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돌아보는 길 위에서/이해인
우리가 가장 믿어야 할 이들의
무책임과 불성실과 끝없는 욕심으로
집이 무너지고 마음마저 무너져 슬펐던 한 해
희망을 키우지 못 해
더욱 괴로웠던 한 해였습니다
마지막 잎새 한 장 달려 있는
창 밖의 겨울나무를 바라보듯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의 달력을 바라보는 제 마음엔
초조하고 불안한 그림자가 덮쳐옵니다
연초에 세웠던 계획은 실천했나요?
사랑과 기도의 삶은 뿌리를 내렸나요?
감사를 잊고 살진 않았나요?
달력 위의 숫자들이 눈을 크게 뜨고
담담히 던져 오는 물음에
선뜻 대답을 못해 망설이는 저를
누구보다 잘알고 계시는 주님
하루의 끝과 한 해의 끝이 되면
더욱 크게 드러나는
저의 허물과 약점을 받아들이고
반복되는 실수를후회하는 일도
이젠 부끄럽다 못해 슬퍼만지는
저의 마음도 헤아려 주십니까?
정성과 사랑을 다해
제가 돌보아야할 가족, 친지, 이웃을
저의 무관심으로 밀어낸 적이 많았습니다
다른 이를 이해하고 참아 주며
마음을 넓혀 가려는 노력조차
너무 추상적이고 미지근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웃과의 잘못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도전과 아픔이 두려워
바쁜 일이나더짓된 평화 속으로
자주 숨어 버린 겁쟁이였음을 용서하십시오
남에겐 좋은 말도 많이 하고
더러는 좋은 일도 했지만
좀더 깊고 맑게
자신을 갈고 닦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한 위선자였음을 용서하십시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보배'라고
늘상 되뇌이면서도
새롭게 주어지는 시간의 구슬들을
제대로 꿰지 못해 녹슬게 했습니다
바쁜 것을 핑계로
일상의 기쁨들을 놓치고 살며
우울한 늪으로 빠져들어
주위의 사람들까지 우울하게 했습니다
아직 비워내지 못한마음과
낮아지지 못한 마음으로
혼자서도 얼굴을 붉히는 제게
조금만 더 용기를 주십시오
다시 시작할 지혜를 주십시오
한 해를 돌아보는 길 위에서
저녁놀을 바라보는 겸허함으로
오늘은 더 깊이 눈감게 해주십시오
더 밝게 눈 뜨기위해...
http://kr.blog.yahoo.com/wyd31kr/trackback/30/2285
네 가지를 인정하면 인생살이가 한결 수월하다
첫째,
제행무상(諸行無常)-
태어나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
형태있는 것은 반드시 소멸한다.
나도 꼭 죽는다' 라고 인정하고 세상을 살아라.
죽음을 감지하는 속도는 나이별로 다르다고 한다.
청년에게 죽음을 설파 한들...자기일 아니라고 팔짱을 끼지만
노인에게 죽음은 버스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림과 같나니
하늘. 부모. 남편. 아내라 할지라도
그 길을 막아주지 못하고, 대신 가지 못하고, 함께 가지 못한다.
하루 하루, 촌음(寸陰)을 아끼고 후회없는 삶을 사는 것이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외길(오직 한 길)이다.
둘째,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면 헤어짐이 세상사 법칙이요 진리이다.
사랑하는 사람. 일가친척. 남편. 부인. 자식. 명예. 부귀영화...
영원히 움켜쥐고 싶지만..하나 둘 모두 내 곁을 떠나간다.
인생살이가 쉼 없는 연속적인 흐름인 줄 알아야 한다.
끄달리고 집착하고 놓고 싶지 않는 그 마음이
바로 괴로움의 원인이며 만병의 시작이니,
마음을 새털같이 가볍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세째,
원증회고(怨憎會苦)
미운 사람, 싫은 것, 바라지 않는 일.. 반드시 만나게 된다.
원수. 가해자. 아픔을 준 사람. 꼴도 보기 싫은
사람도 만나게 되며,가난. 불행. 병고. 이별. 죽음...등
내가 피하고 싶은 것들이 나를 찾아온다.
세상은 돈다..빙글빙글...주기적 싸이클...
나도 자연의 일부인 만큼 싸이클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이를 '라이프싸이클(life cycle)'이라한다.
현명하고 지혜롭고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은 능히 헤쳐 나가지만
우둔하고 어리석고 매사에 소극적인 사람은 그 파도에 휩쓸리나니
늘 마음을 비우고 베풀며 살라.
네째,
구득불고(求得不苦)
구하고자..얻고자..성공하고자..행복하고자..하지만
세상 살이가 그렇게 만만치 않다.
내가 마음 먹은대로 다 이루어지면 고통도 없고 좋으련만
모든 것은 유한적인데 비해 사람 욕심은 무한대이므로
아무리 퍼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와 같다.
그러므로 욕심덩이 가득한 마음을 조금 비워야 한다.
자꾸 털어내고 가볍게 할때..
만족감..행복감..즐거움이 그를 따른다.
마치 형체를 따르는 그림자와 같이...
http://kr.blog.yahoo.com/wyd31kr/trackback/30/2280
댓글쓰기
댓글쓰기 입력폼
댓글을 입력하시려면, 로그인을 하셔야 합니다. 여기를 눌러 먼저 로그인을 해 주세요.
☆ 삶에 즐거움을 주는 좋은 글 ☆
삶에 즐거움을 주는 좋은 글
가장 현명한 사람은,
늘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고,
가장 겸손한 사람은,
개구리가 되어서도 올챙이적
시절을 잊지 않는 사람이다.
가장 넉넉한 사람은,
자기한테 주어진 몫에 대하여
불평불만이 없는 사람이다.
가장 강한 사람은,
타오르는 욕망을 스스로
자제할 수 있는 사람이며,
가장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하여
감사하는 사람이고,
가장 존경 받는 부자는,
적시적소에 돈을
쓸 줄 아는 사람이다.
가장 건강한 사람은,
늘 웃는 사람이며,
가장 인간성이 좋은 사람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가장 좋은 스승은,
제자에게 자신이 가진 지식을
아낌없이 주는 사람이고,
가장 훌륭한 자식은,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사람이다.
가장 현명한 사람은,
놀 때는 세상 모든 것을 잊고 놀며,
일 할 때는 오로지
일에만 전념하는 사람이다.
가장 좋은 인격은,
자기 자신을 알고
겸손하게 처신하는 사람이고,
가장 부지런한 사람은,
늘 일하는 사람이며,
가장 훌륭한 삶을 산 사람은,
살아 있을 때보다 죽었을 때
이름이 빛나는 사람이다.
옮긴글
http://kr.blog.yahoo.com/wyd31kr/trackback/30/2185
댓글쓰기
댓글쓰기 입력폼
댓글을 입력하시려면, 로그인을 하셔야 합니다. 여기를 눌러 먼저 로그인을 해 주세요.
*** 이편지는 육사 김충배 교장이 육사
학생들에게 전하는 편지임 ***
우리 대한민국의 장래를 짊어질
개혁과 신진의 주체, 젊은이 들이여!
여러분들은 5,60대가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대들은 조국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땀과 눈물을 흘렸는가?
지금 여러분들이 누리는 풍요로움
뒤에는 지난날 5,60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5.16혁명 직후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
또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그 때 미국은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에프 케네디,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을 찾았지만
케네디는 끝내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 돌아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된 공산국 동독과
대치한 서독에 돈을 빌리려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를 무릅쓰고
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당시 우리는 서독이 필요로 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고졸 출신 파독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4만6천이 몰렸다.
그들 중에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다.
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 봐
까만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을 만들어 면접에 합격했다.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 온
김포공항에는 간호사와 광부들의 가족,
친척들이 흘리는 눈물로
바다가 되어 있었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병들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콜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닦았다.
하루종일 닦고 또 닦았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 이상의
깊은 땅 속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 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에 비해
열 몇 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석탄 캐는 광부 일을 했다.
서독 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와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 할 수 있을까?" 해서 부쳐진 별명이
'코리안 엔젤'이라고 불리었다.
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 대통령이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
항공사와 전세기 계약을 체결했지만
쿠데타군에게 비행기를 빌려 줄 수
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그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그러나 서독정부는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다.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을
거리에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
코리안 광부 만세!
코리안 엔젤 만세!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박 대통령은
창 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땡큐! 땡큐! 만을 반복해서 외쳤다.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
탄광에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500 여명이 들어 갈 수 있는
강당에 모여들었다.
박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강당에 들어갔을 때
작업복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에 앞서
우리나라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
이들은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조차 없었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땅속 1000 미터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가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제 나라 광부들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 합시다.
열심히 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 대통령은 계속 일하자는
이 말을 반복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이역만리 타국 땅
수 천 미터 지하에 내려가
힘들게 고생하는 남자 광부들과
굳어버린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힘든 병원일 하고 있는 어린 여자 간호사들.
그리고, 고국에서 배곯고 있는
가난한 내 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해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란 귀한 신분도 잊은 채...
소리내어 눈물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 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 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
내 자식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
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 주세요.
우리 대통령님을 도와 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쳐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광부들이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붙잡고
"우릴 두고 어디가세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
부모님이 보고싶어요"
하며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 여사를 놓아 줄 줄을 몰랐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 탄
박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 주겠습니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주세요"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유엔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
당시 필리핀 국민소득 170불,
태국 220불 등...
이때, 한국은 76불이었다.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만 있었다.
세계 120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 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이였다.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이 100달러를 위해
단군 할아버지부터
무려 4,60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이후 그대들이 말하는 이른바
우리 보수 수구세력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 파세요!"
하며 길게 땋아 늘인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 드신 분들은
서울간 아들놈 학비 보태주려
머리카락을 잘랐고,
먹고 살 쌀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곰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렸다.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 것은 무엇이던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저 거지들이 1억 달러를 수출 해?"
하며 '한강의 기적'이라고
전 세계가 경이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조국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여기에 월남전 파병은
우리 경제 회생의 기폭제가 되었다.
참전용사들의 전후 수당 일부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한반도에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됐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우리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국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대들이 수구 보수세력으로 폄훼 하는
그 때 그 광부와 간호사들, 월남전 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명심할 것은
그 때 이방인의 시신을 닦든 간호사와
수 천 미터 지하 탄광에서 땀흘리며 일한 우리의 광부, 목숨을 담보로 이국전선에서 피를 흘리는 우리 국군장병, 작열하는 사막의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한 5,60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그대들 젊은 세대들이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반전과 평화데모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와 교통질서를 마비시키는 그대들이 과연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를 수구세력으로 폄훼 할 자격이 있는가... 그대들이 그때 땀흘리며 일한 오늘의 5,60대들을 보수 수구세력으로 폄훼 하기에 앞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라.
국가경영을 세계와 미래라는 큰 틀 전체로 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보다 낳은 내일의 삶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즐겨 참고 견뎌 국민소득 4만불대의 고지 달성 때까지는 우리들 신,구 세대는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이제 갈라져 반목하고 갈등하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이제 우리 모두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며 같은 뿌리에 난 상생의 관계임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뭉쳐보자. 우리 모두 선배를, 원로를,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르며, 우리 모두 후배들을 격려하고, 베풀고, 이해 해주면서 함께 가보자.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에 더욱 밝은 빛이 비추어 지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