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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情과 物 修身이란 情을 다듬는 일입니다(情無不中). 따라서 情은 修身의 재료입니다. 情이 있어야 修身이 가능한 것입니다. 다듬을 情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物은 어떤 다른 物에 감응을 하면 소리가 나기도 하고 빛이 나기도 하고 열이 나기도 하고 모양이 변하기도 합니다. 수면은 가랑잎, 조약돌 등에 접촉을 하여 접촉한 物(의 모양과 힘)에 상응하는 물결을 일으킵니다. 사람의 마음이라고 무언가 발한다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나 아닌 무엇이 내 마음에 던져질 때 내 마음엔 마음결, 情이 입니다.
8.1.物我(물아) 이 경우 物은 나 아닌 모든 것입니다. 物 없이 情 없고(無物無情무물무정), 情 없이 修身 없습니다. 8.2.人物(인물) 人이라는 글자를 物과 상대케 하면 그 物은 사람을 제외한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情은 物에 닿았을 때도 발하고, 人에 닿았을 때도 발합니다. 그런데 이 둘에 닿아서 발한 情의 가치는 人에 대하여 발한 情이 가치가 있습니다. 人에 대하여 발한 情을 닦으면 그 행위가 바로 사람을 살리는 일일 수 있습니다. 고양이 사랑하는 情을 다듬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人에 대하여 발한 情은 가치가 있습니다. 齊宣王(제선왕): 덕이 어떠해야 왕천하할 수 있겠습니까. 맹자: 백성들을 사랑으로 보살핀다면 왕천하하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齊宣王: 과인 같은 사람도 백성을 사랑으로 보살필 수 있겠습니까. 맹자: 물론입니다. 齊宣王: 어떻게 그것을 압니까. 맹자: 胡흘(호흘)에게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왕께서 堂上(당상)에 앉아 계셨고 그 때 소를 끌고 堂下(당하)를 지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소는 왜 끌고 가는 거냐」 「흔鍾(흔종)하려고 그럽니다.」 「놓아주어라. 겁에 질려 사지로 가는 것을 차마 못 보겠다.」 「그렇다면 흔鍾의 예를 하지 말까요.」 「어찌 안 할 수야 있겠느냐. 염소로 바꾸어 하면 되지 않겠느냐.」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齊宣王: 그렇소 만. 맹자 : 이런 마음이라면 왕천하하실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모두 왕이 구두쇠라고 생각하겠지만, 臣은 왕의 不忍之心(불인지심)을 진실로 압니다. 齊宣王: 그건 사실입니다. 백성들은 나를 구두쇠라고 합니다만 齊나라가 비록 작기로 내 어찌 소 한 마리를 아끼겠습니까. 말씀하신 바와 같이 죄없이 겁에 질려 사지로 가는 모습을 차마 못 보겠기에 염소로 바꾸라고 하였습니다. 맹자 : 백성들의 말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작은 것과 큰 것을 바꾸셨으니 백성들이 어찌 왕의 내심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이런 것입니다. 왕께서 죄없이 사지로 끌려가는 소를 측은히 여기셨다면 염소인들 아니 그러하셨겠습니까. 齊宣王: (빙그레 웃으며) 아하. 그거 참 무슨 마음일까요. 재물이 아까워 염소로 바꾸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백성들이 나를 구두쇠라고 하는 것도 당연하겠습니다. 맹자: 백성들의 말에 마음 쓰실 것은 없습니다. 왕께서 하신 행위는 바로 어진 마음을 닦는 기술입니다...... 나의 집 어른을 공경하여 남의 집 어른공경으로 나아가고, 나의 집 어린이를 사랑하여 남의 집 어린이 사랑으로 나아간다면, 천하는 손바닥 위에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詩經(시경)에 이르기를, 「아내의 모범이 되어 형제의 모범이 되고, 그렇게 하여 나라를 다스린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이 마음을 들어 남에게 적용할 뿐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미루어 나아가면 四海(사해)를 사랑으로 지킬 수 있고, 은혜를 미루어 나아가지 못하면 처자식도 지킬 수 없는 법입니다. 옛사람들이 크게 뛰어났던 것은 다름이 아니라 자기가 할 일을 잘 미루어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왕의 은혜는 禽獸(금수)에게는 족히 미치면서도 정치하는 功(공)이 백성에게 이르지 않는 것은 어찌 된 일입니까. 무게를 단 연후에야 경중을 알며, 자로 잰 연후에야 길이를 아는 법. 物치고 안 그런 것이 없겠으나, 마음이란 물건은 다른 것보다 달고 재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러니 왕께서는 왕의 마음을 잘 헤아리십시오. - 『맹자』 「양혜왕 下」 제7장 -
겁에 질려 사지로 끌려가는 소를 본 제선왕의 마음에는 측은한 물결이 입니다. 그래서 소를 놓아주라고 하지요. 이는 소와의 관계에서 발한 情을 다듬은(잘 다듬었건 못 다듬었건 상관없이) 行입니다. 죄 없는 소를 보고 발한 측은한 마음과 죄 없는 백성을 보고 발한 측은한 情을 비교할 때, 情의 가치는 백성과의 관계에서 발한 情이 월등히 귀하다고 할 것입니다. 백성에 대한 情은 임금으로서 修身하는 데 가장 직접적인 최고급의 재료입니다. 재료가 좋으면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의 하나는 마련된 것이지요. 修身 본연의 목표를 위해서는 좋은 재료의 공급처 즉 사람과의 관계가 필수입니다. 소(소는 人에 대하여 物임)와의 관계에서 발한 情을 닦는 행위는 미루어 나아가야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한 情은 미루고 말고 할 것 없이 닦기만 하면 그냥 살과 피가 됩니다. 죄 없는 백성을 불쌍히 여기면 그것이 곧 백성 한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가정을 구하는 일이 됩니다. 소를 살려 준 공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사람과의 情, 거기에, 닦는 까닭이 있기에 그 情이 귀하고, 그 情을 내는, 사람 사람과의 관계는 귀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物中의 物은 사람입니다.
8.3.사람 중의 사람들-군신 부자 부부 장유 붕우 제대로 실천도 안되고, 정신적 시달림을 달고 다니며, 情을 닦는데 혼란을 주는 게 있습니다. 바로 겸애설입니다. 길가는 사람과 부모를 똑 같이 사랑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뿐이 없는 겸애. 실현 불가능입니다(인정에 어긋나고 현실의 능력에 부칩니다). 그런데도 불가능인 것이지만 마음을 혼란케 합니다. 그럴듯하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현혹되기도 합니다. 따르자니 갈등이 쌓입니다. 8.3.1.愛無差等(애무차등) 墨翟(묵적) 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墨者(묵자)라고 부릅니다. 墨者들은 愛無差等(애무차등)을 주장한다고 합니다. 愛無差等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데에는 길가는 사람이나 부모 형제 가릴 것 없이 똑같이 사랑한다는 말로 보이며, 兼愛의 다른 표현으로 보입니다. 兼愛는 別愛와 대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兼은 「상호간의 친소를 구별하지 않고 똑같이」라는 의미에서 同(동)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墨子는 세상 혼란의 원인을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 不相愛(불상애)에서 찾습니다. 따라서 혼란의 해결책은 兼相愛(겸상애), 兼愛 「똑같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뜻은 훌륭하지 않다고 할 수 없겠지만, 논리는 공허합니다. 愛는 空이 아니라 實입니다. 빈손 빈 몸으로는 愛를 실천, 표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질(몸을 포함하여)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無物不成(무물불성) 또는 無物不誠(무물불성)이거든요. 내 부모 형제 처자에게 받칠 물질을 위해서 평생 노력해도 남음이 없는 것이 대개의 인생인데, 어떻게 남의 부모형제에게 똑같이 물질을 받칠 수 있겠습니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몸뚱이와 물질-재화의 제약 때문에, 兼愛를 할 능력이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兼愛를 주창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兼惡(겸오. 똑같이 미워하기) 또는 不愛를 조장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말로 제사를 지내기로 한다면 온 동네가 다 먹고도 남을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면 온 천하도 사랑하지 못할 것이 없을 겁니다.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어찌 사랑이라고 하겠습니까. 사랑한다고 하면 物이 없을 수 없습니다. 바칠 몸은 하나인데, 바칠 데는 억만인 데서 순서가 생기는 것입니다. 결정할 것이 생기는 것이지요. 먼저할 데가 있고 나중할 데가 있는 것입니다(知所先後則近道矣지소선후즉근도의. 경1장). 「먼저하고 나중할 바를 알면 道에 가까우리라」. 따라서 愛無差等은 非道(비도), 즉 道 아닌 道, 道처럼 보이는 道입니다. 묵자의 겸애론에 「도둑이 제 집만 사랑하고 다른 집을 사랑하지 않아서 남의 집을 털고, 제 몸만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지 않아서 남을 해쳐 자신을 이롭게 한다. 왜 그런가. 不相愛에 원인이 있다」고 합니다. 태학적인 차원에서 이 말을 해설해 보겠습니다. 도둑이 제 집 부하게 만들려고 남의 집을 터는 것과, 나쁜 놈이 저 이롭자고 남 해치는 것은 각각 제 집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제 몸을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욕이며, 사욕에 사로 잡혀 마음에 인 물결, 情이 절도에 맞지 않은 경우이며, 마음에 인 물결, 情을 제대로 다듬어 내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身不修). 묵자가 말하는 兼愛의 愛와 別愛의 愛는 글자는 같아도 내용은 다릅니다. 兼愛의 愛는 천리-正理정리로 한 말이고, 別愛의 愛는 사욕일 뿐이지요. 사랑이 아닙니다. 묵자의 兼愛론의 兼愛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단어로 유가에는 汎愛범애가 있습니다. 널리 사랑한다는 뜻이지요. 사랑의 국면을 크게 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이 크기는 저마다의 능력에 따라 다를 것이고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司馬牛(사마우): (걱정하기를), 사람들은 모두 형제가 있어 우애를 나누는 데 나는 그럴 형제가 없구나. 子夏(자하): 내가 듣자하니,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명에 달렸고 부귀는 在天(재천)이라 하더라. 군자가 안으로 마음을 공경되게 하고, 밖으로 처신을 공손 되게 하여 예를 갖춘다면, 四海之內(사해지내)의 사람들이 모두 형제일텐데, 그대는 군자로서 어찌 형제 없는 것을 걱정하는가. - 『논어』 「안연」 제5장 - 四海同胞(사해동포). 이런 말을 한 子夏이지만, 자신의 부모상에서도 거뜬하던 눈이 자식의 상을 당하여서는 슬픔이 지나쳐 실명을 했다고 하는 기록으로 자하는 만세의 비웃음을 산다고 합니다. 子夏가, 이웃이 자식 잃은 것을 보지 못하였다고 할 수 없을 터인데, 유독 자기의 자식을 잃고 슬픔이 과하여 실명까지 하였습니다. 내 자식 사랑하듯 남의 자식을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이고, 다만 내 자식 사랑을 미루어 나아가는 것이 가능할 뿐입니다. 능력만큼. 물론 능력도 키워야 하겠지만. 凡愛衆이니까요. 親親仁民, 仁民愛物(친친인민 인민애물 : 부모 사랑하기, 남사랑하기, 사람 아닌 것 사랑하기가 사랑의 중요도로 나열한 순서입니다).
8.3.2.오륜 없이 修身 없다 f(부모)=孝 f(남의 부모)=敬 사람을 구체화한 표현이 오륜이며 오륜의 사람은 사람 중의 사람입니다. 이 다섯 관계 가운데 결하는 것이 많을수록 인생의 행복(마음 닦는 일)에 장애가 커집니다. 오륜 없이 情 없고 그 情 없이 修身 없습니다. 오륜을 떠나, 무슨 情을 닦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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