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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무엇이 진정 옳은 것인가?
우여곡절 끝에 이민 심사관과의 영어 인터뷰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호주의 영주권을 받기는 했지만, 막상 호주에 도착하니 모든 것이 서툴 수밖에 없었다. 어디를 가도 영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렇게 마음을 옥죄었던 것이다. 내가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에는 못하는 영어지만, 상대방이 팔아야 하기 때문인지, 참을성 있게 들어주고 모르는 단어에 머뭇거리기라도 하면, 의사소통을 위하여 상대방이 적극적이었기에, 그럭저럭 대화가 가능했으나, 내가 아쉬운 입장이어서 상대방에게 설명을 해야할 형편이 되면, 여간 고통스러운게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영어학교에 다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바로 취직을 하려 했던 계획을 중단하고 영어를 다시 배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살던 Burwood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인 불법이민자 수용소 근처에 Lightonfield(라이톤필드)라는 곳까지 영어를 배우러 다녔었다. 처음에는 기차를 타고 통학을 하였으나, 길이 멀고, 한국에서처럼 기차가 자주 오는 것도 아니어서, 상당히 불편을 느끼다가 차를 구입하여 운전한 후에는 시간도 단축되고 여러가지로 잇점이 많았다. 하지만 비교적 먼 거리에 있었기에 비록 초보 운전이었지만, 곧 운전에 자신감이 붙게 되었다. 한국에서와 다른 특이한 점도 발견 하였는데, 아침 출근 시간에는 특히 여성 운전자들이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보곤 했는데, 신호대기 시간이면 많은 여성들이 거울을 보면서 화장을 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였다. "에이~ 화장은 집에서 하고 나오지~?"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그것도 자주 보게되니 일종의 문화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나저나 뭔 여자들이 하나같이 다들 예쁜거야~??" 맥주를 너무 좋아한다는 영국 출신의 영어선생은 마치 올챙이와 흡사한 배를 뒤룩거리며, 뛰는 것은 고사하고 뒤뚱거리는 모양새가 걷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40대 후반의 독신 남성이었지만, 열성적으로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는 열성파였다. 매일 직접 교재를 써서 그것을 복사하여 나눠주곤 했으니 말이다. 아마도 세계 각국에서 모여들었을 듯 싶은 사람들로서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러시아, 이란, 이라크, 레바논 등지의 서구형 사람들과 동양인으로는 대부분, 우리나라, 일본, 중국, 베트남, 스리랑카 인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무튼 난생 처음으로 다양한 인종을 만난 셈이다. 첫날 나를 영어학교에 안내해준 같은 회사에 다녔던 선배가 잠시 쉬는 시간에 "여기 와 보니까, 북한사람이 있데~!! 한번 만나볼테야?" 당시만 해도, 북한사람을 만나는 것은 얼핏 간첩을 연상하던 교육 탓에 먼저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한국이 아니라 호주인데 어떠냐는 다그침을 듣고서야 살짝 호기심이 발동하였던 것이다. 만나보기 전까지는 비슷한 나이라는 것이 한가닥 위안이 되기도 했지만, 경계심을 늦출 수는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북한 사람이 호주엘 올 수 있었을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이상한 소식이었던 것이다. '그래~ 그냥 만나보자.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억센 북한 사투리에 간혹 알아듣지 못하는 말도 섞여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친밀감 있게 북한말을 쓰던 그 친구는 사라예보에서 이에리사를 만났었고, 현역을 은퇴한 후로는 북한의 탁구코치를 맡았으며, 외화벌이에 동원되어 이집트에서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하던 중, 영국에 유학중이던 남한 여인을 만나서 인생이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어느날, 유학을 마치고 영국에서 이집트를 거쳐서 귀국하려던 남한의 여인과 쇼핑센터에서 우연히 조우하게 되고, 두사람이 서로 첫눈에 반하여 정치보위부원의 눈을 피해서 데이트를 즐겼으며, 급기야는 그리이스로 잠적할 결심을 해서 실행하는데 걸린 시간이 전부 합하여 3일이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리이스로만 피신하면 마음놓고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그리이스에서 움쩍달싹 못하고 6개월을 숨어 지내면서 제 3국으로 피신하지 않으면 잡힐 것이라는 불안감에 호주로 정치적인 망명을 신청하였는데, 그것이 받아들여져서 북한 사람으로서는 최초로 호주 영주권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얼마나 이에리사의 쾌거에 기분이 좋았었던지, 그 친구가 이에리사를 잘 안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벌써 친구나 다름 없었다. 게다가 나이도 같았으니 영어학교를 다니는 동안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혹시라도 그 친구에게 누를 끼칠것을 우려하여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야~ 넌 참 운이 좋은 녀석이구나~!! 어떻게 북한에서 호주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데~?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를 한 셈이네~!! 아마 앞으로도 북한 사람은 호주에 올 수 없을테니까, 네가 최초이자 마지막이 될꺼다~!! 이젠 마누라 따라서 남한에도 가끔씩 다녀오고~ 그러면 네 인생은 완전히 펴진거네~!!" "너~ 그간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니~!! 이젠 그 힘들었던 순간을 잊어라~!! 그야말로 마음 편히 살게 되었으니 한번 멋지게 살아봐라~!! 너는 탁구를 잘한다니까, 여기서도 국가대표 애들이나 가르치고 하면 살 걱정은 없겠네~!! 너 참, 잘 되었구나~!! 정말 잘 되었다. 우리 계속 친구하자~!!" 내가 그 친구에게 하고싶었던 말은 대충 위에 적은 그런 말들이었다. 외화벌이로 외국에 나가기 위해선 지옥훈련을 거쳐야만 한다는 얘기를 듣고 고생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하였기에, 북한 사람들의 생활상을 한국에서 들었던 내용을 상기하며 나름대로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첫마디부터 어긋났던 것이다. "야~ 내가 미쳤나~? 남조선엘 왜 가는데? 난 안간다~!!" 로 부터 시작하여, 도무지 내가 예전에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다양한 시각을 얘기하는데, 오히려 내가 할 말을 잊게 만드는 것이었다. '어~??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정말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는걸까?' 자주 만나서 여러가지 얘기를 하는 동안, 그 친구가 주장하는 얘기가 전혀 터무니 없는 내용은 아니라는 사실과, 우리가 일방적으로 받았던 교육에도 많은 모순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아~! 내가 아는 것은 단지 어느 한쪽만의 얘기였구나~!!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무슨 생각을 할지 전혀 짐작을 못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지식을 신봉하고 있었구나~!" 여기서 굳이 그 친구가 주장했던 내용을 나열하고 여러분들에게 검증을 받고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내가 북한출신이 아니기에, 그들이 가질 수 있었던 많은 사항에 대하여 도외시하고 있었던 탓에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에 무방비 상태였다는 것만을 말씀드리고 싶을 뿐이다. 이러한 경험은 내가 회사에 취직을 하고 본업인 프로그램을 다루면서도 여지없이 부각되었기에 더욱 기억에 남으며,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서도 자기가 알고있는 사실만이 옳고, 그와 반대되는 다른 사람의 생각은 무조건 틀렸다는 자세는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싶다. 다음의 내용은 지금까지의 얘기와는 다른 사항이지만, 연관이 되기에 적어본다. 그것은 내 본업인 프로그램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워낙 각 부서에서 프로그램 요청이 많았던 터라, 긴급을 요하는 사항이면 거의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머릿속에서 시스템을 설계하고 대충의 프로그램 윤곽을 잡은 후에 바로 프로그램을 짰던 경험이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시스템 설계를 마치고, 프로그램 스펙이 나오기가 무섭게 거의 일주일 이내에 개별 프로그램을 짜기 시작하는 것이다. 때문에 각각의 프로그램 스펙이 형성되면 개별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것은 거의 동시에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이후의 과정을 일일이 여기서 설명해야 하지만, 얘기하고자 하는 골자는 프로그램 스펙과 개별 프로그램의 완성과의 간격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호주에서 내가 처음 받아본 프로그램 스펙은 놀랍게도 1년 전의 프로그램 스펙이었다. 그런데, 내용상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스펙을 만든 사람에게 문의를 했더니, 1년 전의 일이라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한국에서라면 모두 사표를 써야 할것이다. 호주에서는 도무지 일을 하지 않는구나~!!"하고 호주의 업무 방식을 비웃었던 것이다. 무조건 빨리빨리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도대체 어떤 식으로 프로그램 스펙을 만드는 지를 알고 싶어졌으며, 뻔히 눈에 보이는 경우의 수를 가지고도 이리저리 생각을 달리하는 모습을 보고는, 바로 저러한 모습이 쓸데없는 짓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비슷한 일이 주어졌을 때, 본때를 보여주리라 마음먹었는데, 그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신바람 나게 일처리를 하고 완성된 시스템을 상부에 보고하고는 뿌듯한 느낌을 가지려 했는데, 다음날, 시스템이 약간 이상하다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확인한 결과, 아주 간단한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관계로 이상한 결과를 내는 시스템이 되었던 것을 발견하였다. 얼른 실수를 인정하고 수정작업을 마치고는, "내가 비록 실수를 했어도, 너희들이 걸렸던 시간보다 훨씬 빨리 끝냈쟎아~!!" 하면서 자위를 했었다. 오랜 세간이 흘러서, 그럭저럭 다른사람의 시스템도 완성이 되었으며, 아직도 우쭐한 기분에 거들먹거리던 나에게 어느날 연락이 왔다. 오래전에 내가 완성한 시스템에 아주 이상한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며, 자칫 회사에 큰 불이익이 올 수도 있다는 경고를 받았던 것이다. 그것은 일상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일선에서 프로그램을 직접 사용하는 부서에서 우연하게도 여러가지 잘못된 자료를 입력하다가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발견하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니~ 어떤 멍청이가 그런 이상한 자료를 넣는단 말인가? 이건 처음부터 사용자를 멍청이로 취급하고 시스템을 설계하라는 말인데~??"하고 반발심이 먼저 일었었다. 그런데, 상사로부터 "자네는 내가 뻔한 일에도 망설이고 쉽사리 프로그램의 방향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굼뜨다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나는 그런 갖가지 경우의 수를 미리 발견하기 위해서 무척 심혈을 기울이기에 그런 것이라네~!! 자네도 실력이 있다고 자만하지 말고, 내가 하는 방식을 신중하게 따라해야만 이 회사에서 인정을 받을 것이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그리고나서 곰곰히 생각하니, 그들이 만들어낸 작품에서는 비록 오래 걸리기는 하였지만, 한번 만들어 놓으면 거의 수정이 필요없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단지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지레 그들이 실력이 모자라다고 생각했던 그것은, 실제로는 내가 실력이 모자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아까 처음의 얘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한 1년쯤 지난 후에, 그 친구는 아내의 임신으로 처갓집 식구들과 인사를 해야했던 관계로 억지로 한국엘 다녀왔다고 했다. 그래서 대뜸 물었다. "어때~? 자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가기를 잘했다고 생각하지?" 내 딴에는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고 말이다. 그런데, 뭐라 답했는지 짐작하시겠는가~?? "내 다시는 남쪽에 안간다. 마누라한테도 그리 말했다. 처갓집하고 인연 끊고 살으라고 말이다. 모두들 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만 하니~!!~~~" "허~!?? 그랬는가~??" 뚜껑을 열고보니, 그의 주장이 옳았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알고있는 것만이 옳다는 생각으로는 천국은 요원하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과연 어디에서 천국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그것을 찾기 위한 나의 여정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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