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버스를 타고 거리를 지나다 보면 지하철역을 끼고 있는 사거리에서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되는 플래카드가 있다. “드디어 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드렸습니다!”라는, 다소 격양된 느낌이 드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그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는 벌써 3개월 전의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그 3개월 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플래카드는 이제 좀처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변함없이 그 자리에는 갖가지 정치적 담론, 때때로 코미디에 가까운 수다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탈모 걱정 끝’, ‘열흘 간 10kg 감량’ 따위의 ‘선정적인’ 광고가 잔뜩 기를 펴고 있는 바로 그 공간에 어떤 이들은 소수를 위한 다수의 희생 여론을 주장하고 있었다. 종로구 한복판에 큼직하고 푸른 색깔로 선정적 문구가 적어져 있는 플래카드 옆에 누군가 아주 작은 글씨로 ‘죄송합니다’라고 쓰여진 천 조각을 슬며시 붙여놓은 것이 눈에 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분되어지지 않는 자신감들이 한 군데 모여져 아이러니한 광경을 선사한다. ‘24시간 노래방 도우미 대기’와 같은 3류 광고보다 훨씬 자극적이다.
7월 22일, 미디어법은 수많은 의혹과 문제 제기 속에서도 굳건하고 치밀하게 통과 선언을 외쳤다. 한나라당은 수개월 전부터 미디어법을 새로 개정해 시행해야만 한다는 강력한 주장을 외치며 결국 해당 사안을 국회 표결까지 끌고 갔다. 그리고 그들은 보기 좋게 대승을 거두었으며, 투표에 관한 온갖 부정행위에 대한 명확한 증거 자료에 대한 모든 것들을 부정했다. 미디어법이 개정되면 수 천, 수 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져 민생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하던 그들. 하지만 서민을 위한 정치를 몸소 실천해야만 한다고 말하던 그들이 민생과 동떨어진 미디어법에 목숨 거는 것은 결코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니다. 말장난으로 시작된 ‘뉴라이트’가 어느새 대한민국 보수언론의 중축이 되어 폭풍처럼 밀려온 것을 재현이라도 하듯 그들은 정식 법률안이 아닌 미디어법을 개정해 ‘비민주’를 ‘법’이라는 잣대로 짓밟아버리겠다는 흑심이 숨겨져 있다. 미디어법을 강제로 통과시키기 무섭게 그들은 말을 바꾼다. “서민이라고 무조건 보호해줘야 합니까?” 텔레비전 앞에 앉아 수박을 우걱우걱 깨물던 친구가 냉큼 한 마디를 던진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재밌게도 지난 달 말 상영회를 가졌던 인디포럼 월례비행 7월의 프로그램은 ‘미디어’에 관련된 것이었다. 7월 월례비행은 미디어의 진실과 거짓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세 개의 단편을 연달아 상영했으며, 이 날 상영된 단편은 정승구 감독의 <이제는 말 할 수 있다>와 김경만 감독의 <각하의 만수무강>, 그리고 김은경 감독의 <뉴스페이퍼맨-어느 신문지국장의 죽음>이었다. 세편의 영화 모두 미디어법에 관한 ‘국회 전쟁’이 있기 전에 프로그래밍된 것이었지만, 흥미롭게도 그 시기가 정확히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이 날 차례로 상영되었던 세 단편들 모두 미디어 자체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을 공유하고 있었다. 하나의 극과 두 개의 다큐멘터리로 구성된 각각의 단편들은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관점에서 언론에 대한 냉혹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세 가지 단편 중 유일한 극영화였던 <이제는 말 할 수 있다>는 ‘대박’을 건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신입피디의 이야기이다. 피디는 우연히 춤을 추는 개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카메라맨과 함께 이 신기한 개를 취재하기 위해 급하게 제보자의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그들을 맞는 것은 ‘진짜로’ 춤을 추는 개가 아니라, 평범한 개를 ‘가짜로’ 춤추게 만드는 호들갑스러운 주인이다. 그리고 피디는 자신과 비슷한 취재를 하기 위해 제보자의 집을 방문한 신사적인 풍채의 한 신문기자를 만난다. 개가 제대로 춤을 추지 않자 피디는 안달 내며 어서 개를 춤추게 해보라고 화를 내지만, 그런 피디를 지켜보고 있던 신문기자는 개가 춤을 추든 춤을 추지 않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현 대통령의 취임 시기와 전 대통령의 직무 기간 등을 꼼꼼히 따지던 신문기자는 다음 날 그가 취재한 개와는 전혀 상관없는 기사를 일반화하고, 춤추지 않는 개에 당황한 피디는 살아남기 위한 묘안을 생각해낸다.
극영화인 <이제는 말 할 수 있다>는 믿을 수 없는 황당한 이야기(그러나 반드시 존재한다고 생각되는)를 통해 현실의 미디어를 풍자한다. <이제는 말 할 수 있다>가 재치 있는 구성을 통해 살짝 뒤로 떨어져 미디어를 비판한 작품이었다면, 이에 연달아 상영된 <각하의 만수무강>과 <뉴스페이퍼맨>은 우리가 간과한 현실 그대로를 정확하고 강렬하게 파고든 다큐멘터리들이다. 이미 많은 영화제와 매체를 통해 소개된 바 있는 김경만 감독의 <각하의 만수무강>은, 한국의 초대 대통령, 그리고 초대에서부터 3대까지 대통령직을 맡았던 이승만에 관한 영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2009년 현재의 상황, 현재의 기억, 그리고 현재의 논점에서 역행해 1960년대 과거의 이야기를 제기하는 이 영화는 오래 전부터 이어져 왔던 언론 통제에 관한 문제를 환기시킨다. <각하의 만수무강>은 축하와 찬양에 둘러싸여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승만에 관한 수 십 가지 ‘사실’영상들을 편집해 과거 한국 국민을 선동하던 ‘대한늬우스’의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절대 지도자로 군림하며 절대 복종을 신념 삼았던 이승만의 모습은 1960년대와 2009년 현재의 간극을 뛰어넘어 편집되어진 장면과 전환되는 이야기들을 통해 철저하게 풍자되고 무너져 내린다. <각하의 만수무강>은 과거로 자꾸만 역행하는 현 세태를 비판하기 위한 영화일 뿐 아니라, 과거를 잊어가고 과거에 대한 모든 사실관계를 외면하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일침을 가하는 영화다.
애초에 극영화로 제작되었으나 이후 다큐멘터리로 행로를 바꾼 <뉴스페이퍼맨>은 우연히 어떤 기사를 읽고 호기심에 잠겼던 김은경 감독의 개인적인 생각에서부터 출발한 영화다. 2006년 겨울, 그녀는 동아일보의 지국장이었던 한 남자가 신용불량으로 인해 자살을 택했다는 충격적인 기사를 접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거대 언론을 자처하는 세 신문사에는 이와 같은 내용이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뉴스페이퍼맨>은 동아일보의 갈현지국장이었던 고 박정수씨의 죽음에서 시작되어 침착하고 차분하게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큰 여론을 담당하는 ‘신문’에 관한 이야기를 건넨다. <뉴스페이퍼맨>은 판매부수를 올리기 위해 일방적이고도 강압적인 마케팅을 명령하던 본사의 횡포에 떠밀려 지국장을 그만 두었던 사람들의 사연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영화는 신문 판매 시장의 실제 운영이 얼마나 추악하고 공감할 수 없는 수법으로 이루어지는지를 묘사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쫓겨나야만 했던 전 지국장들의 아픔을 놓치지 않는다. <뉴스페이퍼맨>은 독립영화, 그리고 다큐멘터리만이 폭로할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는 장점을 여과 없이 표출하고 고발해낸다.
십 수 년에 이어 아직까지 대중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심슨 가족’이라는 폭스사의 시리즈 애니메이션이 있다. 이 심슨 가족은 때때로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표현으로 미국의 몇 기관으로부터 방영 제재를 받았던 적이 있었지만, 심슨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미국, 그리고 세계 각국의 세태를 비판하기 위한 안성맞춤인 도구로 존재하기 때문에 심슨 시리즈를 증오하거나 기피하는 ‘어른들’은 별로 없다. 심슨 가족에는 심슨을 괴롭히고 심슨이 사는 동네인 스프링필드를 궁지에 몰아넣는 악덕 회장 몬티 번즈가 등장한다. 그는 충분한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스프링필드 주민들을 증오한다. 주민들은 몬티 번즈가 그릇된 행동으로 여론의 미움을 사기 때문에 그를 미워하고 그가 없어지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심슨 가족 중 세 편의 에피소드에서 몬티 번즈의 ‘미디어 길들이기’ 전략이 능수능란하게 전개되는 것이 풍자적으로 나오는데, 미디어와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번즈 사장이 벌이는 수법은 혀를 내두를 만큼 황당한 것이다. 죽은 척 위장해 자신을 순교자로 떠받들게 만들고 종종 거대 자본으로 스프링필드의 모든 미디어를 사들여 자신에 대한 착하고 아름다운 광고를 내보내라는 명령을 내린다. 또한 그는 ‘멍청하고 둔한’ 심슨을 이용해 티끌만큼의 자선사업을 계획하여 모든 수익금을 빼돌리는 지나치게 정치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몬티 번즈의 ‘미디어 통합 계획’이 문득 생각나 심슨가족의 일부 시즌을 재관람하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심슨가족이 ‘현실’이 아닌 ‘허구’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설정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점점 발 디딜 곳을 잃어가는 작금의 사회는, 이제 심슨 가족이라는 애니메이션이 더 이상 그저 ‘만화’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수의 목을 조여 온다.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결말은 늘 선이 이기고 악이 패한다는 설정을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은 이러한 희망을 거는 사람 자체를 바보취급하게 되는 것만 같아 가슴이 답답하다. 우리에게 그런 희망은 사치로 전락했을 뿐일까. 전국의 88만원 세대가 사회의 진통을 낳는 대한민국의 이데올로그들을 등지고 ‘스펙 쌓기’에만 치중하고 있을 때, 그들은 국민의 눈과 입을 닫아 소통 자체를 불허하는 광경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부와 대기업이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방송과 신문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조종하는 세상, 생각만 해도 끔찍한 세상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구조조정에 대한 논의가 수면위로 부상했다. 최근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최악의 평가를 받아 강한섭 위원장이 지난달 사퇴하는 등 내홍을 겪고 있는 영진위가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17일 강승규 한나라당 의원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영진위의 미래를 논한다’ 토론회에선 ‘축소 개편론, 폐지론’ 등 영진위 구조조정에 대한 격앙된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먼저 김종국 홍익대영상대학원 겸임교수의 주제발표가 있은 후 영진위의 지난 10년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의 방향성 및 과제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발제자로 나선 김종국 교수는 “영진위가 실효성 없는 방만한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시장의 요구와 동떨어진 운영으로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고 했다. 또 “신인 육성, 영화인 복지, 해외시장 개척 등 핵심 사업만 남겨두고 예산과 조직을 축소해야 하며 다른 유관 기관과 연계 혹은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상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영진위의 영화산업 지원은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영화예술 지원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이관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정진우 한국영화인복지재단 이사장은 아예 “영진위는 정략적 단체”라며 “(영진위가 없던)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도 영화는 잘 됐다. 정부가 영화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영화를 죽이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또 “상명하복 식으로 정부가 영화인 위에 군림하는 영진위란 기구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정홍택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이사장도 “지난 10년간 영진위가 영화제작지원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출했다”며 향후 “순탄한 노사관계 정립” 등 조직개선이 당면 과제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최진욱 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영진위가 정치적 전환기에 탄생한 것은 사실이나 그간 정부와 현장 사이의 소통 창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한국영화 발전에 기여한 부분이 있다”고 말하는 한편 스태프의 일원으로서 영진위가 현장과의 소통에 원활하지 못했던 점은 인정하지만 향후 영화인들의 고용창출과 복지에 힘써서 영진위의 존재 목적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임창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은, 자본과 배급의 독과점으로 한쪽 진영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된다며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진영의 균형을 맞추고 분배를 조정하는 것”이 영진위의 주요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김시무 영화평론가도 “지난 10년간 영화산업의 성장에 영진위가 기여한 바가 크다”고 반론을 제기했고, “다른 예술 분야에 비해 영화판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산업 진흥을 위해서라도 영진위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영진위가 중요한 역할을 못해왔다면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한 정재형 한국영화학회 이사장은, “그간 영진위의 운영이 매우 독단적이었다”며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고 정부의 정책 홍보와 집행에 초점을 맞춰온 결과 영화판의 분열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영진위가 실질적인 연구, 분석 작업을 게을리했다며 정치성을 탈피하고 영화판의 공동체정신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의 논의에서 알수 있듯이 영진위 축소, 무용론을 주장한 토론자들의 공통된 지적은 영진위가 영화인과 관객을 위한 기구가 아니라 정부의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이었기 때문에 영화산업 발전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현재의 9인 위원 합의제가 비효율적이고 정치적인 운영이라는 폐단을 가져왔다며 일인 독임제로의 전환을 요구했다. 또 발제자 김종국 교수가 작성한 보고서 내용중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영진위의 방만한 조직 운영에 대한 지적과 함께 조직과 예산의 축소를 주장했다. 그러나 위상과 역할이 다른 기관들 간의 예산 및 인건비의 단순비교를 영진위 비판의 근거로 삼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영진위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지명혁 위원장도 “영등위의 예산은 심의의원들에게 주는 수고료와 기관 운영 예산 정도이며 사업을 따로 기획하고 수행하진 않는다. 하지만 영진위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는 만큼 영등위와 대등하게 비교할수 없다”고 밝혔다.
합리적 비판 대신 비난 난무, 실질적 대안 모색해야
이날 토론회는, 주제발표에서 영진위의 예산과 규모가 비효율적으로 방대하며 현 노사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는 내용을 지나치게 강조해 영진위 개혁을 위한 객관적인 비판보다는 이념에 근거한 사실 무근의 비난들이 난무하는 등 토론회의 주최 목적에 의구심을 갖게 할 정도였다. 특히 사회를 맡은 김창유 용인대예술대학원장은 합의제와 독임제에 관한 취사선택을 토론의 중심 의제로 몰고가며 현 합의제의 폐단을 부각시켜, 과거 영화진흥공사 시절로의 회귀를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다수의 토론자들은 “영진위를 둘러싼 진보-보수 진영의 대립과 갈등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김종국 교수의 주장과, “파벌이 나눠져 끼리끼리 해쳐먹었다”는 정진우 이사장의 원색적인 비난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토론회 이후 객석에서 조혜정 영진위 전 위원이 “영진위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은 필요하지만 정확한 근거와 구체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야 설득력이 있다”고 지적한 것이나 또 다른 청중이 “정권교체에 따른 영진위의 전면적 개편은 소모적이다.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등, ‘개혁’이라는 명목 아래 영진위의 순기능마저 없애려는 게 아니냐는 영화계의 우려가 현실화되는 듯했다.
이런 상황에서 몇몇 소수 발언은 향후 영진위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이원화 보스톤창업투자 상무의 “영진위가 상업영화의 흥행수익으로 종자돈을 조성해 독립․예술영화를 지원해야 하며 공익적 지원 사업과 수익창출이 시너지 효과를 낼수 있도록 조율해야 한다”는 의견이나 김시무 평론가의 “다양한 의견수렴을 위한 위원 합의제의 긍정적인 취지를 잘 살려야 하며 과거 영진공 시절로의 회귀는 절대 안 된다”는 주장은 영진위가 염두에 두어야 할 내용이다. 또한 임창재 이사장은 “영진위내 소위원회의 활동 역량을 키워서 내,외부적 의사소통이 원활해져야 한다”고, 최진욱 위원장은 “조직이 전문화, 세분화되어 있어야 현장 스태프들이 접근하기 용이하다. 영진위가 현장과의 창구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인적 자원에 투자해야 한다”며 실질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토론회에서 많은 발언들이 나왔지만 영진위의 공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지지 못한 것은 물론 영화의 산업적 기능만 강조해 논의의 균형감을 상실하는 등 아쉬움을 남겼다. 이에 “위원장 선출은 정책과 직결되는 사안이라 다양한 진영의 의견을 수렴해야하며, 한국 영화의 미래에 대한 장기적인 청사진과 비전을 갖고 영진위가 운영되어야 한다”는 임창재 이사장의 제언은 향후 새로운 영진위를 꾸려나갈 위원장과 정부가 꼭 새겨들어야 하는 지점일 것이다.
추신: 이번 토론회에 앞서 지난 2일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영진위의 향후 개편에 관한 주요 방향을 발표했다. “위원장의 인사권과 경영권을 제한하는 단체협약 개정 등 노사관계의 선진화”, “인원감축, 조직개편, 대졸초임 인하로 경영효율화 달성” 등 경영평가에서 지적된 부분이다. 또한 영화발전기금 지원사업 개편과 민간과 중복되는 교육·기술지원부문의 기능전환 또는 폐지도 언급했다. 이미 정부의 영진위 개편에 관한 기본 방침이 정해진 마당에 이번 토론회는 면피용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울수 없다. 갈 길이 너무 먼 영진위와 한국 영화계의 앞날을 지켜보는 심정이 편치 않다.
그렇게 바쁜 편은 아니다. 오늘 인터뷰가 좀 몰려있는 편이지만, 시간이 지나니 괜찮은 것 같다. <태희혜교지현이>도 이번 달 23, 24, 25일이 마지막 녹화다. 영화는 상미언니(남상미)가 워낙 신경을 쓰고 있어서 많이 바쁘다. 나는 뭐 상미언니에 비하면 괜찮은 편이다.(웃음)
촬영은 어땠나? 맡은 역할이 그렇다보니 고생도 많았다고 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고생한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어려웠던 점은 전 작품보다 연기력이 많이 요구되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더 많이 신경 쓰고, 고민도 많이 했다. 촬영 때 고생스러웠던 기억은 접신 장면에서였는데, 촬영에 몰입하다가 기절하면서 머리를 부딪쳐 의식을 잃기도 했다.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스탭들이 얘기해주면서 많이 걱정해줬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어떤 느낌이었나?
시나리오를 보고 나서, 이 작품은 내가 하기에는 연기적으로 어려운 작품이겠구나 싶었다. 근데 왠지 도전해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이 이 역할을 하게 되면 후회가 될 것 같았다. 욕심이 났다.
쉽지 않은 캐릭터다. 부담스러운 부분도 많았을 텐데.
솔직히 부담이 많이 됐다. 캐릭터에 대한 이유는 아니고 인물의 중요도 때문이었다. 영화에서 소진은 중심이 되는 역할이고 핵심적인 인물인데, 여기서 내가 못하면 다른 사람들한테 죄송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부담이 됐고, 더 열심히 했다.
소진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했나? 영화 외적으로 어떤 설정을 뒀나?
소진은 뭔가 알 수 없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그냥 평범한 아이다. 특별할 것도 없고 유별난 것도 없는 그냥 아이 그 자체다. 하지만 어른들이 멋대로 판단하면서 소진을 괴롭힌다. 원래 어떤 대상을 특별한 시각으로 판단하면, 그 대상도 판단에 맞게 변하게 된다. 그래서 소진이도 그렇게 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변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잘못된 믿음과 판단 때문에 그렇게 변화되도록 강요당한 거다. 결국 어른들의 희생양이다.
이용주 감독이 특별히 요구한 부분이나 포인트를 집어준 부분이 있나?
촬영 전보다는 촬영을 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감독님은 너무 강한 걸 원하지는 않았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강한 장면들이 많아서 임팩트를 살려서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접신 장면에서도 좀 강한 표정과 과감한 행동으로 연기해야겠다 싶었다. 근데 감독님은 그걸 원하지 않았고, 강렬함보다는 위엄 있는 모습을 요구했다. 접신 장면에서도 위엄 있는 모습을 통해 진짜 신처럼 보이길 원했다. 작두 위의 모습에서도 강하고 광적인 모습보다는 주위를 압도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을 표현했다.
대사를 많이 쓰지 않고 캐릭터를 표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
특히 접신 장면처럼 표정이나 행동으로 보여주는 촬영 때 고민을 많이 했다. 당시 조금 아쉬웠던 점은 작두 위에 올라가는 장면에서 얼굴 표정을 찍을 때였다. 처음에는 좀 센 표정으로 눈도 막 째려보고 이런 걸 예상했는데, 감독님은 좀 다른 스타일을 원해서 테이크도 여러 번 갔었다. 개인적으로는 좀 강하게 표현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근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까 감독님 말도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이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 잘 표현된 것 같다.
시나리오로만 읽었을 때랑 완성된 영화를 볼 때의 느낌은 어떻게 다르던가?
전체적으로 잘 구현된 것 같다. 아쉬운 점은, 창문에서 입을 크게 벌리는 장면이랑 끝에 슬프게 우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있는데, 시나리오 때도 그렇고 찍을 당시에도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근데 아쉽게도 우는 장면이 편집됐다. 더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는데 편집이 돼서 많이 아쉬웠다.
영화의 뒷부분이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도 들더라. 편집이 많이 돼서 그런가?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도 그렇고 뒷부분이 많이 아쉽다는 얘기를 하더라. 개인적으로 속상한 건, 연기가 좋고 장면의 느낌도 좋았는데 끝에 가서 편집되는 경우들이 생긴다는 점이다. 어쩔 수 없는 연기자의 욕심이겠지만.(웃음)
촬영 내내 음산한 분위기를 위해 우울한 기분을 유지하느라 힘들었겠다.
반대다. 우리 촬영장은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다. 우울하고 음산한 분위기의 영화지만, 촬영 당시에만 심각하지 그 외에는 너무 화기애애했다. 3월부터 5월까지 3개월간 촬영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불신지옥>이 기존의 공포영화와 비교해 어떤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나?
기존의 공포영화은 피나 귀신, 쿵쿵거리는 사운드 같은 것들로 공포를 만든다. 근데 우리 영화는 현실에서 있을 법한 공포를 다룬다. 예를 들면 9시 뉴스 같은데서 나오는 사건 같은 거다. 잘 알지 못하는 낯선 동네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이야기, 평범한 동네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사건들을 이야기로 담았다. 그런 사건들을 영화로 옮긴 느낌이다. 현실적이면서도 기괴한 이야기로, 여기에 심리적으로 자극을 줄 수 있는 요소를 담았다. 그래서 더 무서운 영화가 됐다.
공교롭게도 <헨젤과 그레텔> 이후 연속으로 공포영화 출연이다.
<헨젤과 그레텔> 이후 연속으로 출연해서 이미지가 굳어질까 살짝 걱정도 했지만, 역할에 욕심이 나서 다른 부분을 많이 생각하지 않았다.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서 무조건 놓치고 싶지 않았다. 두 편 하고 나니 다음 영화에서는 밝고 희망찬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웃음)
지금 방영 중인 시트콤 <태희혜교지현이>에서처럼 밝은 역할?
근데 시트콤에서는 특별히 밝은 캐릭터라기보다 그냥 평범한 내 모습을 보여주는 정도다. 특별히 어떤 연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캐릭터였으면 좋겠다.
근데 생각해보면 <헨젤과 그레텔>이나 <불신지옥>이나 캐릭터의 이미지가 비슷한 면이 있다. 연약한 이미지가 공포와 맞물려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촬영하고 생각해보니까 <헨젤과 그레텔>의 영희나 <불신지옥>의 소진에 공통점이 있더라. 둘 다 어른들에 의해서 희생당하는 캐릭터라는 점이다. 또 둘 다 아픔을 혼자 지니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공통점이 많은 캐릭터다.
시트콤 작업을 병행하느라 힘든 점은 없었고?
왔다 갔다 하면서 촬영했다. 근데 영화 스케줄은 드라마랑은 달라서 잠깐씩만 하는 편이라 시간적으로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또 시트콤도 고정된 스케줄이 있어서 크게 문제는 없었다. 일주일 분량을 3일에 다 찍으니까. 게다가 신도 많지 않아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하루에 5,6개 신이 있을 때는 오후 2시에 시작해서 밤 11시 정도에 끝나곤 했다. 거의 대사만 맞으면 오케이가 나와서.(웃음) 그것보다는 두 작품을 같이 하느라 학교를 많이 빠진 게 안타깝다. 특히 시험 기간이랑 겹쳐서 많이 힘들었다.
요즘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오지 않나?
요즘은 한국예술종합학교나 독립영화에서도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온다. 좋은 시나리오도 많아서 욕심이 나는데, 시트콤도 마무리 해야 하고 학교도 가야하고 해서 시간이 잘 맞지 않아 안타깝다.
시나리오를 받고 출연을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일단 엄마랑 얘기를 많이 한다. 엄마는 어떤 시나리오가 들어오면 우선 내 의견을 많이 물어본다. 이런 작품이 들어왔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본다. 시나리오를 통해 하고 싶은 작품이나 캐릭터를 정해도 고민되는 부분이 있으면, 주변에 있는 영화 작업을 하는 사람들한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성격을 바꾸려고 연기를 시작했다고 했는데, 연기를 너무 잘하는 배우가 됐다.
연기 덕분에 성격은 많이 바뀌었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말도 잘 못하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것도 두려워하고 그랬는데, 요새는 말을 너무 많이 해서 탈이다.(웃음) 또 연기는 계속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학생인데도 연기를 하고 있으니까, 연기가 나에겐 전부라는 생각이 든다. 공부를 대신해서 지금 해야 되는 것이 연기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더 많이 배워서 더 잘하고 싶다.
드라마나 영화, 최근에 시트콤까지 활동 영역이 다양하다. 어떤 작업이 특히 마음에 드나?
다 재미있지만, 드라마하고 영화가 좀 더 맞는 것 같다. 시트콤을 찍으면서 느낀 건데, 시트콤은 나랑은 잘 안 맞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웃음) 내가 하던 연기 방식과 시트콤에서 해야 하는 연기 방식에 차이가 있다. 특히 초반에는 적응하는데 많이 힘들었다. 순발력도 필요하고 기존에 하던 연기 호흡하고도 많이 달랐다. 진행 속도도 빠르다. 시트콤 초기에는 해보고 싶은 연기가 있어도 주어진 역할이 크지 않다보니 많이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 점 때문에 혼자 힘들어하고 그랬다.
연기 좀 해볼까 싶어도 너무 빨리 지나가버리는?
그게 또 하다 보니 습관이 되기도 하더라.(웃음)
아직 학생 신분이라 연기를 하면서 학교도 다니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근데 작품 없을 때나 시간이 날 때는 친구들하고 보내는 시간이 많다. 학교에 있을 때만큼은 친구들하고 잘 지내고 학교생활도 충실하게 하는 편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공부를 해야 하는 시간에 연기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니까 안타깝다. 공부 대신이라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하게 된다. 공부도 소홀하게 하고 싶지 않다.
쉴 때는 주로 뭐하면서 지내나?
평범하다. 책도 읽고, 컴퓨터도 하고, 친구들 만나서 놀러 다니고.(웃음) 뭐 특별한 것은 없다.
그래도 사람들이 알아보고 그러면 조금 불편하지 않나?
보통 사람들이 그렇게들 많이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게 힘든 부분은 없다.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할 건 다 하고 있다.(웃음) 놀러 다니고 그래도 많이 알아보지 않더라.(웃음) 그냥 알아봐도 자연스럽게 대하는 편이라 나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연기자라는 이유로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다.
아역으로 시작한 배우들은 나중에 그 이미지를 깨야 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아직까지는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아역에서 성인배우로 잘 넘어가려면 학생 때 너무 많은 작품을 하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작품에 비슷한 캐릭터로 출연하면 이미지가 굳어질 수도 있으니까. 어느 정도 휴식기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바심 내지 않고 여유를 갖고 연기하고 학교도 다니고 할 생각이다.
처음 나왔을 때, 제 2의 문근영이라는 소리도 있었다. 제 2의 누가 된다는 건 아무래도 별로겠지?
특별히 누구랑 비교되는 게 싫었다는 건 아니고, 그런 표현 자체가 별로 좋은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 2의 누구보다는 심은경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싸이코패스를 해보고 싶다. 굉장히 순해 보이고 그런 일을 저지를 것 같지 않은 사람이 이중적으로 변해서 악한 얼굴을 보이고 하는 그런 캐릭터도 매력 있을 것 같다. 내면의 악을 끌어내는 연기를 해보고 싶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얼굴을 하고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 강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옛날에 영화감독이 꿈이라고 했는데, 아직도 그 꿈은 유효한가?
물론이다. 아직까지 꿈에 대한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지금 나름대로 책도 많이 보고, 글도 많이 써보고 있다. 나중에 유학 가서 영화 연출 공부도 해보고 싶다.
연출하는 영화에 직접 연기도 할 생각인가?
연출하면서 연기를 같이 하는 건 생각해 보지 않았다. 만약 연출을 하게 된다면 연출에만 전념하고 싶다.
다음 작품으로 계획 중인 것이 있나?
아직까지는 없다. 올해 상반기에는 영화나 시트콤을 하느라 학교를 많이 빼먹어서 잠시 쉬면서 공부에 신경을 쓸 생각이다. 친구들하고 어울릴 시간도 필요한 것 같다. 당분간은 휴식을 겸해서 학교생활에 충실할 생각이다.
심은경에게 <불신지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간적인 부분이나 연기적인 부분에서 한 층 성숙하게 만든 작품이다. 특히 연기적으로는 여러 부분으로 자극을 줘 한 단계 올라가게 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 전 작품들보다 더 열심히 한 작품이라 애착이 많이 간다.
김태곤 감독님 혹은 그의 영화 <독>에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겠다거나, 이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거나, 공포영화니까 내가 적임자라던가 등의 어떤 거창한 이유 없이, 단지 감독을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독자 인터뷰를 신청했다. 인터뷰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전혀 없는지라 어떻게 준비해야할까 다소 겁이 나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정신으로 겁 없이 질러보았다. 이렇게 막무가내 식의 결정을 내린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것은 늘 생각처럼 만만치는 않은지라, 기일이 닥쳐와도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뭘 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모르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야 모르는 거니까 그냥 영화나 보고 가자라고 마음먹었다. 어차피 영화 얘기 할 거니까 영화 보고 가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나, 라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 두 번 딱 감상하고 아무런 대책 없이 인터뷰 장소로 향했다.
인터뷰는 인디스토리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는데, 김태곤 감독님과 편집장님 그리고 나, 세 명의 인원으로 진행되었다. 사진은 인디스토리 직원께서 찍어주었다. 인터뷰에 앞서 네오이마주는 인터뷰 내용을 중간에 커트하거나, 분량을 줄이는 일이 없으니 영화에 대해, 하고 싶은 대로 모두 말하라고 당부했고, 그에 대해 감독님은 그럼 더 위험한데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김시광(이하 ‘인’) : 영화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해보자.
김태곤(이하 ‘독’) : 사실 영화 마니아가 아니었다. 영화를 무슨 영화관에 찾아가서 보거나, 영화제를 찾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릴 때 다들 그랬듯 비디오 빌려보고, 우뢰매나 애들 다 보는 그런 영화만 극장에 가서 보고는 했다. 영화가 너무 좋다, 영화를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기 전에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사실 글짓기를 좋아하게 된건 글짓기 대회에 나가서 잘 쓰면 상을 주니까.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라서 그런 기회가 별로... 칭찬 받으니까 좋더라. (웃음) 아, 내가 글을 잘 쓰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갔다. 그 때도 딱히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는 건 없었다. 근데 그 때 당시 [나]라는 드라마가 유행했다.
인 : 본 적이 없다.
독 : 방송반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고등학교 아이들의. 그걸 보고나니 방송반이 가고 싶어졌다. 오디션을 통해 방송반에 가입했다. 거기서 처음 카메라를 접하게 되었고 무언가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무슨 과를 가야하고, 앞으로 뭐를 해서 먹고 살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나는 그림을 좋아하고 잘 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글도 잘 쓰는 것 같은데 영화감독을 해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 : 그 때가 정확히 언제쯤?
독 : 고등학교 1학년 말이었다. 원래는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었다. 과외 선생님이 그 때 한양대에 다녔었는데 한양대에 영화과가 있다 이런 말을 전해 듣고 하면서, 애니메이터보다는 영화감독이 더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미술 전공한 애들보다는 그림을 훨씬 못 그릴 테니까. 그 때부터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인 : 그러면 글쓰기를 좋아했었다는 것 하고, 영화를 하기 전에 소설을 쓴다는 스타일은 같은 연장선에 있는 것인가.
독 : 그렇다.
인 : 그럼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영화를 만든다는 것과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나.
독 : 내가 소설가로서의 꿈을 가졌다고 하면 글쓰기에만 전념하겠지만, 내 경우의 소설은 영화를 만들기 전 단계 정도로 생각을 한다. 시나리오 쓰는 것은 솔직히 재미없지 않나. 계산적으로 플롯을 짜야 되고, 처음과 끝에 대한 아귀라든지 그런 강박이 있어서 그런지 시나리오는 재미가 없다. 그런데 그 전에 소설을 쓰는 단계에서는 끝을 생각하지 않고 쓸 수가 있다. 내 소설 쓰기 방법은 내가 소재를 잡고 쓰기 시작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될 지 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디테일을 묘사할 수도 있고, 또 그 날의 기분에 따라서 달라지는 그런 것도 있다. 하지만 영화의 전단계로 쓰다 보니 내 소설을 읽어보았던 측근들은 네 소설이 약간 영화 보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소설 자체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 차이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렵다.
인 : 예를 들어 [독]의 경우에도 영화를 만들기 전에 중편소설 하나 썼다고 들었다. 혹시 볼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독 : 사실은 출판을 컷이랑 묶어서 필름-북처럼 하기로 했었는데, 그게 잘 안 되었다. 그 전의 소설을 읽어보니까 손발이 오그라들더라. 두려움에 다시 들춰내서 보고는 했었는데. 볼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직접 주는 방법 외에는 없다.
인 : 직접 받는 방법 외에는 못 보는 것?
독 : 그렇다.
인 : 내가 묻고 싶었던 것은 영화 <독>하고 소설 [독 안의 노인]하고는 조금 다를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감독의 스타일대로라면 영화라는 것은 약간 짜여 진거고, 소설 같은 경우는 그 날의 기분에 따라 뻗쳐나가는 그러니까 자유도가 높다고 해야 할 텐데. 결정적으로 달라진 부분은 없는가.
독 : 나는 인간의 심리라든지 그 디테일이 너무 좋다. 그런 것에 대한 집착이 소설 쓰면서는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상황들에 대한 설명이라든지,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들 자체가 상당히 디테일하게 많이 들어가 있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의 사건들이라든지, 영애의 심리라든지 그런 것들도 좀 더 디테일하게 많이 들어가 있다.
인 : 앞으로도 계속 시나리오 작업은 소설쓰기로 대체할 생각인가.
독 : 그렇다. 지금도 소설을 쓰고 있다.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민망한데, 조금씩 쓰는 거라서. 어쨌거나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항상 김태곤의 소설을 쓰고 있다.
인 : 첫 작품을 공포영화로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독 : 공모전이 있었다. 원래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는데, 대학원에 작품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게 학부로 넘어오게 되었다. 그 공모전에 이게 될까 안될까를 반신반의하면서 써놓았던 소설 중 하나를 시나리오화해서 제출했다.
인 : 그러니까 BK 지원 말인가.
독 : 그렇다. 이 작품을 위해서 몇 년간 준비하고 이랬던 것이 아니라, 공모전에 당선되어서 무조건 찍어야 했던 것이다. 첫 작품을 공포영화로 해야겠다 이런 건 없었고, 써놓았던 소설 중에 이 정도 예산으로 찍을 수 있는 영화는 이거겠다, 라고 해서 만들게 된 거다.
인 : 예산은 어느 정도 들었는가.
독 : 대략 1억 원 정도 들었다.
인 : 이제 영화로 들어가 보자. 실은 내가 인터뷰를 해본 경험이 없어 조금 앞뒤가 안 맞을 수도 있는데.
독 : 소설을 쓴다고 생각하고. (웃음)
인 : <독>은 반전이 있는 영화다. 그런데 이 반전이라는 게 결말에 가서 앞에 했던 얘기들을 완전히 뒤엎는 영화는 아니고, 아 그랬구나, 라고 설명해줄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다. 그래서 반전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독 : 반전의 미학이 있는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유주얼 서스펙트>나 <식스센스>나 그런 것. 그러나 <독>은 그런 충격적인 반전을 노리고 만들지는 않았다.
인 : 그렇다면 너무 약한 영화니까. (웃음)
독 : 장르적인 재미나 영화 보는 재미에 있어서 반전이라면 반전이라고는 하지만. 예를 들어 처음부터 드러내고 시작하는 것과 그것을 숨기고 시작하는 것 사이에서 굉장히 고민을 했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기대감이 떨어질 거라는 걱정이 있었다. 이미 다 알고 있고. 저래서 저랬구나, 라는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맞아떨어지면 영화를 보는 재미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안으로 페이크성 장치들을 조금 집어넣었다. 아이의 행동이라든지, 남자의 불편한 심리상태라든지. 이런 것들이 왜 이렇게 될까, 무엇 때문에 그렇지, 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간 다음에 아 이래서 그랬구나, 그리고 그 반전 후에는 더 극악스러운 상황까지 몰아가는 식의 구조를 잡고 영화를 만들었다.
인 : 회상을 제외하고서는 시간상으로 순서대로 흘러가는 구조임에도, 혼란스럽다거나 시간이 조금 뒤틀리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어 처음에 이 남자가 손에 밴드를 감고 있는데, 그 밴드를 왜 감았는지에 대해서는 그 이유가 나오지 않은 채 후에 어항 장면에서 딸 때문에 손을 다치게 된다거나. 부인이 욕실에 들어가는 장면은 없는데 욕실 안에 있다가는, 다른 이야기로 잠시 넘어갔다가 여자가 욕실에서 나오는 장면부터 시작한다거나.
독 : 그런 시간의 뒤틀림까지 계산을 하고 가지는 않았다. 다만 불편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게, 편집하는 지점들이 갑작스럽게 끝나는 장면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런 장면들은 아마도 내가 인서트에 대한 강박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니까 씬과 씬이 부딪히는 장면들에서는 사운드라든지 이런 걸로 대체하고 싶었고, 인서트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느낌보다는 충격, 충격, 충격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삐거덕 거리는 느낌의 톤이 더 맞다고 생각했다. 촬영할 때도 그렇고, 편집할 때도 그렇고, 조금 씬과 씬이 부딪히면서 좀 더 불편하게 만드는 게 나중에 결말로 봤을 때 좀 더 그런 것들이 파편처럼 기억에 다시 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 : 영화의 초입부터 확실히 중간까지는 로만 폴란스키의 <악마의 씨> 느낌이 많이 난다. 새로운 집에 이사를 갔는데 이웃들이 필요 이상 다가오는 것 같고, 거기에 뭐가 모를 불안함과 비밀이 있는 것 같고. 결정적으로 장권사라는 사람이 몸에 좋은 거라고 음료를 줄 때, <악마의 씨>의 한 장면을 생각했다. 나만 그랬던 건 아닌 것 같다. 혹시 영화를 만들기 전 참조했던 공포영화가 있는가.
독 : <악마의 씨>도 많이 봤었고, 기요시 감독 영화도 많이 봤었다. 의식적으로 참고하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그 두 영화들은 내가 많이 좋아하는 공포영화들이다. 이를테면 <회로>같은 영화.
인 : 그런데 갑자기 든 생각, 그 때 준 음료가 이상한 것이었나. 후에 장권사가 미애에게 쿠키를 줄 때, 미애 엄마가 이상한 거 버리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던데.
독 : 중요한건 장권사가 이 집에 오는 구실이었지, 음료가 중요한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계속 장권사가 미애 엄마를 계속 불편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보통 친한 교회 사람들끼리는 김치도 나눠먹고, 반찬도 주고 가고 그러지 않는가. 편집된 장면에는 그 음료를 먹으려다가 버리는 장면이 있었다. 양은용 씨의 당시 감정 상태가 상당히 중요했다. 남자는 친하게 지내려 하는 거고, 여자는 너무 싫고. 그런 반대편에 있는 심리 상태를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의 경우에는 원래 미애의 설정 자체가 아토피가 있는 아이였다. 나중에 막 긁기도 하고. 사실 아토피에 대한 설명들을 해야 할까, 좀 숨겨둬도 되지 않겠나, 등등을 고민했다. 시나리오를 15고까지 쓰면서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들어갔었는데, 그 중에 아이의 음식에 엄마의 강박관념도 있었다. 과거 회상 장면에서 드러났듯 아이의 할머니가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고 하는 것이 발로가 된 것일 수도 있고, 아토피의 원인이 할머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다. 그런 점에서 단 음식을 아이에게 준 것에 대해 화가 나는 그런 거랄까.
인 : 회상 장면에서도 양은용 씨가 어머니에게 밥을 줄 때 뭔가를 타는데, 제목 때문인지 그게 자꾸 독처럼 보이더라. 그 때 할머니가 아이에게 음식을 주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는 할머니 음식에 약을 탔기 때문 아닌가.
독 : 이것도 어떻게 보면 숨겨진 이야기인데, 치매가 걸린 노인에게 수면제를 먹이는 사례들이 굉장히 많다. 깨어 있으면 괴로우니까 일정량의 수면제를 먹이는 거다. 자면 편하니까. 이 여자 역시도 쭉 그렇게 해왔던 거고, 남편도 묵과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아이에게 먹이면 안 좋을 테고.
인 : 이런 것들이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음으로써 좀 혼동되는, 재미있는 구석들이 많은 것 같다. 만약 양은용 씨가 할머니 음식에 독을 탄 것이었다면 남자에게 모두 당신 잘못이라며 몰아붙이는 것은 회피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불공평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독이 아니라고 해도 그녀의 죄가 없지 않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아마도 내가 영화를 보면서 헛다리를 짚고 상상을 너무 뻗쳐나간 것 같다.
독 : 그게 좋지 않나. 내가 이렇게 얘기하는 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웃음)
인 : 독, 그러니까 또 생각이 나는 건데. 집들이 장면에서 독 에피소드가 나온다. 이 에피소드가 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라고 할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건가.
독 : 사실 아주 중요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경비실 아저씨가 “사실은 말이야,” 이런 식으로 괴담처럼 얘기하기보다는 그냥 툭 던지는 느낌으로 정보를 던지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았다. 때문에 조금 껄렁한 형의 입으로 얘기를 펼치도록 했다. 주인공은 아파트라는 그 희망하는 공간에 왔음에도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한다. 사실 그 발로가 독에 빠졌던 기억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파트는 자신이 원하는 욕망이 아니라, 남이 원하는 욕망에 투영을 한 거다. 자기의 욕망 자체가 자기가 정말로 바랐던 게 아니면 뒤틀릴 수밖에 없다. 모 아파트에 살고 싶고, 8학군에서 편입되고 싶고. 사실은 그런 것들은 모두 남이 만들어놓은 욕망이다. 우리는 진정한 행복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남들이 만들어 놓은 욕망에 의해 가고 있는데, 그 결과는 역시 굉장히... 그 욕망을 이루었을 때 굉장히 허탈할 것이라 생각한다.
인 : 독과 아파트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안에 갇혀 있는 느낌이니까. 그리고 다른 소재, 종교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본인이 생각하는 종교를 표현한다면.
독 : 사실 다른 종교는 어떤지 잘 모르겠다. 나는 어릴 때부터 기독교, 개신교를 다녔었다. 부모님도 그렇고, 집안 자체가 다 기독교 집안이다. 종교는 굉장히 숨기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종교 때문에 가족이 엇갈리는 경우도 있고. 그리고 어머니를 보면, 그렇게 나이가 든 중년 여자가 할 수 있는 게 뭘까를 생각해보면, 교회를 다니면서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티를 만난다는 순기능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종교 자체는 정말 좋은 것 같은데, 그것을 믿는 자들이 잘못 했을 때 벌어지는 일들은 굉장히 극단적으로 나와 버린다. 이것은 공권력으로도 막을 수가 없다. 사람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나를 반대하는 자는 다 사탄이 된다. 그런 식으로 나오는 얘기들을 많이 봤다. 사람들 때문에, 종교 때문이 아니라.
인 : 영화에서 그려낸 종교에 대한 이미지들은 주위에서 한 번씩 봤음직한 그런 것들이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에서 장권사라는 인물은 주인공의 주위에서 일어난 사건의 본질에 대해 처음부터 제대로 짚고 접근하는 날카로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독 : 사실 나는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 100% 아니라고 말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분명히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있더라. 마치 내 뒤통수 너머의 뭔가를 보는 것처럼.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고, 어머니의 친구들도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서 장권사의 캐릭터를 따왔다. 물론 그들의 말이 모두 다 맞지는 않는다. 그런데 10번 중에 다섯 번은 맞추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그 사람들을 맹신하게 만드는 거다. 사실 장권사가 미애 뒤통수 너머의 무언가를 봤다기보다는, 나는 미애 역시 공범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이 한 집에 살지만 남편과 아내가 할머니에 대해 한 마디도 얘기를 안 한다. 아이 역시 마찬가지이고. 서울로 함께 상경하면서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역시 묵과하고 있는 거다. 나중에 나오지만 이 아이가 나오면 자신을 버릴 것이라는 고민이 있는 거다.
인 : 처음부터 설명되는 영화가 아니라 뒤에서 설명되는 것이 많다보니까, 애가 둘째를 시기하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나도 그렇게 버릴 거라고 말하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솔직히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나서 그게 모두 이해가 된다기보다는, 기억을 못하고 그냥 넘어가는 부분도 적지 않을 것 같다. 때문인지 두 번째 볼 때 영화가 더 재미있었다. 예를 들어 처음에 이사 온 날 남자가 “형 나 오늘 힘든 날이었어요.”라고 얘기를 한 이유를 알고 보면 그 장면이 더 괴롭기도 하고.
독 : 나는 다 안다. 왜 이러는지에 대해서. 하지만 관객은 그렇지 않다. 그걸 복기하는 시간이라는 게 너무 기니까. 정보의 양이 너무 많으니까. 그런 것들이 그러니까 내공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 첫 영화인 탓이겠지.
인 : 그래도 그런 게 독특한 분위기를 만드는 게 사실이다. 템포도 그렇고. <독>이라는 영화가 어려운 영화는 절대로 아니지만 분명히 놓치는 부분은 좀 있을 것 같다. 알고 보니 디테일이 엄청나게 풍부하더라. 영화를 처음 볼 때는 영화의 반도 못 본 것 같다. 사실 두 번 봐도 재미있는 영화가 좋은 영화인건 분명하니까, 내 입장에서는 최고의 칭찬이다.
독 : 감사하게 생각한다. (웃음)
인 : 영화 전체를 두고 감독의 입장에서 내가 이 장면은 정말 공들여 찍었다, 그러니까 본인이 특히 아끼는 장면이 있다면.
독 : 작정하고 사람들이 좀 무서웠으면 좋겠다는 장면들은 다 어려웠다. 사실 현장은 전혀 안 무섭고, 난리가 아니니까. 좀 더 무섭게, 이상한 표정, 이런 장면들이 사실 참 어려웠다. 내가 28살 때 찍었던 건데 내가 봐도 어설픈 점들이 보이는 것 같다. 오히려 그런 장면보다는 식탁 씬에서 영애와 형국이 대화하는 장면들이 대체적으로 좋다. 기도하고 나서 툭 치고 일상적인 대사를 나누는 것, 그 때 대사의 톤이라든지 대화의 템포라든지. 사실 그 장면을 찍을 때 두 배우들이 안 좋았다. 감정이 안 좋다기보다는 상황들이 조금 힘들어가지고.
인 : 좀 예민해진 상태였나.
독 : 그렇다. 워낙 빡빡한 일정이었으니까. 어쨌거나 그 장면들과 그 때의 긴장감들이 연기로 잘 나온 것 같아서 정말 좋았다. 놀이터 씬도 애착이 간다. 잘 표현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밤에 놀이터에 가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그 놀이터에 들어가기 전 풀숲을 걷는 느낌들이나 그런 것들은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거라서.
인 : 주연배우가 굉장히 영화하고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캐스팅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독 : 내가 인맥이 많지는 않았다. 영화 자체가 학교에 다닐 때 시작되다보니 인맥을 쌓을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모두 오디션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몇몇 영화나 이런데서 봤던 분들을 생각도 했었는데 워낙 규모가 작고, 감독 역시도 필모그래피가 뛰어난 게 아니다보니 못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임형국 씨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시나리오를 누굴 통해서 봤는데, 대한민국에서 이 남자 주인공의 역할을 가장 잘 할 사람이 나”라는 자신감이 차있는 내용의.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었다. 한 번 오라고 했고, 단편영화들을 봤는데 너무 너무 좋았다. 너무 전형적이지도 않고, 약간 못하는 듯한 연기인데 그게 계산되어 있는 거고. 그런 연기들이 너무 좋았다. 시나리오 얘기하면서 술도 많이 먹었는데, 그 때마다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많이 주셨다.
양은용 씨의 경우는 독립영화에서 굉장히 유명한 분이시더라. 나는 잘 몰랐다. 사실 영애 캐릭터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몰랐다. 일단 여자이기도 하고, 애 엄마이기도 하고, 임신 중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다. 이 캐릭터 만큼은 여자배우에게 의지하고 싶었다.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없을까 하면서 오디션을 봤는데, 그 때 양은용 씨가 나타났다. 우리 스탭들이 다 좋아하더라. 이 사람 아니면 안 된다고. 기존에 연기하신 것도 찾아보고, 주위 분들에게 들어보고, 만나서 보니까 정말 정확하게 연기를 잘 하시는 분이더라. 이 분이라면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잘하셨고. 아역의 경우 너무 전형적인 연기들을 한다. CF에서 나오는 그런 “더 주세요.” 같은 자기가 아이가 아닌 것 같은.
인 : 그런 아이의 판에 박힌 연기를 보면 솔직히 가증스럽다.
독 : 아이 자신도 가증스럽게 느끼는데, 그렇게 가르치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아이는 그런 아이니까. 그런 연기들만 하는 것 같다. 또 기존에 영화에 많이 나온 아역들은 개런티가 안 맞고. 그랬었는데 미애를 맡은 류현빈이라는 아이는 연기경험이 없었다. 그런 다듬어지지 않은 연기들이 훨씬 자연스럽더라. 생긴 것부터가 포스가 느껴지기도 하고. 잘 못하지만 상황들을 던져주면 되게 흡수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50명 정도, 아니 그 이상 오디션을 봤었는데, 결국 현빈이를 택하게 되었다.
인 : 주연들도 그렇지만 배우들을 잘 쓴 것 같다. 장로님이나 권사님. 장로님 죽기 전에 상당히 위엄 있는 그 목소리 같은 것이나, 웃으실 때 가끔씩 공포스러운 느낌을 보여주는 권사님이나.
독 : 하하하.
인 : 영화의 큰 줄기는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가 두고 온 것에 대한 이야기고, 거기에 들어맞는 예로 고려장을 든 것 같았다. 그래서 상당히 사회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누군가가 이 영화는 사회적인 영화라고 한다면?
독 : 근대화 과정은 아닌 것 같다. 고려장이라는 게 워낙 오래 된 거라서. (웃음) 사실 그렇게 큰 담론을 가지고 영화를 만든 건 아니었다. 사실 얘기가 나의 집안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나이든 노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게 폭탄 같다는 것을 느꼈다. 할아버지가 94살에 돌아가셨는데, 2개월밖에 못 산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도 2년을 더 사셨다. 그 때 할아버지와 모시고 사는 부모님 사이에 굉장히 미묘한 기류가 느껴지더라. 내가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아버지에게 물어봤다. “할아버지 빨리 돌아가셨으면 좋겠죠?”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그냥 천수까지 사시다가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이 영화는 그 다큐멘터리를 극단적으로 표현했다고 본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부모가 있는 모든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만약 내 부모가 나이가 들어서 아프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무의식이나 의식에 있어 다 가지고 있는 생각 아닐까? 근대화의 과정에서 두고 온 부분들에 대해서는 특별히 생각지 않았다.
인 : 훨씬 더 작고 개인적인 그런 영화였구나.
독 : 좀 더 사회적으로 본다면 아까도 욕망에 대해서 말했지만, 그게 현대화되는 과정에서라기보다는 좀 더 잘 살은 욕망이라든지, 그 욕망 자체가 추구하는 행복이라는 게 뭔지에 대해서 깊이 고찰하지 않고 보여 진... 내가 보고 부러웠던 것에 대한 욕망에 대해 꿈을 꾸면 잃어가는 모습이 많이 보일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렇고.
인 : 영화가 아파트에서 시작된다. 아파트는 결국 욕망의 산물인데. <독>의 아파트는 건물 상태도 그렇고, 엘리베이터도 그렇고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서울에 있으니까 상당히 비싼 집이기는 할 텐데. 그런 아파트로 결정한 이유가 있을까? 굉장히 근사한 아파트가 아닌 이유가.
독 : 사실 그게... 그런 집을 섭외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인 : 섭외라고 하면, 그 집은 어디서 찍은 건가.
독 : 누나 집에서 찍었다. 사실 굉장히 화려하고 좋은 아파트를 제가 본 적이 별로 없다. 타워팰리스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아파트라는 공간 자체가 너무 집집마다 다르고 그렇게 좋지는 않은 것 같다. 타워팰리스도 사실 그 이름을 사고 싶은 거지, 그 공간을 사고 싶은 생각은 아닐 것 같다. 너 어디 살아? 나 아파트 살아. 이런 것.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렇게 단체적으로 살고 있는, 그렇게 낡은 아파트라는 자체에서 할 이야기도 많다고 느꼈다. 개발이라던가, 아파트라는 이미지라던가.
인 : 그러니까 영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참된 행복을 찾는 법인가.
독 : 그렇게 거창하지는 않다. 누가 자꾸 물어보더라. 이 영화의 주제는 뭐냐고.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냐고. 그건 내가 할 말이 아닌 것 같다. 어떤 인터뷰에서 나온 것처럼 그냥 부모님에게 잘하자 그런 정도.
인 : 영화의 주제만큼이나 디테일에 많이 신경을 쓴 것 같다.
독 : 영화를 찍으면서 절대로 놓치고 가지말자고 했던 게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OK 컷을 안 내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빠듯한 일정으로 영화를 찍었었는데 편집 할 때 보면 내가 그냥 넘어가자고 했던 부분들이 항상 후회가 되더라. 후회 없이 찍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특히 배우 연기에 대해서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대사라 던지, 표정이라 던지,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독>이 미장센이 훌륭한 영화는 아니지만, 배우 연기까지 놓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영화가 될 것 같았다.
인 : 꽤 좋게 나온 것 같다. 그런 디테일에 대해 스스로 만족을 하는가. (웃음)
독 : 그러니까 어떤 기자분이 질문을 했던 건데, 어떤 칭찬이 가장 기쁘냐, 칭찬을 조금 들었을 텐데 그 중 어떤 칭찬이 가장 좋았냐고 한다면 나는 배우연기가 좋았다는 얘기를 들을 때가 가장 좋았다. 나도 거기에 가장 공을 많이 들였고, 배우들도 너무 잘 해주어서.
인 : 공포의 세공사라는 별명이 있던데.
독 : 완전 쑥스럽다. 그러니까 친구들이 놀리고. 얘 별명이 뭔지 알아, 공포의 세공사야 그러면서 깔깔깔깔거리고.
인 : 인터넷을 보니까 ET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이런 말을 했더라.
독 :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냐 그렇게 물어서. 내 최종의 꿈은 ET 같은 영화를 만드는 거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어떻게 나왔나? 그 기사.
인 : 사실은 나도 제목만 봤다. 나오면서 클릭하다보니까 재미있는 제목이 있길래. (웃음) 다음 작품 준비하고 있나.
독 : ‘지금 빨리 데뷔해서 어떻게 결과물을 내야겠다.’ 이렇지는 않다. 그냥 내 친한 형들이 입봉을 준비하고 있어서, 조감독 생활을 몇 년 정도 하면서 공부를 하고 싶다.
인 : 욕심이 없는 건가.
독 : 아니다. 평생 영화한다고 치면. (웃음)
인 : 이 영화에 대해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독 : 단편영화를 몇 편 찍었다. 그 중 학교 과제로 만든 <태곤아, 영화가 뭐야>라는 실험영화가 있었다. 상영 후 GV 시간이 있었는데, 교수님이 태곤아 영화가 뭐냐 그러시더라. 나는 영화로 다 얘기했는데. 그렇게 말했더니 됐고 그래서 영화가 뭐냐고 묻더라. 쫄아서 꾸역꾸역 말씀드렸던 것 같다. <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별로 없다, 사실. 그냥 열심히 찍었고요, 이런 말은 관객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 아닌가. 열심히 찍었든 안 찍었든. 귀엽게 봐주세요. 아... 뭐.
백건영(이하 백) : 영화를 보면 독립영화에서는 흔치 않은 공포장르를 선택했지만, 별로 무섭지 않은 영화였다. 코미디 영화가 일단 웃겨야 하고, 공포영화가 일단은 무서워야 된다는 맥락에서 무서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고. 대체적으로 영화 전체적으로 보면 카메라가 클로즈업이 그렇게 많지가 않고, 근거리 샷을 많이 찍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어찌 보면 아파트에 이사 와서 윗집과 벌어지는 관계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퍼즐이 풀리는 것을 보면 이곳의 얘기라기보다는 형국의 시골에서 있었던 일, 그러니까 원죄에 해당되는 그것에 가서야 마지막 퍼즐이 맞춰진다. 그렇다면 저 영화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결과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이전에 나왔던 모든 장면들이나 사람들의 관계에서 공포적인 어떤 느낌은 주었을지언정, 실질적으로 이 영화를 과연 공포영화의 범주로 봐야 하는 걸까 라는 의구심이 하나 들었다. 이것은 차라리 추리, 서스펜스 쪽에 가깝지 않을까.
독 : 사실 공포장르에 대해 찾아보거나 즐겨보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하지만 장르에 대한 법칙이라든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좀 거부감이 있었다. 특히나 한국 공포영화들을 보면 영화에서 이렇게 강요하는 듯한 느낌의 샷들과 그런 분위기 조성 자체 그걸 원치 않았었고. 사실 이게 원래 공포영화가 아니라고 봤을 때에 공포에 대해 느끼는 것과 공포영화라고 했을 때 느끼는 거와는 다르다. 실제로 부산영화제에서 보고 나온 사람들은, "야 이거 공포영화잖아 뭐야 나 공포영화 못 보는데" 이런 반응이라서, 아, 이거 공포영화 아니에요 이러고 다녔다. 그러니까 아니라고 생각하고 본 사람들의 충격은 더 크더라. 반면 로테르담 영화제 갔을 때는 '헝그리 고스트'라는 공포섹션에 들어갔는데, 오히려 그 나라 사람들은 공포라는 장르를 굉장히 재미거리로 보더라. 공포스러운 장면들이 나오면 낄낄낄낄 웃고, 이런 식으로 보다보니 내 영화를 보니까 그게 아닌 거다. 솔직히 상당히 분위기가 안 좋았다. 애초에 만들었던 방식 역시도 내가 제대로 된 공포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었고, 어떤 사회적 드라마의 어떤 입장을 다루었고, 또 인간의 관계라든지 심리라든지 이런데 더 초점을 맞추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공포요소들을 빼기가 그랬던 것은 외압도 좀 있었고.
결과적으로 이 영화가 어떤 식으로 효과적으로 관객들을 더 많이 보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어떤 옷을 입힐 것인가의 문제였다. 사실 공포장면들이 많지가 않았다. 그렇게 완성하다보니까 너무 밋밋한 영화가 되어버리더라. 그래, 그럼 무서운 장면에서는 무섭게 하자. 못한다는 얘기 듣지 말고, 해버리고 욕먹자. 피해가지 말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흐름상 주제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장면들을 다시 찍었다. 또 영화를 마케팅을 하고 홍보하는 차원에서 미묘한 지점들이 있었다. 이건 덜 무서운 공포영화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런 부분들은 내가 잘 모르는 거니까, 맡기고 가자라고 생각했다. 크게 무서운 거라고 생각하고 오시는 관객 분들은 실망을 많이 하는 것 같고. 의외로 드라마 쪽에 대해서 기대를 안했다가 보신 분들은 좀 좋은 말씀을 하시는 것 같고. 그렇다.
백 : 포스터를 보면서 왜색이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신지옥>이랑 비교하는 보도 자료가 떴던데. <불신지옥>도 똑같이 고립된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고, 믿음에 대한 이야기이고 기독교 그보다 더 심한 광신도가 나오고 그런 점에서 묶이는 데가 있는 것 같다. <불신지옥>이 전형적인 한국영화라는 느낌이 있었던 반면에, <독>은 아파트 같은 경우의 디테일에서 일본 냄새를 맡았다. 한 번 더 볼 기회가 있으면 느낌이 좀 정리가 될 것 같은데. 독립영화에서 저런 포스터가 정말. 오랜 만이다.
인 : 왜색이 조금 나기는 했다. 특히 도입부의 매미소리는 전형적인 일본영화랄까. 쓰르르르르르 하는 매미소리를 처음 들었던 게 신세기 에반게리온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개인적으로 매미가 쓰르르르르르 이렇게 우나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는데.
독 : 그 매미소리 하나까지, 그렇게 내가 선택하지는 않았다. (웃음) 나도 일본영화를 중국영화보다 더 좋아한다. 섬세해서, 영화 자체가. 그게 사운드의 영향도 참 큰 것 같고, <에반게리온>을 보면 어딘가에 저 공장 소리가 들린다. 그런 것들은 영화에 전면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분위기들은 조성에 기여한다. 그런 면들이 사실은 너무 좋았었고. 사운드 믹싱에는 굉장히 많이 신경을 썼다.
인 : 사람들이 기대하고 온 것과는 다른 영화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한다. 영화는 기요시에 가까운데, 포스터는 시미즈 다카시 풍이니까. 그래도 처음 볼 때보다는 확실히 두 번째 볼 때가 더 좋은 영화다. 관객이 관람을 한다면 오히려 그게 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놀이터 씬 같은 건 잘 빠졌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백 : 부엌 장면을 보면 상당한 시골에 속한 정도인데, 그들이 상경하자마자 도시화되는 모습들이 너무 좋았다. 시골 사람들이 딱히 순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시골이라는 공간 속에서 꿈틀대는 욕망, 이런 게 좋았다.
인 :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독 : 고맙다.
인터뷰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족함을 느꼈다. 경험 미숙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느끼기에 나는 감독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내기 보다는 내 얘기를 너무 많이 했던 것 같다. 두서도 없었고. 반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네오이마주의 독자가 인터뷰어라는 기회를 좀 더 많은 독자들이 활용해보기를 감히 추천해본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터뷰어에게 독자라는 절대적 면죄부가 주어진다. 물론 내게 기자라는 명함이 주어졌다면 상당한 자괴감에 빠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독자가 원숙한 인터뷰어와 같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주로 말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감독이라는 점도 안심이 된다. 둘째, 인터뷰 분위기는 정말 화기애애하고 즐겁다. 직접 감독을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돈을 주고서도 쉽게 얻을 수 없을 만큼 재미있는 경험임을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애정의 대상이 생겼다는 것이, 이 인터뷰의 가장 큰 소득이 아닐까 싶다. 영화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개인적 경험이 추가될 때, 훨씬 큰 애정으로 바라보게 되는 거니까. 나는 김태곤이라는 감독이 향후 좋은 필모그래피를 쌓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어쨌거나 그러니 겁 없이들 질러보시라.
모든 존재하는 것은 사라진다. 하지만 디지털은 영원하다고 말하곤 한다. 과연 그럴까? 삭제 버튼 한 번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디지털에 영원, 불멸이라는 단어가 어울기나 할까? (어쩌면 디지털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빅 리버>로 데뷔한 일본의 후나하시 아츠시 감독은 <야나카의 황혼빛>을 통해 영원한 것은 결국 기억뿐이며. 매체가 필름이건 디지털이건 간에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그것은 결국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특히 디지털은 쉬운 기록성에 의한 쉬운 삭제의 프로세서로 인하여 오히려 너무나 사라져 버리기 쉽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시대는 디지털을 요구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존재시키기 위해서 좀 더 열심히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글을 써야 겠다는 생각이 벼락처럼 스쳐지나간다.