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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인들이여! 그래도, 꿋꿋하게 '치고 달리자'

2009.11.26 09:45 | 필진 칼럼 | 우디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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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0일 저녁, 명동의 ‘시네마 호프’에서는 2009서울독립영화제 사전 감독모임이 열렸다. 한 해 독립영화를 결산하는 독립영화 최대의 축제의 서막을 알리고자 만들어진 이날 행사에 출품 감독과 독립영화인들이 총집합한 것. 다만 한국독립영화협회 인근에서 열렸던 예년 모임과는 달리 장소가 주는 느낌 때문인지 몰라도, 술과 출품작 이야기로 시끌벅적하던 이전에 비해 지나치게 차분했다고나 할까.

공교롭게도 같은 날 오후, 영화진흥위원회 홈페이지에는 ‘독립영화전용관 지원사업 운영자 선정 공모’가 공시되었다. 그러니까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지정위탁 형태로 3년 째 맡아 운영하던 전용관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한다는 것인데, 2008년부터 국정감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지적받아 온 특정단체 지원 방식의 개선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사업수행 성과를 1년 단위로 평가한 후 매 1년 계약기간의 사업자를 선정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서울아트시네마 공모제 논란 때도 언급했듯이, 절대로 오해하면 안 되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즉 ‘독립영화전용관 지원사업’은, 영진위의 정책입안을 통해 지원을 시작한 사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독립영화인들의 꾸준한 노력과 활발한 활동의 결실로 얻어낸 것이었고 그래서 ‘지정위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는 시네마테크전용관 사업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번 공모제의 (독립영화진영을 배제하려는 불을 보듯 빤한) 의도는, 「정부 또는 공공기관의 지원금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사례가 있어 정부, 감사원 및 지원기관으로부터 주위, 경고 또는 제재를 받은 단체(법인 등)」 이라고 명시된 ‘지원신청의 제한’ 항목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 1년간 독립영화진영은 숱한 감사와 조사를 받았다. 심지어 한 독립영화인은 감사원에 11차례나 불려갔을 정도로 독립영화협회와 산하단체를 향한 십자포화는 그칠 줄 몰랐다. 이렇게 볼 때 감사 과정에서 티끌이라도 드러난 단체는 전용관사업자로 선정되기 쉽지 않을 것이므로 오랫동안 독립영화계에 떠돌던 이야기가 현실이 될 날도 머지않은 듯하여 가슴 답답하다.

2009년은 <워낭소리>가 사상초유의 관객을 동원했고 <똥파리>와 <낮술>이 소기의 흥행을 거두는 등, 그 어느 해보다 많은 독립영화가 관객과 만난 한 해였다. 그러나 독립영화계가 거둔 놀라운 성과 이면의 그림자 또한 짙고 어두웠다. 올해 서울독립영화제에 더욱 마음이 가는 것은 이 때문인가 보다. 예년에 비해 담담한 표정의ㅡ내 눈에만 그렇게 보였는지 몰라도ㅡ집행위원들과 조영각 집행위원장의 거뭇한 수염에서, 올 한해 지친 발걸음을 힘겹게 떼며 걸어온 독립영화계의 진짜배기 모습이 보인다. 2009서울독립영화제의 개막이 아직 보름가량 남았지만 이미 시작된 거나 진배없다. 참으로 힘든 한 해였겠지만 그래도 부탁한다. 힘내서 꿋꿋하게 ‘치고 달리자’ 독립영화인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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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2분 45초, 2분 28초, 2분 4초, 1분 35초. 이 숫자는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를 모토로 하는 올림픽 기록이 아니다. 역대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개막작들이 예매 시작부터 매진될 때까지 걸린 시간이다. 첫 한국영화 개막작은 1999년 4회 때 선보인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었지만, 그 시절엔 온라인 예매가 없었고 그 이듬해부터 시작된 온라인 예매는 30분대에 매진이 됐다. 2004년에서야 4분 54초 만에 개막작이 완전 매진 돼 화제였는데, 이젠 1분 30초대를 유지하는 분위기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의 매진시간이 얼마나 단축되는가는, 올림픽 기록갱신만큼이나 화제가 될 만큼 주목을 받고 있다. 그만큼 영화제의 예매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구축됐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올해는 어떤 작품들이 영화광의 가슴을 도리질할까?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만큼 힘든 노동도 드물다. 표구하기가 귀성전쟁을 방불케 하다 보니 일반인은 물론이고 아이디카드 소지자에게도 쉽사리 입장을 허락하는 법이 없다는 것. 그렇다 해도 영화를 안 보고 영화제를 이야기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여배우 뒤태만 쫓아다니지 말고 영화를 보라는 얘기다. 트란 안홍의 신작도 정성일 평론가의 감독 데뷔작도 또 놀라운 몇몇 기대작도 궁금하고 가슴 설렐 테지만, 목표했던 작품이 아니어도 실망하긴 이르다. 무엇을 보던 기본은 할 것이라는 믿음만 있다면 한결 마음이 편할 터. 내 경우가 그랬다. 근래만 해도 이명세의 <엠>을 놓친 대신 본 <말도둑>과 <집결호>를 대신한 <웨이터>는 아쉬움을 보상해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마음 비우고 나와 인연이 되는 영화를 찾으러 간다.

부산영화제는 영화인들의 총동문회 격이다. 그러니까 평소 공사다망을 핑계로 만나지 못했던 이들이라도 해운대 바닷가를 거닐다보면 어디서건 반갑게 조우한다는 것인데, 그래서 남발한 술 약속과 공수표는 또 얼마나 많았던지. 올해는 누구와 어떤 이야기로 밤을 지새울지 기대감이 한껏 부푼다. 그렇다고 두주불사하다가는 인사불성을 못 면한다. 낮에는 영화에 빠져들고 밤이 오면 술과 사람과 바다에 취하는 수순을 몇날 며칠 밟다보면 몸은 쇠진하고 간은 부어오르니 스스로 컨디션조절을 할 일이다. 영화제에서 버티는 첫 번째 덕목이 체력임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무엇보다 올해 부산영화제가 남다른 것은, 영화제를 침몰시키려 그토록 발버둥친 일부 보수 원로영화인들의 분탕질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외연을 확대하면서도 질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프로그램을 구축했다는 점이다. <오래된 정원> 속 윤희의 말처럼 “의젓하고” 든든하며 다행스럽다. 한편으로 영화제 기간 중 보수 원로영화인들이 ‘영화기관 부산이전 반대 투쟁’의 일환으로 산발적인 시위계획을 공공연히 언급하고 있다는 말도 들려온다. ‘상놈은 나이가 벼슬’이라고 했던가. 노추(老醜)와 노탐(老貪)이 쌍쌍파티를 벌인다면 딱 이 꼴일 게다. 설사 시위를 벌인다고 해도 일부 몰지각한 매체들이 호떡집에 불난 듯이 앞 다투어 설레발만 치지 않는다면 ‘죽은 자식 고추 만지기’에 불과할 것인즉, 이래저래 이번 영화제는 영화와 해운대 풍광 말고도 볼거리가 하나 더 늘어날 듯싶다.

매진이 되던 말든,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든 말든, 누구는 술에 허우적거리다 밤바다에 입수하건 말건, 또 어떤 이는 머리띠에 피켓을 들건 말건, 영화를 사랑하는 자 일단 부산으로 향할 일이다. 어차피 부산역에 터미널에 공항에 내리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와 예측할 수 없는 흥미진진한 일들이 동시다발로 펼쳐질 것이니 영화 같은 한 때,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래서! 부산국제영화제다.



우리시대의 비평과 자아비판

2009.09.25 21:38 | 필진 칼럼 | 우디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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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영화전문지의 몰락과 모범적인 영화비평이 희귀해지는 근래에 들어 얼치기 평문의 출몰은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글들이 독자에게 ‘쉽고 친절한 좋은 비평’으로 오독되면서 종국에는 타인의 글쓰기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이런 징후는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보다 훨씬 더 현란한 표현과 절묘한 비유를 사용해 글을 생산하는 관객리뷰어의 등장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들의 활동영역과 영향력은 이미 전문가를 위협하고도 남을 수준에 이르렀다. 영화사도 홍보사도 어떻게 해서든 이들의 마음과 지원을 얻으려 노심초사할 정도다.

심지어 영화제들마저 적절한 수준의 대우를 통해 서포터스로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끝 간 데 없이 상승하는 관객리뷰어의 위상과는 별개로 이들이 제공하는 글의 다수는 비평적 자산의 빈약함과 사적 취양과 정보의 한계 등으로 인해 일정 수준에 머무르기 일쑤다.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고 호의적 독자들과의 소통과 관계유지에 더 치중하는 까닭일 터. 전문가에 필적할만한 식견을 가진 듯 보이지만 속 빈 강정일 때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감독의 필모그래피 정보 나열과 유사한 영화에 대한 비교와 특정 단어나 관용구를 습관적으로 이어가는 식의 언술도 하나의 경향을 이룬다. 보다 큰 문제는 영화에 대한 무한애정과 가슴 벅찬 감흥을 도려낸 채 글쓴이 자신을 부각시키고 드러내려는 의도적인 글쓰기가 창궐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현상을 이들만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 될 일이다. 그들이 보고 듣고 배운 영화적 자산은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일부라고 항변할지는 몰라도)외국잡지를 고스란히 번역한 후 자신의 생각을 병아리 오줌만큼 붙여 완성시킨 영화 글을 그동안 얼마나 많이 보아 왔던가. 그것은 이제 부메랑이 되어 비평가와 기자들에게 돌아와 버렸다. 진지한 영화평론이 무의미하다고, 전문가의 평은 신뢰할 수 없다는 표어로 무장한 채 말이다. 평단이라 통칭되는 전문가집단이 작금의 영화비평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돌이켜보면 《키노》는 풍성한 비평적 자산을 남긴 반면, 겉멋 밖에는 내세울 것이 없는 자들에게는 ‘좋은 카피거리’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영화에서 미장센이 너무 두드러지게 보여 미장센 위주로 쓴 글과, 미장센밖에 모르기 때문에 쓴 글은 분명히 차이가 난다. 생각하지도,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심지어 영화를 보지도 못하고, 자신의 지식만 나열하는 그런 글에는 아무런 매력과 가치도 없다. 심지어 요즘은 나이 어린 관객도 어떤 주장을 할 때에는 타당한 근거를 내놓아야하며 그 근거가 영화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안다.

무조건적으로 외국비평가를 두둔할 마음은 없지만, 단 한 번만이라도 폴린 카일, 로저 에버트, 조너선 로젠봄의 영화평을 원문으로 읽어보라. 우리가 보아온 비평과는 접근방식 자체가 다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영화 속에 완벽하게 몰입하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온전히 영화를 통해 끌어낸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영화제집행위원장을 겸하는데다 영화를 보고 쓰고 찍는 ‘트뤼포 식 3단계’의 정점에 올라 글쓰기가 예전만 못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정성일이 의심할 바 없이 최고의 평론가로 인정받는 이유는, 아직도 그는 영화에 대한 사랑을 눈물겹게 펼쳐내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영화를 평하는 사람이라면 영화를 보고 글을 마무리 지을 때 까지 뜨거운 가슴과 눈시울 적시는 가슴 벅찬 느낌을 간직해야 한다.

“이 영화는 잡탕이랄 수 있다. 나는 장어구이 위에다 커틀릿을 얹고 그 위에 카레를 뿌린 듯한,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7인의 사무라이>와 관련한 대담에서 구로사와 아키라가 한 말이다. 감독의 표현능력도 이러할 진대 비평가임에랴. 비평이 창작을 이길 수 없는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고 남의 일 같지 않아 부끄럽다.

정진우 감독, 영화로 말하시라

2009.08.21 09:09 | 필진 칼럼 | 우디79

http://kr.blog.yahoo.com/woodyh79/469 주소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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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는 한나라당 강승규 의원이 주최한 ‘영화진흥위원회의 미래를 논한다’ 토론회가 열렸다. 현장 분위기는 예상했던 대로 갑론을박에 그친 걸로 알려진 가운데, 특히 평정심을 잃은 정진우 감독은 <아벤고 공수 군단>(1982)으로 대종상 안보부문 작품상을 받은 제작자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걸로 전해진다.


이날 토론에서 정진우 영화인복지재단 이사장은 예의 영진위 무용론과 폐지론을 주장했는데, 심지어 그는 “칸이나 베를린, 베니스 같은 영화제에서 왜 영진위 직원들이 거들먹거리며 다니느냐”는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또 “영진위 없던 시절에도 영화인들은 영화만 잘 만들었다. 나 역시 연출은 물론 무수한 영화들을 제작하고 성공시켰다”고 말하면서 “지난 10년간 영진위가 합의제를 하면서 자기들끼리 다 해쳐먹었다” 고 말했다는 것. 하긴 2001년 6월 22일 영화 <친구>를 주제로 벌인 ‘TV 토론 공방’에서 안하무인격으로 상대방을 비난해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항의를 받았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그의 무례함은 정평이 자자했던 터이니 별로 놀랄 일은 아니다. 최근의 행보만 놓고 보아도, ‘영화기관 부산 이전반대 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칠순 나이가 무색하게 영화 외적인 일에 매진하고 있는 인물이니 말이다. 요컨대 영진위 문제라는 시급한 불을 끄자고 소방수를 불렀더니 난데없이 나팔수가 나타난 격이다.

그의 주장이 하나 같이 근거 없고 분풀이로 가득 차있는지라 반박할 일고의 가치도 없지만,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영화계 선배' 예우차원에서 한 마디 첨언하자면, 나는 도무지 그가 성공시켰다고 주장하는 무수한 영화들이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 모르겠다.

소위 그의 전성기라 불리던 1960년대 중반에는 나이가 어린 탓에 볼 기회가 없었으니, 그렇다면 속칭 ‘한국 에로영화의 거장’이라 불리며 무수한 여배우를 옷 벗겼던 80년대에 만든 영화들을 말하는 건가. 내 경우 80년대 나온 웬만한 한국영화는 모조리 보았고, 에로영화들 또한 동시상영관에서 빠짐없이 보았지만 ‘조류에로’ 삼부작인 <백구야 훨훨 날지마라>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의 감독이 정진우라는 것은 이 글을 쓰면서 겨우 기억해냈을 정도다. 아, 그러고 보니 <가시를 삼킨 장미>라는 걸출한 에로영화도 있었다. 결국 정진우가 말하는 ‘영진위가 없던 시절에 제작해 성공시킨 영화’ 들이란 시류에 편승하여 오직 관객동원에 재미 본 작품을 말하는 것일 터.

과거 한국영화의 한 축을 담당했고 이제는 선배의 위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거침없이 막말을 쏟아내는 이 노감독을 보면서 측은지심이 드는 것은 어떤 까닭일까? “자기들끼리 다 해쳐먹었다”는 식의, 공식석상에서 입에 담았다고는 믿기 어려운 천박한 표현을 쓴 그 자신은, 2000년 당시 ‘표현의 자유 공청회장’에 반바지를 입고 패널로 참석한 조영각(현 서울독립영화제집행위원장)에게 “이런 자리에 반스봉을 입고 오다니 영화계 선배들의 노력을 무시하는 무례한 처사라”고 호통 쳤던 사실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197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며 시카고학파의 거두인, 밀튼 프리드먼 M. Friedman은 후배교수 로버트 루카스 R. Lucas 를 위해 시카고 대학을 떠나 MIT로 자리를 옮긴다. 정점에서 홀연히 내려와 후배에게 길을 열어준 프리드먼의 용단이, 로버트 루카스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데 일조했음은 물론이다. 박수칠 때 떠나지 못해 오욕의 말년을 보낸 이들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정진우의 좌충우돌은 그런 점에서 반면교사로 충분히 활용할 가치를 지닌다.

나이가 들었으니 아랫목으로 물러나라고 권하는 것도 아니요, 선배영화인의 노력과 업적을 무시하겠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영화를 위해 청춘을 바쳤고 한국영화의 오늘을 일궈낸 선배영화인의 한 사람에게 보내는 바람이란 다른 게 아니다. 진정으로 한국영화의 발전과 미래를 걱정한다면 이념과 색깔의 망령에서 벗어나 경륜과 지혜를 겸비한 선배로서의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설사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눈 먼 후배들이 날뛸지라도 모름지기 어른이란 큰 산 같은 존재감으로 경거망동을 경계하고 훈도(薰陶)해주어야 마땅한 일일 터. 그럼에도 선배영화인이라는 자가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막말을 퍼부어대니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목표의 올바름을 선(善)이라 하고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미(美) 라고 한다. 목적이 불순하니 과정이 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릇 감독이란 영화로 말해야 하는 법. 팔순의 고다르와 이스트우드와 백수를 목전에 둔 올리베이라가 여전히 영화를 만들고 있는 마당에 왜 우리의 노장은 나팔수를 자청하거나 어른대접 받는 것에만 골몰하는지 안타까울 노릇이다. 이것도 10년 좌파정권 탓으로 돌릴 것인가? 정진우는 선배의 덕목이 무엇인지, 진정한 보수의 길이 어떤 것인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군사독재 시절, 반공영화로 정권에 화답했듯이) 차라리, 영화로 말하시라!


씨네큐브 사태와 백두대간, 사실 혹은 추억

2009.08.07 08:55 | 필진 칼럼 | 우디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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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한 때 종사했던 일의 특성상 주가에 관심을 가진 시절이 있었다. 당시 주식시장에는 삼성전자나 포항제철, SK텔레콤, 현대자동차로 통칭되는 소위 블루칩종목이 부럽지 않던 알짜배기 회사들이 있었는데, 대표적 기업으로 농심과 남양유업, 대구백화점, 태광산업이 그것들이다. 특히 태광산업의 경우 부채비율 제로(0)라는 경이적인 재무구조를 가진 것으로 유명하기도 했다. 손바닥만 한 구멍가게라도 꾸려본 사람이라면 빚이 없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잘 알 터인즉, 하물며 대기업임에랴. 웬 재무구조냐고 묻지 마시라. 그저 생각나서 주절거린 거니까.

태광산업을 모태로 하는 그룹 계열사 중 대표적인 것은 흥국생명이다. 보험업계 순위는 몰라도 이 회사의 여자배구단이 정상급이라는 사실과 사옥이 광화문 새문안교회 맞은편에 있다는 것과 그 건물 4층에 영국문화원이, 지하에는 ‘씨네큐브’가 있다는 정도야 세상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알만한 얘기들일 터. 그렇지, 태광산업과 흥국생명은 씨네큐브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회사였지.

‘씨네큐브’는 개관이래 9년을 변함없이 이어온 고품격 예술영화관의 다른 이름이다. 극장의 운영주체인 영화사 백두대간은 이미 지난 1996년 종로구 동숭동에 ‘예술영화전용관 동숭시네마텍’을 개관해 예술영화 불모지였던 우리 영화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바 있기도 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00년 12월 씨네큐브의 문을 열게 되니, 개관작은 프레드릭 폰테인 감독의 <포르노그래픽 어페어>였다. 이 영화를 필두로 수준 높은 예술영화들이 관객과 만나게 되는데, 연평균 19만 명 정도의 관객 수를 유지했고, 2006년에는 예술영화전용관 사상 처음으로 20만 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간 백두대간의 손을 거쳐 수입 개봉된 영화는 100편이 넘으니 거의 매월 1편의 영화가 수입 상영된 셈이다.

씨네큐브가 상당수 마니아를 확보하게 된 배경으로 극장을 둘러싼 환경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까 단순히 멀티플렉스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예술영화를 상영하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얘긴데, 사실이지 씨네큐브만큼 관람환경이 좋은 상영관도 드물 것이다. 혹자는 주부들의 ‘브런치 예술영화’ 바람을 주도하며 광화문벨트 중심에 섰다고 말하고 또 다른 이는 예술영화의 첨병역할을 했다고도 하는 이 영화관을, 나는 ‘한국에서 가장 조용한 영화관’이라고 부르곤 했다.

정말로 씨네큐브에는 큰소리가 들리지 않으며 이곳에 오면 누구나 신사숙녀로 변신한다. 요란한 손짓몸짓으로 관객을 반기는 직원들과 흡사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하는 소음으로 가득한 멀티플렉스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 이곳에는 그 흔한 LCD TV 하나 걸려있지 않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영화를 기다리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후 불이 켜지면 비로소 제 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관람구조. 적어도 씨네큐브에서 영화를 본 후 상영관을 나오자마자 영화에 대하여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내 경우에도 도로 한 복판까지 나와 미로스페이스 쪽으로 길을 건넌 후에야 비로소 조금 전에 본 영화를 떠올리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또한 씨네큐브가 굳건히 버텨주었기에 미로스페이스가 들어설 수 있었고, 스폰지하우스가 광화문에 움틀 용기를 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씨네큐브를, 아니 씨네큐브에서 보던 익숙한 명작을 앞으로 계속 볼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어졌다. 그러니까, 오는 9월 1일자로 씨네큐브의 운영주체가 영화사 백두대간에서 태광그룹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언론매체들은 ‘백두대간이 씨네큐브에서 손 뗀다’는 내용의 기사를 타전했는데, 문제는 마치 백두대간이 적자누적에 못 이겨 씨네큐브 운영을 포기한다는 식으로 제호를 달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해도 이렇듯 오해소지가 농후한 기사를 버젓이 써대는 꼴이라니 (정정한다. 너무 점잖은 표현을 썼다. 꼬락서니로 바꾸겠다).


그동안 씨네큐브는 건물 임대료를 내지 않는 대신, 상영수익을 태광그룹과 절반씩 나눠 갖는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 물론 개관 초기에는 흥국생명 측의 지원금이 있었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수입 상영으로 발생되는 적자는 모두 백두대간이 감당했으며, 이에 따른 누적적자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쉽게 말하자면 태광그룹은 흥국생명빌딩 내 상영관 운영권을 백두대관에게 위탁했을 뿐이며, 이를 유지 진행하기 위한 모든 비용은 백두대간이 부담하였고, 수익은 절반씩 나눴다는 것이다.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적자에 따른 자구책으로 이미 작년부터 인원 감축 등의 구조조정이 실시되었는데, 이는 태광그룹의 직영체제발표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주지할 것은 태광그룹과 백두대간 사이에 체결된 씨네큐브 운영계약의 만료가 오는 2015년 까지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기간만료 이전에 태광그룹에서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는 얘기고, 백두대간 측도 불가피하게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급작스런 운영주체 이양 소식은 그동안 씨네큐브를 아껴온 많은 영화애호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특히 예술영화전용관 관련 업계종사들에게는 더 없이 큰 근심거리를 안겨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금을 받았다는 점에서 최소한 내년 3월까지 라인업의 큰 변화는 없을 걸로 예상되지만, 극장 운영주체가 바뀜에 따라 일련의 변화가 뒤따를 것이라는 건 자명한 일일 터이다. 혹자는 그저 좋은 영화를 계속 볼 수만 있다면 누가 운영한들 뭐가 문제냐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이 모든 것이 여유롭고 안락한 공간적 환경을 유지하는 가운데 지속되리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겠나. 모름지기 주방장이 바뀌면 음식 맛이 변하기 마련이고 새로운 업주가 ‘진짜 맛’보다 오로지 매출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그 아래 있는 종업원들에게서 고품격 서비스와 고객감동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새로운 운영주체는, 씨네큐브를 선호하고 아꼈던 관객의 기대와 바람을 깊이 인식함으로써 힘겹게 쌓아올린 이 공간을 유지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영화란 그것을 보는 장소 또한 매우 중요한 매체이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특정영화를 추억할 때 관람한 날짜는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함께 보았던 사람과 공간과 사건을 중심으로 재구성하기 마련이다. 내 경우 월드컵이 열렸던 그해 여름, 심장이 터질세라 뜀박질로 계단을 내려가 <아귀레, 신의 분노>를 보았고 몇 년 전 여름의 끝자락에는 <세상의 모든 아침>을 본 후 어두워진 하늘을 향해 뛰어올랐던 기억도 있다. 총성을 뒤로 하고 국경을 넘던 소년 아윱의 슬픔이 밴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을 만난 곳도, 우아한 유럽풍 불량배 장 폴 벨몽도의 찌푸린 얼굴이 아로새겨진 장소도 씨네큐브였다. 이러한 사적 이유 때문이라도 멋진 영화공간을 만들어주고 흔들림 없이 유지하면서 힘든 시간을 잘 버텨준 백두대간이 고맙다.

9월부터 영화사 백두대간은 이화여대 ECC내 ‘아트하우스모모’ 운영에만 집중하면서 이전과 다름없이 예술영화전용관 사업과 수입 배급을 진행하게 된다. ‘아트하우스모모’에서도 변함없이 좋은 영화의 향연을 펼침으로써 그곳을 예술영화의 새로운 메카로 일궈낼 것이라 믿는다. 그러니 절대로 여기서 주저앉지 말기를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한결같은 마음으로 씨네큐브를 사랑해준 관객을 위한 유일한 보답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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