. 예컨대 빵 20개가 들어올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에 군사 요충지를 비워준 건데, 지금 빵 한두 개만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실망한 북한이 몽니를 부리는 것이다. 남한은 정권이 바뀌면서 180도 태도를 바꿔 핵문제 해결 없이 개성공단 확대 발전이 없다고 공언했다. 예산까지 확보된 개성공단 합숙소 건립도 중단시켰다.
이명박 대통령이 나서서 '합숙소를 지으면 노사 분규가 발생한다'고 걱정했는데.
대통령이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 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북한에서 노사 분규는 있을 수 없는 얘기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북한에 전적으로 개성공단 위기 책임이 있는 거 같지만, 잘 따져보면 그렇게 행동하게 만든 우리 책임도 없지 않다. 합숙소 건립이 중요한 점은 노동의 질과 관련되어 있다. 합숙소가 지어져야 양질의 노동자가 투입될 수 있다. 출퇴근 한계 때문에 개성 지역 근거리에서 노동자를 찾다보니 50대 비숙련공도 투입된다.
통일부나 정부 쪽 사람을 많이 만났을 텐데.
표면적으로는 대통령부터 통일부 장관, 담당자까지 모두 개성공단을 발전시키겠다고 말한다. 돌아오는 현실은 계속 악화되기만 한다. 그러니 도대체 속을 알 수가 없다. 어쩌겠나. 액면 그대로 믿어야지. 중요한 점은 지금 정부 입장으로 보면 개성공단 삽을 뜨지 말았어야 했다. 북한은 예전부터 핵에 애착이 강하다. 개성공단 10개 만들어져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전임 정부의 경우 핵 문제는 6자회담으로 넘겼고 개성공단은 남북 경협 차원에서 별도로 추진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더니 이런 정경분리의 큰 틀이 바뀌었다. 이렇게 북핵과 연계하면 개성공단 사업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북쪽에서 임금과 토지 임차료를 올려달라고 했는데.
통행ㆍ통신ㆍ통관 등 3통 문제나 우리 주재원의 신변 보장 등 경영 환경이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 생산성 향상 없이 임금 인상을 어떻게 하나. 북한도 애초 요구한 월 300달러를 모두 인상하겠다는 뜻은 아닌 거 같다. 북한 처지에서는 군사 요충지를 내줬다. 바랄 게 많을 것이다. 그게 약속대로 안 되니 상식에 어긋난 요구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북쪽 눈치 보면서 못할 얘기가 뭐가 있나. 절박하다. 이대로 간다면 개성공단 공장이 아니라 본사가 망한다. 자기 돈을 투자해서 만든 공장에 내 발로 걸어 들어갈 수도 없게 통행제한을 하는 공단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북한에도 할 말을 해야 한다. 우리 요구사항도 얘기해야 한다.
7월2일 개성공단 실무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솔직히 기대 안 한다. 이제 우리 인내의 한계를 벗어났다. 남북 당국이 전향적으로 개성공단을 발전시킬지 아니면 아예 문을 닫을지 이번 참에 결정을 해줘야 한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기업 처지에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채 시간만 끄는 것은 망하라는 얘기와 같다. 업체마다 다르겠지만 자금력 한계 때문에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 더 시간을 끌려면 우선 우리 정부가 급한 불이라도 끌 수 있게 입주 기업들이 요청한 긴급 운영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남북 경색 국면 장기화로 개성공단 경쟁력 상실을 염려하는데?
개성공단은 잘만 운영하면 장점이 많다. 지리적으로 가까워 물류비가 적게 든다. 연관 효과가 크다. 개성공단에 들어간 업체 대다수가 봉제ㆍ임가공 업체인데, 중국ㆍ베트남으로 나갔던 산업이 돌아온 것이다. 우리 회사만 하더라도 원단이나 실 등 원자재를 국내 기업에서 조달한다. 2, 3차 기업들이 덕을 보는 것이다.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공장에서는 현지 자재를 쓴다. 개성공단은 국내 자재를 90% 쓴다. 정경분리 원칙만 적용된다면 개성공단의 시너지 효과는 크고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