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 동아대 교수 '동래읍성 인골' 논문
최근 발굴조사한 동래읍성 해자에서 수많은 인골이 나왔다. 임진왜란 당시 비참하게 스러져간 백성들의 최후를 말없이 증거하는 상흔을 간직한 채.
김재현 동아대 교수는 '인골이 말해 주는 동래읍성'이란 논문을 통해 임진왜란으로 희생된 동래성 사람들의 참상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동래읍성 해자를 발굴했던 경남문화재연구원이 개원 10주년을 기념해 21일 경남 창원호텔에서 여는 학술심포지엄 자리에서다.
해자에서 발굴된 인골은 최하 81개체에서 최고 114개체.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해자에 흐르던 물이 오랜 시간을 거쳐 인골을 개체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흩뜨려 놓았기 때문이다.
성별로는 남성이 59개체, 여성 21개체. 5세 이하로 추정되는 유아의 인골을 비롯해서 나이는 10대 후반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조사된 조선시대 민묘에서 나온 14개체의 인골 중에서 10개체가 40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당시의 40대는 요즘으로 치면 노년에 해당한다. 말그대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전쟁터에서 최후를 맞이한 셈이다.
변박이 그린 동래부순절도와 기록을 보면, 왜군은 상대적으로 방어가 허술한 동쪽 성벽을 타고 넘어왔다. 백성들은 막대기며 괭이 낫 도끼 칼 등 가능한 무기를 모두 동원해 싸웠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던 사람들은 그렇게 스러졌다.
두개골은 그때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총칼이나 화살, 혹은 둔기에 맞아 목숨을 잃은 상흔들이 뚜렷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칼에 베어진 상흔이 뚜렷한 두개골이 4개체, 조총이나 활에 맞은 상흔이 있는 두개골이 2개체, 둔기에 맞아 함몰된 두개골이 2개체 확인됐다. 유아의 경우 오른쪽 이마에 조총이나 활에 맞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목숨을 앗아간 치명상이다. 한 여성 희생자의 경우 좌측 약간 위쪽에서 정수리와 이마에 두 차례에 걸쳐 칼을 맞은 것으로 추정되는 상흔이 있었다. 여인을 꿇여 앉혀 놓고 위에서 칼을 내리쳤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 치아가 남아 있는 두개골 32개체 가운데 26개체는 영양장애에 의한 발육지체가 원인이 되는 치아 질병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잘 먹지도 못했다는 말이다.
400여 년 전에 묻힌 타임캡슐처럼 인골은 임진왜란의 참상을 말없이 전해 주고 있었다. 김 교수가 '경건함과 사명감'으로 인골을 분석했노라 말했던 이유다.
이상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