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이 '미국 6·25 참전' 유도
기사입력 2008-06-25 02:32 |최종수정2008-06-25 08:31 
[중앙일보 이영종]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수상이 1950년 한국전쟁에 미국을 끌어들이길 희망했으며, 전쟁 발발 직후 소집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소련이 불참한 것도 미국의 참전을 유도하기 위한 치밀한 계산이었음을 보여주는 문건이 공개됐다.스탈린은 또 중국도 전쟁에 가담케 함으로써 미국과 중국이 모두 한반도에 발이 묶이는 상황을 만들려는 전략을 짰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50년 8월 27일 스탈린이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인 클레멘트 고트발트에게 보낸 극비 전문을 통해 드러났다.
전문에서 스탈린은 그해 7월 초 열린 유엔 안보리에서 소련이 유엔군 파병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데 대한 고트발트의 문제제기에 대해 “미국에 안보리 다수결 결의를 쉽게 얻도록 해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에 따라 미국은 한국에서의 군사 개입에 말려들게 됐으며 군사적 위신과 도덕적 권위를 상실해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스탈린은 특히 “미국이 한국전 개입을 지속하고 중국 또한 한반도에 끌려들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올지 생각해 보자”며 “유럽에서 사회주의를 강화할 시간을 벌고 우리에게 국제 세력균형에서 이득을 안겨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탈린 전문은 베이징대 역사학부 김동길 교수가 2005년 러시아의 3대 국립문서보관소 중 하나인 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RGASPI)에서 입수한 옛 소련 자료(문서번호 fond 558, opis 11, delo 62, listy 71∼72)에 포함돼 있었다.
한국전쟁과 관련해 스탈린이 직접 개전을 전후한 국제정세와 자신의 전쟁 구상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문건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 문건은 스탈린이 미국의 개입을 우려해 김일성의 남침 계획에 반대했다는 통설을 뒤집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문 말미에 스탈린은 철수했던 유엔 안보리에 소련이 복귀하려 한다면서 “이는 미국 정부의 호전적 정책을 폭로하고 미국이 안보리를 이용하는 걸 막는 데 효율적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스탈린은 일급비밀로 분류된 전문의 보안 유지를 위해 암호명 '필리포프(Filippov)'를 썼고, 프라하 주재 소련 대사에게 “구두로 고트발트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전문을 분석해 '고트발트에 보낸 스탈린 전문과 한국전쟁의 기원'이란 연구논문을 마친 김 교수는 “스탈린이 전쟁을 승인하게 된 배경을 포함해 한국전쟁의 기원을 새로운 각도로 설명해주는 문건”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의 연구 결과는 그가 초빙연구원으로 있는 미국 워싱턴 우드로윌슨센터의 '국제 냉전사 프로젝트' 논문집에 25일 발표될 예정이다.
워싱턴=이영종 기자
◇ 스탈린=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을 이끈 레닌의 후계자로 소련공산당 서기장·수상을 지냈다. 1922년부터 53년 사망할 때까지 31년간 소련을 독재 통치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과 대립하면서 냉전의 상징 인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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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소련 수상(1879∼1953)이 한국전쟁 발발 두 달 뒤 고트발트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에게 보낸 극비 전문은 전쟁에 대한 그의 전략과 속내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일성의 남침 계획을 승인하는 등 한국전쟁 촉발의 핵심 키를 쥐고 있던 스탈린이 직접 언급한 내용이기 때문에 한국전쟁의 기원을 연구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전망이다.

전문은 무엇보다 스탈린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미국이 개입할 것이라는 예상을 충분히 한 뒤 전쟁을 시작했고, 그럴 경우 소련이 얻게 될 이득을 면밀하게 계산에 넣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스탈린은 더 나아가 유엔군을 한국에 파병하려는 안보리 결의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기권으로 간주되는 불참을 택함으로써 미군 참전의 길을 터 주었다. 유럽 국가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확대 차단을 위해 한국전쟁 쪽으로 미국의 관심을 분산시키겠다는 그의 의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전문을 분석해 연구논문을 쓴 베이징대 김동길 역사학부 교수는 “미국이 마셜정책을 통해 서유럽 국가에 대한 부흥지원을 본격화하면서 동유럽 국가들이 동요하자 스탈린이 미국을 한국전쟁에 끌어들여 이를 차단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미국에 맞서기 위해 소련은 동유럽 국가에 대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야 했을 것이라고 그는 분석했다.
당시 마오쩌둥이 이끌던 중국 공산당 정부에 대한 스탈린의 대응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스탈린은 전문에서 미국과 함께 중국까지 한국전쟁에 끌려들어오게 되면 “국제 세력균형에서 우리(사회주의권)에게 이득을 안겨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스탈린은 50년 1월 중·소 동맹조약 체결 협상 때 중국이 뤼순(旅順) 주둔 소련군 철수와 다롄(大連)항 반환을 요구하고 나서자 마오쩌둥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고 설명했다.
스탈린은 같은 달 30일 김일성에게 전문을 보내 남침을 승인하고 이를 논의하기 위해 모스크바 방문을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2월 2일 김일성에게 중국 측에는 이런 사실을 비밀에 부칠 것을 요구하는 등 중국에 대해 거리를 뒀다.
스탈린이 3차대전 발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전문에서 그는 미국이 한국전쟁에 발목이 묶이게 되는 점을 언급한 뒤 “그럴 경우 3차 세계대전이 미뤄지게 됨으로써 유럽에서 사회주의를 강화시킬 충분한 시간을 벌게 된다”고 강조했다.
스탈린이 한국전쟁에 미국이 참전하기를 바랐고, 안보리 불참도 이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학계에서 진행돼 온 한국전쟁의 기원과 관련한 연구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전망이다.
소련이 미국의 전쟁 개입을 우려해 한반도에서의 개전에 반대했고, 50년 미국이 딘 애치슨 국무장관의 선언을 통해 한국을 미 극동방위선에서 빼버리자 이에 고무된 스탈린이 김일성의 전쟁 계획을 승인한 것이란 그동안의 연구 결과와는 다른 새 사실들이 드러난 때문이다.
우드로윌슨센터의 냉전 시기 문헌 연구 프로젝트 책임자인 크리스틴 오스트만 박사는 “이번 스탈린 문건은 매우 새롭고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다”고 논평했다.
스탈린의 문건은 50년 당시 한반도의 운명이 소련과 미국·중국 같은 강대국의 이익에 큰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김 교수는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은 스탈린이 안고 있던 고민을 일거에 해결해 줄 수 있는 카드였다” 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스탈린이 소련 사회주의의 팽창이란 큰 밑그림을 토대로 한국전쟁의 전략을 짠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전쟁에 대한 김일성의 책임이 간과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동족 상잔의 전쟁을 일으킨 데다 외세인 소련의 스탈린에게 48차례 이상 남침 전쟁을 승인해 달라고 매달린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워싱턴=이영종 기자(우드로윌슨센터 초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