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외국 감독 중 하나인 비스콘티의 걸작 [레오파드]는 이탈리아 국토회복운동이라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다. 장면 장면마다 비스콘티 특유의 빼어난 미장센으로 눈을 유혹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품격’의 소중한 가치를 알려주는 교범으로 읽어낼 수 도 있다.
먼저 의미심장한 장면 하나. 때는 가리발디의 회복운동의 기운이 왕성하던 19세기 중엽. 시칠리아로 내려온 대지주 살리나에게 북부 토리노에서 사람이 찾아오게 되는데, 그는 새로운 통일시대를 맞아 시의원이 돼 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당신이 이를 거절하면 비열하고 저속한 이들이 판치는 사회가 된다는 것” 그러나 살리나는 이런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하고, 결국 살리나의 집안일을 돌보던 눈치 빠른 졸부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인의 쓸쓸한 퇴장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과거와 지나치게 친밀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던 살리나와 그의 추천으로 시의원이 된 졸부의 차이는 ‘품위’라는 한 단어로 규정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레오파드]는 품격 높은 삶의 양식이 대우받던 시대에 바치는 헌사라고 불려도 무방한 영화다.
살리나의 시대로부터 대략 150년이 흘렀다. 세상은 변했지만 사실 하나도 변한 건 없다. 귀족의 시대는 사라졌고 그 수하에서 일하던 집사와 하인들이 떠나면서 바로크풍의 저택은 폐허가 되어갔다. 산업혁명은 전통적 계급을 붕괴시킴과 동시에 자본에 의한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냈다. 저택을 돌보던 하인들이 저마다 공장으로 몰려들었으나 그들이 부자가 될 수는 없었다. 이처럼 신흥 자본귀족의 탄생이 빚어낸 또 다른 계급의 비극은 세상이 변하더라도 사실은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을 따름이다.
북부에서 온 사람은 “사자나 표범이 떠난 자리를 약삭빠른 자칼이 차지할지 모른다”고 살리나를 설득했지만, 결국 그의 말대로 자칼의 세상이 되고 말았다. 영화의 마지막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살리나의 뒷모습에 숙연해지는 것도, 이 영화의 제목 ‘표범’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게 [레오파트]는 지금의 시대와 조우하고, 영화를 통해 나는 이 시대의 우울한 초상을 본다. 품격과 품위가 아무런 소용없다고 느끼는 이들이 지배하는 사회는 불행하다. 사자와 표범이 떠난 공간에 자칼이 들어온다면 그것은 진정한 변화가 아니라 권력자의 교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하수상하고 도무지 대한민국과 이 나라의 시민정신이 애초에 이랬나 싶을 정도로 혼란스럽다. 사자와 표범이 필요한 시대이고, 살리나의 품위가 그리운 시절이다.
[체인질링]은 흔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그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나 이야기에 있어 결코 흔하지 않은 영화다. 아이가 유괴된 후부터가 아니라 유괴되었다던 아이가 돌아온 후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들을 전개하기 시작했던 초반부부터, 이제 그만 끝났으면 했음에도 계속하여 이어지던 결말부까지.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마지막 한방울까지 짜내는 것처럼 보였던 결말부에 이르러서는 이 잔혹한 영화에 진력까지 느끼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혹은 어느 정도까지 [체인질링]은 분명 잔혹한 영화 - 아마 대체로 동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이다. 자신의 아이를 찾고자 했던 여인의 말이 옳았음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이 그녀의 아이를 죽였다는 이의 고백 뿐이라니! 천국에 가겠다며 마땅히 알려주어야 할 사실에 대해 입을 닫은 (또한 지옥에 가야 마땅할 것처럼 느껴지는) 사형수의 뻔뻔한 태도도, 그녀가 그토록 간절히 알고자 하는 사연을 풀어줄 수 있는 이가 세상에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절망감도, 얼핏 보면 시간과는 무관하게 하염없이 계속될 그녀의 싸움의 막막함까지도, 영화가 그녀에게 허락한 잔혹한 인생일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이 영화가 내게 잔인하게 다가왔던 까닭은, 그녀의 싸움이란 온전히 그녀의 싸움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정의로운 사람들이 그녀와 함께 하며 그녀를 위기에서 구출해내기도 하고 그녀의 겉보기의 성공에 힘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싸움의 본질이 무엇이었던가? 그 본질이란 여인이 목사에게 말했듯 - 나는 당신의 사역 따위는 관심 없어요 - 부패경찰을 타도하고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거창한 목표가 아니다. 내 아이를 찾아주세요라는 훨씬 개인적이고 소박한 것이다. 따라서 경찰청장이 물러나든, 시장이 물러나든, 고통받았던 여인들이 해방되든 그것은 그녀에게는 아마도 부가적인 성과에 불과한거라 생각한다. 그게 얼마나 큰 성과인지 몰라서 하는 말도 아니고, 목사의 정의를 의심해서 하는 말도 아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녀의 아이가 살아 있는 한 그녀의 싸움은 끝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불의를 처벌한 후 목사는 여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그만 받아들이라고, 자식도 그걸 바라고 있을거라고. 이 말은 공교롭게도 경찰이 그녀에게 했던 말과 같은 것이다. 이 두 말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리고 누구를 위해서 한 말이냐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또한 비슷한 의미도 가지고 있다. 그 의미를 잔인하게 표현하자면 "이제 내가 할 것은 다 했으니 나는 손을 떼겠소. 이제 가능성 없어보이는 싸움은 그만 하시오."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불의를 처벌한 순간 목사의 싸움은 끝났다. 잘못된 아이를 찾아준 순간 경찰의 싸움이 끝난 것처럼. 물론 이 둘도 같은 것은 아니다. 경찰은 자신의 필요만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녀를 고통으로 몰아넣었지만, 목사의 필요는 그녀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고 거기까지 그녀를 도와주었으니까. 하지만 본질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보자. 그 재판 이후 뭐가 달라진게 있는가.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녀의 아이는 여전히 살아있을지도 모르고, 그 아이는 그녀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여인은 아직 해야할 일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잔혹한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독이 그녀에게 [클레오파트라]가 아니라 [어느 밤에 생긴 일]을 허락해주어 좋았다. 아이의 명예를 살려주어 좋았고, 아이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주어 좋았다. 아이가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모성에게, 자신의 싸움은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 짓겠다는 호기를 가진 여인에게 아이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끝모를 고통이 아닌 삶의 희망이자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체인질링]은 세상을 바라보는 그 시선에 있어서나, 이야기를 풀어내고 감정을 터뜨리는 연출에 있어서나 공력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게다가 배우들의 연기마저 설득력 있으니 이 영화는 걸작이라 부를만한 대부분의 것들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 이맘 때 즈음일 것인데, 2008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관한 글에서 나는 ‘꿈처럼 꿈꾸듯이’ 고전영화의 향연 속에 빠져보라고 권한바 있다. 그런데 정작 내 자신은 그 꿈에서 너무 쉽게 깨어나고 말았다. 무슨 말이냐면, 공교롭게도 친구들 영화제를 기점으로 신상의 변화가 생기는 바람에 시네마테크와의 꿈꾸기에 열중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설사 그렇다고 한들 사고체계의 작동패턴마저 변하지는 않는 법. 그러니까 12월 서울독립영화제로 막을 내리는 영화저널리즘의 여정은 언제나 1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로 시작되곤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내게 친구들 영화제는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진군 나팔소리와도 같은 행사인 셈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짐작했겠지만, 올해 영화제는 극심한 환율여파로 인한 프린트수급비용 상승 때문에 예년보다 적은 상영편수로 운영된다. 하지만 괜히 시네마테크이고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인가. F.W.무르나우의 <선라이즈>로 열고 로버트 알드리치의 <캘리포니아 돌스>로 닫는 이번 영화제는 라인업만 보더라도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푸념이 엄살로 들릴 만큼 알찬 섹션으로 구성되었을 뿐 아니라 개별 작품 또한 만만한 것이 없으니, 맘 푹 놓고 가서 보고 즐기고 탐닉하면 될 일이다.
몰락한 감독으로 출연해 자신의 처지를 완벽하게 연기한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의 <선셋대로>와 그가 연출한 걸작 <탐욕>에서부터 태국의 신성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열대병>까지, 여기에 공효진과 서우를 서울아트시네마의 스크린에서 재회한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지 않나? 아! 니콜라스 레이의 <실물보다 큰> 또한 놓치면 후회할 작품이고, 숨이 멎을 정도의 매혹적인 금발미녀 로렐라이로 변신한 마릴린 먼로의 속삭임에도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줄스 다신의 <밤 그리고 도시>와 르네 클레망의 <들판을 달리는 토끼>가 가장 구미를 당기고, 이탈리아영화 마니아 아니랄까봐 난니 모레티의 <4월>과 마르코 페레리의 <그랜드 뷔페> 또한 놓치지 않을 생각이다. 사실 이중에는 DVD로 소장하고 있어 필요하면 언제라도 꺼내볼 수 있는 작품도 상당수이다. 이미 보았고 더러는 기억에 가물가물한 영화도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시네마테크에 갈 것이다.
누군가 굳이 이들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보라고 한다면, 세월의 연륜으로 겹겹이 쌓인 포장지 위에 극장관람용이라는 당위성까지 보태어 매듭지어진 의심할 바 없는 고전이라고, 그리고 그것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시네마테크뿐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예컨대 <카비리아의 밤>에서 흥겹게 연주하는 소년들에 둘러싸인 줄리에타 마시나의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어찌 작은 화면으로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비록 꿈같은 밤이 지난 후 비루한 현실에 다시 침잠하게 될지라도 그것이 영화의 존재 이유라면 기꺼이 꿈꾸고 싶어 하는 동종의 관객과 함께 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지 않느냐는 말이다.
아직도 무슨 영화를 볼지 어떤 감독과 만날지 고민하고 있다면, 그만 멈추기를 권한다. 2009년 2월 시네마테크에서 보낸 한 철이 절대로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언제 무엇을 보더라도, 영화이외의 것들까지 풍성하게 담아올 수 있을 테고 우리가 할 일은 설레는 마음 담긴 낙원동으로 나가는 발걸음이면 족할 터이니, 다른 영화관들과는 도저히 혼동할 수 없는 유일한 그곳, 서울아트시네마로 가자.
영영 가지 않을 것만 같던 2008년이 지나고 2009년이 시작되었다. 한 해가 시작되면 으레 그렇듯 사람들의 마음엔 희망과 다짐의 각오가 많아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극장을 전전하는 영화애호가들 사이에서 새해가 밝았다는 건 곧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이하 친구들 영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올해도 어김없이 ‘친구들 영화제’는 연초를 밝힌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일 년 중 가장 북적이는 시기, ‘2009년 친구들 영화제’는 1월 29일부터 3월 1일까지 약 한 달동안의 촛불을 밝히며 관객을 기다린다.
지난 15일 오후 3시, 인사동 리틀 차이나에서 네 번째 ‘2009년 친구들 영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일반적인 기자회견 장소보다는 다소 작고 오붓한 장소에서 분주하게 영화제에 대한 소개가 시작되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와 김홍록 한국시네마테크 협의회 사무국장, 그리고 박찬욱 감독, 전계수 감독이 참석하여 올해 ‘친구들 영화제’의 슬로건이 ‘공간의 발견, 행복의 시네마테크’라는 것을 발표한 후 영화제와 더불어 시네마테크의 1년 사업계획을 간략히 설명했다.
박찬욱: 일 년 내내 이 날을 기다리며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즐겁고 행복하고 마음 설레는 시간입니다. 다른 친구들은 어떤 영화를 골랐을지, 나는 어떤 영화를 선택해서 관객과 함께 웃고 떠들며 볼지를 고민하는 시간도 행복하지만, 무엇보다 함께 영화를 보는 자체가 가장 소중한 시간입니다.
안성기: 시네마테크에서 한국영화를 볼 기회가 좀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우리의 지나간 한국영화를 통해 우리 영화가 어디서 왔고, 또 어디로 갈 것인가의 길을 찾아보았으면 합니다. 영화를 가지고 계신 분, 영화를 볼 분들이 모두 시네마테크에 함께 모였으면 좋겠습니다.
변영주: 시네마테크의 영화들은 꼭 봐야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속에 우리보다 먼저, 우리보다 일찍 세상에 대해 고민했던 수많은 선배들의 주옥같은 이야기들이 숨어있기 때문이고, 그런 영화들은 시네마테크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친구들 영화제’에는 20여명의 친구들이 시네마테크를 위한 열렬한 사랑을 보낸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특별히 영화감독을 프로그래머로 초빙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박찬욱, 오승욱 감독이 객원 프로그래머가 되어 가장 좋아하는 악당들에 대한 ‘최선의 악인들’이라는 섹션을 선보인다. 이 섹션은 박찬욱 감독과 오승욱 감독이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던 것으로, 언젠가는 악인들의 영화를 대규모 상영하고 싶다는 각 감독들의 포부가 녹아있는 프로그램이다. 또한 이번에는 배우 이나영씨를 포함해 정재영, 김주혁, 신하균, 박해일, 김강우, 하정우씨가 참여한 배우들의 후원모임인 ‘시네마엔젤’이 후원기금을 조성해 프린트로 구매한 로베르 브레송의 <무셰트>를 상영한다. 시네마테크의 ‘시네마엔젤’은 매년 후원을 통해 고전 명작 프린트를 구매해 지속적으로 상영을 할 것이라는 장기 계획을 가지고 운영을 시작한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할리우드 고전 컬렉션’이다. 이미 시네마테크에서는 지난 2008년 고전 영화의 발전을 위해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 네 편을 프린트로 구매했고 기획전을 가졌다. ‘할리우드 고전 컬렉션’은 이에 대한 연장으로, 정성일 영화평론가, 김영진 영화평론가, 오승욱 영화감독 등이 작품 선정에 참여했다. ‘할리우드 고전 컬렉션’의 영화들은 <선라이즈>, <분노의 포도>,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실물보다 큰> 등이다.
매년 관객의 직접 투표로 선정되는 ‘관객들의 선택’에서는 아핏차풍 위라세타쿤의 <열대병>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상영된다. 또한 영화 상영 외에 시네마테크가 야심차게 준비한 부대행사로는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영화인들을 촬영한 사진들이 소개되는 ‘서울아트시네마 후원 사진전’이 열린다. 영화제 기간 내내 아트시네마를 밝힐 사진전 또한 다양한 영화인들로 꾸려져 있어 영화에 대한 따듯한 애정을 한가득 보여줄 예정이다.
2009년의 시네마테크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제법 분주하게 움직일 예정이다. 시네마테크는 교육적, 문화적 목적의 영화상영이라는 본연의 활동을 확고히 다지기 위해 2007년부터 운영해왔던 ‘한국시네마테크 협의회 필름 라이브러리’는 앞서 말한 ‘할리우드 고전 컬렉션’을 구축하여 영화제 기간에 맞춰 상영한다. 2009년에는 이를 확대해 6편 이상의 작품을 구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한 배우들의 후원기금으로 조성된 ‘시네마엔젤’ 또한 지속적인 고전영화 애호를 밝힐 예정이며, 올해에는 ‘시네마테크 네트워크 지원센터’를 설립해 연 4회 가량 진행되던 지역순회상영을 확대하고 지역 시네마테크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영화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전망이다. 시네마테크의 오랜 바람인 ‘시네마테크의 공간’ 확보를 위한 노력도 추가된다. 아직까지 많은 제약이 따르는 전용관 설립에 관해서는 추가로 연간 연구사업과 해외 사례를 토대로 영화의 공간을 지키기 위해 힘을 쓴다. 아울러 현재의 공간인 낙원상가를 긍정하기 위한 일환으로, 서울 최초의 전문음악영화제인 ‘낙원음악영화제’를 매년 개최할 예정이다.
영화감독 박찬욱, 김지운, 류승완, 배창호, 변영주, 오승욱, 이명세, 이현승, 전계수, 정가형제(정식, 정범식), 정윤철, 홍상수, 영화배우 권해효, 안성기, 하정우, 영화평론가 김영진까지 모두 17명의 친구들이 ‘2009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관객과 함께 참석한다. 이들은 모두 스스로 정한 영화에 대한 짤막한 소개와 더불어 관객에게 영화를 소개하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영화제를 기다리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이토록 많은 영화인들의 사랑을 담은 영화제는 ‘친구들 영화제’가 유일하지 않을까. 그들이 입을 모아 시네마테크의 영화를 옹호하는 것은 분명 너무나 매혹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번 겨울, 영화 사랑으로 똘똘 뭉친 이곳 시네마테크에서 매서운 한파에 대항하는 자세를 길러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의 가장 든든한 친구 ‘영화’가 당신에 대한 지지를 아끼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여기 40년을 함께 한 오래된 파트너가 있다. 한 평생을 ‘농군’으로 살아온 할아버지와 그의 발이자 충직한 일꾼이 되어 준 한 마리 늙은 소. <워낭소리>는 정직한 카메라와 시종일관 툴툴대면서도 이 둘의 관계를 이해할 수밖에 없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빌려 우리네 소소한 삶의 위대함을 노래한다. 특히나 문자 그대로 ‘묵묵히’ 일에만 매진하는 아버지, 그리고 그 옆에서 또한 말없이 제 몫을 다하는 소의 이미지가 묘하게 겹쳐지며 여러 해석의 차원과 큰 울림을 가져다주는 작품이다. 특히나 속도전의 가치를 강요하는 이 시대에 할아버지와 소의 느릿하지만 묵직한 진정성은 아릿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방송 다큐멘터리로 잔뼈가 굵은 이충렬 감독이 3년 넘게 할아버지의 삶을 기록한 <워낭소리>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최우수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한데 이어 2009 선댄스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경쟁부문에 진출해 있다. 이제 우리는 검증된 양질의 다큐멘터리를 직접 스크린으로 만날 일만 남았다. 그 전에 이충렬 감독이 직접 들려주는 작품의 뒷얘기에 귀 기울여 보자.
하성태: 곧 선댄스영화제에 참석한다고 들었는데, 요즘 인터뷰 때문에 정신없겠어요.
이충렬: 살다보니까 선댄스도 가고, 미국도 가보고. 20일에 가서 한 폐막에 맞춰 26일까지 있을 거예요. 제 선택이라기보다 선택을 받은 거라 모든 것이 당황스럽고 반신반의해요. 실감도 나지 않고요. 영화에 대한 열망이 없던 방송 PD였기 때문에 더 더욱 그렇고요. 가보면 또 달라지겠지만 지금은 생소하고 상당히 부담스러울 뿐이죠. 다만 <워낭소리>를 사람들이 좋아하고 호감을 가져주니까 좋긴 한데. 어떻게 표현을 못하겠어요.
할아버지는 건강하세요?
옛날보다 안 좋으시죠. 나이가 들어가시니까. 노환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니니까. 일은 계속 지금도 하세요. 할머니가 건강이 좀 안 좋으신 거 같고. 젊은 소가 이명박씨를 닮은 것 같아요. 엄청난 속도전에 대단히 빨라요, 무식하고.
어린 소들이 일반적으로 그런 줄 알았는데 그 소 성격이 좀 더 그런가 봐요?
그 소가 성격이 그래요. 그래서 할아버지랑 잘 안 어울리죠. 할아버지는 소를 타고 간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은 배달된다는 느낌이 드니까. 역시 파트너는 정해지는 거 같아요. 그 할아버지와 소와 관계가 깨져버렸으니까. 영혼이 죽어버리면 육신이 남더라도 결과적으로 오래가지 못하겠죠.
영화 속에서 제일 짠한 장면이 할아버지가 술 한 잔 걸치시고 (늙은 소와)같이 죽고 싶다고 말할 때였는데요.
그 양반은 이렇게 보면 되요. 그 분을 신성화하거나 천연기념물로 볼 소지가 있어요. 농약을 치지 않고 사료를 안 쓰는 농법이 대단한 철학에서 나온 걸로 볼 수 있는데 그게 절대 아니에요. 불편한 다리를 가진 할아버지가 자기 일부이던 소가 없어지면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매달리는 거죠. 그렇게 미화하면 안돼요. 제가 그 분들 삶을 ‘오픈’시키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 이유고.
아, 맞아요. 그랬다간 ‘기봉씨’처럼….
어휴. 기봉이 전에 <그 곳에 가면 영자가 산다>는 인간극장이 있었어요. 아버지는 피살됐고, 영자는 절로 들어가 비구니가 됐어요. 그럼 안 된다는 거죠.
다큐멘터리가 무서운 부분 중 하나가 그런 점 인 것 같아요.
조선일보에서 그 쪽에 사진을 찍으러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왜 이렇게 사람들을 특화시키려고 하는지. 전 할아버지를 특화시키려고 한 적이 없거든요. 제가 오랫동안 할아버지를 괴롭혀 드렸잖아요. 저 때문에 소가 죽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그 분 삶은 자신 뜻대로 가야지 구경거리가 되면 안 되잖아요. 그렇게 된다면 모든 원인은 저한테 있는 거고요. 아드님한테도 알려지게 하지 말라고 부탁드렸어요. 그런데 SBS에서는 벌써 내려갔다 왔다고 하더라고요.
다큐멘터리 작가들의 딜레마가 그런 부분 아닐까요? 카메라와 대상과의 거리 설정 문제랄까. 시간도 시간이고 얼마나 대상과 관계를 잘 맺는가도 문제고요.
제가 원래 방송으로 시작했는데, 방송 시스템은 작가들이 리서치를 많이 하고 PD들이 현장에서 찍은 걸로 협의해서 편집을 해요. 저는 사실 그런 시스템이나 제도에서 실패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혼자 작업을 하면서 실패도 많이 했어요. 방법은 깨지고 실패하면서 배우는 거 밖에 없어요. 그래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워낭소리>를 시작하던 당시는 멋있게 얘기해면 비장하고, 그대로 얘기하면 마지막 선택이었어요. 실패를 거듭하면서 돈도 많이 깨지고 울화병으로 얻은 공황장애 때문에 일상생활이 힘들었거든요. 그렇게 황폐해진 순간에 마지막 승부수를 건 거죠. 이전의 문법이나 화법으로는 안 되는구나 싶어서 과감히 방향을 틀었는데 다행히 성공을 한 것 같아요. 모든 감독들이 자기만의 세계에 매몰되는 경험을 한 번은 다 하거든요. <워낭소리>는 철저하게 나보다 관객들이 볼 때 어떤 작품이 될까를 염두에 뒀어요.
그럼 극영화 같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조금 황당하겠어요. 어차피 다큐멘터리도 편집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데 말이죠.
우리가 말하는 독립이라는 것이 확고한 테두리를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원래 자기 땅이 있었는데 뺏겼으니 나라를 찾아 독립 운동을 하는 거고(웃음). 다큐 정신이라는 걸 잘 알고 거기에 충분히 동의해요. 그런데 다큐라는 이름으로 다 용서되고 재미없어도 된다는 건 아닌 거 같아요(웃음). 그렇다고 해서 ‘대중 추수적’으로 천박하게 기생하면서 비유를 맞추는 건 문제가 있겠지만.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다큐 본연에 맞을지 모르지만 ‘리얼’이라는 것에 대해 늘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선택사항인지 의무사항인지 말이죠. 결국 삶을 훼손했느냐 조장했느냐의 문제겠죠. 있는 그대로의 원형질을 가지고 편집해도 날 것은 있는 그대로기 때문에 감흥이 없어요. 악센트도 없고. 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내 문법이나 화법을 썼을 뿐이지 본질적으로 드라마다, 아니다 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워낭소리>의 포인트가 일하고 늙고 사라진다는 존재론적인 의미를 반추했다면, 근본적으로 사라짐에 모든 것이 걸려 있어요. 그래서 정서를 차근차근 단층들로 쌓아 올린 거죠. 할아버지와 늙은 소, 할아버지와 젊은 소, 젊은 소와 늙은 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관계, 할머니와 늙은 소, 젊은 소의 관계들을요. 그래서 촬영도 카메라 두 대를 가지고 리액션을 다 찍었어요. 계절도 그래요. 그저 관계에 집중하다 보니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온 거에요. 그저 계절을 찍는 것과는 접근 방식이 좀 달라요. 그래서 좋은 풍경도 뺐어요. 단지 기계적으로 계절을 기록한 것처럼 보이기 싫어서요.
인물들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담는 것이 중요했다는 얘기로 들려요.
미디엄 숏, 롱 숏이 많은 이유도 딱 하나에요. 할아버지와 소의 걸음처럼 내가 그들의 일상에 템포를 맞춰야지 내가 빠르거나 느려버리면 이미 마찰음이 나고 자연스럽지 못한 거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카메라워크가 결정이 났고 그 형식이 최적의 작법이었던 거죠. 이야기를 가장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하다 보니 그렇게 편집을 한 건데 그게 죄라면…(웃음).
아버지와 소라는 주제 자체가 굉장히 설득력 있어요. 그 아이템을 잡은 시기가 2000년이라고 들었는데 꽤나 오래됐네요.
독립 방송PD들은 소재에 굉장히 민감해요. 방송은 아이템을 어떤 걸 잡느냐에 따라서 반은 승부가 갈리니까. IMF 시기에 가부장이 붕괴되면서 수난을 당하는 고개 숙인 가장의 이미지가 많았잖아요. 그래서 저 또한 아버지에 관심을 가졌고요. 전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잊혀 지는 거라는 걸 독립 PD생활을 하면서 직감했어요. 꿈과 현실이란 부분에서 괴로워하며 줄타기를 했던 시기였거든요. 그러면서 고개 숙인 아버지와 그 슬픈 사라지는 일을 매치시킬 수 있었죠. 이충렬이란 사람이 꿈을 가졌지만 별 볼일 없이 명함도 못 꺼내고, 결혼도 못하고 있었는데, 그런 잊혀 진다는 위기감이 아버지에 대해 너무 이기적으로 살았다는 느낌과 맞물린 거죠. 전 무언가를 대비시킬 때, 가장 최악일 때 반대로 가장 최고였던 걸 보여주면 그 간극들이 이상하게 마찰을 일으킨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유년 기억 속에 봉인되어 있던 아버지와 소, 그들의 전성기를 되살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아버지의 느낌이 사금파리 같았거든요. 사금파리는 깨어진 그릇의 파편들이잖아요. 한때는 빛났으나 지금은 필요 없어진 사금파리와 같은 존재들이 아버지와 소라는 느낌이 들었던 거죠.
그럼 점에서 캐스팅이 정말 탁월하단 생각이 들어요.
그들의 교감과 헌신을 통해 소위 일한다는 것, 나이 든다는 것, 병든다는 것, 사라진다는 것의 존재론적인 의미들을 곱씹어 보자, 되씹어 보자는 측면으로 기획을 했어요. 그래서 바로 2000년도에 캐릭터를 찾아 나섰는데 조건이 필요했죠. 그 대상이 좀 ‘올드’해야겠다, 정상적인 거 보다 핸디캡이 있어야겠다. 그래야만 그들의 고난과 헌신이 빛을 발하고 사람들이 절실하게 느낄 것 같았어요. 쇠락한 고향에, 그 고향을 닮은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닮은 소. 그리고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제가 방송 출신이다 보니 뿌려놓은 곳이 많잖아요. 예전에 일했던 이장님, 농협, 우시장 이런 대 개인적으로 전화를 드려서 연락망을 확보하고 수시로 연락을 드렸죠.
그렇게 몇 년이 걸린 거죠?
2005년도에 봉화 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대상에 대한 감은 왔지만 이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어떤 사람이고 소가 어떤지 몰라 정보를 리서치 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중요사항을 찍으며 생활해 보니 그 분의 일상이 보이고, 동선이 보이더라고요. 2005년 겨울에 젊은 소가 들어오면서 대결 구도가 보였고요. 그 관계들이 보이니까 밀어붙였죠. 2006년 12월에 소가 죽었는데 2007년 4월까지 젊은 소를 찍었어요. 햇수로 3년이 걸린 거죠.
촬영이 힘들었다는 것이 짐작이 가는 이유 중 하나가 촬영감독이 여러 명이더라고요.
더 많았는데 뺀 거예요, 너무 많아서(웃음). 제 돈으로 완성한 것이 아니니 그 사람들이 저를 기다려 주지 않잖아요. 한두 달 외국 나가는 것이 돈 더 되고 하는데 무작정 기다려줄 수는 없으니까요. 전체적인 기조는 명확했어요. 핸드핼드는 일체 말고 죽든 살든 지켜봐라! 특히 비디오는 못 찍어도 좋으니 오디오는 찍어라. 왜냐하면 카메라를 들이 대면 원형질이 안 나와요. 할아버지가 자꾸 의식하고 다른 말을 하니까. 그래서 “그림은 눈에 보이는 허상일 수 있다, 차라리 소리에 집중해라”고 했죠. 소리가 좋으면 그림은 별로 중요하지 않거든요.
제목도 워낭 ‘소리’잖아요. 자연의 소리와 화면이 매치되면서 사색의 순간을 제공한다는 점이 매력 있었어요.
그림은 다 똑같아요. 일상은 반복되니까. 아무리 예쁜 그림을 넣어도 사람들이 정작 느끼는 것은 자기 유년의 기억이나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는 소리에요. 주술 같은 거죠. 새소리, 소 울음소리, 아버지 헛기침, 신음 소리. 보는 것은 큰 감흥이 없어요. 눈 먼 사람이나 귀 먹은 사람이나 다 똑같이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리얼리티라고 생각하거든요.
반면 촬영으로 강세를 준 부분도 있잖아요. 우시장에서 고속촬영으로 찍었다거나….
아, (우시장에서 소를 팔러 갔을 때)집으로 가라고 하는 장면이요? 그건 그렇게 생각했어요. 어떤 순간보다 당황스러울 때 귀가 먹먹하고 정지된 것 같잖아요. 그 땐 할아버지 생에 있어 가장 치욕적인 순간일 수 있어요. 소도 두 번 눈물을 흘리는데, 처음이 헤어짐의 눈물이라면 두 번째는 자존심의 눈물이죠. 그 장면은 그냥 기법이라기보다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젊은 소가 할아버지가 쳐서 쓰러뜨리는 장면에서 정지 컷이 있잖아요. 그건 제가 (화면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제가 잡혔기 때문이에요. 그걸 잘라내기 위해서 정지 처리 한 거고요. 처음부터 지켜보는 것이 의도였기 때문에 과감하게 스틸을 걸었던 거지 다른 의도는 없어요.
하하. 저도 그렇고 관객들도 굉장히 놀랐는데 그런 사연이 있네요. 사실 그런 얘기들 있잖아요. 종군 사진기자가 급박한 상황에서 사진을 찍어야 하느냐, 사람을 구해야 하느냐 하는, 직업 정신에 관한.
위험할 때 사람을 구하는 게 우선이지, 아무리 직업이 좋아도 그건 나쁜 놈들이죠. 직업 정신은 무슨. 자기가 총 맞았을 때 카메라를 안 놓으면 직업 정신인데 남 죽을 때 좋은 장면 찍으려고 하면 나쁜 놈들이죠.
내레이션은 할머니 목소리로 대체했잖아요. 그건 할머니의 인터뷰 부분과 실제 화면과 겹쳐 놓은 목소리를 모두 사용한 거죠?
두 가지를 생각했어요. 할머니를 내레이터처럼 보이게 하자는 것도 있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서로 대화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그런 기법을 쓴 거죠. 인터뷰 같지만 서로 주고받는 대화처럼 보일 수 있게.
개인적으로 욕심이 났던 장면은 없었나요? 이런 건 꼭 찍고 싶었다 하는.
초반엔 임팩트 있는 장면을 잡고 싶었어요. 송아지 낳는 장면도 그렇고. 그런데 며칠을 기다려도 안 나와서 출발했더니 3시간 있다 낳았다고 하더라고요. 외양간이 무너졌다고 해서 달려갔더니 불도저가 밀어버리고. 솔직하게 길 위에서 소가 쓰러져 죽기를 바랐던 마음도 있었어요. 일 하다가 처참하게 죽었으면, 하는 사악한 마음도 가졌었고.
다큐멘터리 작가라면 충분히 그런 욕심을 가질 수 있잖아요.
그런데 편집하고 관객 반응을 보면서 큰일 날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장면을 포착해서 넣었다면 영화가 잘 되지 않았겠다 싶어서. 예를 들어 늙은 소가 죽을 땐 제가 찍었더니 더 비장한 마음으로 거칠게 찍었어요. 그런데 그 부분 첫 장면이 할아버지가 넘어 진 늙은 소에게 일어나라고 욕하는 거잖아요. 사실 소가 넘어지는 장면이 있었다면 관객들이 저 할아버지 정말 잔인한 사람이다, 어떻게 소가 쓰러져 죽을 때까지 가혹하고 노동을 시키느냐고 했을 거예요. 뒤에 감동이 전혀 살아날 수 없다는 말이죠. 차라리 못 찍은 것이 더 좋은 효과를 내지 않았나 싶어요. 사람들은 매번 센 걸 원하지만 그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느꼈죠. 또 그런 쪽으로 승부하면 안 되겠구나, 쓸 때 없이 욕심내지 말고 있는 그대로 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어요.
굳이 소가 쓰러지지 않아도 그간 할아버지의 감정이 켜켜이 쌓여있고 전달이 된 거 같아요.
딱 하나에요. 감정을 켜켜이 단층처럼 쌓아갔잖아요. 지금 얘기한 부분들이 그걸 허무는 작업이었고, 그것이 관객들의 가슴을 치는 걸 원했죠. 그건 철저히 (카메라가) 관계 속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놓친 장면 중에 아쉬운 장면이 있다면요.
할아버지와 소의 관계겠죠. 더 좋은 장면이 많았어요. 서로 교감하는 장면도 그렇고. 제가 상주하면 더 찍을 수 있었겠죠. 근데 또 너무 많으면 도식적일 수 있어요. 적당한 게 좋죠. 전반적으로 충만한 거 보다는 조금 허하게 비쳐졌으면 싶었어요. 커트도 너무 넉넉하면 사람들이 배부를 거 같아서, 간질간질한 상태에서 끊어버렸어요. 보여줄 때는 확실하게 보여줬지만. 머리로 인식하기보다 가슴으로 인식하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철저하게 어린 시절에 느꼈던 정서를 가지고 진행했죠.
그 장면은 일부러 연출한 건가요? 읍내에서 농민들이 FTA 관련 시위를 하잖아요. 그 앞에서 할아버지와 달구지를 끄는 소가 딱 멈춰 서자 관객들이 자지러지던데.
자기 고집대로 사는 할아버지가 세상에 나가 달구지를 탄다는 것 자체로 구경거리가 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구시대의 질서와 새 시대의 질서나 풍경들이 부딪칠 때 어떤 문제가 나올까 고민했죠. 연출한 것이 아니에요. 할아버지와 어디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전 차를 타고 와서 먼저 동선을 잡았죠. 시위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때 바로 저거다, 저 앞을 지나면 그림이다 하는 감이 왔는데 다행히 (소가) 서는 거예요. 게다가 카메라가 두 대였으니 너무 쉽게, 너무 자연스럽게 찍었죠. 감독의 정치적인 의도라기보다 할아버지가 스쳐지나가는 풍경이고 삶을 구성하는 요소라고 봐줬으면 좋겠어요. 관점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게 봐야할 부분이고, 또 웃기려고 한 것도 아니고요.
만약 소가 안 죽었다면 영화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그랬다면 계속 찍었겠죠. 원래 의도한 것이 사라지고 늙는 것에 대한 기록이었으니까. 또 제가 방송 몇 년인데요. 소를 보니까 딱 심난한 거예요. 걸어가는 것 보니까 이미 다 죽어가요(웃음). 또 자주 넘어지기도 했었고. 중요한 건 그렇게 넘어지고 나서 소 얘기만 나오면 할아버지 얼굴이 진지해지는 거예요. 그때 갈 때까지 가도 되겠다 싶었죠.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추석 장면은 여러 감정들이 들더라고요.
부산국제영화제 버전은 좀 악의적인 편집을 했었어요. 자식들이 나쁘다는 걸 떠나서 할아버지 뜻 말고 자식들끼리 의사결정을 해서 소를 팔자고 하는 모습이 안 좋게 보였어요. 사실 모든 자식들이 그렇잖아요. 나도 저러는 구나 싶기도 하고. 우리 자식들의 모습을 초상해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워낭소리>가 부모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지만 나에 대한 반성문이기도 해요. 할아버지가 쓰러졌다 일어나는 장면도 그래요. 우리네 아버지들은 저렇게 쓰러지면서도 고난을 딛고 꿋꿋하게 일어서는데 우리 자식들은 안 그러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면 자기가 부모님한테 무얼 했나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런 느낌들을 바랐죠.
저도 많이 찔렸어요(웃음). 퓨전국악 그룹 ‘아나야’의 음악은 많이 쓰인 편은 아니지만 울림이 있더라고요.
오리지널 스코어하고 라디오 소리, 또 현장음이 있잖아요. 원래 라디오 소리로 음악이 많이 들어가는데 저작권 때문에 부득이하게 다 편집을 했죠. 의도와 다르게 뉴스 소리로 시사적인 내용을 넣을 수밖에 없었고요. 음악은 피아노와 대금 위주로 갔어요. 신파가 될 것 같아 이 친구들이 만들어 온 음악을 많이 잘라 냈어요. 그 보다 아쉬운 건 타이틀이 뜨고 소가 걸어갈 때 ‘봄날은 간다’란 노래를 쓰고 싶었거든요. 그 가사가 소의 인생을 표현한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적인 부분 때문에 쓸 수 없어 아쉬웠죠.
확실히 <봄날은 간다>가 대중적으로 명확하게 의도를 드러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나중에 음악다큐를 해 보려고 했는데 안 되겠더라고요.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안 되는 건 하지 말자 싶었죠(웃음)
좀 큰 얘기 해 보자면, 방송이지만 다큐멘터리 활동을 오래 해 왔습니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본인만의 자의식이 있다면요.
참 조심스러운 부분인거 같아요. 꾸준히 영화 쪽에서 다큐멘터리 활동을 해 왔던 감독도 아니고. 다큐의 본질은 같지만 역시나 표현 방법이 다른 거 같아요. 좀 더 원칙이나 본질을 확보하려는 쪽이 독립영화 진영이고, 좀 더 엄격하고 민감해 하는 것 같고요. 방송은 다큐라고 하지만 온갖 잡것이 다 들어가 있는, 돈으로 뿌려대는 테크닉이라고 할까요? 드라마 형식으로 촬영한다거나 CG를 쳐 바른다거나, 절대 그러면서 유익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는. 그건 현상적인 측면일 수도 있겠죠. 전 실패를 하면서 그간 가져왔던 생각을 바꿔왔어요. 저도 운동을 했기 때문에 그 연장선상에서 다큐를 도구로 봤어요. 다큐가 보통 시대적인 요구에 의해서 프로파간다로 시작됐음은 분명하지만 세상은 변해 가는데 자꾸 칼이나 총으로만 쓰려고 하는, 변혁이나 비판으로만 편식을 하려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어요. 저 개인적으로 그런 부분에 집착하다보니 실패했던 거 같고. 또 다큐는 치외법권 같았어요. 재미는 없어도 의미만 있으면 된다는. 그래서 특별히 관심이 없는 사람들한테서는 점점 멀어진 것 같고요. 너무 창작자만을 위한, 연출자만을 위한 다큐라서 그런 건 아닌가 싶고. 문제의식이 있고 철학이 잇는 건 좋지만, 관객들과 소통도 못하고 피드백이 없으면 안 돼요.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조리사가 이 음식이 건강에 좋으니까 맛이 없어도 일방적으로 먹으라고 편식을 시키는 건 안 되죠. 원형질이 보존되고 원재료에 리얼리티가 확보된다면 조미료를 뿌리더라도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저는 그것이 리얼리티를 손상시킨다고 보지 않아요. 원형질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 방식의 문제죠. 우리 일상은 판타지가 없나요? 우리가 꾸는 꿈이나 상상은요. 눈에 보이는 것만을 리얼리티라고 규정해버리니까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다큐멘터리도 판타지가 가능하다고 보거든요. 지금은 분명 다양성이 존재하잖아요. 저도 살아보니 구호나 이슈보다 나이 먹을수록 모든 게 내 마음으로 향하는 거 같아요. 자기성찰이라고 해야 하나? 일상으로 들어와서 내면으로 천착하는. 전 소소함의 위대함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할아버지나 소와 같은 무명씨들의 소소함,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이 제가 앞으로 하고 싶은 다큐멘터리에요.
정리를 하자면 사적인 거에서 보편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그런 주제들 말인가요?
왜냐하면 저도 사적이지 않은 것들을 많이 고민해 봤지만 우리 사회는 운동가들도 그렇고 그런 분들이 너무 과잉이에요. 그래서 나 같은 사람들은 일정정도 사적인 부분을 긁어주면 더 좋겠다 싶은 거죠. 어떤 사람들은 다큐를 혁명이라는 마음으로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 시인이라고 봐요, 사람들 마음을 바꾸는. 제가 하는 작업이 대단하지 않고 작은 부분이지만 인생을 살면서 사소한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어요. 일상을 가장 잘 전달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게 극형식이어도 상관없을 것 같고요.
많은 분야를 섭렵하다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를 해 봐야겠다 싶었던 건 언제인가요?
처음엔 애니메이션을 했는데 그림이라는 작업이 완전히 단순 작업공이에요.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세상을 만들어야겠다 싶어 연출 쪽으로 방향을 틀었죠. 일본에 가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좌절되면서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를 그리면 되겠지 싶었어요. 이것저것 다 해 보다 마지막에 만난 것이 다큐멘터리였어요. 전 비전향 장기수, 동성애자, 무당 같이 센 얘기를 주로 했었어요. <사이에서>가 나오지 않았다면 무당 이야기를 먼저 했을 텐데.
선댄스도 다녀와야 하고, 정신없겠지만 혹시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면요.
<워낭소리>보다 좋은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근데 사람이 간사해지더라고요. 이전 아이템들 다 파기해버렸어요. 당장 죽을 거 같았는데 살아나니까 예전 아이템들은 할 수 없더라고요. 사람들 잣대가 일단 <워낭소리>가 될 테니까 더 조심스러워지는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