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할 것도 거창할 것도 숭고할 것도 없는 단순한 이야기에 멜로드라마가 개입하고, 시대적 배경과 도시개발의 성공적 모델로 알려진 파주라는 공간이 뒤엉키면서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가는 영화 <파주>에서, 나는 운동권 지식인의 잔상, 즉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시대의 흔적을 보았다.
수배를 피해 숨어들어간 선배의 집과 형의 교회를 거친 중식은 결혼을 통해 그녀의 집으로 들어간다. 주거불명에서 주거확실한 자로의 편입. 시국사범에서 공부방 선생을 거쳐 철대위주동자로의 위상변화. 세 명의 여자가 그와 관계했고 그를 기억하거나 사랑했으며 그에게서 떠나간다. 적어도 시작은 그렇게 보였다. 그런 그가 보험사기로 구속이 되다니. 뭔가 이상했다. 조국통일을 위해 청춘을 불사른 정치범에서 졸지에 보험금에 눈먼 잡범으로 추락한 것이다. 노무현과 김대중이라는 386의 버팀목이 사라진 시대에, 개발독재시대의 신화적 기업가가 대통령이 된 시대에, 박찬옥은 안개 자욱한 파주에서 길을 잃은 중식의 행로를 통해 여전히 정주하는 공간이 아닌 심리적 은신처를 갈망하며 존재증명에 골몰하고자 발버둥치는 운동권지식인들의 초상을 노정한다.
박찬옥이 <파주>에서 내세운 중식은 자유로운 영혼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는 철저한 은둔자인 동시에 주거지의 안온함과 불안을 동시에 안고 살아갈 운명을 타고 난 인물로 보인다. 그는 거리에서 외치는 법이 없다.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며 벌이는 투쟁이 아닌 자신의 거점을 확보한 후 그곳을 발판 삼아 일을 도모하는 전형적인 파르티잔이다. 공간을 벗어날 수 없는 자, 거리에 설 수 없는 자, 그러니까 자기 공간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려는 인물이 중식이다(그는 도로에서 커피를 팔 때도 천막 밖으로 나와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다). 수배시절의 불안과 조심성이 몸에 밴 탓인지 몰라도, 어떻게 해서든 공간을 확보하려는 그의 생존법은 은수와의 결혼으로 이어지고 처제 은모의 연정을 싹틔우도록 기능한다. 중식의 이야기를 은모의 시점으로 볼 수밖에 이유가 여기 있다.
중식은 ‘사진 한 장으로 구원 받은 자’이다(섹스의 열락에 빠진 사이 죽은 아이에 대한 부부의 죄책감이 빚어낸 지옥도, 라스 폰 트리에의 <안티 크라이스트>를 보면 이해가 쉽다). 선배가 내민 아이의 사진을 보고는 안도감 섞인 울음을 토해내는 자. 그러고도 첫사랑을 은신처제공자 정도로 이야기하는 자, 솔직함을 가장한 교만이 몸에 배어있는 자가 중식이다. 온전히 몸을 던져 싸우지도 못하고 앞에서 주동하되 끝까지 책임지지도 못하고 자기사람을 지켜내지도 목숨 바쳐 사랑할 자신도 없는 그에게 (자신이 점거한) 파주로 돌아온 처제는 가장 쉬우면서도 무서운 상대였다. 따라서 그는 “언니를 사랑했다”고 말했어야 했다. 지식인의 몰락을 부채질하는 것은 자신만이 정당하고 합리적이라고 믿는 순간, 모든 사람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달콤한 착각에 빠지는 순간, 이념과 이상의 틀 속에 현실이 침투하며 균열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식은 욕심을 부리면서 처제에게 가탁(假託)하고자 한다. 속칭 ‘남성지식인’이라 불리는 자들이 사랑과 여성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가를 잘 보여주는, “한 번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라는 차라리 백기투항에 가까운 허망한 자백. 인물심리를 정밀하게 묘사하는 박찬옥의 빼어남이 여기에 있다(<질투는 나의 힘>의 마지막에서 편집장 한윤식을 도무지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이원상의 선택. 박성연은 애초부터 그것을 간파하고 있지 않던가). 박찬옥식 사유의 대미를 장식하는 지점, “내가 같이 있어봐서 아는데...은모는 모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마지막까지 그를 움켜쥔 자만심이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공개적 반성 없이 입으로만 “용서해주세요”를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속삭이는데 익숙한 자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의 재확인이다.
“왜 이런 일을 하는지”에 대한 확신마저 사라진 한 남자가 끝내 놓고 싶지 않았던 것은 누군가의 사랑과 그늘이었다. 그것이 중식의 시대착오적 패착이다. 그리하여 중식에게 새겨지는 가장 더러운 인장. 즉 ‘사랑하지 못했던’ 아내의 집에서 ‘아무 것도 아닌’ 첫사랑과 함께 일을 도모하던 자에게 씌워진 ‘보험 사기범’이라는 불명예다. 조국통일과 정의와 평등을 부르짖던 운동권지식인에게 이보다 가혹한 형벌이 있을까? 사랑 없는 이념과 대의는 이토록 허약하고 속절없다. <파주>는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를 살아온 감독의 자기성찰이자, 아직도 스스로의 감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지식인 앞으로 배달된 고해성사표이기도 하다.
"이선균에게는 특별히 어떤 영화를 보라고 한 건 없고 철거민이나 당시 학생운동을 그린 다큐멘터리들을 보라고 권했다. 서우의 경우도 딱히 어떤 영화의 어떤 느낌이라고 말한 건 없고, 영화에서 절친한 친구인 미애랑 계속 친하게 어울려 지내니까 <메이드 인 홍콩>(1997) 같은 영화에서 친구들이 어울리는 방식이 참조가 될 거란 얘기는 했다. 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친구들끼리 우정을 나누고 서로 살갑게 의지하는 그런 모습, 그렇게 현실을 이겨내는 힘 같은 것 말이다. 두 배우 모두에게 멜로영화를 추천한 건 없다"- 박찬옥, 씨네21과의 인터뷰 중
확실히 내 느낌이 맞았다. 매체에서 반복되는 '안개에 휩싸인 미스테리한 멜로'의 느낌은 영화를 둘러싸고 있는 일종의 신비주의 전략이다. 박찬옥이 회화를 그렸다고, 멜로의 장르에 더 깊이 천착했다고 하는 평은 황폐한 공간의 프레임에 갇힌 채 안개에 휩싸이자 밀려오는 착각이다. 인터뷰 기사도 한 두 건에 그칠 정도로 박찬옥은 설명(감독의 변)을 꺼린다. 그의 영화처럼 극도로 내밀하다. 이러한 태도는 이 영화의 홍보에 대해 (거의 낚였다는 수준으로) 불만을 표출한 꽤 많은 관객들에게 오히려 아무 것도 변명하지 않는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듯 하다. 이 영화가 일반개봉을 통해 베일을 벗자, 확실한 것 하나는 봉준호식 카테고리가 박찬욱식의 이미지로 덧칠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살인의 추억과 괴물이 박쥐로 홍보되어 있었다고 말하면 지나친가. 봉준호의 박해일이 과장된 유머를 버리고 박광수의 문성근과 그 어느 지점쯤에서 만난 것으로 느껴지는 이선균이 마치 밀양이나 박쥐에서의 송강호처럼 홍보된 것은 개봉을 위한 불가피한 전략이었나. 그렇다면 이 영화는 영리한 멜로 드라마라고 말해도 흠될 것은 없다. 하지만 그 흠될 것이 없는 일은 매체들과 평자들을 통해 어느정도 이야기 된 것 같다. (하지만 아직 충분친 않아보인다. 개봉관에서 곧 사라질 듯 한데 직무유기아닌가 싶다. 이 영화는 2009년에 개봉한(개봉이 가능했던) 한국영화들 중 단연코 특별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내게 <파주>는 오히려 이 감독의 진작의 데뷔작 같았다. 더 잘 짜인 느낌이 아니라 부러 헐거워진 느낌이다. 7년 전과 3년 전과 현재의 서사를 느슨하게 엮은 듯한 영화의 구조는 오프닝에서 도로의 안내판을 통해 아래서 위로 슥 보여주고 마는 무심한 영화 제목의 등장과 맞물려 영화적 인과가 아닌 풍경의 재현에 치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처음 보는 듯한 낯선 이미지들은 혼란스러웠던 80년대에 태어나(그 시절을 모르고) 2009년 현재 성인이 된 젊은 청춘들의 눈을 통해 보는 세상의 풍경일 것이다. 이처럼 <파주>는 <질투는 나의 힘>보다 훨씬 비상업적이며 반드라마적일 뿐 아니라 심지어 80년대로 회귀한 것 같은, 그 시기의 독립 영화들의 사회 다큐멘터리적인 풍경를 담고 있다. 박찬옥은 자신의 영화의 궤도를 막 들어선 90년대로 돌려와 <파업전야>(1990)나 <그들도 우리처럼>(1990) 같은 사회 드라마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듯하다. 물론 이는 당연히 이명박 정권하의 시대가 그 시절로 역행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풍경의 유사함(전투경찰과 화염병과 최루탄의 재등장)만으로 이 영화가 탄생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영화는 운동권이 곧 주류였던 386세대들의 현재, 여전히 정권에 맞서 제도권 밖에서 투쟁하는 모습을 정면에 보여준다. 사회주의 학생운동은 개발을 거부하는 철거민 대책회의로, 야학은 공부방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하지만 데모의 주동자로서 늘 수배령에 쫓기는 신세인 이선균을 주로 하여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정서는 실패한 혁명에 대한 좌절감 혹은 죄의식이다. 이선균이 결혼한 운동권 선배(김보경)와 사랑을 나눌 때 아이가 죽어버리고, 파주로 들어와 밤에 떠도는 빨간 옷의 여인(향숙을 연상시키는, 심이영)과 결혼을 하지만 그녀는 원인모를 가스폭발로 사망한다. 이 사고사들은 우연적인 것이었으면서도 그 날, 그 때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이선균에게 큰 죄의식을 남긴다. 영화엔 운동권 스스로의 나르시시즘이 엿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퇴행적인 정서가 아니다. 그들은 현 시대를 향해 자신을 투영하려 한다. 현재의 탈이데올로기의 시선을 계몽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 서보려 한다. <그들도 우리처럼>이 아니라,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질문한다. 어떠한 평가를 조용히 기다리는 것처럼 그들은 다소 위축되어있거나 비관적이다.
철거촌에서 벌어지는 데모의 풍경, 특히 전경이 포크레인으로 이 마지막 레지스탕스들의 거처를 내려찍는 장면같은 것은 멀티플렉스에서 보는 상업영화란 환경적 틀에 전혀 걸맞지 않는 전율을 안긴다. 이 전율은 체험으로서의 스펙터클이 아니라 사회적 사실주의의 일환이다. 하지만 멜로의 정서로 시대를 재현하려는 이 영화는 오히려 80년대를 재현할 때 할 말을 하지 못한 채 거리를 방황했던, 검열과 편집으로 대중친화적 멜로 드라마만이 남아 우리를 더 공허하게 했던 7-80년대 영화들에서 보였던 절망적 슬픔이 다른 풍경으로서 전달되기도 한다. 박찬옥은 이러한 사회에 대한 정치적 위기감을 파주, 남한의 최전선 즉 휴전선의 횡단영역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그곳을 마치 마지막 저항의 집결지처럼 묘사한 후 온통 안개로 둘러싼다. 하지만 그 누가 이 안개를 욕망에 갇힌 멜로의 불안한 정서라 운운하고 말 것인가. 비유에 비유되어 갇히는 수많은 우리의 눈들, 대중영화를 보는 우리의 뻔한 눈들은 더 이상 시선이 아니며 모험도 없다. 과거의 정치, 역사를 재현하는 문제를 사유하지 않고 어떠한 확언도 어렵다는 듯 풍경의 정서에 취하며 접어버리는 것은 그 시절의 공식적 영화화를 어떤 식으로든 꺼려하거나 두려워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러니까 <파주>의 '안개'는 물질이냐 정신이냐를 두고 벌어지는 내면의 심리적 문제, 실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입지의 문제. 즉 그것은 모호한 사랑의 분위기인가 80년대의 최루탄 연기인가를 우리에게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의 멜로가 전혀 부유하는 안개처럼 대중적 장치로서 멈추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사회적 투쟁을 둘러싸고 있는, 참여하면서도 관찰하고 있는 서우의 불확실한 시선, 그런 그녀와의 멜로가 이선균의 원죄의식에 관련하여 작용되는 은유의 지점이 중요해진다. 우선, 이선균에게 멜로는 김보경에서 실패의 정서로, 심이영에서 죄의식의 정서로 고착되었다가 제 3의 시선인 서우의 앞에서 아주 느리게 서서히 회유한다. 이 불명확해보이는 감정은 영화의 마지막, 서우의 숙소에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실상을 밝힌다. '처음부터 널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란 그의 고백은 혁명과 사랑의 실패, 그 과거로부터의 자의적이자 동시에 타의적인 구원으로서의 것이다. 한편 서우에게 이선균은 언니를 빼앗아간,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혈연을 앗아간 주범이면서 동시에 첫사랑과 같은 동경의 인물이다. 모순적인 감정을 보이는 그녀는 이선균을 동경하고 사랑하면서도 그를 소유할 수 없음을 불길하게 예측한다. 20대의 가장 순수했던 정신이 이미 그 시절(80년대)에 바쳐진 후 더 이상 순수함을 회복할 수 없음을 머리가 아닌 육감으로 절감한다. 그녀는 그의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대상으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스스로 안다. 그렇기에 그의 곁에 머물지 않고 가장 사랑할 때 떠나간다. 박찬옥은 그 시절의, 그리고 현재까지 이 사회의 변두리 그러나 실제의 최후의 보류선에 서있는 모습의 운동권의 자화상을 2009년의, 서우의 시점을 통해 거리감을 두고 들여다본다.
영화는 처음과 끝을 서우의 불명확한 시선의 이동감으로 처리함으로 그 내면을 회유하며 끝까지 이선균의 내면을 우리에게 밀착시켜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곳곳의 지점마다 386의, 이선균의 시점에 아주 조심스럽게, 그러나 충분히 불편하지 않을 만큼 개입한다. 서우가 가출하기 전 도려낸 이선균의 얼굴이 없는 결혼사진이 후에 언니가 죽고 난 후 이선균에 의해 발견된다. 서우의 눈에 불필요하게 느껴졌던 가족구성원으로서의 이선균이 자신이 잘려 나간 사진을 들여다보는 순간 이 땅의, 이 사회에서의 자신의 자리가 없음에 대한 회한적 정서가 깊이 파 들어 온다. 이 정체성 없음과 정처 없음의 외부인의 정서는 결국 사랑을 고백한 순간 배신당하고, 감옥에 힘없이 걸어 들어가는 처지가 된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멜로는 시도자체가 불필요했던, 실패를 염두한 정서였단 말인가.
영화는 오토바이에 올라 타 파주의 끝, 군사분계선을 앞두고 있는 철조망을 횡단하며 불안하고도 쓸쓸한 눈동자를 한 서우를 오래도록 보여준다. 그야말로, 부산영화제에서 김정과 정성일의 영화와 함께 보았다면 더 없이 흥분했을 장면이다. 김정의 <경>이란 영화에서 동생을 찾아 나섰으나 실패한 양은용의 자동차안에서 멈춘 카메라, 그 안에서 국가를 떠나 아시아 하이웨이로 들어서는 자동차의 긴 행렬, 그리고 정성일의 <카페 느와르>에서의 마지막 장면, 요조의 오토바이가 그녀의 밝은 표정과 함께 경쾌하게 질주하던 신이 각각 역방향에서 겹쳐온다. <파주>의 엔딩은 <경>의 엔딩에서의 정서와 닮아있다. 하지만 박찬옥은 그 정서의 대상을 철조망 너머로서 분명하게 상정하고 있다. 넘을 수 없어 빙빙 돌고 있다. 그 철조망은 이선균의 감옥을 확장한 2009년의 것이다. 멜로는 완벽하게 정서적으로 갇혔다. 이제 명백해졌다. <파주>의 안개는 물질이다.
p.s 이 영화에서 <밀양>을 거론하는 것은 좀 성급한 처사로 보인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가 다른 도시로 이주하는 것, 그 후 그 도시에서 벌어지는 파국의 드라마, 대한민국 그 어디에도 있는 교회가 등장하고, 죄와 감옥이 등장하고, 면회장면이 등장하여 성경구절을 읊조리는 것. 이러한 틀에 가까운 요소들 말고 그 어떤 주제가 유사하단 말인가. 이창동 영화의 정서에 그 어떤 정치가, 그 어떤 투쟁의 결과로서의 입지가 있었는가.
아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에서 주관하는 넥스트플러스 영화 축제의 일환으로 필름포럼에서 미조구치 겐지 특별전을 진행 중이다. 서구의 평자들, 특히 프랑스의 까이에 뒤 시네마의 동시대 필진들에 의해 발굴된 미조구치의 영화들을 생소한 채 보았다. 사실 오래 충분히 이야기 된 작가이기도 하기에 많이 뒤늦은 감으로 따라가보듯이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들의 무엇이 그 시대의 그들을 흥분하게 했을까. 나는 그들의 글이나 유명하다는 노엘 버치의 분석을 사실 직접 읽어보진 못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영화들이 카메라 움직임, 인물, 프레임 이 셋의 연속적인 구성을 순수하게 구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무성영화시기를 거친 감독들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고유의 영화적 감각이기도 하다. 미조구치의 영화는 시대와 지역을 넘어 2009년 현재 서울의 한 작은 지하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나의 앞에서 여전히 상영(screening)되고 있었다. 이 상영은 기술적인 상영의 과정이 아니라 그로부터 발생된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영화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적인 이야기가 발생된다.
영화적이란 말은 초기 영화의 순수성을 내포한 말이다. 이는 말하지 않는 침묵으로서의 이야기로서 시적인 영상을 뜻한다. 이 함축된 영상은 이야기를 말이 아닌 정서로서 우리에게 전달한다. 미조구치는 자취(흔적)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는 단절과 연속 즉, 닫히고 열리는 문으로, 갇히고 해방되는 카메라 움직임으로, 밝아지고 어두워지는 페이드 인/아웃으로, 그것의 느린 디졸브로 참혹한 전후의 사회상 위에 위태롭고 불완전하게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상황을 겹쳐 그려낸다. 미조구치는 정지한 풍경을 기점으로 돌아 큰 원을 그리면서 비극을 불교의 사상으로 회유한다. 이 원운동은 관념적인 것이고 역사적, 사회적 비극 속에 처한 인간에게서 움직이지 않는 그 내면의 무엇을 발견, 관찰하려는 탐색이다. 이는 카메라에게 부여된 철학적, 논리적, 윤리적, 도덕적 증명이 결코 아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과 인간으로서 만나려는, 사물과 인간이 마치 일치되려는, 관계적으로 말해 면(3차원)과 선(2차원)으로부터 점(1차원)으로 회귀하려는 것이고 정서적인 방황으로부터 해탈하려는 것이다. 즉 현세의 입체적이고 구체적인 지옥에서 내세의 추상적인 세계로 초월하려는, 왔다가 사라지려는 회귀 운동이다. 미조구치의 카메라 움직임은 관조적이며 인물들은 유령적이고 프레임은 끊임없이 외화면을 의식한다. 이것은 쇼트와 쇼트를 거의 나누지 않으려는 듯한 원 신 원 컷, 디졸브의 잦은 사용, 사라졌다 다른 존재로 재발견되곤 하는 인물들의 등,퇴장 방식, 외화면에서부터 시작하여 외화면으로 사라지는 소리의 연출방식 등에서 그러하다. 즉 미조구치에게 내화면은 외화면의 순수한 현전이다.
미조구치의 말기인 50년대는 그의 영화 세계를 완성 지을만한 걸작들로 채워져 있다. 미조구치는 50년대의 사실주의적인 풍경과 정서적인 드라마를 빈틈없이 연출해내는 데 있어 거의 모든 작에서 예외가 없을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그의 영화는 시대적 배경을 불문하고 마을의 부감 쇼트로 시작하여 부감으로 마친다. 영화의 존재적 출처인 듯 하늘로부터 하강하여 다시 하늘로 상승한다. 그런 다음, 일본의 전통 연극을 의식하듯 인물들의 등/퇴장의 기점, 방향, 루트, 시간을 충실히 묘사한다. 그들은 출현한 곳으로 사라지는데 그 과정을 보면 긴 골목길의 소실점에서부터 출발하여 긴 시간에 걸쳐 걸어나와 문(발)과 문(발)을 넘나들고, 방과 방을 옮겨가며 그 각각의 공간에서 외면과 내면을 연기한다. 미조구치는 안과 바깥을 화면 안에서 나누는 프레이밍을 선보인다. 그것은 가옥의 문 안에서 바깥으로 보이는 긴 거리의 골목길을 보여주는 방식이나 가옥 내의 방을 칸막이로서 나누어 보여주는 방식에서 그러하다. 그는 한 공간을 이중의 공간으로 만들어 여기와 저기 즉 다시 말해 내부적 상황과 외부적 상황, 드라마와 현실, 혹은 현실과 도피, 현세와 내세를 입체적으로 명시한다. 인물들은 거의 실시간적인 조명을 받으며 일종의 카메라 테스트를 거치는 듯 연기한다. 그들은 마치 외면과 내면의 방을 넘나들 듯 행동으로서 출현해서 심적으로 고백하고는 다시 행동으로서 떠나간다. 한 인물과 사건에 부여된 긴 신들은 거의 느린 페이드 인 혹은 아웃, 디졸브를 통해 겹쳐진다. 중요한 것은 이 겹치는 장면의 화면의 구도이다. 사라지는 화면의 구도가 이어지는 화면의 구도와 일치한다. 인물이 있었던 자리에 다른 인물 혹은 사물이 배치되어 있다. 왔다가 사라진 존재의 운동감은, 이 영화를 지켜본 관객으로서만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으로서 화면엔 정지된 흔적, 혹은 미세한 떨림, 즉 수면의 파동, 미닫이 문 운동의 잔감, 혹은 외화면의 잔향(소리)만이 맴돌고 있다. 그와 동시에 그 각각의 공간에서 결핍되어있는 요소들을 이 이중 공간의 드나듦의 과정으로서의 네러티브를 통해 역설적으로 채워 나간다. 이 드나듦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들은 결코 동일한 출신(혈연, 가족)이 아닌 각기 다른 출처의 인연들이다. 이 인연은 인간적이고 살가우며 온정이 있다. 폭력적이고 극악 무도한 위정자, 그 비극의 역사와 정치 아래서 인간들은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로서 만나 온기를 나눈다. 그들은 사실 이상적으로 표면화된, 매끈한 성격의 구조를 하고 있다. 미조구치의 인물은 복합적인, 내밀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아니다. 다시 말해 몸은, 게이샤의 치장은, 예쁨과 추함은, 늙음과 젊음은 도구적인 것이고, 역사와 정치의 시대적 반영일 뿐이다.
미조구치의 50년대 영화에서 전후의 고아들이라 불릴만한 떠도는 인물들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원자화된 인간들의 풍경의 일부일 것이다. 이것은 <산쇼다유(1954)>에서 가장 극적이다. <산쇼다유>는 가장 전통적인 가치를 설득하는 영화로 영화의 엔딩에서의 어머니의 대사(아버지의 길을 따랐기에 너가 나를 만날 수 있었다)를 통해 그것을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앞서도 언급했듯 미조구치는 무성영화의 자산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고 있음을 50년대에까지 의식적으로 보여준다. 시대극이라고 불릴만한 <우게츠 이야기(1953)>와 <산쇼다유>는 한밤중의 강물을 특별히 빼어나게 묘사한 작품으로, 강물을 사이에 두고 일어나는 비극을 통해 인연, 삶, 운명으로서의 강물, 즉 깊이를 알 수 없이 고요한 표면의 잔잔한 파동만을 일으키고 있는 검은 물로 가득찬 까마득한 풍경을 연출한다(여담이지만 이 두 영화는 물 위의 도시,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바 있다). 강물은 신화적인 기원으로부터 떠남/이별을 상징한다. 이것은 신체적인 분리의 지점이자 정신적인 방황의 시초이다.
미조구치는 이 시대극에서 무르나우의 무성영화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자연의 묘사를 통해 인간의 정서적인 풍경을 만들어내는 자연주의적인 시선을 노출한다. <우게츠 이야기>에서 겐주로나 도베이가 마을을 떠나고 방황하는 여정의 트레블링, 밤의 강물에 띄워진 배, 그 배 위의 인물들의 부유한 상태, 산쇼다유에서 남매가 인신매매단에 의해 부모와 생이별을 하는, 인물의 인연의 거리는 벌어지고 그 사이를 검은 물로서 채우는 까마득한 비극의 장면, 여동생을 죽음을 묘사한 강물의 미세한 파동의 움직임을 오래도록 응시하는 장면들이 그러하다. 이는 표현주의적인 무성영화, 즉 프레임, 조명, 무대의 극적인 장치들을 동원하여 미장센에 대한 의식이 돋보이는 영화들이라 할 만하다. 이처럼 미조구치는 물리적인 수평과 수직 즉, 양적인 길이와 깊이를 가지고 질적인, 정신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이같은 미조구치의 정신적인 위기감은 그의 자전적인 무대이기도 한 매춘가의 풍경을 보여줄 때 보다 직접적으로 연출된다. 매춘거리의 사실적인 풍경을 그려낸 <게이샤(1953)>나 <적선지대(1956)>에서 미조구치는 상대적으로 미학적 형식의 장치보다는 유곽 내부의 가장 치부스러운 삶의 부분을 드러내며 그 맨 상태의 낯을 화장과 기모노와 술과 음식과 음악과 노래로서 연출한다. 그러면서 그는 좀 더 사적이고 내면적인 공간으로 들어와 그들의 결핍된 가족관계를 드러내며 같은 '핏줄'이 아닌 같은 '처지'에 속한 자들끼리의 연대를 만들어낸다. 그는 매춘이라는 사회적이고 성윤리적인, 도덕적인 현상을 일본의 전통 가옥과 황폐한 전후의 거리처럼 환경적인 처지로 만든다. 그는 그것을 한 번 들어섰을 때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운명론적인 구조물로 여긴다. <게이샤>에서 나이 든 매춘부와 젊은 무희가 겪는 정신적 위기, 그리고 선대가 후대를 위해 희생함으로 맺어지는 연대감은 그들을 또다시 매춘의 거리로 힘차게 전진하게 만들면서 인간적인 위기의 시대를 남다른 방식으로 극복한다. 그의 운명론적인 시각은 첫 컬러 영화인 화려한 색체감과 빼어난 미장센이 돋보이는, 가장 모던한 양식을 가진 <양귀비(1955)>같은 영화에서는 보다 형식적으로 설명된다. 이 영화의 첫 시퀀스는 상당히 인상적인데, 궁궐의 긴 복도의 끝에서부터 사선으로 걸어들어오는 신하들의 모습이 보여진다. 그런 다음 창가 앞에 앉아있는 늙은 현종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양귀비의 목상을 앞에 두고 관찰하고 있다. 여기까지 이 신하들의 좁혀오는 운동감과 정지한 현종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이어 현종의 공간 왼쪽 편에서 아까 그 신하들이 등장해 명령을 전달하고 현종은 이를 거부한다. 그리고 나서 이 신하들은 아까 그 출현한 방향(왼편)으로 조용히 사라진다. 이제야 현종이 창가앞에서 고심하며 앉아있거나 양귀비상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의 정황이 설명된다. 그 현종의 방안의 묘사는 신하의 등장과 사라짐의 실시간 운동으로 둘러싸여진 것으로 운명적인 처지, 즉 비극의 처지를 설명한다. 미조구치는 비극의 시대에 서글픈 처지에 몰린 인간의 순수한 감정들을 이와같이 애도한다.
미조구치의 유작이 된 <적선지대>는 미조구치 영화중에서 가장 형식적인 의식이 없는, 리얼리즘계열의 영화라 불릴만한데 이 영화의 엔딩은 흡사 브뉘엘의 자연주의를 닮고 있어서 꽤나 충격적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거의 이전까지의 초월성, 관념성을 배제하려 한다. 돈으로 성을 사는 남자를 소위 말해 '등쳐먹고' 자립하여 나간 매춘부의 빈 자리에 심부름을 하던 젊은 소녀가 들어선다. 미조구치는 유곽을 늘 열린 구조로 보여준다. 이 가옥은 개방적이면서 동시에 유동적이다. 강물 위의 배가 인물들의 정신적 방황을 유출한다면 이 열려있는, 결코 영업이 정지되지 않는, 망할 듯 망하지 않는 매춘의 유곽은 육체적인 방황을 안착시키고 직업적으로 귀화시킨 후 정신적이고 인간적인 정서를 이 구조와 별개로서 취급한다. 하지만 <적선지대>의 풍경은 이전의 미조구치의 세계관을 일정부분 부정하고 있다. 오랜 기간 매춘에 몸담아온 늙은 매춘부들의 현실이 여과없이 보여진다. 이들은 남들과 같은 안정적인 결혼생활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쓸쓸하고 적적한 마음을 서로 부대껴가며 살아간다. 라디오에선 매춘금지법이 곧 통과될 것이란 보도가 들리고 이들은 그렇지 않아도 빚에 쪼들리는 신세에 더 큰 생계의 부담을 느낀다. 이들은 어려운 와중에서도 돈을 쪼개어 서로 돕고 의지하며 추운 시절을 근근히 버텨나간다.
미조구치는 이 영화에서 <우게츠 이야기>에서 정점을 이룬,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시선을 사회적 리얼리즘의 시선과 거의 충돌시킨다. 이 마주침의 영역에서 도피하거나, 초월하거나, 아름다운 죽음을 그려내며 내세로의 진전을 꾀한 이전의 아름다운, 시적인 카메라와는 달리 이 영화의 엔딩에선 거리에 막 화장을 하고 나선, 조금은 수줍은, 그러나 미세하게 흥분한 홍조의 얼굴과 두려움에 찬 눈동자를 한 소녀를 기이한 일본 전통 음악과 함께 매치시키며 우리를 사실적인 혼란에 빠뜨린다. 그녀는 거리로 나선 것도, 도피의 길로 들어선 것도, 또 다른 세계에 들어선 것도, 죽음의 미학을 실천한 것도 아니다. 지금 그녀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대와 현실의 경계선에 서서 카메라 바깥의 거리를 보고 있다. 그 곳은 미조구치가 단 한번도 염두하지 않았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영역의, 금기시된 곳이다. 미조구치는 새로운 운명론에 처한 세대를 막 보여주고는 너무 성급히 퇴장했다.
1. 비스콘티 특별전 기간에 있었던 <이방인>(1967)에 대한 영화사 강좌에서 불문학자인 정의진씨는 카뮈의 이방인과 비스콘티의 이방인을 비교하는, 아니 그보다는 비스콘티가 카뮈의 무엇을 어떻게 재현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카뮈의 『이방인』은 사르트르의 『구토』와 함께 나치시대의 대표적 실존주의 소설이자 복합과거의 시점을 적용한 효시적 작품으로 일컬어진다. 복합과거시점에서는 '나'라는 서술주체가 있고 그 '나'가 '나'의 내면심리를 해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심리묘사가 아닌 행동과 분위기 위주의 묘사가 주를 이룬다. 이것은 문학가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카뮈의 특성(당대 미국의 소설들로부터 영향받은 것으로 보이는 사실주의적인 문체, 작가 레지스탕스 운동을 주도한 경력이 반영되었을 반사회적인 성향의 인물들)을 잘 드러내준다. 카뮈의 『이방인』은 인과론적 서술을 거부한 '영화적인 소설'로서 이는 비스콘티가 카뮈에 매혹되어 만든 영화 <이방인>을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작용점이 된다.
『이방인』은 정오(正午)의 서사로서 완벽한 노출상태의 진리의 사상이다. 여기서 진리란 철학적, 추상적 진리가 아닌 감각적 진리, 즉 국가적, 도덕적 층위와는 다른 층위에 존재하는 진리이다. 과다 노출된 정오의 빛은 역설적으로 죽음의 색이다. 뫼르소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한 묘사가 특히 그러한데 햇볕을 투과시키는 양로원의 투명유리, 시체보관소의 지나치게 밝은 형광등, 장례식장과 해안가에서 동일하게 내리쬐는 빛 아래서 뫼르소는 강렬한 현기증을 느낀다. 카뮈의 알제리, 알제리의 정오, 카뮈의 정오는 과거가 없는 시간이자 권태의, 낮잠의, 슬픔이나 우수가 존재하지 않는, 꼼짝할 수 없게 만드는 정열의 시간이다. 이 정열의 빛은 매일을 잠들게 만드는 과도한 쾌락과도 같다. 뫼르소의 살인에 대한 스스로의 변명처럼 정오의 살인 주범은 실제로 '(우연적) 태양'이었던 셈이다.
『이방인』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1부가 앞서 언급한대로 인과적 서사가 아닌 정경의 묘사에 치중한다면 살인사건 후의 2부는 과거를 재구성한다. 부조리함은 이 과거 재구성의 과정에서 발생한다. 1부가 뫼르소 1인칭의 기록적 내레이션으로 일관한다면 2부는 재판을 통해 뫼르소의 성찰을 강요한다. 동기가 충족되어야 하는 법정의 재판은 살인사건에 대한 인과론적 대상을 소환한다. 어머니의 장례식, 눈물을 흘리지 않고 슬퍼하지 않았던, 연인과 해수욕을 즐겼던 사실 등이 살인을 저지른 부도덕한 동기로 소환된다. 그러면서 이로부터 1부에서 설명되지 않았던 뫼르소의 가치관이 구체화된다. 이는 국가, 인종, 식민주의로부터 자유로운, 뫼르소적 자유의 정체성이다. 시대와 국가와 전통과 이데올로기로부터의 이방인, 낯선 자로서의 정체성이다. 뫼르소는 실존주의자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현실의 가난함 속에서도 감각적 층위의 행복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 행복은 최후에서 보자면 역설적인 개념으로 재탄생한다. 결국 뫼르소는 역설적 진리의 순교자였던 셈이다.
무신론자인 카뮈는 전통적으로 보자면 로마 그리스 신화의 다신교적 사상과 신을 인격화한 르네상스 시대로부터 영향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반면 비스콘티는 예술에 대한 문명론적 이해를 가졌던 전통적 부르주아로서 서구 가톨릭의 영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은 이상주의자로서의 막시스트와 사실주의자로서의 네오리얼리스트였던 이중적 정체성의 모순과 연관하여 그의 영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계급 혁명의 실패와 정치적 이념에 대한 실망은 그를 19세기 문화예술에 심취하게 했고 그 문화예술의 근간인 기독교의 신화가 그의 후기 걸작들에 재현되고 있다. 그러나 비스콘티는 여타의 감독들과 달리 스스로를 이 성상화로부터 구원하지 않는다. 그는 네오리얼리스트로서의 정체성을 결국 마지막까지 유지한 셈이다. 그는 죽음을 향하는 스스로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 정신이 죽은 시대에도 그는 끝끝내 형이상학적 관념을 거부한다. 비스콘티는 철저한 리얼리스트였다.
"내가 보기에 뫼르소는 표류물과 같은 존재는 아니다. 그는 가난하고 가식이 없는 인간이며 한군데도 어두운 구석을 남겨놓지 않는 태양을 사랑한다. 그에게 일체의 감수성이 결여되어 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집요하기 때문에 그만큼 뿌리가 깊숙한 정열이 그에게 활력을 공급한다. 절대에 대한, 진실에 대한 정열이 그것이다. 이것은 아직 소극적인 진실로 존재한다는 진실, 느낀다는 진실이다. 그러나 그 진실이 없이는 자아와 세계에 대한 그 어떤 정복도 가능하지 못할 것이다. 그 어떤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도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인간, 나는 내 인물을 통해서 우리들의 분수에 맞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그리스도를 그려보려고 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신성모독의 의도는 없다. 한 예술가가 스스로 창조한 인물에 대해 느낄 권리이자 아이러니한 애정이다." -『이방인』 영문판 서문 중
*이상은 강연에 대한 주관적 편집을 거친 글임.
2. 정당함이 인정될 죽음의 새벽
비스콘티의 <이방인>은 판사 앞에서 변호인(진리의 대변인)이 필요하지 않다고 중얼거리는 뫼르소의 진땀 흘리는 한낮의 장면으로부터 시작하여 독방에 갇힌 채 자신의 삶의 유일한 변호인으로서 당당히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외치는 새벽의 시간으로 마감된다.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를 생각했다. 왜 만년에 어머니는 '약혼자'를 정했는지, 왜 새로운 삶을 꾸며 보려고 했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 생명들이 꺼져 가는 양로원 근처에서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처럼 느껴졌었다. 그런 죽음 근처에서, 어머니는 오히려 생의 해방감을 느끼고, 모든 것을 새롭게 살아 보고 싶었던 것일 게다.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중략) 표적과 별들이 드리운 밤을 지켜보며 나는 난생 처음으로 이 세상의 다정스런 무관심에 내 마음을 열었다. 이 세상이 그처럼 나와 동일하며 형제 같다는 생각에 나는 행복했으며, 또 지금도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내가 바라는 마지막 소원은 내가 사형을 당하는 날 보다 많은 구경꾼들이 나를 증오의 함성으로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이방인』 본문 중(김병일 옮김)
카뮈의 시간이 여행자의 정오, 그 낯설고도 어지러운 시간이라면 비스콘티의 시간은 추방자의 밤 혹은 새벽이다. 카뮈 시간의 최후에 들어선 <이방인>의 뫼르소(마스트로얀니)가 비스콘티 시간의 최후, 즉 <가족의 초상>의 교수(버트 랭가스터)나 실은 그보단 <루드비히>의 루드비히(헬무트 베르거)의 죽음의 형상을 불러들인다. 좀 더 묘사하면 새벽 별빛의 광휘에 쌓인 채 결연하게 사형장을 향하여 들어가겠다고 고백하는 독방의 마스트로얀니의 얼굴이 역시 푸른 새벽에 발견된 루드비히의 익사체, 그 훼손되지 않은 죽음의 미학적 결정체로서의 얼굴을 불러들인다. 이들의 죽음은 발견되기 위한 죽음이거나 구경꾼들을 염두한 죽음이다. 이것은 충분히 의식적인 죽음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위한? 생의 고통을 내면화하지 않았음으로 이 육체는 구원이 필요 없었던 것임을, 즉 사후세계의 부활이 없다고 하는 것을 육체로서 증명하는, 혹은 이미 육체화 된 영혼에 대한 시각적 증명을 꾀하기 위하여.
밤이 가기 전과 아침이 오기 전의 새벽, 죽음에 막 이른 육체는 세계와 생의 모순적 결정체이다. <가족의 초상>(1974)에서 구체적 대사를 통해 증명하듯 비스콘티에겐 (세상의) 풍경화가 곧 (생의) 초상화이다. 온갖 초상화들에 둘러쌓인 채 지내는 노교수는 부재하는 과거, 정치적 혁명의 시간과 성애적 사랑의 시간을 상상적 가족(인위적이고 억지스러운 비이상체로서의)을 통해 재현한다. 그는 밤의 시간마다 1층 침실에 누워 2층을 향해 자신의 이상을 스크리닝화 한다.
적막과도 같았던 밤의 시간이 떠들썩대기 시작하고 그 곳에선 혁명이 아닌 타락(근친상간과 테러가 난무하는)의 향연이 벌어진다. 2층은 거의 프롤레타리아화 된다. 교수는 이들을 자신의 1층, 즉 현실의 부르주아의 공간으로 초청한다. 교수는 이 시끄럽고 무질서한 부류에 대해 아이러니하게도 매력을 느낀다. 그는 고딕양식화 된 자신의 1층 침실의 시공간을 포기하지 못하면서 동시에 시공간적 질서라고는 없는 2층의 문란함에서 일종의 자유를, 혁명적 약동, 이것이 과장이라면 욕망의 분출감을 대리만족한다. 잠들지 않는 육체와 이로 인해 잠 못 드는 육체의 대비, 즉 능동적 삶과 피동적 삶으로서의 생. 비스콘티는 잠들어야 했던 시간에 '잠들 수 없었던' 시간을 재현하며 그 역사와 시대의 모순성을 드러낸다. 그 결정체는 앞서도 언급한 <루드비히>의 죽음의 시간, 그 암흑의 시간에 물속에서 발견되어야만 완성된다고 하는, 정치적 죽음을 미학적 죽음과 동일시하는 신념을 온 몸으로 실천한, 그리하여 그 육체를 상처 없이 죽음으로 이끌고 가야했던, 그럼으로써 역사적 죽음의 시간을 현상화시키고자 했던 그만의 정치미학적 사명에 대한 고뇌의 결과물로서의 그것일 것이다.
언젠가부터 영화의 화면비를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현재 가장 일반적이고 대중적으로 쓰이는 1.85:1, 시네마스코프 2.35:1, TV 화면비로 잘 알려진 4:3. 시네마스코프 화면비나 4:3의 화면비를 가진 영화들을 볼 때면 저 영화는 왜 저 화면비를 택했을까를 영화 전체에서 찾으려 노력했고, 좋은 영화들은 어렴풋하면서도 또렷한 나름의 대답들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개인적으로 시네마스코프 화면비의 좋은 영화들은 금방 떠오르는데(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부터 우디 앨런의 <맨하탄>을 거쳐 2009년 한국 봉준호의 <마더>에 이르는 중구난방의 다양한 지형도를 그릴 수 있다.) 4:3 비율의 화면을 영화적으로 잘 구현해 낸 영화는 구스 반 산트의 최근작들 정도만 떠올랐다.
그러던 중,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 중인 "영화적 체험" 특별전의 상영작 목록을 보았다. 듣도 보도 못한 감독들의 1900년대 초 영화들로 가득한 목록에서 익숙한 이름이라고는 그레타 가르보, 이 전설적인 여배우의 이름뿐이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그녀가 출연한 영화 중 한 편인 <크리스티나 여왕>을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의 클로즈업 된 얼굴이 4:3 화면의 스크린에 영사될 때마다, 황홀했다. 배우의 얼굴이 그토록 시네마틱(cinematic)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난 처음 깨닫고야 말았다.
유럽의 전쟁통 한복판에서 스웨덴의 여왕으로 취임한 크리스티나는 기품과 카리스마를 갖춘 지도자이면서도, 예술을 사랑하고 더 넓은 세계를 동경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개인이다. 왕실 각료들과 국민들은 그녀와 당시의 전쟁영웅인 장군과의 결혼을 강하게 바라고 있다. 이 와중에 그녀는 우연히 스페인에서 온 대사와 만나 사랑에 빠진다. 스페인에 대한 여론이 점점 나빠지면서 이 스캔들을 들은 국민들은 분노하고, 각료들은 그녀에게 여왕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요구한다. 날 때부터 자신을 규정해 왔던 왕의 역할과 이제 막 눈을 뜬 사랑의 자아 사이에서, 크리스티나는 고뇌한다.
그녀의 얼굴에는 다양한 감정의 격랑들이 오고간다. 가로변이 길지 않은 4:3의 프레임은 그녀의 얼굴로 가득 찬다. 흑백의 화면, 오래된 필름 입자들, 빛나는 하얀 얼굴. 여왕으로서의 의무를 이야기하는 친구 같은 하인을 뒤로 하고 창 밖 눈 쌓인 풍경들을 보며 드넓은 바깥세상에의 갈망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설렘과 불안, 희망과 체념이 교차한다. 스페인 대사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진 후 여관에서의 마지막 날 밤, 침대의 기둥을 손으로 감싸 안고 어루만지던 그녀의 얼굴에는 사랑에 눈을 뜨고 피어나기 시작한 여성이 존재한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왕좌에서 일어나 여왕의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이 이끄는 대로 커다란 선택을 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용기와 위엄이 서려 있다.
한 기사와의 결투에서 부상당한 대사는 왕관을 벗고 달려온 크리스티나의 눈앞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둘이 함께 타고 바다를 건너기로 했던 배 위에는 이제 크리스티나만이 남았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크리스티나는 돛을 올리라 명하고, 뱃머리에 가서 선다. 바람이 분다. 돛이 올라가고, 배가 움직인다. 눈물이 멈춘다. 카메라는 그녀의 얼굴로 빨려 들어가듯 가까이 간다. 무표정한 얼굴. 하지만 흐트러짐 없이 한 곳을 응시하는 눈동자.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자는 늘 선택의 기로에 부딪친다. 그 선택이 주는 책임의 무게는 늘 무겁게 다가온다. 무게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짊어지고 다가올 새로운 앞날을 응시할 때, 인간으로서의 어떤 성숙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녀의 눈동자에 반영되던 그 성숙함을 잊을 수 없다. 스크린에 가득 찬 크리스티나를 보며 진심으로 그녀의 건투를 빌었다. 한 사람의 얼굴. 때론 그것만으로도 영화는 진정 영화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