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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에서, 박경완의 배려
기사입력 2009-03-25 11:22 |최종수정 2009-03-25 11:32 "안팎의 모든 상황이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겨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연설 중 한 대목을 따 온 것이 아니다. 김인식 WBC 대표팀 감독이 대회를 앞두고 밝힌 각오다.
그랬다. 한국야구 대표팀은 가장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험난한 가시밭길을 헤치고 사상 첫 결승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WBC 대표팀이 남긴 발자욱은 위기의 시대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겼다. 그들이 말 없이 행동으로 전했던 메시지를 따라가보자.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김인식 감독은 4강전을 앞두고 한 선수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어디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꾹 참고 해주고 있으니 고맙지." 김 감독이 지목한 선수는 포수 박경완(37.SK)이었다.
실제로 박경완은 온 몸이 부상이었다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무릎과 허리의 통증은 종일 앉았다 섰다를 반복해야 하는 포수에겐 그 자체만으로도 힘겨운 싸움이었다.
그 뿐 아니었다. "가벼운 부상"이라며 숨기고 있었지만 손목 통증이 가장 심했다. 8일 중국전서 슬라이딩을 하다 다친 손목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갔다.
대회 기간 내내 그의 스윙은 평소보다 훨씬 컸다. 아이러니하게도 가볍게 공을 맞힐때 더 큰 고통이 생겼기 때문이다. 차라리 크게 힘껏 치는 것이 통증을 줄이는데는 더 효과적이었다.
더 큰 문제는 포구였다. 손목을 이용한 미트질이 능한 그였기에 순간 공을 잡는 손 끝이 무뎌질 수 밖에 없었다.
WBC가 끝나면 곧바로 시즌 준비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 그정도로 아팠다면 병을 부풀려서라도 쉴 법도 했다.
그러나 박경완은 끝까지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오히려 코칭스태프에 부상을 숨기고 출장을 강행했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의 젊은 투수들은 정말 좋은 기량을 갖고 있다. 다만 경험이 아직 부족할 뿐이다. 내가 그 부분을 메워주고 싶다. 야구가 무엇인지,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건지, 내가 알고 있는 건 모두 가르쳐주고 싶다. 언제 내게 이런 기회가 또 오겠나."
2기 WBC 대표팀은 역대 대표팀 중 가장 젊지만 유능한 투수들이 주축이 돼 있었다. 윤석민(KIA) 류현진(한화) 김광현(SK) 등은 한국 야구의 '앞으로 10년'을 책임질 소중한 보물들이다.
지난 1991년 프로에 입문한 박경완은 그 오랜 시간동안 최고의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 왔다.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한국 최고 투수들의 공을 받으며 그만의 노하우를 쌓아왔다.
'볼배합에 있어선 박경완이 최고'라는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박경완은 그 힘을 혼자만을 위해 쓰려하지 않았다. 대회가 끝나면 서로 다른 팀으로 흩어져 서로에게 칼을 겨눠야 할 사이. 그러나 박경완은 보다 큰 틀에서 투수들, 특히 젊은 에이스들을 배려했던 것이다.
박경완의 '배려'는 크나 큰 결실이 돼 돌아왔다. 세계 최고라는 메이저리그의 파워 히터들도 그의 볼배합과 그를 믿고 던진 한국의 젊은 어깨들의 공 앞에 무릎을 꿇었다.
TV나 컴퓨터 게임에서 보던 최고의 메이저리거들 앞에서, 이제 갓 스물을 넘긴 한국 투수들이 기죽지 않고 공을 뿌릴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역시 박경완이었다.
초등학교부터 한솥밥을 먹은 투수 김원형(SK)은 포수 박경완의 최고 장점을 "남 탓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투수의 공이 뜻대로 오지 않더라도 투수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야구는 결과론의 스포츠다. 결과에 따라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박경완은 그 책임을 홀로 지려 노력했고, 그의 배려는 투수들의 신뢰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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