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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독히도 지기 싫어하던 성격이었다. ♣
내가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를 여러 독자들에게 설명하려고 생각하니, 어쩐지 막연하다는 느낌이었다. 사실 개인적인 특성을 운운하는 것은 나중에 최종적으로 말하려는 한가지를 위해서이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무척 중요하기에 굳이 치부를 드러내려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고하더라도 과연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를 고심하다가 전반적으로 고루고루 말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오늘은 잡다한 얘기를 하려한다. 학창시절엔 지극히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도무지 내 의견이라고는 내세울 줄 몰랐던 수동형의 삶을 살아왔으니 말이다. 누가 일을 시키면 그것을 곧이곧대로 실행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서 중지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 한, 언제까지라도 그 일을 실행에 옮기는 그런 사람이었다. 무척 가난하였기에, 어릴 때 어머님으로부터 "돈을 함부로 낭비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는, 길거리에서 아무리 사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단 한 차례도 군것질을 하지 않았을 정도로 말이다. 한번 내 손에 용돈이 주어지면, 한달이 지나도, 1년이 지나도 그것을 쓰지 않고 모았던 것이다. 내 전 생애에서 거의 예외란 없었다. 항상 그 자리에 동일한 모습으로 언제까지라도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어릴 때 가지고 있던 꿈을 지금까지도 그대로 가질 수 있게 만들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주 지독한 고집쟁이라고 할까? 따라서 내 생각이 틀렸다고 느끼기가 무척 힘든, 그러나 일단 방향을 정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그런 사람이다. 변명이지만, 중학교때 영어를 '오랑캐말'이라고 규정짓고는 결국 전교에서 꼴등을 해도 어쩐지 영어 배우기가 무척 싫어서 꼴등의 수모를 묵묵히 견디며, 다른 모든 과목으로 영어 성적을 보충할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반면에 수학이나 과학계통은 누구에게도 지지않을 만큼 자신이 있었다. 예를든다면, 요 근래에 조카들이 입시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을 듣고, 고등학교 2학년 수학을 가르칠 필요가 있었다. '허~? 그간 한번도 수학책을 들여다 보지 않았는데~?' 따져보니 그간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내가 배울때와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른 과목도 아니고 수학인데? 싶어서 선뜻 응했는데, 처음 며칠은 용어 등으로 해서 군데군데 막히는 부분이 있었지만, 곧 익숙해 졌으며, 무리없이 가르칠 수 있었으니 말이다. 40년 전의 미적분이, 그간 한번도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음에도, 아직도 어려운 학문이 아니니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하다. 그러나 웬지 아시겠는가? 그것은 바로 임시방편으로 외우지 않고, 이해를 하려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이해를 하여 알아진 사항이기에, 조금만 들여다보면 왜 그렇게 이해를 했는지가 40년의 시간을 넘어서 기억이 되살아 난다면 믿으시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사실인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반면에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특성도 있었다. 무슨 일을 하던지 남보다 잘하려는 것에서 벌어진 에피소드가 얼마든지 있었다. 바둑왕 이창호를 무척 좋아하지만, 내가 바둑을 배웠던 얘기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회사에 처음 입사하여 첫날, 점심시간의 광경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간 학교공부에 바둑을 전혀 몰랐던 나는,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휴게실로 많은 동료들이 몰려들고, 죽~ 늘어선 바둑판을 보면서,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매일 남들이 두는 바둑에 정신을 팔았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몇달을 계속하여 뒤에서 구경을 한 결과가 엉뚱한 곳에서 의외의 형태로 나타났으니 말이다. 하루는 '강 1급'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회사의 바둑반을 맡은 선배가 "내가 그간 멸달을 죽 지켜 보았는데, 바둑반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펄쩍 뛸 소리를 거리낌없이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예~? 저는 바둑을 전혀 못두는데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바둑반을 맡아달라고 하였지, 바둑 두라고는 안하쟎아요~!" "그래도 바둑을 둘줄도 모르는데, 어떻게 바둑반을 맡아요~?" "그냥 시합이나 주관하고, 살림을 꾸려나가면 되는 일이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선배님은 바둑을 잘 두니까 그렇겠지만, 전혀 모르는데 그게 가능 하겠습니까~?" "내가 눈여겨보니까, 하루도 빠지지 않던데, 그 열정이면 충분해요~!" 이렇게 하여 본의아니게 바둑반을 맡았는데, 바둑을 두지 못한다는 사실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아예 이 기회에 바둑을 배우면 될 것 같아서 그 선배를 다시 찾아가 물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바둑을 배우고 싶은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까~?" "그냥 남들 두는 것 보고 배우세요~! 지금 업무가 바빠서 바둑반도 손을 놓았는데, 시간이 없네요~!" "책을 보면 되나요? 추천해 줄 수 있는 책이라도 알려주세요~!" "어떤 책이든지 비슷비슷해요. 아마 1년 정도면 9급은 될 수 있겠죠~!" 배우고는 싶은데, 바쁘다는데 어쩔 수 있겠는가? 그래서 바둑책을 보고 배우기로 결심하고, 그 날부터 바둑책과의 씨름이 시작되었다. 보통 버스를 타고 출근하던 것을 걸어다니기로 하였으며, 출퇴근 시간에는 언제나 내 손에는 바둑책이 들려있었다. (사실 그러다가 차사고 위험이 여러번 있었다. 바둑책만 보고 걸어다녔으니 말이다.) 식사중에도, 화장실에서도 내 주변에는 항상 바둑책이 있었다. 그렇기에, 1년 후에는 내 스스로 3급이라고 남들에게 소개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1년 전에는 전혀 바둑을 모르던 사람임을 잘 아는 회사의 동료들이 내 급수가 엉터리라고 생각했는지 모두들 믿지 않기에, 정식으로 3급으로 시합에 출전하여 준우승을 하고 공식적으로 2급이 된 순간, 동료들의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들을 잊을 수 없다. 사실 회사의 바둑시합은 3개 부문으로 나누어 치루어졌으며, 7급 이하와 4급이하는 따로 시합을 치루었고, 3급 이상은 모든 실력자들이 망라되었기 때문에 진정한 실력이 아니고서는 달성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몰론 당일의 운도 있었겠지만, 회사의 실력자들이 너무나 쟁쟁했었기에 기억에 남는다. 당시에 내가 바둑반을 이끌고 회사대항 시합에 나가면, 언제나 마음이 든든했었다. 1급만 약 40명이 되었는데, 그중에는 국내의 최고수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입사동기였던 친구는 당시 국내의 최고수인 서봉수와 같이 바둑을 배웠던 사람으로 지금은 입신의 경지인 프로9단으로 당시에 우리나라 아마추어 1인자였던 7단의 임선근과 시합하여 반집을 졌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 쟁쟁한 실력자들이 7명이 있었다. 같은 1급끼리도 5점을 깔게 하는 고수급이었으니, 그 실력을 알만 하지 않겠는가? 그런 쟁쟁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그야말로 햇병아리가 일을 낸 것이었으니 말이다. ㅎㅎ 그런데 그 후에 어찌 되었을까? 그만, 더 이상은 바둑에 흥미를 잃었다. 너무 쉽다고 느껴졌으며, 아니, 막상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기에 바둑반을 다른사람에게 인계하고 바둑계를 떠났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가 내 급수를 물으면 2급이라고 말한다. 몇십년동안 바둑을 두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또 다른 얘기로 볼링도 잊을 수 없는 일화가 있다. 나보다는 윗분으로 시간만 나면, 내 후배와 볼링 얘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던 과장님이 있었다. 당시에 국내에 처음으로 볼링이 보급되던 시절이었으며, 누가 먼저인지는 모르지만, 2사람이 볼링 재미에 흠뻑 빠져서 거의 매일 볼링장에 다니면서 실력을 배양하는 재미로 회사생활이 즐겁다고 희희낙락하던 2사람이었다. 워낙 초창기였던 관계로, 주변에는 볼링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에, 그들이 하는 얘기만 들어도 흥미가 있었을 무렵이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냥 서있는 핀을 공으로 치는 일이 결코 어렵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가끔씩 얘기에 끼어들곤 했었는데... 하루는 일과가 끝날 무렵에 제안이 왔다. 나도 이번 기회에 볼링을 같이 쳐보자는 것이었다. 이미 그들은 잘 치는 형편이었기에 선뜻 내키지는 않았지만, '무료로 가르쳐 주겠다'는 꼬임에 빠져서 따라 나섰던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그냥 생각으로는 쉬워 보였는데, 막상 쳐보니 첫 점수가 78인가? 아무튼 형편없는 점수가 나왔고, 2번째 게임에서는 100을 간신히 넘기는 정도였다. 옆에서는 연신, "가르쳐 주는데도, 폼이 너무 엉망"이라는 핀잔이 이어졌으며, 그래서는 볼링을 배우기 힘든다는 둥, 가르쳐주어도 따라하지 못한다는 둥, 원래 운동신경이 없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은근히 부아를 돋우는 얘기로 기분이 상할 무렵에, 2 게임을 쳐보니 만만해 보였는지, "사실 배우려면, 돈을 들여서 배우는 것이다. 우리 시합을 하자~!" "내 실력을 알면서 시합을 하자고 하느냐"는 항의는 아예 처음부터 그들의 안중에도 없었다. 바로 그것이 그들이 처음에 나를 꼬실 때 이미 계획했던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야 볼링을 제대로 배운다는데 어찌하겠는가? 3명중 2명이 미리 계획했던 일이니, 내가 싫으면 그만 집에 가면 되는 일이지만, 그러다가는 윗사람에게 찍힌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동의를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헌데, 시합에 들어가기 전에 그들의 성적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들도 처음에는 170, 160 정도를 치더니, 2번째에는 120, 140 정도의 실력인 것을 생각해서 내가 최소한 130 정도만 치면 술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꼴찌가 모두 내기로 하였으니 말이다. '그래~? 그렇다면 한번 해보자~!!' 첫 프레임을 던지고나자, 또다시 내 폼에 대해서 말들을 하는 것이었다. "가르쳐준 대로 치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 입에서 다른 얘기가 나왔다. "지금 시합하는데, 계속 핀잔 줄꺼야? 일단 시합이니까 지금부터는 아무 말 말아라~!"고 못을 박았던 것이다. 그리고는 그들이 얘기하는 정 반대로 내 마음을 편하게 하는 그런 엉성한 폼으로 치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들 눈에는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킥킥거리고 웃느라고 즐거워들 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덧 시합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땟을 것 같은가? 한사람은 120 언저리, 다른 사람도 140 언저리를 쳤는데, 나는 154를 쳤던 것이다. 결국 내가 1등을 한 셈이다. 120 언저리로 꼴등을 하여 술값을 지불하게 된 동료가 약이 바짝 올랐다. 이번에는 안주내기를 하자고 몰아세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어떻게 그렇게도 엉성하게 춤을 추는데, 그런 성적이 나오냐~?"고 하면서, 다시 시합하면 자기가 이길 자신이 있다면서 막무가네였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시합을 했고, 이번에는 내가 2등을 했기에, 결국 볼링도 공짜로 치고, 술도 푸짐하게 대접을 받는 그야말로 즐거운 날이 되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들이 타도해야 할 목표가 되었으며, 거의 매번 그들이 게임비를 지불하고, 술도 대접해 주는 나날이 이어졌다. 한달 쯤 후에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는지, 며칠동안 둘이서 연습을 하고 잘 맞는다 싶으면, 어김없이 시합을 제안하였으며, 그때마다 승률 9할 정도로 내가 우세했었기에, 6개월쯤 후에는 아예 치러가자는 제안도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이 주축이 되어 새롭게 발족한 회사의 볼링반 조차도 나는 출입금지를 당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한 1년쯤 후에, 제 1회 사내대항 볼링대회가 개최되었다. 그때에는 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그간 열심히 연습들을 한 관계로 그들도 실력이 늘었으며, 그간 나는 전혀 볼링장에 들락거리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여 제안이 왔다. "제 1회 대회이고, 우리들도 그간 실력이 엄청 늘었으니, 시합에 참가하여 우승을 해보라~!" 그야말로 예전 실력은 고사하고, 볼링공을 잡아본 기억도 가물가물 했었지만, 제 1회 시합이라는데 참가하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예전의 기억을 되살릴 연습을 해보니, 워낙 독특한 예전의 그 엉성한 폼이 그대로 되살아나서 그런대로 시합을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두사람을 제외하곤, 모두들 처음 대면하는 얼굴들로 실력들이 어느 정도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지만, 그 두사람만 꺾는다면 무엇인가 좋은 성적을 거둘 것도 같았기에 미리 그들의 실력을 물어보았다. 두사람 모두 평균 180~190을 때린다고 자랑이었다. "허~? 그정도야? 그럼 힘들겠는걸?" 1년 전에 내 최고 성적이 180 언저리였던 것을 기억하고 한 말이다. 하지만(예전부터 그랬었지만), 일단 시합에만 들어가면 집중력을 최대한 발휘하기에, 믿는 구석도 있었다. 오직 정신력으로 한다면 내가 최고라는 생각 말이다. 급기야 1년동안 볼링공을 잡아보지 않은 것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결과에 나도 놀라고 만 것이다. 3게임 평균 194가 나왔으니 말이다. 바로 그 성적이 내 평생의 가장 좋은 성적이었으며, 그 이후에는 시합을 해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결국 제 1회 사내대항 볼링대회는 월등한 성적으로 내가 우승하면서 끝났다. 그리고는 "당신은 볼링반에서 영구 추방이야~! 다른 사람들이 당신하고 시합하면 다들 안하겠데~! 못하는 사람들끼리 그냥 1~2등 하게 제발 볼링장에는 나오지 마~!" 그리곤 이후에 바로 호주로 이민을 갔었기에 벌써 20년이 넘은 얘기이니 말이다. 그때 후배가 한 말이 생각난다. 실력이 어땠거나 나를 이길 수 없었던 이유로, 가장 어려운 스플릿인 7번핀과 10번핀을 잡은 사람을 평생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 일이 있었던 날은 주변에서 볼링을 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들 박수를 쳐주고 놀라워 했었다. 아마 다시 해보라고 하여도 못할테지만, 유난히도 스페어를 잡는 일에는 자신이 있었다. 보통 핀을 10등분하여 내가 원하는 지점으로 때릴 수 있었는데, 그 날은 20등분하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그대로 들어갔기에 가능했었으니 말이다. 볼이 레인을 타고 중간쯤 가는 도중인데, 본대로 들어가는 모양이 흡족하여 약간 큰 소리를 내었고, 뒤에서는 탄성이 들려왔기에 볼링장의 대부분이 스페어를 잡는 광경을 직접 목도하였으니 말이다. 그들 입에서 86 아시안 게임에서 볼링 국가대표로 뛰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으니, 아마도 내가 호주로 이민을 가지 않았다면, 그리 되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또한 옆에서 스트라이크를 잡으면, 어김없이 나도 해내며, 더블이나 트리플을 잡아도 나는 항상 그들보다는 하나 이상 나았기에 초반에 기선을 제압하곤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민을 간 후에도 볼링을 칠 기회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곳에서는 잔디밭에서 하는 것을 볼링이라고 불렀으며 주로 노인들의 게임이었고, 우리나라와 같은 볼링장은 시드니 전체로 단 3군데 밖에 없었기에 거의 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러한 것이 인생인 것처럼 말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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