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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준히 성경공부를 하던 시절 ♣
그간 100일 정성수행을 하면서 글을 쓸 기회가 없었기에 오늘 다시 글을 시작하려니 어쩐지 생소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본래 블로그를 만든 목적이 이러한 글을 쓰려는 의도였기에 무조건 다시 글을 쓸 생각을 한 것이다. 지난번 "백호주의를 넘어 미지의 세계로..."(http://kr.blog.yahoo.com/xodmfwn9/8754)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하나님 사람이다"는 생각이 내 인생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도 컸었기에, 그 후로도 꾸준히 성경공부를 하면서 '예수님처럼 살고싶다'는 생각에 빠져들곤 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컴퓨터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컴퓨터에 성경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성경책의 모든 내용을 일일이 입력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워낙 방대한 내용이기에 틈틈이 시간을 내는 형편으로는 아주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독수리타법으로 성격책의 모든 내용을 입력하여 그것을 마치던 날은 날아갈 듯이 기뻐했었다. 그러면서 느꼈던 사항은 왜 성경책의 군데군데 "(없음)"이라고 표시된 구절이 있는가? 과연 처음부터 없었는가? 아니면 중간에 지웠는가? 하는 점이었다. 어찌되었건 지금 현재는 사라진 내용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내리라' 마음을 먹고는 본래 성경책을 컴퓨터에 입력한 취지를 이어가기로 작정했으니 말이다. 그것은, 컴퓨터의 위력을 알고있는 나로서는, 내가 원하는 내용을 순식간에 찾아내 주는 기능과 아울러서 여러가지 통계수치등 성경을 연구하는데 절대적인 환경을 제공해 준다는데 있었으니 말이다. 점차적으로 입력된 컴퓨터 파일을 이리저리 조합하고 필요한 단어들끼리 정리하기도 하는 작업을 통하여 성경 전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전체적인 윤곽을 잡아가기 시작할 무렵,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다른 대부분의 말씀은 이해가 되었지만, 요한계시록 등의 예언서(豫言書)는 도저히 해석이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으로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했기에 내 나름대로 해석을 한다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기에 말이다. 그래서 일단 예언서는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만 나름대로 해석을 하면서 성경지식을 늘리기로 하였으며, 수십번을 완독하면서 점차로 예언서를 제외한 모든 성경말씀을 해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된 것은 기독교를 믿기 시작한지 거의 30년이 되어서 였다. 예전에도 언급하였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기독교를 알았으니(http://kr.blog.yahoo.com/xodmfwn9/6473) 그러한 자신감이 생기게 될 때까지 무척 많은 시간을 성경공부에 투자한 셈이었다. 어느날 한국으로부터 전해진 예전에 함께 회사에 근무하던 후배로부터의 편지는 많은 감명을 주었는데, 그것은 기독교에 철저하게 반대입장으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지독히도 배타적으로 저주하기를 서슴치 않았던 사람이었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 사건이었다. 그 후배는 교회에 다니던 Wife로부터 철저하게 배신을 당하고 이혼한 후부터, 교회라면 머리를 흔들고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하던 인물이었기에, 호주로 이민을 가기 직전에 여러가지 얘기를 해 주었는데, 사사건건 자기의 의견을 주장하며 교회를 비난하던 그가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불쑥 편지를 보내온 것이었다. 자기도 이제는 하나님을 믿으며 교회에 나가고 있는데 그 모두가 나때문에 마음을 돌리게 되었으며, 그것을 깨닫는데 거의 5년이 걸렸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내가 자기에게 해주었던 말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면서 불쑥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던 것이다. 참고로 그 후배는 나에게 편지를 보낸 후로, 이미 상당한 지위도 있었기에 주변에서 극력 만류하는데도 거의 20년의 회사 생활을 완전히 청산하고 신학대학에 다녔으며 졸업한 후 목회활동을 시작한지 벌써 10년인데, 설교할 때 가끔씩 내 얘기를 한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었던 당시에는 얼마나 뿌듯하던지.. 하지만 성경공부를 하면 할수록 예언서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높아만 갔고, 도대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알고싶은 욕구가 불쑥불쑥 솟구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물론 그것은 한국에 있을 무렵에 읽었던 노스트라다무스의 책이 상당한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곳에 쓰여있는 무시무시한 얘기들은 요한계시록에도 비슷한 정도로 표현되어 있었기에, 앞날에 우리 인류가 겪어야 할 엄청난 사건들이 도대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당시에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나름대로 요한계시록을 연구하는 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어느날 불쑥 찾아온 사람으로하여 일대 전환기를 맞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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